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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⑬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0/04/08 [20:11]
믿거나말거나 예수님 무덤성지 인도에 있다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⑬

믿거나말거나 예수님 무덤성지 인도에 있다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0/04/08 [20:11]

 

▲ 이슬람 개혁 운동가 미르자 굴람 아마드가 저술한 ‘인도에서의 예수님’    

 

▲ 미르자 굴람 아마드(1835∼1908).    


믿거나말거나 예수님 무덤성지 인도에 있다

불교 제4차 결집회의에 참석했다는 전설도   

 

참으로 세상에는 희귀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때로는 믿을 수도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가끔 존재해서 세상을 놀라게도 하고 흥미를 일으키기도 한다. 예수님의 무덤이 인도 카슈미르 스리나가르에 있다고 한다면, 과연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정말인가? 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스토리는 필자가 지어낸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니고, 이에 대한 책도 발간되어 있고, 예수님 무덤이라고 하는 곳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2014년 이곳을 직접 방문해 본적이 있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불교계 인터넷 신문 불교닷컴에 기고해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 스리나가르 시내 로자 발의 골목에 위치한 예수님의 무덤 성지. 2010년 3월 영국 BBC 방송도 보도한 바 있다. 예수님은 서기 80년경에 있었던 불교도들의 모임(4차 결집)에 참석했다는 설이 전해오고 있다. 필자가 직접 촬영하여 ‘불교닷컴’에 제공했던 사진자료.    

  

불교 리서치를 하다 보니, 카슈미르 스리나가르까지 가게 되었다. 불교결집(結集)과 대승불교에 대한 현장답사와 자료 조사 차, 스리나가르에 갔을 때, 예수님의 무덤 성지인 로자 발에 직접 가 본 적이 있다. 로자 발은 지명인데, 라우자 발의 준말이고, 라우자는 예언자의 무덤이란 뜻이다. 현지에서는 예수님을 유주 아시프라고 부른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님을 이사라고 호칭한다. 현지에 가면 ‘SHRINE OF HAZART YOUZA ASIF“라고 간판이 세워져 있고, 옆에는 코란(꾸란)과 성경의 근거까지 제시하여 이곳이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BBC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는 천상계곡(天上溪谷)이라고 일컫는다. 자연환경이 너무 아름답고, 호숫가에 지어진 수천 개의 보트 호텔은 관광객을 유혹한다. 고대시대부터 왕들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될 정도로 인기가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어떻게 해서 카슈미르는 4차 결집과 대승불교의 산실이 되었는가. 카슈미르는 일찍부터 고행자들의 낙원으로 알려져 왔었다. 지금은 파키스탄 지역이지만, 탁실라에는 기원전 6세기부터 유명한 교육기관이 있었고, 인도 전역의 왕자들이 이곳으로 유학을 올 정도로 학문의 중심지였다. 스리나가르는 자연환경 조건 때문에 고대시대부터 구도자들이 모여들었던 천혜의 쉼터였다.

▲ 스리나가르 시내 로자 발(Roza Bal) 시장 통 입구와 이슬람교사원. 11세기까지만 해도 불교 사원이었다고 한다.  

 

이곳이 불교의 중심지가 된 것은 기원전 3세기 아소카 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3차 결집 시에 1천 명 정도의 정통 비구만 인정하고 6만 명 정도는 가사를 벗기고 갠지스 강에 수장 시킨다는 끔직한 소문이 돌자, 거의 대부분이 히말라야 산록으로 도피했고, 상당수는 카슈미르로 향했다고 한다. 기원전후가 되자 카슈미르 지역의 불교 승가는 교리상의 혼란에 빠지게 됐다. 그래서 상좌부의 분파인 설일체유부 중심의 4차 결집이 단행됐는데, 500명의 아라한과 500명의 보살과 500명의 재가 불교지도자들이 삼장(三藏:경율론)을 카로스티 문자에 의한 간다리어에서 산스크리트어로 재편집했다고 한다. 4차 결집의 중심은 아비담마의 주석서인 마하 비바샤(Mahā-Vibhāshā 佛敎論書)의 결집이었다.

 

마하야나(大乘)는 기원전 1세기에서 후 1세기 사이 간다리 본 법화경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러나 처음에는 마하야나(Mahāyāna)가 아닌 마하자나(Mahājāna 큰 지식)의 의미였는데, 삼계화택의 비유나 삼승(三乘)과 맞물리면서 음이 비슷한 마하야나로 전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인도에서 대승은 별개로 종파와 같은 부파를 형성하지 않고 기존의 부파의 사원에서 함께 기거한 것이다. 후기에 이르면 대승 사원은 존재했을지라도 율장(律藏)은 같았다고 한다.

▲ 이스라엘 12부족의 지도.  

 

이런 찬란한 불교의 역사를 간직한 카슈미르지만, 현재는 이슬람교가 석권하고 있다. 불교의 사원들은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변해있고, 불교의 빅슈(승려) 대신 이슬람교의 선승들인 수피들이 영성(靈性)을 전파하고 있다. 19세기 말 영국령 인도에서 아마디야 이슬람 개혁운동을 이끌었던 미르자 굴람 아마드(18351908)1899년 그의 소논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으며, 유대 땅을 떠나 잃어버린 이스라엘(부족) 전도를 위하여 동쪽 끝까지 나아갔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페르시아(이란) 아프가니스탄을 지나서 마지막엔 카슈미르에서 천수를 다하고 자연스럽고 영광스럽게 돌아가셨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 미르자 굴람 아마드는 기독교 복음서와 이슬람 텍스트 분석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저자는 특히 이슬람의 꾸란(코란)과 하디스(무함마드가 말하고(Qaul), 행동하고(Fi'ul), 다른 사람의 행위를 묵인한(Taqreer) 내용을 기록한 책)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또 고대 불교 기록을 언급하고 있다. 이 소논문은 이슬람 개혁 운동단체인 아마디야에서 발행하는 종교리뷰19021903년 사이에 시리즈로 연재됐었다.

 

내용을 잠깐 일별해 본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 로마의 속주인 예루살렘을 떠나 동쪽으로 이동, 터키의 누사이빈과 페르시아를 통과하여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했으며 그곳에서 이스라엘 부족을 만났다고 한다. 히브리어를 말하는 고대 근동 사람들로 기원전 11세기에서 7세기 까지 이스라엘 땅에 거주했던 히브리인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고대 유대인의 조상이요, 더 나아가 현대 유대인 정체성의 조상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이스라엘 10지족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이들은 기원전 7세기 신바빌로니아 칼데아 왕조의 네부카드네자르 왕의 박해를 피해서 이곳으로 온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카슈미르에서 정착해 살고 있던 고대 이스라엘 인들을 만나서 거기서 행복하게 살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인도 카슈미르에는 잃어버린 이스라엘 10족 중의 한 민족이 살고 있다는 것인데, 이 주장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아부 라이한 알 비루니(Abū al-Rayḥān Muḥammad ibn Aḥmad al-Bīrūnī, 973~ 1048)이다. 그는 11세기의 이슬람교도인 페르시아 학자이자 박식가였다. 그는 중세 이슬람 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며 수학, 천문학, 물리학, 자연과학에 능통한 학자였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지금도 여기엔 유대인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 1973년 소련에서 발행 알 비루니 우표.    

 

예수님의 안 알려진 해(침묵의 해, 잃어버린 해, 없어진 해라고도 한다)는 일반적으로 신약에 설명되지 않은 기간이며,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그의 공생애(公生涯)의 시작 사이의 기간을 의미한다. 카슈미르 스리나가르의 예수님 무덤 성지는 만년의 이야기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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