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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세계불교54●네팔불교(3)

이치란 | 기사입력 2018/03/21 [08:24]
룸비니 동산, 세계평화 도시로 개발

현대세계불교54●네팔불교(3)

룸비니 동산, 세계평화 도시로 개발

이치란 | 입력 : 2018/03/21 [08:24]
▲ 석가모니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공원은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평화마을’로 개발 중.

‘싯다르타 고오타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면서 탄생한 룸비니 동산은 지금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평화마을’로 개발 중이다. ‘룸비니개발위원회’는 1985년 네팔정부에 의해서 창립되었다.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 데비는 친정으로 가는 길에 싯다르타를 낳았다. 당시 인도의 풍습은 출산을 위해서는 대개 친정집에 가서 출산하는 전통과 관습이 있었다. 동서사방으로 칠보를 행하면서 외친 선언은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구호의 의미가 크다. 부처님 탄생 기원(紀元)은 여러 설이 있는데, 대체로 ‘기원전 563-483’ 설로 통일 되어 있지만, 이것은 남방불교설을 따르는 것이고, 북방불교설(중국)은 3천년설을 따른다.     

1950년 불교의 3대 종파 지도자들이 스리랑카에서 남방설을 따라서, 2500년 설로 통일 시켜서 올해는 불기 2562년이다. 그런데 불기(佛紀)는 부처님 탄생을 기년(紀年)으로 삼지 않는다. 불멸(佛滅=부처님 돌아가신 해=열반)을 기원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불기는 부처님 열반으로부터 기원한다. 그렇지만, 남방설에도 1년의 차이가 나는데, 그것은 인도권에서는 부처님께서 열반한 당해 연도를 불기 1년으로 기산하고, 태국에서는 1년이 지난 다음 해를 불기 1년으로 삼는다. 한국불교는 인도설을 따르고 있다.       

네팔불교에서는 싯다르타의 탄생을 기원전 623년으로 보고 있다. 남방설과는 60년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대 인도를 통일했던 아소카 대왕은 불교로 개종한 다음, 기원전 249년 이곳 룸비니를 방문했다. 네 개의 탑과 석주 한 개를 세워서 브라미 글자로 새겼다. ‘왕(아소카)은 대관 20년 만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부처님 탄생지를 방문하여 탑과 석주를 세우고, 이곳이 부처님 탄생 장소임을 확인한다.’는 정도의 글씨를 새겼다. 또한 이 지역은 세금을 면제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비문은 인도역사 연대와 부처님 탄생지 등,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와 부처님 탄생 연대를 추정케 해 준다. 참으로 중요한 역사적 단서가 되는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유엔에서는 백만 불을 지원하여 고고학적 연구와 개발프로그램 마스터플랜을 준비하도록 했다. 유엔은 1960년대부터 지원하여 1978년 개발계획이 완성되었다. 실제로 룸비니에 가보면 자동차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한 지역이다. 룸비니는 3개의 구역으로 개발되고 있다. 1. 새 룸비니 마을 2. 문화 공간 및 사원구역 3. 성지(聖地)로 나뉜다. 룸비니 마을은 기존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살도록 배려했다. 호텔 상업지구 등이다. 문화 공간과 사원 구역은 연구소 문화 갤러리 도서관 대학 평화연구소 등이 자리 잡는다. 또한 사원 구역도 이 구역에 들어서는데 남방 불교권 사원과 북방 불교권 사원들이 긴 수로(水路)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건립되고 있다.    
▲ 룸비니 성지 구역에 있는 마야 데비 사원의 야경과 외국에서 온 참배객들.  
▲ 마야 데비 사원과 연못가에서 명상하면서 조용히 기도정진하고 있는 네팔스님들.   

성지구역에는 마야 데비 사원과 연못 아소카 석주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구역은 신성한 구역으로 참배의 대상이 되며, 2구역은 문화공간으로서 평화무드를 조성하여 세계평화에 기여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기능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룸비니가 개발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1956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제 4차 세계불교도우의회 대회가 결정적이었다. 세계불교지도자들은 룸비니가 황폐화된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을 목격하고 당시 네팔 왕에게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네팔 정부는 룸비니에 관심을 갖게 되고, 부처님 탄생지로서의 불교성지로 개발, 세계의 불교도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이후 1967년 우탄트 유엔 사무총장은 이곳 룸비니를 방문하고, 네팔정부와 협력하여 공동으로 개발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우탄트 사무총장은 미얀마 출신으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우탄트 유엔 사무총장의 제안으로 1970년 13개 국가로 구성된 룸비니개발위원회를 발족하게 되었다. 여기에 동참한 나라들은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라오스, 말레이시아, 네팔, 파키스탄, 싱가포르, 스리랑카와 태국이었다. 1972년에는 방글라데시와 부탄이 합류했다.    
▲ 지난 3월 15일 룸비니 동산을 직접 찾은 필자.     

필자는 룸비니 공원을 몇 차례 방문한 바 있다. 필자가 처음 찾았던 80년대 초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90년대와 2천 년 대에 접어 들면서 룸비니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금 룸비니는 엄청난 규모의 평화공원으로 변모했다. 숲과 새들의 천국이 되었다. 필자는 5년 만에 룸비니를 찾았는데,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개 인도불교성지를 가는 불자들은 델리-바라나시-보드가야-왕사성-날란다대학 터- 바이샬리-쿠시나가라-룸비니-사위성-아그라 순으로 일정을 짜게 된다. 필자도 이번 인도-네팔 불교성지 순례도 이런 코스로 다녀왔다. 불교성지는 갈수록 진화하는 모습이다. 다른 종교성지와는 다르게 불교성지는 그 범위가 광범위하다.

불교성지는 4대 성지, 8대 성지, 16대 성지로 성지영역이 확장된다. 8대 성지가 부처님과 직접 관련이 있을 정도로 부처님은 재세 시에 행동반경이 넓었다고 해야 하겠다. 성도(成道) 후에 45년간 활동했기 때문에 공간을 넓게 사용했고, 다니던 역정 또한 긴 여정이었었다고 할 것이다.
보검 이치란 박사·해동세계불교연구원장(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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