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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25.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음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19/11/22 [21:14]
“교회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그분의 방법대로 운영하실 것”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25.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음

“교회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그분의 방법대로 운영하실 것”

주형식 목사 | 입력 : 2019/11/22 [21:14]

역사적으로 보면 과거나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법 위에 있으며, 살인도 마음대로 저지르곤 하는 일들이 있어왔다. 이것은 부조 시대 동안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와 닮았다. , 함무라비 법전은 고위층의 시민이 더 낮은 지위의 사람을 죽였다면 그는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의 사람을 죽인 경우보다 훨씬 가벼운 형벌을 받도록 허용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의 법은 형법학 분야에서 기회 균등 처벌”(equal opportunity punishment)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으로 동일한 조건을 만들었다(24:17, 19-22; 35:31). 종교적 법 아래에서 지도자나 족장은 범죄했을 때 별도의 속죄제 제물(4:22-26-숫염소)을 가져가야 했던 사실로 드러나듯이, 하나님 앞에서 추가적 책임을 졌다. 죄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가장 큰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제사장에게 놓여있었다. 그의 속죄제 제물은 전체 공동체에 대하여 요구되는 그것과 동일하였다(3-12, 13-21).

▲ 지도자나 족장은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추가적 책임을 졌다. 말년에 하나님에 반항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렸다. 그림은 마르크  샤갈의 '미리암의 춥'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실수를 범하여 여호와의 이름에 해를 입히거나 백성들을 실족케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향력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셨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직으로부터 해고되고 불살라졌으며(10),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렸으며(12), 고라와 그의 무리들은 산채로 땅에 묻혔거나 불살라졌다(16).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20). 그러므로 요단강 근처 싯딤에서의 반역에 대한 여호와의 반응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분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25:4,5).

 

모세는 그들의 지파 지도자들(문자적으로 백성의 머리들”)이 배교로 이끄는 길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처형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경배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비교해 보라. 그 때, 하나님 편에 서기로 선택한 레위 지파 사람들이 신실치 못한 동료 이스라엘 백성들을 처형했다(32:26-28).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은 그들 중에 나타난 어떤 우상숭배이던지, 그들의 친족을 살려두거나 불쌍히 여김 없이 항상 근절시켜야 할 것이었다(13). 그런 처사가 가혹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상숭배는 그 나라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행위인 것이다.

 

다른 신들을 의지하거나 심지어 이런 접근을 침묵으로 옹호한 어떤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전체 국민을 위태롭게 한 처사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오사마 빈 라덴이 뉴욕 시에서 대량 살상 무기를 휘두르고 있기나 한 것처럼,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즉시 처단하여 멈추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상숭배를 자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가 누구든 어리석었으며,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국가가 아닌 교회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곁길로 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우리 공동체 내의 사람들을 처형하거나 심지어 그들의 사지를 자르거나 할 생각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여호와의 명망, 그리고 그분의 백성과 그들의 사명의 절개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 어떤 사람도 우리로 하나님을 좇는 데서부터 이탈하도록 하거나 다른 박자에 맞추어 행진하고 있는 다른 믿음들에 동화되도록 이끌도록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호와와 우리 시대를 위한 그분의 복음 사명 전파에 대한 우리의 충성심에서(28:19, 20; 16:6-12) 우리를 떠나게 하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그에게 책임을 묻는데 있어서 정당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18:15-20). 목사들, 교사들, 그리고 행정가들은 그들의 영향력에 정비례하게 더 많은 책임이 있다. 그들은 교회를 소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거기서 일할 뿐이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하여 있으며, 그분께서 그분의 방법대로 운영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25:4). “목매어 달라는 단어는 올가미로 목졸라 죽이다라는 의미가 아닌, “목매달아 죽이다또는 찌르다를 뜻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인들이 독재자 무솔리니와 그의 정부(情婦)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체를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보는 데서(“태양을 향하여”) 전시하는 것은 과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한 가지 중대 발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참수된 사울의 시체를 그의 아들들의 시체와 더불어 벧산 성벽에 못 박아 전시한 방법과 비교해 보라(삼상 31:10,12).

 

우리는 여호와 앞에 매달린 시체들이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의 진노를 제거하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이야기를 발견한다. 다윗의 치세에 한 끔찍한 흉년이 3년간 지속되었다.

 

여호와께 여쭌 결과, 그 기근은 사울 왕이 가나안 사람이었지만 맹세로써 보호를 받던 기브온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진멸시키려 했었기 때문에 초래되었음이 드러났다(삼하 21:1,2; 9). 그 땅과 백성들을 대신하여 죄책을 제거하는 의미로 속죄를 하기 위하여, 사울은 사후에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 중 몇을 잃어버리는 형벌을 받았다(다윗이 밧세바에게서 낳은 갓난아기를 잃은 징벌과 비교하여 보라 [삼하 12:15-18]). 그것은 사울의 형벌이었지만, 그의 가족들이 사울의 단체적 연속”(連續)이었기 때문에, 그의 가족이 죄책을 짋어지는 일을 계속했다 (왕상 2:31-33 참조). 그들이 죽임을 당하여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달려진 이후에, 여호와께서는 그 땅에 대한 간청에 유의하셨으며 그렇게 하여 흉년의 끝났음을 암시하셨다(삼하 21:3-14).

 

싯딤에서 있었던, 그리고 사울에게 일어났던 비극적인 이야기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핵심 요소들이 있다.

 

1. 지도자들은 엄청난 대규모 범죄로 인해 형벌을 받았다.

2. 형벌에는 즉각 매장이 아니라 시체가 전시되는 것을 포함했다.

3. 범죄자들에 대한 징벌은 하나님의 분노를 돌이키기 위한 일종의 속죄였다.

 

이러한 경우들은, 온전히 무죄하시고 죄없는 가족출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죽으셨다는 의미에서 대속적 속죄를 수반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을 매달음에 의한 속죄는 십자가 사건과 유사하다.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여호와의 선고가 지도자들에 대해서 막 집행되려고 할 때, 모세와 사람들은 성막 밖에서 울었다. 그들은 이 사람들의 실족에 기뻐하지 않고 울고 있었다. 택한 자들-혹은 선택된 자들-이 기만 당할 때, 그것은 항상 끔찍한 비극이다(24:24 참조).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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