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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09주년 봉축법요식 봉행
11일 구인사 광명전서 비대면 진행··문덕 총무원장 "지혜롭게 코로나 극복해야"
기사입력: 2021/01/14 [19:3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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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구인사 광명전서 비대면 진행··문덕 총무원장 "지혜롭게 코로나 극복해야"  

 

한국불교 3대 종단 중 하나인 대한불교 천태종(大韓佛敎 天台宗)의 중창조(重創祖)인 상월원각 대조사(上月圓覺 大祖師, 1911~1974)의 탄신 제109주년 봉축법요식이 지난 11일 오전 천태종 총본산 충북 단양 구인사(求仁寺) 광명전 5층에서 열렸다.

 

이번 법요식은 정부의 강화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소수의 종단 스님들만 참석하고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생중계했다

▲ 한국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09주년 봉축법요식이 1월11일 충북 단양 구인사 광명전 5층에서 소수의 종단 스님만 참석한 가운데 비대면으로 열렸다.  

 

법요식에는 종정 도용 스님을 비롯해 총무원장 문덕 스님, 종의회 의장 도원 스님, 감사원장 진덕 스님 등 소수의 종단 스님만 참석했다.

 

총무원장 문덕 스님은 봉축사를 통해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으로 인해 비대면으로 봉축 법요식을 봉행하게 됐다면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지만, 이 현실 역시 우리가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조사님께서 구인사에 대도량을 여시고 새로운 시대를 견인해 갈 새 불교의 기틀을 마련하신 것은 오늘날과 같은 혼란과 고난의 시대를 맞아 천태종지(天台宗旨)를 받들어 대승의 원력을 성취하는 길을 밝혀주시기 위함이라며 “3대 강령과 3대 지표가 이 세상을 청정하게 하는 묘법이고 모든 사람의 삶을 복되게 하는 지남이니, 우리는 더욱 굳은 마음으로 종지종통(宗旨宗統)을 수호하며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봉축법요식은 총무부장 월장 스님의 사회로 종정예하 헌향ㆍ헌다ㆍ헌화 삼귀의례 찬불가 반야심경 독경 상월원각대조사 법어 봉독(종의회의장 도원 스님) 국운융창기원 종단스님 헌향ㆍ헌화 상단권공 및 조사영반 봉축사 관음정진 사홍서원 순으로 진행됐다

  

상월원각 대조사 탄신 109주년 장엄등7일 구인사 삼보당서 점등  

 

상월원각 대조사의 탄신 제109주년을 기념하는 장엄등이 구인사(求仁寺) 경내를 환하게 밝혔다. 천태종은 17일 오후 5시 구인사 삼보당에서 상월원각 대조사 탄신 제109주년 기념등 점등식을 봉행했다. 정부의 강화된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이날 점등식에는 종정 도용 스님을 비롯해 총무원장 문덕 스님 등 종단 스님 일부만 참석해 진행됐다.

▲ 도용 종정(가운데)을 비롯해 천태종 주요 지도자들이 1월7일 중창조 상월원각 대조사 탄신 100주년 기념 점등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종정 도용 스님은 불자의 살림살이는 오직 믿음과 원력이라. 화성에 머물며 만족하지 말고 진정한 보배의 성을 향하여 정진하라면서 탄신을 봉축하며 가르침의 등불을 밝혀 힘겹게 살아가는 중생들이 평온을 얻고 국태민안과 인류의 평화가 성취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라고 점등 법어를 내렸다.

 

이어 총무원장 문덕 스님은 점등사를 통해 코로나19 방역으로 많은 사부대중과 함께 점등의 환희를 나누지 못해 아쉽지만, 이 도량에 밝히는 광명이 온 나라에 비쳐져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희망의 에너지가 되길 바란다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각고 정진으로 대각(大覺)을 성취하고 구제 중생의 장엄한 서원을 펼쳐 보이셨듯이 오늘의 고난은 반드시 더 좋은 세상을 맞이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불교천태종의 종통(宗統)과 중창조 상월원각 대조사의 구도(求道) 여정   

 

천태종은 혼란한 불교를 통합하기 위해 고려시대 이 땅에 뿌리를 내렸다. 묘법연화의 천태사상이 이 땅에 처음 뿌리내린 것은 고려시대였다.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당시 혼란했던 고려불교를 하나로 통합하고 바로잡기 위해 6세기경 천태 지자대사가 개창한 천태종을 한국에 들여왔다. 천태사상은 학문과 수행을 두루 겸비한 새로운 불교정신이었으며 불교사상을 모두 아우르고 통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태종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용수보살의 맥을 타고 제4대 조사(祖師)인 지의대사는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로서 천태교학을 완성하였다. '지자대사'는 교학적 토대를 통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련하고 일생을 통해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을 실천했다. 지자대사와 대각국사를 통해 불교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데, 이를 근현대사 이후 소백산에서 중창한 선각이 상월원각 대조사다. 천태교학은 1세기경 용수보살의 공사상과 중관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이를 6세기경 중국의 천태 지자대사가 장통별원의 화법사교와 화의사교를 바탕으로 오시교판을 체계적으로 확립했다.

 

지자대사는 교종과 선종의 극심한 대립을 하나로 융합하기 위해 천태종을 개창했다. 교학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교종과 수행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선종은 두 개와 같이 하나로 불도의 길을 가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를 주장하기 위해 지자대사는 교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모든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을 성불하기 위해 이 세상에 출현했으며 성문, 연각, 보살의 수행자들이 모두 일불승에 들어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 불교도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수행법이 있지만, 천태종에서는 염불수행을 주요 수행방법으로 정하고 있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출가인, 재가인 모두가 관음정진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관음정진은 타력신앙으로 알려져 있지만, 목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정진함으로써 스스로의 자율적인 노력이 필요한 면도 있다. 해방 후에 대한불교천태종을 중창한 상월원각 대조사는 구인사를 창건하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애썼다. 2대 남대충 대종사와 3대 김도용 대종사가 이 뜻을 받들어 현재 대한불교천태종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 대한불교천태종 총본산 소백산 구인사    

 

상월원각 대조사는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 3대 지표를 통해 구체적인 중생구제를 실천했다. 애국불교는 단합된 힘으로 자기가 사는 이 시대와 지역에 당면한 여러 가지 과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 사회, 가정,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평화를 위해 힘쓰는 것을 뜻한다. 생활불교란 일상과 수행이 결코 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복을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복을 짓는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에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염불 수행하여 부지런히 복을 지어야 한다. 대중불교란 재가자 또한 출가자와 마찬가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추어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시에 중생구제의 서원을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대한불교천태종은 이 3대 지표를 통해 중생구제를 실천하고 있다.

 

상월원각 대조사는 500년간 맥이 끊어진 천태종을 중창(重創)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3대 지표인 애국불교ㆍ생활불교ㆍ대중불교를 전개해 중생의 구제를 실천하였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참선 수행을 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종풍(宗風)을 세웠다. 교리는 천태종의 법맥(法脈)을 이었으나 주경야선 수행을 통해 나 자신을 닦아가는 수행으로써의 역할을 더욱 중요시했다

 

비결서에 나오는 길지(吉地)에서 탄생한 상월원각 대조사

 

상월원각 대조사의 속명은 박준동(朴準東)이고. 법명은 상월(上月), 법호는 원각(圓覺)이다. 1911년 음력 1126일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마을에서 밀양 박씨 집안의 박영진(朴泳鎭) 거사와 모친 삼척 김씨 사이에 15녀의 맏이로 탄생했다. 종교나 비결서(秘訣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향이 비결서들에서 말하는 길지(吉地) 후보에 들어가기도 해서, 종종 마을 근처에 '도인' 수련을 하는 이들이 찾아오곤 했다고 한다.

 

1926(3) 무렵에 '반체'라는 순회식 서당에 들어가 한학 공부를 했다. 글공부를 가르칠 훈장이 어떤 지역에 들어와 일정 기간 가르치면 떠나고, 다른 지역에서 또 임시 서당을 개설하여 가르치다 떠나는 식이었다. 상월이 한학 공부를 한 기간은 10여 년으로 추정되지만, 이렇게 띄엄띄엄 공부했기 때문에 실제 공부 기간은 훨씬 짧다. 상월의 고향 마을에 들어와 반체를 개설한 이들은 도참설이나 도술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상월은 이들에게서 종교적 영향도 일부 받은 듯하다. 한학 공부 중이던 1930(7)에 상월의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었다. 어린 시절에 겪은 죽음은 상월이 종교적 성향을 키우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도인이라 불리는오 선생과의 만남

 

1947(24) '오 선생'이라는 사람이 삼척 상마읍리에 찾아왔다. '도인'이라고 불리는 오 선생은 주문을 외우고 흙을 발라주며 기()치료를 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힘이 있다고 하여 오 선생을 찾아 인근의 병자들이 찾아왔다. 이 모습은 상월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루는 상월이 오 선생에게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오 선생은 "도를 닦으라"고 하면서, "천수경을 줄 테니 먼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암기하고, 그 다음에는 천수경전체를 큰 소리로 읽어라"라고 일러주었다.

 

상월은 오 선생이 일러준 대로 먼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기 시작하여 하루 만에 다하였다. 그 다음에는 천수경을 외우는데, 절반쯤 암기했을 무렵 오 선생이 오더니 상월에게 목숨을 걸고 산기도를 해보라고 권했다.

 

100일 산기도 위해 입산축지법, 차력술 같은 신통력 얻어  

 

상월은 자기와 비슷하게 도 닦는 일에 관심을 보이던 친구들과 함께 산기도에 나서기로 했다. 저마다 다라니를 적은 종이를 나눠주고, 마을 근처 산 어딘가에 저마다 자리를 잡은 뒤, 길일(吉日)을 잡아 입산하여 백일간 수행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오 선생이 정해준 6월 어느 길일에 저마다 기도처를 찾아 산에 올라갔다.

 

상월은 고향 뒷산 삼태산(三台山)과 두리봉 근처 움푹 파인 지형을 찾아 들어갔다. 과거 마을의 반체 훈장 노릇을 하던 이들이 도인 수련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상월은 그 자리에서 움막을 지어놓고 수도하다가, 근처에 쓰러진 나무에 앉아 수도하였다. 그 나무는 소() 위에 걸쳐져 있어, 그 위에 앉아 다라니를 외우다가 졸면 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또한 칼을 챙겨 졸면 몸을 찌르기도 하고, 여치가 손가락을 깨무는 데도 참고 넘어갔다고 한다. 여치에게 물린 흉터는 평생 남았다.

 

상월은 좁쌀과 고추장을 챙겨갔으나, 점차 먹는 양을 줄이며 수도하였다. 처음엔 하루에 한 끼였다가 이틀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렇게 용맹정진한 결과 축지법이나 차력술 같은 기묘한 신통력을 얻었다고 한다.

 

6월 초에 입산하여 백일기도를 마치고 9월에 내려와 보니 마을에 오 선생은 없었다. 오 선생이 마을의 노부인 한 명을 치료한다고 하다가 오히려 죽게 한 탓이었다. 한여름에 열병이 닥치자 오 선생이 부인을 살리겠다고 예의 황토를 몸에 바르고 주문을 외우며 이불을 덮었는데 그대로 노부인이 숨을 거두었다. 아들들이 분노하여 오 선생을 때려죽일 기세가 되었으므로, 상월이 내려오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도피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함께 입산한 다른 친구들도 먼저 내려와 있었는데, 그들은 입산한 지 얼마 안 되어 포기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이후 상월은 본가에 머무르면서 정감록등 비결서와 불경을 읽었고, 정감록에 나오는 이른바 십승지(十勝地: 조선시대에 사회의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여 곳의 피난처도 찾아다녔다. 또 고향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는 도인들과 교류했는데, 이 과정에 다시 오 선생과 만나 축지법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상월은 꾸준히 오 선생과 소식을 주고 받았다.

 

25세에 비구승이 아닌출가주술치료 하면서 '신원(神元)선생' 불려

 

1948(25) 815,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해 9월 상월은 가족들에게 출가하겠다고 선언하고 집을 나섰다. 비록 '출가'라는 말은 썼지만,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하고 계()를 받아 비구승이 되겠다는 뜻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종교인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출가하겠다고 선언한 뒤 집을 나와 원덕읍에 있는 외가를 찾아가 외삼촌을 만났다. 외삼촌이 상월에게 행랑채를 내어주니 거기에 머무르며 주술치료를 시작했다. 과거 오 선생이 했듯이 황토를 발라주고 주문을 외우며 병자들을 낫게 했다. 마을에 용한 선생이 찾아왔다고 소문이 나자 찾아오는 병자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상월은 외가에서 보름쯤 머무르다가 떠났다. 그렇게 1949(26) 봄까지 삼척과 태백 일대를 돌아다녔는데, 명성을 얻어 사람들은 '신원(神元) 선생'이라고 불렸다.  

▲ 대한불교천태종의 중창조 상월원각 대조사    

 

보성전문학교 법학과 출신 민경덕을 제자로 삼고 종교공동채 이뤄

 

상월은 강원도 산골의 토속문화의 환경 속에서 성장했고 그 자신도 도인 수련을 한 적이 있었지만, 민간신앙에 대해서는 명백히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환자의 집에서 전통적인 가택신앙을 하지 못하게 막고 가택신들을 모시는 단지 등도 모두 없앴다. 그런 귀신이 사람을 속박해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활동하는 와중에 상월은 민경덕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민경덕은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나온 당대의 엘리트였지만, 차력술 등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로 수련하는 청년이었다. 상월이 차력을 보여주자 여기에 감복하여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밖에도 추종자들이 모여 종교적 공동체를 이뤘다.

 

공산주의 영향을 받은 빨치산들이나 가담자들이 지역의 지주였던 민경덕을 핍박했다. 민경덕은 상월에게 십승지로 떠나자고 했고, 상월은 공주 마곡사 근처로 근거지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1949(26) 4월 무렵 상월은 민경덕과 다른 추종자들을 이끌고 충남 공주 유구읍 구계리로 들어갔다. 바로 정감록에서 십승지로 손꼽힌 지역이었다. 과거에 비결서를 읽고 십승지를 찾아다녔던 경험이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1년간 구계리에서 천수경을 낭송하고 차력술을 연마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은 민경덕이 조달했다.

 

1950(27) 봄 인근에 있는 태화산(泰華山) 부용암(芙蓉庵)으로 수련 장소를 옮겼으나, 6.25한국전쟁이 발발해 북한군이 일대를 점령하였다. 북한군은 산속에 모여 집단생활을 하는 상월공동체를 예의주시했고, 상월은 결국 공동체를 해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 따르던 사람들이 상월을 따라 이주하다 점차 떨어져 나갔고, 상월을 돕던 민경덕 일가도 고향으로 돌아갔다.

 

단양군 영춘면 여의생 마을로 이동2대 종정이 된 남대충과 인연

 

상월은 1951(28)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소백산 여의생문봉 아래 여의생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도 천수경을 낭송하며 병자를 치료하는 활동을 하니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훗날 천태종의 2대 종정이 된 남대충도 이때 상월에게 길을 안내해준 인연으로 제자가 되었다. 여의생문봉 옆에 있는 뒤시랭이문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작은 산줄기를 상월은 눈여겨보았다. 그 산줄기가 끝자락에 맺은 작은 봉우리가 영주봉(수리봉)이다. 상월은 영주봉 아래 있는 골짜기를 연화지(蓮華地)라 불렀는데, 묘법연화경(법화경)에서 따온 듯하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을 대상으로 한 주요한 경전에는 천수경뿐만 아니라 법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약칭 '관음경')도 있는데, 아마도 그 때문에 법화경에 주목했을 것이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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