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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식의 문화산책
정광식의 문화산책●그라나다의 영혼, '알 람브라 궁전'
250년 동안 유럽 문화 속에 아랍 문화의 영광을 심어놓은 신비로운 성전
기사입력: 2019/04/01 [20:3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정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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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병풍처럼 두른 안달루시아의 보석, <알 람브라 궁전>과 필자    

 

250년 동안 유럽 문화 속에 아랍 문화의 영광을 심어놓은 신비로운 성전

 

우리가 찾은 그라나다의 아침은 <알 람브라 궁전의 추억> 만큼이나 슬프고 추웠다. <알 람브라 궁전>을 배경으로 간단히 인증샷 후 우리는 실연의 아픔을 노래로 옮긴 <알 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애잔한 기타 음을 흥얼거리며 저곳으로 향했다.

 

궁전은 시간마다 입장객 수를 300 명으로 제한했기에,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통상 입장할려면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가장 먼저 도착한 죄(?)로 크게 기다리지 않고 들어갔다.

 

기타 명곡의 슬픈 연가 알 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사연

 

아랍어로 횃불을 비추면 붉게 빛나는 성벽에서 유래하여 '붉은 성'을 뜻하는 <알 람브라 궁전>은 만년설을 머리에 인 '시에라 네바다(하얀 눈이 쌓인 산맥이란 뜻의 스페인어)'를 배경으로 그라나다의 작은 언덕 위에 솟아 있다.

 

이 궁전은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온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이 이미 지어놓은 성채를 확장해 1238년부터 100여 년 동안 건축한 이슬람 궁전이다. 이후 북쪽에 머물던 가톨릭교도들이 국토회복운동(레 콘키스타)으로 다시 되찾을 때까지 약 250년 동안 유럽 문화 속에 아랍 문화의 영광을 심어놓은 신비로운 성전이 바로 <알 람브라 궁전>이다.

 

<알 람브라 궁전>은 유럽의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다.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리며 넉넉지 않은 재정으로 점점 쇠락해가는 왕조의 거처로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지은 궁전이기 때문이다.

 

이 궁전의 마지막 주인인 이슬람 '보압딜 왕'은 전쟁에 패해 약 800여 년 전 그들의 조상들이 점령하여 왔던 그 길을 통해 쫓겨 갔다. "스페인을 잃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 람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원통하구나."라고 개탄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그가 넘었던 언덕을 '눈물의 언덕'이라 부른다.

 

'이슬람 나스르 왕조'도 쓰러져 가는 대부분의 왕조들처럼 말기에는 쾌락과 향락에 탐닉했던 것 같다. 멸망을 예고하듯 그들이 건설한 왕궁은 크고 웅장하진 않지만, 내부와 외부를 한껏 치장한 것을 보면 아름다움과 사치가 극에 달한 것 같다. 이것은 궁전 벽면에 새겨진 글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라나다에서 눈이 머는 것보다 더 참혹한 삶은 없다." 스페인의 시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자'가 한 말이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알 람브라>를 세상에 드러나게 한 역힐은 <스케치북>을 쓴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과 작곡가 '타레가'에게 있다. 아랍인들이 물러나고 그리스도교도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이곳은 200여 년간 거의 폐허 상태로 방치된 채 거지와 집시의 소굴이 되었다고 한다. 이때 미국의 스페인 주재 공사로 있던 '어빙'3개월간 이곳에 머물며 <알 람브라>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는데, 이 책을 보고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알 람브라> 궁전이 세상에 알려지자 스페인 정부는 이 궁전을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고 복구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정부는 '어빙'의 공로를 인정하여 궁전 북쪽 가장 안쪽에 '어빙의 방'을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궁전이 제법 알려졌을 즈음, 작곡가 '타레가'는 제자이자 애인인 '콘차 부인'과 이곳을 방문했다. '알 바이신(이슬람인 거주지)' 언덕이 붉게 물들던 저녁, 그는 콘차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날 밤 '타레가'는 슬픔에 젖어 달빛 속에서 콘차에게 보내는 연가를 작곡했다.

 

그 노래가 오늘날 기타 곡으로 유명한 <알 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그는 사자 열두 마리가 떠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는 '사자의 중정'과 여름 별장인 '헤네랄리페 정원'을 오가며 분수에서 솟아올라 떨어지는 물소리에서 음을 찾아냈다. 어둠을 뚫고 아스라이 먼동이 틀 때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실연의 아픔을 담아낸 것이다.

 

<알 람브라 궁전>의 관전 포인트는 군사 요새인 '알 카사바, 아랍어로 요새', 왕의 거주지인 '나스르 궁전', 원형 경기장이 있는 '카를로스 1세 궁전', 그리고 여름 별장인 '헤네랄리페(천국) 정원' 네 부분으로 나뉜다.

 

요새와 두 곳의 궁전은 "오직 한 분, 알라만이 승리자다."라고 '포도주의 문'을 경계로 나뉘어져 있고, 헤네랄리페 정원은 궁전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태양의 언덕에 위치한다. 이 네 곳 중 나스르 궁전만은 궁전 보호와 안락한 관람을 위해 입장 인원을 시간당 300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는 매표소를 통과 후, 헤네랄리페 정원쪽으로 갔다. 다섯 손가락을 모은 손이 새겨져 있는 '정의의 문'을 통과했는데, 다섯 손가락은 이슬람의 5계인 <신앙, 자비, 기도, 금식, 메카 순례>를 상징한단다. 문을 통과하자 '사이프러스나무(측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나무는 죽음을 뜻하는 동시에 영원한 삶을 나타내는 나무라고 하여 유럽에서는 주로 무덤가에 많이 심겨져 있다.

 

인간이 죽기 전에 마지막까지 간직해야 할 욕망은 무엇일까?

 

바둥거리며 살아온 인생,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늘어놓는 인생에서 바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아마도 자아에 대한 약간의 깨달음이 아닐까? 그런데 그 깨달음은 늘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대부분 지울 수 없는 회한으로 거둬들이고 만다. 숲길을 거닐며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이것은 정녕 시간 낭비일까?

 

바닥에 석류가 새겨진 자갈길을 따라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갔다. 아랍어로 '그라나다''석류'라는 뜻이다. 궁전 곳곳에 유난히 석류나무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꽃과 분수를 잘 조화시킨 '아세키아 중정(건물 안에 있는 정원)'에 들어서면 '물의 정원'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 수로를 뜻하는 '아세키아' 중정의 분수와 정원수의 모습    


 그런데 왼쪽 벽에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나무가 죽은 채로 방치되어 있다. 이유인 즉, 과거 이 나무 아래서 근위대 귀족이 후궁과 사랑에 빠져 밤이면 몰래 키스를 나누며 사랑을 속삭였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왕이 노하여 잘린 귀족의 머리를 이 나무에 매달고 나무도 뿌리를 잘라 고사시켰다고 하는데, 그후 이 나무를 만진 사람은 진실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나스르 궁전의 관람은 왕의 집무실인 '메수아르 방'부터 시작되었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온 무어인들이 한 올 한 올 레이스를 짜듯 형형색색의 타일로 궁전 벽면을 장식해놓은 방은 어지러울 정도였다. 코란의 우상숭배를 금지한 교리에 따라 살아 있는 사람이나 동물이 아닌 식물이나 문자 등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해 새겨 넣은 칼리프 양식의 벽면에서는 무슬림 장인 정신이 물씬 풍겨났다.

 

이곳을 지나자 <알 람브라>를 소개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아라야네스 중정'이 분수들과 모습을 드러냈다. 사막에서 태어난 이슬람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물이 생명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궁전의 테마는 항상 물이다. '아라야네스 중정'에는 거울 같은 물을 이용해 공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연못이 있다. 그 연못 가장자리에 '아라야네스(천국의 꽃)'가 심어져 있어서 '아라야네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연못에 비친 '코마레스 탑'의 모습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나르스 궁전 옆에는 무슬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르네상스 양식의 가톨릭 궁전이 있다. <카를로스 1세 궁전>인데, 이곳을 정복한 가톨릭 세력이 이슬람 양식의 옛 건물을 헐고 '카를로스 1'가 이곳으로 신혼여행(1526) 온 것을 기념하고자 지었는데, 밖에서 보면 사각형 르네상스식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원형으로 된 특이한 모습이다. 카를로스 1세는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카를 5'로 부르지만,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로 불린다(동일 인물,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제국을 동시에 통치한 인물). 여기서 그 시절 유럽 왕실의 근친결혼을 설명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생략하기로 한다.

▲ 카를로스 1세(카를 5세) 궁전의 외부    
▲ 요새를 지키기 위한 대포를 한 곳에 전시하였다.

 

▲ 원형 경기장 내부    

 

▲ 성채의 보루    

 

▲ 성채 내부의 군 숙영시설  

  

아래 사진의 가운데 그라나다 대성당과 왕실 예배당이 있는데, 왕실 예배당에는 스페인을 통일한 두 군주(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2), 그들의 딸인 '후아나'와 남편(펠리페 1) 그리고 손자까지 묻혀있다. 예배당은 이사벨라의 취향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1523년부터 180년 동안 지어진 대성당은 가톨릭과 무어 양식이 혼합된 르네상스적 양식이며, 내부에는 화려하게 금박을 입힌 18세기 오르간이 눈을 부시게 한다.

▲ 사진 한 가운데 있는 그라나다 대성당과 왕실 예배당  

 

뒤쪽의 주거지는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알 바이신'지역인데, 이곳의 이름은 이 일대에 오래전 '바에사'에서 추방된 아랍인들이 살았던 것에서 유래한다. 이곳 사람들은 국토 회복 운동 시 궁이 함락될 때까지 저항을 했었다.

 

* 필자 운촌 정광식은 부산 태생. 육사(37) 졸업, 대령 만기전역 후 부산시 안보특보 및 동의대 안보학 초빙교수 역임을 하는 등 평생 군과 연관된 일을 하면서도 깊은 감수성으로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글을 써왔다. 독서(史學), 여행, 산행, 영화 등이 취미인 그는 그의 블로그 내 마음을 담고픈'( https://blog.naver.com/jgs0207 )을 통해 취미를 바탕으로 한 문화산책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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