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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세계불교 64 ●인도불교<10>담마찰 100만 불자 대법회 참가기(2)

이치란 동방불교대학 총장 | 기사입력 2018/12/14 [07:05]
8백 년 동면에서 깨어난 신 불교운동

현대세계불교 64 ●인도불교<10>담마찰 100만 불자 대법회 참가기(2)

8백 년 동면에서 깨어난 신 불교운동

이치란 동방불교대학 총장 | 입력 : 2018/12/14 [07:05]
▲ 태고종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이 법회장소로 입장하고 있다.        

8백 년 동면에서 깨어난 신 불교운동

인도불교의 역사는 2천 6백여 년이 된다. 남방불교의 자료에 따라서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서 토론하여 결정한 불기연대를 2천 5백년 설을 채택했다. 불기(佛紀)는 부처님 탄생이 기년(紀年)이 되지 않고 불멸기원(佛滅紀元)에 따라서 정해졌다. 말하자면 부처님 열반을 기년으로 삼는 것이다. 이 또한 인도식과 태국식이 있는데 인도식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그해를 1년으로 보는 것과, 태국식은 1년 후에 불기 1년으로 기산하는 0년 식이 있다. 기산하는 날짜도 부처님 열반일인 음력 4월 15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북방 불교인 중국 한국은 음력을 기준 삼아 부처님 열반일이 음력 12월 8일이다. 하지만 남방불교 전통에서는 음력 4월15일이 탄생 성도(成道) 열반이 동일 날짜이다. 남방불교 전통에서는 ‘웨삭의 날’이라고 해서 이 날을 탄생 성도 열반으로 함께 행사를 열고 있다. 일종의 봉축행사를 한다. 죽음까지도 슬퍼하지 않고 ‘니르바나(해방 또는 자유해탈)’이란 의미에서 봉축하는 행사를 갖는다. 불기는 이제 남방설을 따라서, 올해가 불기 2562년이다. 여기에 부처님이 80평생을 이 사바세계에 계셨으므로 2562년 플러스 80년 하면 부처님은 2640년 전에 탄생하셨지만, 35세에 성도하여 전법을 시작했으므로 2640년 마이너스 35년 하면 불교의 역사는 2605년 전 쯤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인도불교 역사는 시작되었고, 12세기 튀르크 무슬림군대의 공격으로 인도 땅에서 불교가 전멸 하다시피 한 이후, 8백년간의 긴 동면을 한 다음, 스리랑카 인도성지복원 운동가와 브리티시 학자들의 인도학 연구 붐에 맞춰서 인도불교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인도 아 대륙에서 사라진 불교는 실론 섬에서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요즘은 스리랑카로 부르지만, 실론 섬으로 알려진 인도 아 대륙의 남단 섬에서는 기원전 2세기에 전해진 불교가 2천 3백년간 존속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섬나라인 스리랑카 불교가 인도에 전해지고 인도원형불교에 가까운 남방불교전통이 인도에 다시 복원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인도불교가 본격적으로 소생하게 된 것은 암베드까르 박사라는 훌륭한 불교운동가를 만나면서부터이다. 그는 인도 공화국 헌법을 기초한 법학자이면서도 하층민 출신이라는 지정카스트에 구속되에 신분 차별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당대 지식인이면서 인도 최고의 법학자였지만, 신분상의 차별 때문에 그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고충을 겪어야 했다. 자기만의 아픔이 아니고, 수억의 인구가 신분상의 차별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대 용단을 내려서 불교로의 개종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 100만 대중이 운집하여 불교에 관심을 갖고 열린 대법회에 참가한 한국불교태고종 대표단 스님들이 법석에 앉아서 인도불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인도 불교는 근대에 들어와서 실론 출신의 불교개혁가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 벵골의 고승 크리파사한 마하스타비르(Kripasaran Mahasthavir,1865-1926), B.R. 암베드까르와 제14세 달라이 라마(텐진 갸쵸)의 영향으로 부흥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이번 100만 불자 담마찰 대법회와 관련하여 근현대 인도불교 부흥운동의 한 축인 달리트 불교운동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달리트(Dalit) 불교운동은 19〜20세기에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회복운동이다. B.R.암베드까르 (Bhimrao Ramji Ambedkar1891-19561891)박사의 주창과 지도로 1956년 힌두교에서 불교로의 개종(改宗) 선언대회를 계기로 이 운동이 본격화됐다. 인도의 계층제 사회에서 가장 하위층에 기반을 둔 카스트로부터 탈출하는데 이념과 동기를 제공하고 이들에게 정신적 귀의처가 된 신불교(종교)운동이다. 이 운동을 이끈 암베드까르 박사가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를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을 불교에서 발견하고, 실천에 옮겨 탈(脫) 카스트화한 신종교운동이다. 달리트는 학대 받는 자의 뜻으로 인도 전통의 사성계급에서도 제외된 열외의 하층계급을 말한다. 인도의 카스트 시스템은 ‘와르나(Varna)’라고 해서 색(色)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차별제도는 인도 사회구조의 핵을 이루는 4층의 종성(種姓) 제도를 말한다. 이 종성제도는 종교적 신분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데, 특히 힌두교와 직결되고 있다. 인도사회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와르나(카스트)의 어느 하나에 속하면서 운명과도 같은 삶을 시작하게 되어 있다.


자티(Jāti जाति )란 말은 ‘출생’의 뜻을 갖고 있는데, 이 자티에 의해서 한 신생아의 운명은 수천 개의 문중(門中), 종족, 지역 공동체와 전통적인 직업의 기능과 종교적 신앙과 어느 특정 언어 그룹에 속하게 되는 운명을 타고난다.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한 생명체의 이름 앞에 붙는 성(姓)은 자티에 따른 소속 공동체를 반영하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성이 간디(Gandhi)는 향료 판매란 의미이며, 도비(Dhobi)는 세탁업, 스리와스타바(Srivastava)는 군사기록의 뜻이 있는데, 이 직업들은 다 카스트와 종교와의 관련 속에 사회 공동체에서의 신분을 나타내고 있다. 이 카스트 제도는 인도사회의 오래된 사회계층제도인데, 브리티시 통치 시대에 변형되어 청산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게 된 악습이다. 카스트는 와르나(色)의 관념인데, 고대인도 베다시대에 사회구조의 등급은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으로 분류되었다. 브라흐마나(바라문)는 카스트 가운데 최고상층계층으로서 인도사회의 지식 종교성직계급으로서 힌두교의 사제나 선생(지식인)들이 대부분이다. 이 바라문 계급은 수많은 지역 공동체의 코트라(gotras 씨족 문중)로 세분된다. 바라문 계급은 정신생활에 의한 지성활동을 하는 지식계급이며 통치자들의 고문 역할을 한 계급이다. 두 번째 크샤트리아(Kshatriya)는 인도의 카스트는 불교 경전과 논서(論書)들에서는 찰제리(刹帝利) 또는 찰리종(刹利種)이라고 번역했다. 크샤트리아는 상위 계급으로 성직자 계급인 바라문을 모시며, 하위계급인 바이샤(서민), 수드라(천민) 계급을 통치하는 지배계급이다.  
   
바라문은 그 신분 자체가 성직자이므로 정치에는 개입할 수 없어 인도는 크샤트리아가 다스리고 왕을 비롯하여 인도의 주요 관직은 모두 크샤트리아가 담당하고 총리, 의원은 물론 군 지휘관, 법관, 경찰 등의 공무원 계열의 직업도 모두 크샤트리아가 담당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바이샤는 세 번째 계급으로 평민 계급에 속하며,《마누법전》에 따르면 농업, 상업, 목축에 종사하는 것이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 예술가도 바이샤로 취급되며, 바이샤는 어원인 삶이라는 의미(vish)에서 파생된 말이다. 수드라(首陀羅)는 4번째 계급으로 노예계급이며 천민으로 번역된다. 타 종교에서 힌두교로 개종할 경우, 수드라 계급으로 편입된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육체노동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스님이 축하설법을 하기 전 소개 받고 있다. 옆은 동방불교대학 총장 원응스님.  

달리트 불교운동은 인도의 이 기본 4계급에도 소속되지 못한 불가촉천민계급(不可觸賤民) 의 사람들이 일으킨 불교운동이다. 브리티시 인디아 통치시기에는 최하층민 계급으로 취급되었고, 독립이후 헌법에 차별받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는 지정카스트가 되었다. 2011년 통계에 의하면 전인구 대비 지정카스트는 16%, 지정 부족은 8%이다. 독립이후 차별철폐주의에 의해서 인도 헌법은 이들 계급에서 정치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 불가촉천민으로 지정카스트인 달리트(복수 달리츠)는 인도사회구조에서 수드라 보다 더 밑바닥에서 가장 천한 일을 하면서 겨우 생명을 부지할 정도의 비참한 생존을 했던 계층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 수만 명의 인도불자들이 운집한 법회장소. 야단법석으로 마련되어 있다.     

신종교운동관점에서 달리트 불교운동의 기폭제는 암베드까르 박사였다. 그 자신이 불가촉천민 출신으로서 인도사회의 고질인 카스트 제도를 뚫고 크게 성공한 케이스이다. 인도사회의 최하위 계층인 불가촉천민이었지만, 해외 유학을 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도 공화국 헌법을 기초하고 초대법무장관을 역임했으며, 정당의 당수까지 지냈지만, 그에게는 항상 무겁게 짓누르는 카스트란 망령(妄靈)이 도사리고 있었다. 자신만이 아닌 수천 만 명의 불가촉천민이 그의 주위에서 떠나지 않고 그를 압박했다. 자신이 비교적 인도사회에서 성공한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인도사회 저변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 무시는 개인의 문제를 떠난 불가촉천민 다수의 현안이었다. 비록 헌법상 보장되었다고 할지라도, 관념상으로는 기존 사성계급의 하위인 수드라계급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촉천민에서 사성계급인 수드라에 속한 것만도 고마운 일이었지만, 암베드까르 박사에게는 이마저도 불평등 그 자체였다. 그는 고민에 빠졌고 탈출구가 필요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에게 민주사회시민으로서의 인권과 사회평등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인도사회에서는 이런 법철학(法哲學)이 통하지 않았다.

인도 공화국 헌법을 기초하고 국회의원과 법무장관을 지내고 정당의 당수를 역임했지만, 수천 년간 인도사회구조의 밑바닥에서 자리 잡은 카스트(種姓制度)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드디어 그는 인도의 역사와 종교와 철학과 사회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답이 나왔다. 그것은 샤카무니 붓다였고, 불교란 종교였다. 하지만 인도에 불교는 없었고, 역사로만 남아 있었을 뿐, 힌두교와 무슬림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음을 뼈저리게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눈을 크게 떠보니 인도 아 대륙의 남단 물방울처럼 생긴 실론 섬에 아직도 불교의 전통이 살아 있음을 감지하고 단숨에 실론으로 달려갔다.

이번에 한국불교태고종에서 대대적으로 방문한 100만 불자 담마찰 대법회는 인도불교를 소생시키는데 기폭제 역할을 한 암베드까르 박사의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였다. 이 지역은 아잔타 석굴이 있는 경계로서 한 때 불교성지였다. 편백운 태고종 총무원장스님은 태고종 중진대덕스님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서 법음을 전한 것이다. 나는 이번에 그 촉매 역할을 했다.   
인도 아잔타 담마찰= 보검 이치란 박사(원응: 동방불교대학 총장)·
                        해동세계불교연구원장(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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