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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주형식 | 기사입력 2019/04/01 [08:24]
조직화된 종교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조직화된 종교

주형식 | 입력 : 2019/04/01 [08:24]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는 필자 주형식 목사가 민수기서를 중심으로 한 출애굽 이야기를 편역한 것이다. ‘쉐키나(sekinahsinah)'거주'란 뜻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가시적 임재, 영광스런 보좌 곧 속죄소(贖罪所, mercy seat)에 나타난 하나님의 광휘(영광, 광채)에 찬 모습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처소인 성전(왕상8:29)과 그분의 지상 보좌라 할 수 있는 언약궤(10:35-36) 등에서 그 같은 장면을 시사하고 있다. 26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조직화된 종교-조직의 목표가 그 특성을 결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신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에 앞서 시내 광야에 거의 일 년 동안 머무르게 하셨다(19:1; 10:11,12 참조).

 

시내산 주변 광야는 이방 민족들의 군사적 위협이나 유혹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그분과, 그리고 그들 서로 간에 협력할 수 있도록 인상적인 예배 시스템을 갖춘 기능적 국가로서 그분의 백성들을 조직화하셨다(29-10장 참조).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종의 조직화된 종교를 주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종교를 거절해왔다.

 

- “만약 종교가 없다면 이 세상은 최고의 세상이 될 것이다”(존 애덤스, 미국 2대 대통령).

-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칼 마르크스).

- “종교? 그것은 흑암 가운데 울려펴지는 천둥 소리를 설명하기 위해 무식한 야만인들이 쓴 책 속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모순되는 점들을 놓고 벌이는 끊임없는 갑론을박이다”(작자 미상).

- “종교 없는 사회는 장전된 45 구경 권총을 소지하지 않은 발광하는 사이코패스와도 같다”(작자 미상).

- “기성 종교는 전부 가짜이며, 모두 힘을 필요로 하는 심약한 사람들이 기대는 목발이다. 그것은 나가서 사람들의 일에 참견하라고 말한다.”(제시 벤추라, 미네소타 주지사, 1999).

- “시간 자원의 분배 측면에서만 따져 보더라도, 종교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가는 대신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빌 게이츠).

 

불행히도, 이와 같은 진술을 하는 사람들은 수 천 년에 걸친 종교 역사에서 실제로 그들의 말을 뒷받침하는 많은 증거들을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볼 때,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원한다 할지라도, 조직은 참된 영성과 그분께 대한 순수한 헌신을 파괴한다. 그 증거로써 그들은 경건과 봉사보다는 권세와 독선주의에 더 초점을 맞추는 수많은 종교 단체들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뻑뻑하고 피상적이며 지루한 예배에 참석하거나 기존의 패거리들로부터 왕따 당하거나 비평 받는 것을 견디기 보다는, 차라리 가정에서나 하나님이 만드신 천연계에서, 그들 자신들이나 가족들, 혹은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예배드릴 때 더 큰 축복을 얻는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듯 기성 종교를 거절하는 사람들의 우려에 공감한다. 나는 유학시절, 교수님으로부터 그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본산지인 예루살렘에서 2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그에게는 이 3대 종교 단체에 속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신조와 관례들 가운데서 많은 긍정적 측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세 종교 집단 가운데서 엄청난 종교적 적대감, 오만, 그리고 이기심을 목격했다고 한다. 종교적 전통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 대신,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감염시키는 뿌리 깊은 편견들을 길러주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그가 겪은 가장 충격적인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성묘(聖廟) 교회에서 부활절 주말에 거행된 거룩한 불의 예식이었다. 일만 오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장사지내고, 부활하셨다고 하는 역사적인 현장 위에 세워진 교회에 모여들었다.

 

그 날은 성금요일과 부활절 일요일 사이에 낀 안식일이었다. 한 그리스도교 대제사장이 성령께서 직접 그의 초에 불을 붙이신다고 하는 그리스도의 무덤에 들어갈 것이었고, 그러고 나서 그는 수 천 명의 예배자들의 초에 그 불을 나누어줄 예정이었다.

 

그는 그 교회에 일찌감치 들어가서 입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발코니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그곳에 6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교회의 바깥 출입구가 열린 처음 1~2시간 동안 사람들이 교회로 입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각기 다른 두 그리스도교교단 신자들이었는데, 서로 상대방이 그곳에 있는 것에 대해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성묘 교회를 공유하는 여러 동방 그리스도교 교단들 사이에 엄청난 증오심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작 그 사당 열쇠를 관리하는 측은 아랍 무슬림이었다. 이런 관습은 폭력으로 그 열쇠를 서로 다른 측으로부터 탈취하려고 하는 시도를 막아준다.

 

이스라엘 경찰이 두 교단의 예배자들을 분리하기 위하여 교회 입구 중앙으로 좌우를 가르는 차단막을 설치하였다. 각자의 그룹에서는 자신들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하여 입구의 벽을 따라 건장한 청년들을 줄지어 배치시켰다. 거의 매 15분마다 두 집단의 청년들 사이에 실랑이가 발생했고, 30분마다 큰 소동이 일어났다. 체구가 작은 한 할머니가 길을 잘못 들었다. 그 쪽 지역에 대한 한 관할권을 가진 고압적인 수석 사제가 몇 번이고 그녀를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어떠한 이유에선지 다른 편으로 가기를 거부하였다. 결국 그 사제는 할머니를 붙잡고는 거칠게 밀쳐버렸다. 그녀는 나동그라져 돌로 포장된 길 위에 큰 대자로 누워 비명을 질러댔다.

 

그 교수는 말하기를, 소위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에서 그가 겪었던 것이 그가 아는 종교의 전부라면, 그는 아마도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기성 그리스도교가 거룩한 사랑의 원리에 등을 돌리고 악마적 이기심과 증오의 원리로 돌아섰다. 다른 형태의 종교들은 매우 이교적이며 다신교적인, 혹은 미화된 비술(秘術)로 전락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조직은 그냥 놔두어도 필연적으로 종교를 파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해체된 종교 혹은 무조직 종교가 더 나은 대안일까? 우리는 혼돈 상태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참으로 종교적 조직의 부패가 문제인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룹 안에 소속되어 도와주고 친교를 나누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함께 여행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들과 동떨어진 은둔자들이 아닌, 한 무리의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을 뿐 아니라 서로서로 다른 제자들과 함께 관계를 맺었다. 우리는 홀로 있을 때보다 함께 할 때 영적으로나 실생활에서 더 강해진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비조직적 방식보다는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한다면, 그룹의 구성원으로서 사람들은 더욱 행복하고 효율적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격려하기 위하여 함께 모일 때, 모든 사람이 동시에 말하기 보다는 한번에 한 사람씩 말한다면 더 많은 유익을 얻는다(고전 14:26-32).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

 

하나님은 그분의 하늘 본부(4,5)와 행성 지구에서 그분의 창조 가운데 엿보이는 질서에서 나타난 것처럼, 조화와 질서를 가치있게 보신다.

 

하나님과 합력하기 위하여, 그룹의 구성원들은 기꺼이 서로 조화롭게 일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연합하여 하나가 될 때에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성령의 권능을 부여받을 수 있다(2).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침례를 주고 그들을 가르치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대사명(28:19,20)은 너무나 거대한 것이어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우리 몸의 기관들이 생명 유지라는 그들의 책무를 성취하기 위하여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사명을 성취하려면 우리는 온갖 다양성을 지닌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와 같이, 초기 그리스도 교회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영적 은사들 혹은 재능들에 따라서 그 구성원들을 조직화하였다(고전 12; 6:1-7 참조).

 

수행해야 할 과업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성취할 그룹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효과적인 조직을 더욱 더 필요로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의 거대한 그룹이었으며, 가나안 정복이란 그들의 책무는 엄청난 과제였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 모두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효과적인 조직을 필요로 하였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중 적어도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는 군입대 가능자 인구 조사를 하도록 명하셨다(1). 그 목적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한 군대를 조직하기 위해서였다.

 

군입대 가능자 인구 조사에서 레위 지파는 제외되었다(1:47~54). 지도자들은 성소에서 다양한 필요에 따른 봉사를 할 30세에서 50세 사이의 왕성한 성인 남성들을 별도의 인구 조사로 계수하였다(4). 레위 지파의 임무들에 관한 여호와의 지시는 매우 상세하였다. 그것은 거대한 규모의 조직화된 종교였으며, 하나님 자신이 그것을 세우셨다.

 

조직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한 목적이나 악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중립적인 도구이다. 사람들은 허리케인이나 쓰나미, 혹은 가뭄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돕기 위하여 모일 수 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할 수도 있다. 지도자들 그리고 (종교적인 것을 포함하여) 조직의 목표가 그 특성을 결정한다.

주형식(서울 묵동교회 담임목사·목회학 박사)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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