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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㉗ 중국 역사서에 실린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알렉산드리아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6/28 [08:25]
반초장군 휘하 부관 감영, 로마제국과 접촉하기 위해 페르시아 만 까지 도달

서양문화와 불교-㉗ 중국 역사서에 실린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알렉산드리아

반초장군 휘하 부관 감영, 로마제국과 접촉하기 위해 페르시아 만 까지 도달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6/28 [08:25]

반초장군 휘하 부관 감영, 로마제국과 접촉하기 위해 페르시아 만 까지 도달

 

서양의 현대사를 알려면 그리스-로마사를 그것도 로마사를 읽어야하고, 동아시아 역사를 알고자할진대 중국사를 필수로 독파해야 대략적인 개관이 가능하다고 본다. 서양과 동양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동서양의 역사를 알아야하고, 여기에 인도사, 중동사, 이집트사 등의 지식이 있어야 비로소 동서양 역사의 뿌리와 전개과정의 타임라인이 인식될 것이다. 서양문화는 비로소 이 그리스-로마 역사 위에 영국사, 프랑스사, 독일사 이스라엘사와 미국사 등을 전제해야 가능하다. 서양의 불교는 서양역사와 문화 위에서 피어난 한 줄기 꽃일 뿐이다.

▲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서안 비림박물관. 

서양문화와 불교란 주제에 부합하는 담론을 전개하고자 하려면 처음부터 서양불교로 바로 진입하면 왜 서양인들이 불교를 접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쉽게 풀리지가 않는다. 불교가 서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근대의 일이다. 서양의 기독교는 매우 이른 시기에 동양에 진출했고, 현대에 와서는 동양에서 기독교는 막강한 교세를 갖고 있다. 동양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전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도회인 예수회의 선교지원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수도회는 1539년 이냐시오 데 로욜라에 의해 창립되어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 미국 보스턴 칼리지,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수회 공동체.     

 

오늘날 예수회는 육대주 112 개국에서 많은 성직자를 배출하고 있는 명망 높은 수도회다. ‘총회(General Curie)’로 일컫는 중추기관은 로마에 있다. 예수회는 근대에 사회 정의와 인권문제에 끊임없는 관심을 표명해왔으며, 종교간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임했으며, 해방 신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3년 프란치스코로 알려진 현 교황(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은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다.

 

이야기를 중국으로 돌려보자. 중국 장안에는 대진사(大秦寺)가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 전래된 경교(중국에 전해진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사원(교회)의 일반적 명칭이다. () 왕조의 시대에 장안(長安)에 존재했던 대진사가 유명하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教流行中國碑)는 중국 당 건중(建中) 2(781)에 장안 서녕방의 대진사에 세워진 경교의 중국 전래를 전하는 비석이다. 명대에 재발견되어 시안비림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 《한서》의 저자인 후한 시대 반고(班固,32년~92년).     

 

이야기를 다시 중국 한나라 때로 돌아가 보자. 우선 한나라는 서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미 전회에서 한나라 무제에 의해서 장건이라는 낭관이 지금의 타림분지 오아시스 나라들, 중앙아시아인 기리키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우주베키스탄 등지를 다니면서 한나라와의 교류의 물꼬를 트려고 했다는 대강의 스토리를 소개한 바 있다. 이런 기록은 전한시대 사마천의 사기대원열전과 후한시대 반고가 쓴 한서장건열전에 실려 있다.

 

이번 회에서는 한서에 실려 있는 서역전을 살펴봄으로써 기원전 한 나라 때, 중국은 중앙아시아와 로마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는지 리서치해 보고자 한다.

▲ 한 나라(전한)때 전성기의 영역과 장건 서역 개척로.     

 

한서(漢書)는 반고가 편찬한 전한의 역사를 서술한 역사서로, 전한서라고도 한다. 다루는 시대는 한 고조 유방이 전한을 창건한 기원전 206년부터 왕망의 신나라가 망한 24년까지이다. 10012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기전체 형식으로 쓰여져, 제기(帝紀)12, 연표8, ()10, 열전(列傳)70권으로 되어 있다. 자료가 풍부하고 사실(史實)의 정확함이 특색이다. 사기와 함께 정사(正史)의 모범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여기서 본 담론의 주제와 관련 있는 부분이 열전인데, 이 가운데서도 장건열전서역전이다. 서역전은 상하(上下)로 나뉘어져서 서역전상에는 27국이 소개되어 있고, 하에는 23국이 기록되어 있는데, 관심이 가는 나라들은 계빈국, 오익산리국, 안식국, 대월지국, 강거국, 대원국, 휴순국이며, 하권에서는 구자국 정도이다.

▲ 로마제국의 최대 영토.    

 

대진국인 로마는 남조(南朝) 시대 법엽의 후한서》 「서역전에 기록된다. 사기한서에도 로마(대진)가 어렴풋이 인식이 되지만 뚜렷한 정보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후한서에는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후한시대에 로마가 확실하게 중국에 알겨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후한서대진국(로마)에 대해서는 차회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서상에서 오익산리국이 있는데, 아익산리국이라고도 발음하는 것 같다. 정수일의 실크로드 사전을 참고해 보면, 오익산리국은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와 동방원정을 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 이름을 지칭한다고 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몇 개의 알렉산드리아란 도시를 건설했지만, 사후에도 후계자들에 의해서 더 건설되어 무려 70여개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 사적에는 이헌’, ‘이간. 이건으로 표기했는데, 이것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한문식 표현이겠지만, 한서오익산리국은 어느 지역의 알렉산드리아를 지칭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페르시아의 아덴만 지역이 아닌가하는 전문학자들의 추정이다.

▲ 감영(甘英)은 한나라 서역도호부 반초의 휘하의 부관으로 로마에 파견된 한나라의 대사이다. 97년 서역도호인 반초의 명에 따라, 당시 대진(大秦)으로 불리던 로마와의 국교를 개척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7만 명 규모의 반초 원정군의 일원이며, 감영은 군과 함께 파르티아 왕국의 서쪽 국경까지 도달했다.  

 

중국 역사서나 문서에 등장하는 알렉산드리아는 오익산리국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간(犁靬)은 로마의 음역이라고 했다. 서역전에 따르면, “오익산리국은 장안에서 12천리를 가야 한다. 서역 도호에 복속하지 않았다. 호구와 군사가 많은 큰 나라이다. 동북으로 서역도호부까지 60일거리이며 동쪽으로는 계빈국(카슈미르), 북쪽으로는 박도(파르티아), 서쪽으로는 이간, 조지와 접했다.

 

거기서 1백여 일을 가면 조지에 이른다. 그 나라는 서해에 닿았는데 날씨가 무더우며 벼농사를 짓는다. 큰 새가 있는데, 새 알이 항아리만 하다. 백성이 아주 많고 곳곳에 작은 군장이 있는데, 안식국에 복속된 속국이다. 마술을 잘 한다. 안식국의 장로에 의하면 조지에는 익수라는 강과 서왕모가 사는 곳이 있으나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한다. 조지에서 바다를 따라 서쪽으로 갈 수 있는데, 1백여 일을 가면 해가 지는 곳에 가깝다고 한다.

▲ 중국 한나라 사절 감영이 도달한 페르시아 만 알렉산드리아.     

 

오익산리국의 땅은 무덥고 풀이 우거진 평지로 그곳에는 초목, 가축, 오곡, 과일과 채소, 음료, 저택, 상가, , 무기, 금이나 구슬 등은 계빈국과 같으며 그리고 여양, 사자, 물소 등이 있다. 그 풍속에 함부로 하는 살인을 아주 꺼려한다. 그 나라의 돈은 사람의 얼굴 하나만을 새겼고, 뒷면은 기마를 새겼다. 지팡이를 금은으로 장식한다. 너무 먼 곳이라서 한()의 사절이 가끔 왕래한다. 옥문과 양관에서 남도를 택해 선선을 경유하여 남행하면 오익산리국이 남도의 끝이다.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가면 안식국이 있다.“ 라고 했다.

 

반초(班超, 32102)는 중국 후한의 무장이다. 문사가문 출신으로, 서안 근처의 샨시성 함양(咸陽)에서 태어났다. 역사가 반표의 아들이자, 한서의 저자인 반고의 아우로 이 세 사람을 삼반(三班)이라 칭한다. 반초는 91년 둔황지역에서 서역도호부의 도호가 되었다. 97년에는 톈산 산맥과 파미르고원을 7만 명의 경기갑 군사로 횡단하여 실크로드를 어지럽히던 흉노와 전쟁하였다.

 

후한서반초는 그 부관인 감영을 대진으로 파견했으며, 감영은 서역을 통해, 안식(파르티아)의 서쪽의 경계에 도달했고, ‘커다란 바다’(페르시아만)의 기슭에 도달했다.“ 고 했다. 이 이전의 시대에는 아무도 이러한 지역에 도달한 사람이 없고, 산해경에도 자세한 것은 기술되어 있지 않았다. 감영은 탐험 여행으로 알게 된 모든 나라에서 경험한 지역의 도착, 그곳의 관습이나 지세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감영은 로마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역사에 기록된 고대 중국인 중 최초로 서방을 여행한 인물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중국 한나라 사절 감영이 도달한 페르시아 만 알렉산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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