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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서양문화와 불교-⑥ 그리스 출신 불교승려들, 헬레니즘 국가에 불교전파
제3차 경전결집 후, 지중해 헬레니즘 국가에 불교 전도승 파견
기사입력: 2021/02/02 [09:34]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보검 이치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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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소카 대왕이 마차를 타고 네팔에 있던 라마그라마 사원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부조. 인도 마디아 프라데시 주(옛 보팔왕국)에 위치한 산치 탑. 기원후 1세기.    

 

3차 경전결집 후, 지중해 헬레니즘 국가에 불교 전도승 파견  

 

한 종교가 어느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기 위해서는 이른바 전도자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종교적 교의가 조직적이고 창시자의 가르침이 뛰어난다고 할지라도 전달자가 없다면 그 종교는 한 지역에 머무르다가 정체되거나 소멸되고 만다. 기독교의 경우, 사도 바울이라는 전도자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로마 세계에 전파되지 못했을 것이다. 열정적인 사도 바울이 있었기에 초기 기독교는 로마제국에 전파되었고, 결국에는 제국의 국교로 인정받는 기독교 역사가 시작되었다.

 

붓다는 인도의 마가다 일부 지역에서 활동하였고, 불교는 지리적으로 갇혀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소카라는 불교도 대왕을 만나고 경전을 결집하고 여러 명의 전도승을 여러 지역에 파견했기 때문에 붓다가 창시한 불교라는 종교는 인도 아 대륙은 물론 지중해 그리스나 그리스 식민지국가였던 헬레니즘 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붓다가 입멸한 다음 100년 정도가 지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와 승단 내에는 보수 진보 기류가 형성됐다. 100년이 더 지나서는 정통과 이단의 시비가 대두되었다. 이에 아소카 대왕은 당대의 고승 목갈리뿌따띠싸 대장로의 자문을 받아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정립하는 경전결집대회를 개최하게 됐다.

 

모든 종교가 다 마찬가지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통과 이단이 생기고 교단은 헤게모니 장악과 파워게임에 휘말리기도 한다. 불교승단에서는 부처님 입멸(열반: 돌아가심), 100200년이 지나면서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승단을 통제하는 규율(비나야: 계율)도 아전인수 격으로 변칙(變則)이 발생했다. 말하자면 부처님 당시부터 제정되었던 규칙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해석하여 느슨한 승려들이 승단을 좌지우지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흠이 가게 하는 부류들이 집단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인 담마() 마저도 제멋대로 해석하는 이단이 생기기도 한 것이다. 불교는 지역적으로 확장해 가는데, 교리적 진리 체계가 이단으로 흐른다면 큰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한 집단이 상좌부의 장로(長老)들이었다.

 

좋게 보면 진보파와 보수파라고 하겠지만, 불교승단의 입장에서 보면 계율을 왜곡해 가면서 변칙적으로 승단에 구성원이 많아지다 보면 승단은 점점 더 타락해 갈 수 있다. 인도불교에서 바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많은 비구들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비법(非法)적이고 불법(不法)적인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아소카 대왕은 정통 비구들을 모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정립하는 경전결집대회(經典結集大會)를 개최하도록 후원하였고, 부처님의 말씀을 집대성한 가르침을 전승하는 프로젝트에 임하였고, 전도승들을 사방으로 파견하기에 이른다.

▲ 아소카 대왕이 당대의 고승 목갈리뿌따띠싸 대장로와 제3회 경전결집에 관하여 논의하고 있다. 나바 제따와나, 쉬라바스티. 인도.  

 

스리랑카 불교자료에 따르면, 아소카 대왕은 인도 아 대륙을 통일하고 붓다의 가르침을 통치이념으로 삼았고 불교는 국교의 지위로 격상했다. 아소카 대왕은 많은 비구들을 공경하여 공양을 베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매일 수만 명의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이렇다보니 가짜 승려들 까지 공양 행사에 끼어들게 되고, 승가의 규율이 흔들리면서 질서가 어지러워졌다. 게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부류가 생겨났다. 정통파 비구들은 이런 승가 풍토를 우려 했고, 아소카 대왕에게 건의하여 경전결집을 후원해 주도록 요청했다. 이에 아소카 대왕은 당시 존경받던 당대 고승 목깔리뿌따띠싸 대장로에게 승단정화를 돕는 지도자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 태국사원에서 우포사타(포살)의식이 행해지고 있는 장면. 한 달에 보름날과 그믐날 두 번 정기적으로 열린다.

 

당시 불교승단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승단의 규율이었다. 가짜가 많이 섞이다보니 정기적으로 15일과 30일에 실시해오던 우포사타(포살)7년 동안이나 개최되지 않는 대혼란이 야기됐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우포사타는 부처님 당시부터 행해져 오던 승가의 중요한 수행덕목이었다. 한 달에 두 번 모든 비구들이 모여서 수행자로서 자기 점검을 하는 혹시라도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돌아보면서 계율조목을 하나하나 살피는 의식이다.

 

그런데 다소 진보적이면서 가짜들은 7년 동안이나 우포사타의식에 참가하지 않고 공양만 받아먹는 일이 생기자, 승단정화 운동이 대두되었다. 당시 제3회 경전 결집대회에서는 약 6만 명의 가짜 비구들을 추방하기로 하였고, 목깔리뿌따띠싸 대장로는 까따와뚜(Kathavatthu)라는 논사(論事)를 편집하게 되었고, 모든 비구들이 학습하도록 했다. 이 텍스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정립한 불교철학서이다.

 

승단정화와 텍스트를 편집한 승단은 불교의 정통성에 기반하여 여러 지역으로 불교를 전파하기로 한 것이다. 9개 지역으로 전도승을 파견하기로 하였는데, 각 지역마다 전도단이 구성되어서 다수의 전도승과 보조인원이 참가하고 덕망 높은 전도단장이 선정되었다.

 

남쪽으로는 스리랑카에서 북쪽으로는 카슈미르 간다라,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 식민지였던 박트리아는 물론 지중해 그리스국가에까지 전도단을 보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이미 인도 동부 지역인 마가다에는 그리스 식민지 국가 출신의 그리스 승려들이 수행을 하고 있었다.

▲ 서양출신 비구들이 우포사타(포살)의식을 행하면서 계율을 점검하고 하고 있다.  

 

그리스 출신인 담마라끼따 비구는 인도 서부지역의 그리스 식민국가에, 마하락끼따 비구는 지중해 그리스의 헬레니즘 국가인 시리아(이스라엘) 이집트 마케도니아 그리스 본토인 아테네까지 불교 전도단을 이끌고 불법을 전파했다. 이런 전도단이 그리스 식민국가인 박트리아나 지중해까지 전파되었기 때문에 불교철학은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나중에 그리스-불교, 그리스-로만 불교 전통이 형성됐다.

 

불교역사상 아소카 대왕의 후원으로 열린 제3결집은 불교역사상, 대분수령이었다. 아소카 대왕은 인도 역사에서 매우 걸출한 군주로서 인도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크샤트리아 출신의 탁월한 군사지도자이면서 행정력을 갖춘 정치지도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대왕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불교역사상 불교를 후원한 가장 위대한 왕이기도 했다. 중국에 가면, 아육왕사(阿育王寺)가 있을 정도로 아소카 대왕은 불교도 왕으로서 오늘날 상좌부 불교가 존재케 한 주역이기도 하다. 아소카 대왕은 기원전 268에서 232년까지 36년간 권좌에서 통치했던 인물이다. 72세까지 살았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결코 짧은 생애는 아닌 것 같다. 아소카 칙령에서도 나타나지만, 그는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전쟁 승리 후에는 살상에 대해서 후회하면서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붓다의 가르침에서 참회의 길을 찾은 것이다. 당시 부처님을 대신 할 정도의 고승은 목갈리뿌따 띠싸 대장로였다. 그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해서 가르침을 받는 과정에서, 아소카 대왕은 제3차 불전결집과 불교전도를 후원하게 된 것이다.

 

만일 아소카 대왕이 목갈리뿌따띠싸 대장로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오늘날 상좌부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아소카와 같은 불교도 후원 왕의 불교전도사 파견 불사가 아니었던들, 불교는 마가다에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인도에서는 힌두 대 무슬림, 힌두 무슬림 대 불교 간에 종교적 암투가 극심하다. 불교는 인도에서 800년간 자취를 감췄다가, 실론 버마에 전해진 상좌부 때문에 재생하게 되었다.

▲ 인도와 로마의 해상 무역로(1세경).  

 

최근 한국 승려나 재가자들에게 상좌부는 새롭게 어필되고 있다. 그것은 남방 상좌부로부터 직접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 보다는 서구불교인들의 간접 영향으로 상좌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고 본다. 서구에서는 상좌부에 대한 관심이 일찍부터 있었고, 학구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연구가 이루어져서, 한국에서는 남방 상좌부를 직접 경험하면서도 상좌부에 대한 확실한 정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었다. 30년 내지 40년 정도의 기간이 흐르면서 한국불교에서도 남방 상좌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가능해졌다고 본다.

 

이제 본격적으로 인도불교의 그리스 헬레니즘 국가로의 전파가 탐구되게 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아소카 대왕의 불교전도 후원의 결과였다. 그러므로 불교역사에서는 아소카 대왕의 공적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자칭 소크라테스의 후예라고 하면서 아테네 아고라 광장에서 인생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그리스 철학자와 필자 보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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