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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死後, 영적 쇠퇴와 왕의 부재시대 맞아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3/05 [10:11]
이스라엘의 건국-역사, 그 분의 이야기⑤

여호수아 死後, 영적 쇠퇴와 왕의 부재시대 맞아

이스라엘의 건국-역사, 그 분의 이야기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3/05 [10:11]
가나안 입국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택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수 1: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명하여 주리라한 땅을 얻게 하리라”

여호수아는 광야출생인 제2세대를 이끌고 요단강가 싯딤에 이르렀다. 싯딤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 마지막 집결장소로 여호수아는 진중에 다니며 “식량을 예비하라 3일 안에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리라”고 전하고. 또 백성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거사를 행하리라”고 말했다. 이때는 봄철이라 산에서 눈이 녹아 요단강 둑까지 물이 넘실거렸다. 요단강을 건너기는 불가능한 것 같이 보였다. 각 지파에서 선발된 12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선두로 하여 몇 마일의 간격을 두고 행진하여 물속에 발을 넣었다. 이때 돌연히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멈추고 아래 물은 계속 흘러갔다. 자연히 강바닥이 드러나 땅바닥을 밟듯 안전하게 강을 건넜다.

백성들이 강을 건너고 법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강둑에 닿자마자 강물이 다시 무서운 기세로 흘러 내렸다. 이때 12제사장들은 강바닥에서 돌 한 개씩을 가져다 돌기둥을 세우고 기념의 단을 쌓았으니 이를 길갈이라 하였다.

여호수아는 마침내 조상들이 살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땅에는 많은 이방민족이 살고 있어서 이들과의 전쟁이 불가피했다. 그들의 성은 크고 견고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여리고성과 아이 성을 비롯한 가나안 남부의 기름진 땅을 정복하여 12지파에게 분배했고, 여호수아는 남은 딤낫세라를 취하여 거기에 거주했다.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에 잘 순종하였다. 여호수아는 임종이 임박하여 12지파 족장들에게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들을 다 몰아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남겨둔 자가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 옆구리를 찌르리라. 너희는 그들의 우상을 훼파하고 취하여 거기에 거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산업으로 너희에게 주었슴이라”고 말했다. 여호수아는 110세에 잠든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여호수아가 당부한 유언을 까마득하게 잊었다. 이방민족을 추방하지 않고 그들과 섞여 결혼도 하고 그들의 우상을 섬기며 도덕적, 영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 진노하사 모든 대적의 손에 붙이셨다(삿 2:14).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장으로서 모세를 보좌하여 하나님 사업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 시내 산에서 모세와 함께 10계명을 받았고, 전쟁터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명령에 순종하여 성장한 사람이었다. 가나안 정복 때에는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적군을 완전히 섬멸할 때까지 해가 넘어가지 않게 하셨다.


사사시대


여호수아가 죽은 후 340년간 15명의 사사가 등장한다. 이 시대의 특징은 영적 쇠퇴와 왕의 부재였다(삿 17:6). 사사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부터 왕국을 건설할 때까지 하나님의 사신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렸다. 공의를 시행하고 재판을 베풀었으며, 백성들을 보호하고 이방민족의 침입을 막은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였다.
15명의 사사는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바락,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른, 압돈, 삼손, 엘리, 사무엘이다.

이 시대는 처음 여호수아가 죽은 후 지도자가 없어서 메소포타미아의 침공을 받아 8년간 이들을 섬기고, 그 후 갈렙의 조카 옷니엘이 사사가 되어 40년간 하나님께 순종하여 태평성대를 누렸다. 옷니엘이 죽은 후 모압과 압몬의 침공을 받아 18년간 이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베냐민지파 왼손잡이 에훗이 사사가 되어 80년간 태평성대를 누린 후 에훗이 죽자 또 다시 바알신을 비롯한 이방신을 섬겨 침공을 받아 20년간의 세월을 보낼 때 여자 사사 드보라가 혼란과 무질서를 수습하고 40년간의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나 그 이후 또다시 부패하여 미디안의 침공으로 7년간 이들을 섬겼고, 기드온이 사사가 되어 40년 동안 태평성대가 있었으나 그 후 블레셋의 침공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극복한 범죄의 시대였다.


왕조 시대(王朝 時代)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고 이방민족같이 인간 왕을 원하여 하나님께서 이들의 소망을 허락하여 인간 왕조시대(人間王朝時代)를 열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유를 이웃 나라들이 블레셋을 중심으로 힘을 합하여 막강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여 라마에 있는 사사며 선지자인 사무엘을 찾아가 인간 왕의 국가 체제를 요구하여 왕조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다윗을 공격하는 사울(이탈리아의 화가 구에르치노(Guercino)의 작품)     © 매일종교신문
1) 제1대 사울왕(BC 1050년~1011년)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인 사울이 40세에 왕위에 오른다. 그는 건장한 체구와 준수한 외모와는 달리 평생 다윗을 시기하여 제거하기 위해 정력을 다하다가 이방과의 전쟁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블레셋과 전쟁을 앞두고 불안한 심정을 위안 받기 위해 엔돌에 살고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국가 위기의 해법을 찾으려고 했다. 이는 마땅히 하나님께 뜻을 물어야 함에도 어리석은 짓을 해 하나님께 큰 죄를 짓고 만다. 결국 전쟁에서 패하여 아들 요나단을 잃고 자살하였다.


2) 제2대 다윗왕(BC 1011년~971년)
유다지파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일로 사울에게 시기의 대상이 되어 쫓기는 처지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를 자기의 손으로 죽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전쟁도 많이 하여 사람도 많이 죽였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의 삶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모아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을 구하는 삶으로 일관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죽은 후 유다지파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민족의 화합과 국민통합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헤브론에서 7년간 때를 기다렸다. 그 후 혼란이 수습되자 모든 지파의 추대에 의해 이스라엘 왕위에 올라 명실상부한 통일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의 40년간의 통치기간 동안 영토를 10배로 확장시키고 민족통합, 국가체제 정비, 권력 강화 등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3) 제3대 솔로몬왕(BC 971년~931년)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왕이 여부스족으로부터 빼앗은 예루살렘성에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왕국을 건설했다. 이 성전 건축은 출애굽 한 지 480년만의 일이다. 솔로몬왕의 치세 기간 중 이스라엘 역사상 경제, 문화, 군사 모든 분야에서 국력이 최고조에 달하였다. 그러나 말년에 이방인 모압, 압몬, 에돔, 시돈, 헷 등의 이방 민족들의 왕녀를 후궁과 처첩으로 맞아 들여 이들의 우상숭배에 동화되어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과도한 국가적 공사로 국민에게 과중한 세금 부담과 부역을 강요하여 국민의 불평과 불만이 극에 달했고, 1,000명에 달하는 궁녀를 두고 사치와 과소비로 국민의 원성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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