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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⓺ 타락(3)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22/08/08 [08:53]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의 창세기 산책⓺ 타락(3)

지상설교

주형식 목사 | 입력 : 2022/08/08 [08:53]

창세기 314절부터 19절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선고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조사로부터 심판까지의 과정을 보면 조사는 아담-여자-의 순서로 이루어지는데, 심판의 선고는 -여자-아담의 순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뱀에 대한 선고 속에 들어있는 원복음(창세기 315)이 이 모든 심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15절은 구속의 경륜을 선포하시는 장면인데, 이 선포를 가리켜 원복음“(Protevangelium)이라고도 합니다. ”원복음“, 혹은 원시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최초의 복된 소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향해 죄의 결과를 선고하시기 전에 먼저 회복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메시야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에 대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렇게 타락한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은 평화의 의논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지구 창조 전에 이미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 창세기 315절의 선언은 뱀에게 절망적인 저주의 선언이 되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메시야의 성육신과 초림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머리가 상하게 된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치명상을 가리킵니다. 사탄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십자가에 가두려 하였으나, 예수께서 무덤문을 열고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승리로 인류를 구속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탄에게는 머리가 상하게 할 정도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치명상이 된 것입니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시는 순간부터 사탄은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헤룻을 통해 죽이려고 하였고, 공생애 기간 동안에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통해 끊임없이 공격하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죽음으로까지 이끌고 갔습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괴롭혔지만, 결코 그것이 예수님께 치명상이 되지 못한 것을 성경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는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사탄은 자기와 여인, 자기의 자손과 여인의 자손 사이에 증오심이 있게 되리라는 것을 들었을 때 인간 본성을 타락시키려는 자신의 사업이 방해를 받을 것과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 사람이 그의 세력을 저항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경륜이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났을 때 사탄은 사람을 타락시킴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아들을 그분의 높임 받은 지위에서 끌어 내릴 수 있다고 그의 천사들과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여기까지는 그의 계획이 지상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자진해서 인성을 취하실 때 그분 또한 패배당할 것이며, 이렇게 하여 타락한 인류의 구속은 저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창세기 3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의 원어 제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단수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여자의 무수히 많은 후손들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일에 연합하여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개인이 이 예언을 성취시킬 것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선언은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있는 대쟁투, 곧 하늘에서 시작된 전쟁(12:7~9)이 히브리서 214절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가 다시 사탄을 패배시킨 세상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며, 세상의 마지막 때에 사탄이 남은 무리와의 결전을 위해 선 모습이 계시록 1217절에서 보여지며, 최종적으로는 계시록 2010절에서 천년기 끝에 사탄의 멸망과 더불어 끝날 것으로 결론을 맺게 됩니다.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고통이라는 말의 원어는 새기다”, “각성시키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해산의 고통을 더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줍니다. 태초에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계속되는 잉태는 고통이 아닌 축복의 경험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축복된 잉태의 경험에 고통이 수반될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고통이라는 말의 의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이 인간에게 새겨지고, 각성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인류의 생명을 다시 얻으려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고통이 곧 해산의 고통인 것입니다.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둔 예수님의 말씀이신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해산의 기쁨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범죄한 하와에게 잉태의 고통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고통이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인류에게 새로운 생명을 얻는 기쁨임을 새기고” “각성시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출산을 포함한 여자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은 구원이라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자에게 잉태의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입니까? 범죄한 인간이 이후로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인간의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장의 말씀을 살펴보면 이 땅에 죄가 들어온 후 하나님께서 저주를 하신 대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저주는 오직 뱀과 땅에게만 선언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선언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하지만 인간은 범죄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그 저주받은 땅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인간은 수고로이 일을 해야 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여기서 가시덤불엉겅퀴는 원래 창조 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결코 가시나 엉겅퀴나 가라지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이것들은 사탄의 작품으로서, 타락의 결과로 그가 귀중한 것 가운데 도입한 것들입니다. 천연계가 범죄로 인하여 창조의 질서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가시덤불엉겅퀴는 저주받은 땅을 나타내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 히브리어 아다마”(adamah)와 첫 사람의 이름 아담”(adam)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의 어원처럼 사람과 땅은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관계에 혼란이 온 것입니다. 상호의존적이고 밀접한 관계가 이제는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죽음은 죄의 궁극적인 결과입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열매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선언하셨는데, 이 말씀대로 죽음이 인류에게 선언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먼저 구속의 경륜을 선언하심으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소망을 주셨고, 그 이후에 공의의 선언으로 죄인의 생명을 요구하신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범죄하기 전에는 여자에게 이름이 없었습니다. “하와라는 이름은 범죄한 다음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러면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다 붙이고 난 뒤에도 여자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는데, 왜 굳이 범죄한 이후에 하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입니다. 이 이름은 구속의 경륜에 대한 선포를 들은 후에 지어졌습니다. 아담이 여자의 이름을 생명이라는 뜻의 하와라고 지은 것은 구주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의미를 깨닫고, 여자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와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구속의 경륜을 믿는다는 증거였습니다.

 

아담은 무덤 너머를 바라보고 그의 아내에게 약속된 후손에게서 그 날 그들이 빼앗겼던 불멸을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회복시켜 줄 한 분을 보았습니다. 우울과 낙담 속에서 그녀를 모든 죽을 자의 어미라고 부르는 대신에, 그는 믿음으로 자신의 눈을 그의 심판자에게 고정시켰으며, 그녀가 첫 아이를 출산하기 전일지라도 소망을 가지고 그녀를 산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에게 믿음은 진정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11:1)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20절에서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말은 범죄한 인류의 어미라는 말 보다는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모든 인류의 어미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비록 범죄한 이후 엄중한 죄의 결과에 대한 선고를 받았지만 아담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주신 구속의 경륜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의 아내가 여자의 후손을 낳을 그 여인이 되기를 소망으로 바라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세우셨습니다. 생명나무는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었으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곁에 있었다.

인간이 자유롭게 접근하였다.

그들은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었다.

그들은 생명나무에서 얻은 활력으로 충만하였다.

영원히 생존하려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계속 먹어야 한다.

범죄한 이후 생명나무의 접근을 박탈당하였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바로 곁에 위치했지만, 인간이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열매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자격이 박탈되었습니다. 이 두 나무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기본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생명과는 사람이 취하여 생명의 힘을 얻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인자하심, 아버지로서의 자부성, 인간과 함께하시는 내재하심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는 취하면 안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엄위하심, 왕과 주로서의 심판성, 인간과 다르신 초월성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로 말미암아 그들이 누리던 생명나무의 축복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경륜을 통해 생명나무를 다시 얻게 될 소망을 주셨습니다. 결국 범죄한 인간을 위하여 구속의 경륜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가운데,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의 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경륜에는 온 하늘의 무한한 희생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경륜을 천사들 앞에서 공개하셨을 때에 천사들은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구원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령관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애를 필연적으로 요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저 바닷물을 먹물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로, 하나님 사랑 기록해도 다 묘사할 수 없겠네라는 찬양의 가사가 머리와 입술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나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어, 우리 구주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며, 새하늘과 새땅의 생명나무를 고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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