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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의 대표사찰 봉원사(奉元寺)…제44세 주지 최원허 스님 선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및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보유 전통사찰
기사입력: 2021/03/07 [10:0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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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및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보유 전통사찰    

불화와 단청 전수하는 전통문화 교육기관의 역할도 맡아  

 

신라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889년 지금의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자리에 세운 봉원사. 창건 당시에는 '반야사(般若寺)'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1748년 조선 영조 때에 봉원동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봉원사(奉元寺)'로 불리고 있다.

 

한국불교의 장자 종단으로 일컫는 한국불교태고종 대표사찰인 봉원사는 김옥균과 박영효 등 조선 근대화의 주역들이 이곳에 모여 긴밀하게 교류를 했던 장소이기도하다. 이와 함께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고 교육하기 위해 19088'국어연구학회'가 활동한 곳으로 그 흔적이 경내 곳곳에 남아 있다.

 

봉원사 현 주지 운봉 스님은 "한글학회에서 공부하던 학자들이 회의를 할 만한 장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봉원사에서 학회 사람들이 소집돼 여기에서 처음 (연구가)시작됐다. 그래서 이곳에 한글학회비가 있다"고 말했다

▲ 한국불교태고종의 대표사찰로 서울 신촌에 있는 봉원사 삼천불전


특히 봉원사는 대표적인 불교 문화유산이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인 범패와 제48호 불화(佛畫)와 단청을 전수하는 전통문화 교육기관의 역할을 맡고 있다. 불교전통음악 범패는 지난 20002월 입적한 박송암 스님에 의해 전수돼 스님의 제자들이 매년 66일이 되면 불교음악과 무용, 의식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불교 종합예술로 꼽히는 영산재를 시현하고 있다.

 

불화 분야의 독보적 존재이자 봉원사 출신인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이만봉 스님의 제자들 역시 전국 곳곳에서 불화와 단청 전문가들로 활동하고 있다.

 

운봉 스님은 "영산재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등록이 됐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서 지금은 세계적인 행사가 됐다. 이에 행사를 더욱 발전시키고 세계에 알리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봉원사에서는 조선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이 쓴 명부전 편액과 추사 김정희, 그리고 추사의 은사인 옹방강의 글씨도 경내 건축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찰 입구에 들어서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년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봉원사. 한국불교 태고종을 대표하는 사찰로서 불교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가치를 더욱 드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라 도선국사가 창건한 봉원사탈옥한 백범이 머물기도   

 

봉원사는 도선국사가 889년 현 연세대(연희궁)터에 처음으로 지었던 것인데, 이후 고려시대에는 고려말 공민왕대에 활약한 태고(太古) 보우(普愚)국사가 크게 중창하여 도량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조성하여 당시 사람들로부터 크게 찬탄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한산군(韓山君)이 이색(李穡)에게 명하여 태고국사의 비문을 짓게 하고 스스로 국사의 문도(門徒)임을 자처하여 봉원사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태조 5(1396)에는 원각사(圓覺寺)에서 삼존불을 조성하여 봉원사에 봉안하였고, 태조 사후(死後)에는 전각을 세워 태조의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다.

 

14대 선조 25(1592) 임진왜란 당시 전각이 소실됨에 따라 제17대 효종 2(1651) 지인(智仁)대사가 중창했으나 동, 서 요사채가 다시 소실되어 극령(克齡), 휴엄(休嚴) 두 스님에 의해 중건되었다. 21대 영조 24(1748) 찬즙(贊汁), 증암(增岩) 두 스님에 의해 지금의 터전으로 이전하였고,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奉元寺)라 현액하였으며, 신도들 사이에는 이때부터 새로 지은 절이라 하여 '새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22대 정조 12(1788)에는 전국 승려의 풍기를 바로잡기 위한 8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가 설치됐으며, 25대 철종 6(1856) 은봉(銀峯), 퇴암(退庵)화상 등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26대 고종 21(1884) 발생한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축을 이룬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구한말 개화파 인사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이동인(李東仁) 스님이 5년간 주석하였던 갑신정변의 요람지이기도 했다. 이동인 스님은 봉원사에 주석하면서 김옥균 등과 함께 교류하며 일본과 서양 문물에 관한 지식을 쌓아갔다. 승려의 신분으로 수차례 일본을 내왕하며 당시의 선진문물을 소개하여 김옥균 등 개화파가 개화사상에 눈을 뜨게 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했으며 신사유람단의 일본행에도 결정적 막후역할을 수행하는 등 개화운동에 많은 활약을 했다.

 

고종 31(1894) 주지 성곡(性谷)스님이 약사전을 건립했으나 소실되었다. 1899년 인천 감옥에서 탈옥한 백범 김구 선생(법명 원종)이 공주 마곡사를 떠나 서울 서문밖 이곳 새절(지금 봉원사)에 머물면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형세를 살폈다. 새절에서 인연이 닿은 사형(師兄) 혜정(慧定)스님과 동행해 평양으로 가서 부모님과 해우했다.

▲ 탈옥해서 봉원사에 머물렀을 때의 백범 김구 선생    


1911년 주지 보담(寶潭) 스님의 중수와 사지(寺地)의 확보로 가람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1945년 주지 기월(起月) 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광복기념관을 건립하였다. 1948년 백범 김구 선생이 봉원사를 다시 방문하였다.

 

1950928일 서울 수복 당시 병화(兵火)로 광복기념관이 소진되었고 이때 영조의 친필 현판 등 사보(寺寶)와 이동인 스님 및 개화파 인사들의 유물이 함께 소실되었다. 1966년 주지 영월(映月) 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소실된 염불당(念佛當)을 중건하였는데 이 건물은 대원군(大院君)의 별처였던 아소정(我笑亭)을 헐어 옮긴 것이다.

 

199132세 주지 김성월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삼천불전(三千佛殿) 건립 도중 대웅전이 소진됨에 즉시 중건을 시작하여 1994년 주지 혜경(慧鏡)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대웅전을 복원 낙성하였고 같은 해 1100평 규모의 삼천불전을 새로이 건립했다.

 

2009930일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세계유네스코 정부간 위원회 4차 회의에서 영산재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11년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20147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63호 아미타괘불도와 제364호 범종이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특히 이만봉 스님은 단청장으로서 1970년대 초부터 일찍이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되어 독보적인 불화의 세계를 구축하고 후학양성에 전념했다. 이만봉 스님은 영조 때의 유명한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석상겸의 화맥(畵脈)을 이었다. 1910년생인 스님은 6살에 동진출가하여 불화와 단청을 그리고 대가를 일컫는 금어(金魚)가 되기까지 20여 년에 걸쳐 시왕초, 천왕초, 여래초라는 3단계의 습작훈련을 거쳤다고 한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단청) 이만봉 스님    

  

1915년생인 송암 스님은 봉원사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주소를 옮긴 적이 없이 19세부터 범패를 배우기 시작하여 1940년에 어산 범패 일체를 섭수했다. 스님은 이월하 스님과 남벽해 스님로부터 사사를 받고 후진양성에 큰 힘을 기울여 범패의 계승과 전수에 일생을 바치고 2000년 세수 86, 법랍 67세로 입적했다.

 

현재 봉원사는 한국불교의 전통 종단인 태고종의 대표사찰로서 전법 수행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중은 50여 스님, 신도는 10만명을 헤아리며, 국가무형문화재 제48(단청) 이만봉 스님과 제50(범패) 영산재보존회에서 단청과 범패 분야의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옥천범음대학, 불교교양대학이 있고, 신행단체로는 관음회, 화엄법회, 청년회, 학생회, 인경회, 거사림 등 법회가 개최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교도소, 소년원, 양로원, 고아원, 군부대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교화활동을 펼치고 있어 태고종 대표사찰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봉원사 제44세 주지 최원허, 12세 부주지 조고담 스님 선출1211일 대중총회서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는 20201211일 오후 5시 설법전에서 주지 선출을 위한 대중총회를 열고 제44세 주지로 최원허 스님을, 2세 부주지로 조고담 스님을 각각 선출했다.

 

종회의장 전지암 스님을 좌장으로 37명의 각방 화주(선거권)가 참석한 가운데 2시간여 동안 봉행된 총회에서 최원허 스님이 22, 조현성 스님이 15표를 얻어 최원허 스님이 제44세 주지로 선출됐다. 12세 부주지 선거에는 조고담 스님이 단독 입후보해 무투표로 선출됐다

▲ 태고종 봉원사 제44세 주지로 선출된 최원허 스님

 

44세 주지로 선출된 최원허 스님은 모두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1966년 승학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신임 주지 최원허 스님은 옥천범음대 교수 및 학장 등을 역임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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