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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한국 서원의 설립 배경과 공간배치(下)
한국 서원의 공간 구성
기사입력: 2020/12/03 [08:26]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장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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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문화 공간이 유교 문화의 중심공간으로 바뀐 특수한 입지환경의 초기형 서원 건축의 시원인 영주 소수서원    

 

<연재순서>

()서원 등장의 사회적 배경

()한국 서원의 공간 구성  

 

초기형, 전학후묘형, 병렬형으로 분류되는 서원의 배치형식

 

서원의 배치 형태는 상당히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성균관이나 향교 건축 등을 통해 제도화된 기본 개념을 토대로 지역별, 시기별로 변천 수정된다. 그러나 성균관이나 향교 건축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서원의 기본적인 배치 구도는 서원이 자리 잡은 지형이나 건립 시기 기타 지역과 관계없이 모두 전면에 강학 구역을 두고 후면에 제향 구역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형식으로 일관되어 항상 문묘 구역이 뒷면에 위치한다. 이러한 서원의 배치형식은 초기형, 전학후묘형, 병렬형으로 분류된다..

 

초기형은 서원 건축의 시원으로 알려진 소수서원에서 유일하게 나타나는 형태이다. 자리 잡은 곳부터 사찰 터(숙수사지)로 불교 문화 공간이 유교 문화의 중심공간으로 바뀐 특수한 입지환경을 갖고 있다. , 건물 배치나 공간 구성에 일정한 축의 설정 없이 강학을 위주로 강당과 재실 등이 불규칙하게 경내의 중앙에 있으며, 사당과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되어 경내의 좌측에 자리하고 있다.

 

전학후묘형(前學後廟型)은 강당을 전면에 위치시키고 사당은 후면에 위치시키는 배치방법으로 전면에 있는 강당(講堂)과 재사(齋舍)의 관계에 따라 전재사후강당형(前齋舍後講堂型)과 전강당후재사형(前講堂後齋舍型)으로 구분 된다.

 

전재사후강당형(前齋舍後講堂型)은 서원 건축 성기의 가장 대표적인 배치 형태로서 말기까지 여러 진화 과정을 거쳐 존재해 왔다. 주요 원칙론은 전저후고(前底後高)의 대지 조건과 전학후묘의 배치 형태로서 사당이 가장 후면 고지에 위치하고, 전면 저지에 강당과 재사가 위치하되 재사가 강당보다 전면에 위치하는 형태이며 기타 부속 건물이 다양하게 배치된다. ·서재의 배치는 초창기에는 강당을 중심으로 전면에 완전 대칭으로 배치된 경우가 많은데 17세기 초부터 완전 대칭의 규칙이 다소 무너져 동·서재의 위치가 어느 정도 범위에서 자율성 있게 배치되었으며, 특히 평면구조에서도 17세기부터 서로 상이하게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강당후재사형(前講堂後齋舍型)은 상기 전재사후강당형과 더불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으로서 주로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한다. 대체로 전저후고의 대지 조건이나 평지에 건축된 예도 있으며 사당이 가장 후면 고지에 위치하고 전면에 강학 공간이 위치하되 재사가 강당보다 후면에 설치되고 기타 부속 건물이 다양하게 배치된다. 이 형태는 주로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나타나고 있다.

 

병렬형 공간배치 방법은 강학 공간과 재향공간(齋享空間)이 서로 좌·우병렬로 배치된 형태로 강당과 재사의 관계에 있어 전재사후강당형과 전강당후재사형으로 구분 된다.

 

전재사후강당형은 강학 공간과 재향공간이 서로 병렬로 배치된 형태로서 강학 공간의 형태는 강당과 전면 좌우에 동·서재가 있는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그동안 서원이 배치하면 전학후묘의 형태로서만 인식됐으나 이 배치에서는 이러한 통념을 깬 이른바 우() () () ()의 배치개념으로 일컬을 수 있다.

 

전강당후재사형은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이 병렬로 배치되어 강학 공간의 형태는 강당과 강당 후면 좌·우에 동·서재가 있는 형태이다. 이러한 배치의 대지 조건은 강학 공간보다는 재향공간이 다소 높은 경사지의 지형이다. ·서재의 배치는 강당 후면 양측에 대칭은 이루지 않으나 그다지 무질서하지 않게 배치되어 있다. 이 밖에 사당과 강당은 있으나 동·서재가 축조되지 않은 재사 생략형과 사당과 동·서재로 구성된 형태로서 강학 공간의 주사(主舍)인 강당이 생략된 형태인 강당생략형(講堂省略型)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서원의 공간배치 특성은 성균관이나 향교 건축과 비교했을 때 전학후묘의 배치가 거의 고수된 점과 재향공간에 동·서무의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서원을 구성하는 공간은 선현을 배향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향 공간, 유생들의 장수를 위한 강학 공간, 유식을 위한 유식 공간, 제향과 강학 기능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지원공간, 그리고 서원의 주변 공간 등으로 구분된다

▲ 홍살문과 하마비    


유식 공간-紅箭門, 下馬石, 外門, 樓門

 

紅箭門;서원의 영역은 홍살문에서 시작된다. 홍살문은 서원이 엄숙하고 신성한 구역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문으로서 서원을 찾아오면 입구 길목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구조물이다. 홍살문에는 실제로 출입문은 달려 있지 않고 지붕도 없다. 홍살문은 서원으로 가는 길의 좌우 양쪽에 기둥 하나씩을 세워 기둥 상부를 가로 방향으로 서로 연결하는 부재를 걸치고, 그 위에 나무 살을 박은 문이다. 구조물에 붉은 칠을 하고 나무 살을 박았기 때문에 홍살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下馬石; 하마석은 서원과 같이 사우에 선현의 위패를 모신 존귀한 장소 앞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거기에 모셔진 분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로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을 새긴 돌비석이다. 하마석은 하마비(下馬碑)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서원으로 들어가는 홍살문 주변에 위치한다.

 

서원 앞이나 홍살문, 하마석 주변에는 서원이 교육 시설임을 상징하는 은행나무 한두 그루가 심어진 경우가 많다. 은행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기운이 강해서 기상 높은 선비를 기르는 것을 상징하며, 해마다. 많은 열매를 은행나무가 맺듯이 해마다 많은 선비를 배출하려는 소망을 상징한다.

 

外門, 樓門, ; 외문(바깥 문)은 서원의 정문이다. 일반적으로 세 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외삼문이라고도 한다. 외삼문은 가운데 칸 지붕의 용마루가 좌우의 칸 용마루보다 높은 솟을 삼문으로 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고 지붕 용마루가 수평으로 하나로 이어진 평삼문으로 된 것도 있다. 서원이 산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게 되는 요인으로는 성리학자들이 자연 속에 은둔하여 심신을 수양하며 천인합일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자연과 함께하며 유식하기에 가장 적합한 건축은 형식의 건물이다. 누는 서원이 자연과 접하는 위치인 서원 진입부에 배치되었으며, 선비들이 긴장된 학문의 길에서 벗어나 자연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심신을 고양하는 휴식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서원의 누는 사방으로 트인 건축으로서 주변 자연 속에 건축공간이 그대로 스며들게 하여 그 속에 자신을 투영해 세계를 관조하게 만든다. 이러한 건축은 건물 자체를 밖에서 바라보는 감상의 대상물이 되게 하지 않고, 오히려 건물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자연을 흠상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성리학자들은 주변 자연경관을 이루는 나무, , , 산 등에도 성리학적 사고로 전환케 하는 이름을 붙여 그 존재 가치를 부여해 그들이 다양하게 자연과 만나도록 하였다. 이처럼 자연을 의인화(擬人化), 인간화(人間化)함으로써 세계 속에서 개체의 가치를 확인하며 천인 동구 하는 차원의 건축공간을 서원의 누는 만들었으며, 이러한 건축은 한국 서원 건축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는 공간이 되었다.

 

강학 공간- 講堂, 齋舍,藏版閣, 藏書閣

 

외문(바깥 문)이나 누문을 지나면 그다음에 나오는 공간이 강학 공간이다. 강학 공간은 유생들이 강독하고 수양하는 공간으로서 강당과 재사로 이루어졌다. 강당과 재사의 배치 관계는, 강당이 강학 공간 안쪽에, 재사인 동재와 서재가 강당 앞쪽에 들어선 형식이 주를 이루지만, 강당이 강학 공간 앞에, 동재와 서재가 사우 쪽으로 들어선 배치형식도 나타난다. 전자의 배치를 한 대표적인 서원으로는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들이 있고 후자의 배치를 한 서원은 필암서원, 흥암서원, 덕봉서원 등이 있다.

 

講堂;강당은 유생들이 유교 경서를 공부하는 중심 건물이다. 원장과 원(부원장)이 기거하는 곳이기도 하다. 강당은 원장이 유생들에게 정기적으로 강회(講會)를 베푼 곳이었으며, 유회(儒會)나 제사 때는 유림의 회의 장소가 된다. ‘()’이란 유생들이 정해진 기간에 자율적으로 학습한 것을 여러 명의 교수 앞에서 학습한 내용을 보고하고 스승과 문답을 통해 경서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검증받는 교육 방식을 말한다. 유생들의 공부 성취도는 강회를 통해 확인되었다. 강당은 곧 을 하는 모임의 장소로 사용된 건물이다.

 

강당은 정면이 다섯 칸이 되는 규모의 건물이 가장 많고, 서원에 따라 규모의 증감이 있다. 강당이 다섯 칸일 경우 중앙의 세 칸은 대청이고, 그 양측 각 한 칸은 온돌방이다. 이처럼 강당은 건물의 가운데에 집회를 위한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온돌방인 좁은 방을 두는 중단 좁은 방형식이 주를 이룬다. 건물 앞에서 건물 쪽으로 봐서, 오른쪽 온돌방에는 원장이, 왼쪽 온돌방에는 원이가 기거한다.

 

그런데 소수서원 강당은 정면 4,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정면 3칸은 대청이고, 1칸은 온돌 좁은 방이다. 도산서원의 강당은 정면 4칸 규모로서 3칸 대청, 1칸 좁은 방으로 구성되었고, 남계서원의 강당 역시 정면 4칸 규모인데, 가운데 대청이 2칸이고, 그 좌우에 1칸 좁은 방이 각각 있다. 강당의 대청마루는 스승과 학생이 강논(講論)하고 행예(行禮)가 일어나는 장수의 중심공간이다.

 

강당은 기단 위에 세워지는데, 강학 공간이 전재후당의 배치를 한 강당의 기단은 전당 후배 배치를 한 강당의 기단보다 높게 조성된 것이 일반적이다. 강당 기단은 막돌 바른 층이나 다음은 돌 허튼 층 쌓기로 되었고, 기둥은 방주보다 원주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강당의 대청은 연등 천정을 하여 구조체가 노출되도록 지었다. 구들을 놓은 좁은 방은 천장을 설치하였다. 강당의 기둥머리는 민도리 및 익공으로 처리되었는데, 도동서원의 중정당과 같이 포를 짠 것도 있다.

 

齋舍;재사는 원생들이 기거하며 독서를 하는 생활공간으로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사는 일반적으로 동재와 서재, 두 건물로 구성되며, 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재와 서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재사는 대개 정면 2~5, 측면 1~3칸 정도로 그 규모가 일정하지 않다. 재사는 강당 건물보다 지면 높이가 한 단 낮은 곳에, 강당보다 규모가 작은 건물로 세워 성리학적 위계를 반영하였다.

 

藏版閣, 藏書閣;서원은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서적의 수집, 보관, 관리 및 인간(印刊)은 중요하였다. 재정 능력이 있는 서원은 서적을 직접 제작하였는데, 그러면 대개 선현들의 문집 등을 나무에 판각하여 인쇄하였다. 장판각은 서적을 펴내는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며, 장서각은 판본이나 서적들을 수장한 곳으로 강학 공간에 부속되는 건물이다. 도산서원과 같이 규모가 큰 서원은 장판각과 장서각을 별도로 설치하기도 하였다. 장판각이나 장서각은 강학 공간에 위치하면서도 다른 건물의 화재 등으로 화를 당하는 것을 피하고자 강당이나 재사에 떨어져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여 배치하였다.

 

장판각이나 장서각은 일반적으로 맞배지붕을 한 건물로서, 정면 가운데 칸이나, 칸마다 출입을 위한 판문을 달았고, 내부는 마루를 깔았다. 습기는 종이와 목판을 상하게 하므로 공기가 잘 통하도록 벽에는 환기구나 살창을 설치하였다. 대부분 벽체는 흙벽보다 통풍 효과가 큰 판자벽으로 하였으며, 건물 바닥은 지면에서 띄워 올려 마루를 깔아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습기를 방지하였다.

 

제향 공간-神門, 祠宇

 

강당 공간 뒤에는 별도의 담으로 둘러싸인 사우 일곽이 있는 제향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제향 공간은 문, 사우, 전시청 등으로 구성되었다.

 

神門; 신문은 사우로 통하는 제향 공간의 정문으로서, 서원의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 영역을 경계 짓는다. 신문은 서원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문이기 때문에 서원 정문인 외문에 대하여 내문이라 하고, 일반적으로 세 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내삼문이라고도 한다. 내삼문의 경우, 가운데 문은 제향 시 제관과 제수만 통과할 수 있다.

 

祠宇; 사우는 제향 공간의 중심으로서 사림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선현의 신위나 영정을 모시고 춘추로 제향을 베푸는 곳이다. 서원 경내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가장 존엄한 곳이다. 사우에는 도덕과 학문이 높은 인물의 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서원에 따라서는 충절로 이름이 높은 인물을 모신 예도 있고, 조선 후기로 가면 문중에서 받드는 인물을 모시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사우에는 선현의 신위만 모셔져 있으나 무성서원과 같이 신위를 모신 뒷벽에 영정을 모신 서원도 있다. 사우 건물은 정면 3, 측면 2칸 규모가 가장 크다. 건물 기단에는 전면 좌우에 계단을 각각 설치하였고, 건물 전면에는 툇간을 설치하여 제향 때 의례 공간으로 사용토록 하였으며, 지붕은 주로 맞배지붕으로 지었다. 사우 건물은 신위를 모시는 곳이기 때문에 정면에만 출입문을 내고 나머지 세 벽에는 두꺼운 벽을 둘러 내부를 어둡게 하여 유현한 분위기가 감돌도록 하였다. 건물 내부에 신위를 배열하는 방법은 뒷벽 가운데에 주향하는 분의 신위를 모시고, 그 좌우나 좌벽에 배향하는 분의 신위를 모신 예도 있고, 뒷벽 오른쪽(서쪽)에서 왼쪽으로 신위의 서열에 따라 차례로 모신 예도 있다.

 

지원공간-庫直舍, 典祀廳, 祭器庫

 

庫直舍; 고직사는 서원을 지키고 관리하며, 서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원지기가 거주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고직사는 강학 공간 일 갑 밖의 좌측이나 우측에, 담으로 둘러싸인 별도의 영역에 있다. 원지기는 평상시에는 유생과 원생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제향 때에는 제수를 준비한다. 이를 위해 고직사에는 식량, 용품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고직사는 방과 대청, 부엌 등으로 평면이 구성되는 점에는 일반 살림집과 비슷하나. 안마당이 부엌 공간이 연장된 작업공간으로 쓰이는 점, 사대부 주택의 남성들의 공간인 사랑채가 없는 점이 크게 다르고, 고직사는 고직사(庫直舍), 주소(廚所), 주사(廚舍)들로도 불린다.

 

典祀廳, 祭器庫; 제향공간에 부속되는 건물로는 전사청, 제기고 등이 있다. 전사청은 제향시 제수를 마련하는 곳이고, 제기고는 제사에 필요한 제기와 제례 용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제수는 마른 것과 기가 있는 것으로 크게 구분되기 때문에 전사청 바닥은 마루, 온돌, 흙바닥 등으로 되었다. 도산서원의 전사청은 마른 제수와 물기가 있는 제수를 위한 건물을 따로 지어 두 동으로 구성되었다.

 

서원에 따라서는 전사청에 제기를 보관하는 공간을 함께 마련하여 별도의 제기고는 두지 않는 곳도 있고, 전사청과 제기고를 별도의 건물로 세운 예도 있다. 전사청과 제기고는 건물의 기능상 제향 공간에서 가까운 그곳에 있다.

 

부속 시설물-牲壇, 盥洗位, 望瘞位, 石燈, 庭燎臺, 蓮塘

 

牲壇;생단은 향사에 쓸 희생을 검사하는 단()이다. 희생을 검사하고 품평하는 의(), 즉 생간품(牲看品)은 제관과 관계관들이 생단에 나아가 생단 주위에 서서 행한다. 생단 서쪽에 선 축관(祝官)이 생단에 준비된 희생이 정결한가를 ()’하고 물으면, 제관이 이에 좋으면 ()’이라고 답하는 것으로 의식이 끝나고 제수를 준비하게 된다. 생단은 서원마다 위치가 일정하지 않다.

 

盥洗位;관세위는 향사 때 제관들이 손을 씻는 대야를 두는 곳으로서 석제 기둥을 세워 그 위에 盥盆, 즉 대야를 올려놓는다. 사우가 남향할 경우 사우 앞 동쪽 계단의 동쪽에 위치한다. 제관은 일반적으로 사우 앞뜰에 사우를 향하여 옆으로 길게 서 있다가, 동쪽 계단으로 올라 사우에 들어가 제향하기 전에 관세 위에 이르러 손을 씻는다.

 

望瘞位; 망례위는 제향 공간에 부속된 시설로서 제향을 지내고 난 뒤 축문을 태우고 묻는 곳이다. 망례위는 망요위(望燎位)라고도 한다. 향사가 끝나면 축관은 축관과 폐백(幣帛)을 모시고 사우 앞 서쪽 계단으로 내려와. 사우 서쪽에 마련된 망례위에 나아가 축을 태우고 난 뒤 거기에 묻는다. ‘()’는 묻는 것이고, ‘()’는 태우는 것을 뜻한다. 도동서원의 망례위는 사우 오른쪽 담에 구멍을 만들어 설치하였는데 ()’이라고 부른다.

 

石燈, 庭燎臺; 석등은 석조로 된 구조물로서 불을 밝히는 관솔불을 놓는 곳이다. 사우와 강당 앞마당에 설치된다. 정료대 또는 요거석(燎炬石)이라고도 한다.

 

蓮塘; 많은 서원에는 서원의 입구 근처에 연당이 조성되었다. 서원 내부의 연못은 서원 유식 공간의 주요 요소의 하나로서 수경관(水景觀)이다. 수경관은 동아시아 주거 입지와 경관 구성에 핵심적 요소이다. 서원 경관에서 수경관은 풍수적 취수, 생태적 집수와 미기후(微氣候)조절 등 기능적 성격과 유교적 관조의 대상이라는 상징적 성격이 중복된 연못으로 나타난다. 서원에 따라 연못이 조성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있고, 필암서원처럼 서원 외부에 연지가 있는 곳도 있다. 연못의 기능과 의미는 아래 주자(朱子)의 시에 근거하여 도학적 관점에서 주로 해석됐다. 따라서 형태는 사각형(方形)이 많다. 서원의 인물의 지위와 관련된다. 도산서당의 정우당(淨友塘)은 퇴계가 주돈이(周敦頤)애연설(愛蓮說)’에 영향받아 연꽃과 같은 세속에 초연한 청빈 고아한 삶을 상징화한 경관이다.

 

역사적 문화유산인 전통공간은 당대 최고의 기술로 건축된 당대 문화의 집합체 

 

서원의 건축물은 유교 사상에 근거하여 건축되었다. 서원은 조선의 지배세력이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이데올로기 실천과 지배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조선말 고종 초 훼절 된 서원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서원의 경우 필요 이상 손을 본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인위적 손상은 학맥이 뚜렷한 경우 복원과 보존상태에서 차이를 보인다. 장점과 함께 후대 명망가를 자처하는 인사들의 개인적 공적 쌓기가 이와 같은 현상을 보인다.

 

이번 연구에서는 16세기(중종 3, 1543) 이후 사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은 서원을 건축하면서 서원은 주변 산천의 지형과 지세를 고려하여 입지를 선정했다.

 

입지분석 결과에서 필자는 우리 조상들이 전통 교육기관을 건축할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을 고려요소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축 당시의 지방정부나 사대부들의 국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할 때 먼저 지령의 인걸이라는 명제에 따라 주변의 지형·지세를 자세히 살펴 땅속에 흐르는 생기를 받아 훌륭한 인물을 배출할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선택하고 자리 잡은 다음, 그 토대 위에서 선비정신을 기르고 상하 위계를 중시하는 전통적 기본질서를 이루고자 하였다. 공간 구성은 자연과 조화와 더불어 유교, 도교, 불교, 음양오행설, 풍수지리 사상 등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서원의 입지는 처음부터 풍수를 기초로 선정한 경우와 기존에 터를 잡고 있던 사찰과 사찰에서 사용하던 부재를 활용한 때도 다수 발견되었다. 사찰에 주요기관인 대웅전 터에 대성전이 건립된 경우와 사찰의 풍수를 활용했는지 혹 사찰과 달리 풍수 이론을 활용 건립되었는가 하는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설립된 조선은 인재를 양성함에 단순히 지식의 주입에 있지 않았다. 심신 수련을 통해 지덕체를 겸비한 인재양성을 위해 자리를 잡았다. 공간적 개념으로 전통사회에서 지향하던 직선적 위계질서는 오늘날 다양한 사고체계로 변화되었지만, 신성한 장소에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교육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다른 종교시설을 활용한 교육기관 설립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연구결과 우리의 선조들이 교육기관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그 입지의 선정은 관청과 가까운 곳이란 단서조항에도 불구하고 풍수적 안목을 가지고 선정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서원 복원은 단순히 교육기관 건축뿐 아니라 우리 전통공간의 복원에도 더욱 많은 전문가 집단의 조언과 자료의 수집을 통해 역사적 고증을 근거로 한 계획적인 복원이 필요하다. 역사적 문화유산인 전통공간은 그 당시 최고의 기술을 통해 건축된 당대 문화의 집합체이다.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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