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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신도로 독립군 지원 모금활동하다 숨진 최달연 선생 가족의 비운

김주호 | 기사입력 2019/07/07 [18:20]
강화 독립군자금 모금 책, 발각돼 모진 구타로 숨져

보천교 신도로 독립군 지원 모금활동하다 숨진 최달연 선생 가족의 비운

강화 독립군자금 모금 책, 발각돼 모진 구타로 숨져

김주호 | 입력 : 2019/07/07 [18:20]

최달연 선생 매달린 채 숨진 소나무 지금도 그대로

 

조부께서 상해 임시정부에 은밀히 독립군 자금을 모아 보내던 일이 탄로나 왜경에 잡혔지요. 그들은 조부님을 끌고 가 마을 앞산의 실로동산 소나무에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무자비한 구타를 가했어요.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실신 하신 채 그만 사망하셨지요.”

 

최달연(崔達淵. 1872-1942)선생-. 그의 손자 최원문(崔元文. 본명 元默. 80)씨의 말이다. 그는 중국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 연해주 등 곳곳에서 활약하던 독립군 지원 모금활동에 나섰다. 그것도 국내에 밀파된 독립군 소속 단원과 함께 은밀히 자금을 모아 보냈다. 그러나 누군가가 밀고하는 바람에 그만 왜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왜경은 모금 배후와 독립운동 관련자들을 문초했으나 선생은 피투성이가 된 채 사경을 헤매면서도 끝내 발설하지 않은 지조를 보였다.

▲ 독립군 자금 모금을 하다 발각돼 발각돼 왜경이 최달연선생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무자비하게 구타해 피투성이가 된 채 숨졌던 그 때 그 소나무가 당시를 증거하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선생이 처형된 곳은 거주지인 경기도 강화읍 하점면 이강리 자택 앞산 실로동산. 그를 매달아 숨지게 한 그때 그 소나무는 지금도 그대로 있어 당시를 증거 해 주고 있다.

 

남편 하관시 충격 받은 부인도 사망 줄초상, 비운

어머니 시신 넣은 소나무 관 지게에 지고

산골 길 오른 부친의 통곡 지금도 가슴 미어져

 

그런데 겹친 비극이 생겼다. 부인 해주 최씨(최원문의 조모)마저 선생의 장례일 하관시에 큰 충격을 받아 운명하는 비절참절한 참화를 당한 것이다. 줄초상이라 장례식은 엄두도 못 냈고 모친의 시신을 서둘러 소나무 관 속에 넣어 450 고지(현 모 미사일 부대 뒷산) 골짜기에 암장했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도로가 포장 됐지만 80여 년 전에는 호랑이도 나온다는 첩첩산중이었다고 한다. 이 산골길을 비운에 간 어머니의 시신을 담은 관을 지게에 지고 오르는 당시 27세의 아들 최병식(崔秉植. 최원문의 부친)은 가슴이 찢어지듯 한없이 통곡하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 비극적인 장면에 아마 하늘도 울고 산천도 울었을 것이라며 당시의 처절한 상황을 들려주는 손자 최원문씨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조부모를 모시거나 장례를 치루는 일 까지 모두 차남 최병식이 도맡아 했다고 한다. 실질적인 장남 노릇을 한 셈.

 

한편 최달연 선생은 보천교(普天敎) 신도로서 활약했다. 증산교계통 보천교는 차경석(월곡)을 교주로 하는 민족자생종교이다. 한때 신도 6백만 교세를 지녔다는 보천교 역시 독립운동에 자금지원 등 직·간접적으로 활약했다. 차경석은 1910년대에 이미 국권회복 표방으로 갑종요시찰인이 되었고, 3·1운동 전후로 국권회복운동과 군자금 모금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는 학계의 연구 발표도 나온 바 있다. 1920년대에는 보천교가 상해임시정부와 의열단 투쟁, 독립운동 조직인 만주의 정의부(正義府)와 관련을 맺고 활동한 것이나 또 김좌진 장군의 독립군단과도 연결되어 자금을 지원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도 기여했다.(잃어버린 역사 普天敎김철수 저, 보천교 다시보다<일제강점기 종교정책과 보천교의 항일운동> 김철수 글. 위의 자료 참조)

 

그는 19401942년간에 강화군 서문 밖(강화군 13개 면 중 7개면) 보천교 책임자(布正)로서 상해 임시정부에 보낼 독립군자금 모금 책을 맡아 활동했던 것이다. 선생의 이러한 활동 정황은 당시 보천교의 항일독립운동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본다.

▲ 최달연 선생의 손자 최원문씨(사진 왼쪽)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마을주민 조병덕 옹.  

 

주민들 자신과 가족까지 희생한 애국정신은 길이 귀감

 

최근 들어서 보천교의 항일독립운동 관련 학계의 연구 활동 역시 꾸준하다는 점에서 관심이다. 이와 함께 경기도 강화에서 일어난 최달연 선생의 묻혀 진 관련 자료도 발굴되었으면 한다.

 

대대로 이 마을에 사는 조병덕(83. 강화군 하점면 이강리)씨는 최달연 선생의 독립운동 관련 이야기가 생생하다면서 국권을 잃은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항일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가족까지 희생하며 보여 주신 선생의 고귀하신 애국정신은 길이 후손들에게도 귀감이자 또한 이 지역의 자랑이라며 보훈 당국에서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손자 최원문씨는 최근 보훈처에 최달연 선생 독립유공자 신청을 접수했다.

김주호(철학박사. inTV방송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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