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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게발선인장

박길수 | 기사입력 2020/03/07 [21:10]
“게발선인장 이파리를 새롭게 심었다. 삶의 희망을 다시 모종했다”

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게발선인장

“게발선인장 이파리를 새롭게 심었다. 삶의 희망을 다시 모종했다”

박길수 | 입력 : 2020/03/07 [21:10]

 


한아름 요양센터 복도 입구에 게발선인장 화분 하나가 놓여있었다
. 지난가을부터 안정된 일상의 삶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혹시 게발선인장이 눈에 띌까 일부러 신경 쓰며 살폈는데. 살그머니 다가가, 실한 밑동에서 뻗어 나온 줄기 중 뒤쪽 보이지 않게 숨어있던 가냘픈 아이 하나를 찾아내 아프지 않게 뗐고, 마른 면 티슈로 감싼 후 얇은 종이에 잘 말아서 등 가방 구석에 넣어뒀었다

 

내가 정신을 어디에다가 두고 싸돌아다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꼬박 이틀도 더 지나 가방에서 세탁할 작업복을 꺼낼 때야 그 아이 생각이 나다니.

"! 얘야! 정말 미안하다."

요양센터장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센터 장님! 게발선인장 고맙습니다. 잘 키우겠습니다."

 

얼마전부터 구하려던 게발선인장 한 줄기를 기어코 강탈하듯이, 억지로 분양받았다. 아내와 온종일 지내는 이곳을 새로이 게발선인장 골짜기로 조성하고 싶다. 올봄부터 우리 부부 삶의 터전을 붉고 푸른 게발선인장 우거진 숲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가꿔나가고 싶다. 아내를 살포시 껴안고, 귓속말로 몇 번이나 맹세하듯, 낮고 천천히 속삭이듯, 그녀에게 약속했다.

 

이제야 다행히 일상의 품속으로 간신히 돌아왔으니 하루하루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자고. 우리 둘 보금자리는 온통 불그스레 푸르른 숲속이고, 맑은 산소가 어두운 야간에도 옹달샘처럼 솟아나며, 사악한 전자파나 폼알데하이드 독소가 감히 접근조차 하기 힘든, 심산계곡(深山溪谷) 게발선인장 골짜기로 변할지 모르겠다고. 아마도 틀림없이 변해있을 듯싶고, 설령 얼마큼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곳은 상큼하고 그윽한 별천지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며, 사랑하는 당신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솦속의 정결한 불사의 여신(女神)이어서, 행여 어느 날 태평하게 기지개 켜고 잘 잤다며 불현듯 일어날지 모른다고.

 

아내는 게발선인장을 가꾸면서, 온종일 가게 안에서 하루를 보냈다. 처음 게발선인장 이파리 하나가 둘이 되었고, 점차 열 개의 화분으로, 또 수십 개의 고목으로 변했다. 몇 해가 흘렀을까. 고목이 거의 다 된 채로 여전히 붉고 푸르게 만발한 게발선인장을 그녀는 가볍게 쓰다듬으며, 여유롭고 넉넉한 미소로 살짝 뻐기듯, 은근한 자랑을 나에게 늘어놓곤 했다. 우리 가게가 쾌적하고 아늑한 이유는 모두 이 아이들이 내뿜는 산소 덕분이며, 또 우리는 전자파나 다른 독소로부터 얘들 때문에 보호받고 있다고. 그때 내 아내는 퍽 보람찬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아내가 뇌출혈로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가던 날 밤, 우리 김밥 가게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게발선인장 화분이 온통 숲을 이루고 있었고,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아내가 우리에게 앞으로 편안한 날만 오리라 믿었던 일은 방심한 오만이 되고 말았다. 더 겸손해야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해일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인정 없는 죽음의 파도에 우리 두 사람 주변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모두 부서지고 떠밀려 가버렸고, 게발선인장마저도 이파리 하나까지 남김없이 사라져버렸다.

 

게발선인장 이파리를 새롭게 심었다. 삶의 희망을 다시 모종했다

 

무덥고 비바람 치던 여름과 힘겹고 쓸쓸하던 가을을 나는 자전거로 일상을 바꿨고, 처음 겪을 겨울철 일상에 겁이 나기도 했다. 실은 조바심을 떨쳐버리려고 얼마나 각오를 단단히 다졌던지, 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애초 봄을 기다리지도 않았으니, 게발선인장의 꿈은 아예 꿀 수도 없었다.

 

음력 설을 쇠면서 몸에 스치는 대기 흐름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무리 힘들고 두려운 전염병의 전쟁터에서도, 저 위쪽 언덕에서 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 새 생명이 보였고, 붉게 솟아오른 홍매화의 개화가 눈을 부시게 했다. 봄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싹트는 새로운 희망이다. 3월 초 어느 날, 나는 마침내 게발선인장 이파리를 화분에 새롭게 심었다. 삶의 희망을 다시 모종했다

 

필자 박길수는 이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인물이다. 41년 결혼생활 중 4년여 전 느닷없는 아내의 뇌출혈로 불행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의식없는 아내를 편안한 집에서 보살피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땄다. 치료비와 생활비, 그리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장애인 도우미 자격증도 따서 출퇴근한다. 항상 아내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위해 딸과 사위, 그리고 누구보다 예쁜 손녀가 합류했다. 그는 불행한 생활일 듯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구원도 받는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 박길수의 일기’(https://m.blog.naver.com/gsp0513)에서 그러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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