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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35
인도 원형불교 지켜 낸 스리랑카불교
기사입력: 2020/09/09 [14:1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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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 부처님 치아사리가 모셔져 있는 불치사(佛齒寺) 전경(스리랑카, 캔디시).    

 

인도 원형불교 지켜 낸 스리랑카불교   

빨리어 삼장, 부처님 치아사리, 보리수, 페라해라 축제 유명

상좌부 빨리 대장경 영역(英譯)한 빨리성전협회 영국서 창립

 

오늘날 인도의 원형불교가 살아남는 데는 스리랑카가 큰 역할을 했다. 불교의 원산지인 인도에서 불교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지만, 섬나라인 스리랑카에 인도 마가다 지역의 원시불교 전통이 그대로 스리랑카에 전해진 덕분에 오늘날 불교승가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아소카 대왕의 불교전도 정책 프로젝트에 따라서 인도불교가 스리랑카에 전해져서, 현재 까지 2300여 년 간 불교전통을 지켜내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점점 쇠퇴해지면서 스리랑카는 불교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으며, 암송에 의해서 구송(口誦)으로 전해지던 부처님의 가르침이 비로소 문자화하여 장경(藏經)의 형태를 취한 것도 스리랑카에서였다. 인도에서 불교승단이 분열하면서 부처님 당시의 승가전통을 가장 모범적으로 지키면서 운영하고 있던 곳은 바로 스리랑카였다. 그 중심지가 바로 스리랑카 섬나라 북부지역인 아누라다뿌라의 마하비하라(大寺)였다.

▲ 스리랑카 최초의 사원인 마하비하라(大寺) 스투파.    

 

기원전 3세기에 아소카 대왕의 아들인 마힌다 장로가 불교승단을 형성했던 마하비하라는 한동안 승승장구했으나, 기원후 1세기경 바아다가마니아바야 왕은 아바야기리(無畏山寺)를 세워서 마하비하라와 양립시켰다. 아바야기리는 대승불교와 밀교까지도 수용했으나,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중국의 구법승 법현스님이 4세기 이곳 아바야기리에서 머물렀던 것은 유명한 일이다. 한편 마하비하라파에서는 제따와나라마야(Jetavanaramaya:祇陀林寺派)가 분립했었으나, 13세기에 마하비하라(大寺) 파만이 존속하도록 통합시키면서 상좌부가 다시 성행하도록 했다.

 

이 무렵의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가 동남아시아에 집중적으로 전파되었다. 스리랑카의 역사서인 마하왕사,大史에 의하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사건들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매우 특이한 일은 그레코(그리스)불교에 대한 기록이다. 인도-그리스 왕국인 그레코 박트리아 왕인 메난드로스 1(밀린다 왕, 기원전 2세기)가 기원전 140년경 스리랑카 아누라다뿌라 루완웰리사야 대탑 낙성식에 마하다르마락시타(Mahadharmaraksita)장로를 단장으로 하여 3만 명이 참석한 일이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코카서스 알렉산드리아에서 비구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 메난드로스(밀린다 왕) 1세 초상  

  

메난드로스 왕은 그리스계로서 불교에 귀의한 왕이었다. 원래 그는 박트리아의 왕으로 펀자브를 정복하고 서쪽의 카불 강 계곡에서 동쪽의 라비 강까지, 북쪽의 스와트 강 계곡에서 아라코시아까지에 이르는 인도 아 대륙에 그의 제국을 세웠다. 메난드로스 1세는 불교의 후원자였으며, 비구 나가세나(那伽犀那)와의 대화는 중요한 불교 경전인 밀린다 팡하(Milinda Panha)에 기록되어 있다.

▲ 인도출신인 붓다고사는 ‘위숫디막가(淸淨道論)’를 저술.

 

오늘날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가 존속하는데 이론적 체계를 세우고 동남아시아에 전파한 데에 크게 공헌한 분은 인도출신으로 대주석가였던 붓다고사 장로이다. 상좌부 전통의 교학체계를 이해하고 정립하려면 위숫디막가(淸淨道論)를 정독하여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텍스트이다.

 

붓다고사는 5세기경의 고승이다. 그의 전기는 자세하지 않으며 스리랑카 역사서인 마하왕사 에는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붓다고사는 부처님이 활동했던 인도 마가다의 보드가야 근처에서 브라만 가문 출신으로 처음엔 베다에 능통했다고 한다. 불교에 관심을 갖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된 다음에 불교교학을 제대로 배우려면 스리랑카로 가서 삼장(三藏)의 싱할라(스리랑카)주석서를 보야 한다는 일념으로 섬에 가서 마하비하라에 머물면서 위숫디막가, 청정도론을 편찬한 것이다.

 

이 텍스트를 저술하면서 기원후 2세기 경 아라한 우빠띠싸 장로가 저술한 위뭇티막가 Vimuttimagga, 解脫道論을 접했는데, 6세기경 이 책은 중국에도 한역됐다. 붓다고사는 이 책을 참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인도에서 상좌부 불교가 점점 쇠퇴해지면서 스리랑카의 상좌부 불교는 힘을 받게 되고,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주류 불교로 안착하게 되었다. 스리랑카 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불교전통은 빨리어 경전, 부처님 치아사리, 보리수, 페라해라 축제 등이다.

▲ 빨리어 성전협회 창시자인 영국의 동양 학자 T.W.리즈 데이빗(1843∼1922).


빨리어 삼장(三藏, Tripitaka)은 구송으로만 전해오던 경전을 스리랑카에서 문자화하는데 성공, 2천여 년을 대대로 전해왔다. 스리랑카 불교사상 가장 획기적인 일은 상좌부 불교의 동남아 전파 못지않게 빨리 삼장의 영역화이다. 영국식민지 시절, 동양학자인 리즈 데이빗은 빨리삼장을 영역하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그는 영국 런던에 빨리성전협회를 설립하고 스리랑카의 문자인 싱할라어로 된 빨리삼장을 로마자화하고 영역하는데, 그의 부인과 함께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현재 모든 빨리어 경전이 영역화되어 있다. 영어만으로도 삼장을 완벽하게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 아누라다뿌라의 마하비하라 사원 경내에 있는 세계 최고(最古)의 보리수.    

  

스리랑카 불교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부처님 치아사리이다. 아주 이른 시기에 부처님의 치아가 스리랑카에 전해져 봉안됐고, 이 불치(佛齒)는 왕궁 내의 사원에 봉안되었다. 이 부처님 치아사리는 왕통을 상징하는 징표물이기도 한 성보(聖寶)였다. 그러므로 정치적 다툼으로 왕조가 바뀔 때도 누가 이 불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왕통계승의 정당성을 확보할 정도였다. 결국 캔디왕조에서 보존했기 때문에 현재 스리랑카 제2의 도시인 캔디의 불치사에 봉안되어 있다.

 

다음은 보리수 신앙이다. 스리랑카에서의 보리수는 엄청난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스리랑카 북부 아누라다뿌라에 있는 보리수는 인도의 보드가야 대탑에서 2300여 년 전에 아소카의 딸인 상가미따 비구니가 가지를 이식한 것인데,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인도 보드가야에 있던 원래의 보리수는 무슬림들이 베어 버렸고, 지금의 보리수는 스리랑카에서 다시 가지를 이식한 것이다.

▲ 캔디의 에살라 페라해라 축제의 한 장면(1885년경).    

 

▲ 축제에서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다.  

 

캔디 에살라 페라해라 축제는 매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국민 축제이다. 본래 이 축제는 두 개의 축제가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에살라는 기원전 3세기 때부터 있었던 기우제에서 비롯되었고, 달라다 축제는 기원후 4세기 부처님 치아 사리 이운 행진 축제였는데, 이름은 에살라 페라해라(기우행진)이지만, 부처님 치아사리 이운행진(移運行進) 축제로 단일화해서 불교축제이면서 국민축제로 승화돼서 매년 8월경에 열리고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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