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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도를 들으셨습니까?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5/10/02 [11:18]
장자 쉽게 일기

어디에서 도를 들으셨습니까?

장자 쉽게 일기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5/10/02 [11:18]

南伯子葵曰: 「子獨惡乎聞之?」 曰: 「聞諸副墨之子, 副墨之子聞諸洛誦之孫, 洛誦之孫聞之瞻明, 瞻明聞之?許, ?許聞之需役, 需役聞之於謳, 於謳聞之玄冥, 玄冥聞之參寥, 參寥聞之疑始.」
 
남백자규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홀로 어디에서 도를 들으셨습니까?”
 
여우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부묵副墨(문자. 도를 전하는 도구)의 아들에게서 들었습니다. 부묵의 아들은 그것을 낙송洛誦(끊임없이 암송)의 손자에게서 들었습니다. 낙송의 손자는 그것을 첨명(瞻明: 밝게 보는 것, 시각작용)에게서 들었고, 첨명은 그것을 섭허(듣고 바로 이해함. 도의 체득을 청각적으로 함)에게서 들었고, 섭허는 그것을 수역需役(터득한 도를 행동화)에게서 들었고, 수역은 그것을 오구於謳(도를 즐겨 감탄하고 노래함)에게서 들었고, 오구는 그것을 현명玄冥(도의 깊고 고요한 경지)에게서 들었고, 현명은 그것을 참료參廖(아무런 작용이 없는 도의 경지)에게서 들었고, 참료는 그것을 의시疑始(시작을 알 수 없는 경지. 만물은 하나)에게서 들었습니다.”
 
子獨惡乎聞之(자독오호문지): 그대는 홀로 어디에서 그런 것을 들었는가.
副墨之子(부묵지자): 부묵의 아들. 부묵은 인명이지만 여기에서는 문자를 쓰는 도구인 먹[墨(묵)]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洛誦之孫(낙송지손): 낙송의 손자. 낙송은 문자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말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낙송의 손자는 말로 전해지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낙송은 책을 보지 않고 줄줄 외우는 것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瞻明(첨명): 인명. 눈으로 직접 도를 보고 분명히 안 사람이라는 뜻으로 도에 더 가까이 다가갔음을 의미한다.
?許(섭허): 인명. 도를 들으면 바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뜻. 瞻明(첨명)은 도의 체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許(섭허)는 도의 체득을 청각적으로 표현한 것임. ?(섭)은 일러준다. 許(허)는 이해한다는 뜻.
需役(수역): 기다렸다가 도를 기르는 사람이라는 뜻. 도를 실천하는 사람.
於謳(어구): 인명. 도를 즐겨서 감탄하고 노래하는 사람.
玄冥(현명): 깊고 어두워서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 도와 일체가 되어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표현한 말.
參廖(참료): 인명. 텅 비어 있는 도에 참여하는 사람. 아무런 작용이 없는 도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형용한 표현이다. 廖(료)는 空虛(공허)의 뜻
疑始(의시): 인명. 시작을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 도는 스스로를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그 시작을 추측할 수 없다는 뜻.
 
부묵副墨 이외 9명은 철학적 개념을 의인화하여 우화의 인물로 만들었다.
 
부묵의 묵은 글을 말한다. 글이란 지식의 방편이며 도를 전하는 도구일 뿐이다. 여우는 온갖 글을 읽어서 도에 관한 것을 들었다고 남백자규에게 말한 것이다.
 
낙송의 낙은 끊임없이 이어서 글을 읽음을 말하고 그러한 낙송의 손자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모든 글을 읽었다는 것을 의인화한 셈이다.
 
첨명은 모든 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밝게 보는 것이다. 섭허는 어느 것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잘 알아듣는 것이고 수역은 마음에 터득한 도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오구는 아름다움을 찬미하여 노래하는 것이고, 현명은 도가 깊고 고요한 것이고, 참료는 도가 더더욱 고요함을 의인화 한 것이다. 이러한 참료를 만나면 드디어 의시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의시란 처음이 있는 듯하면서도 처음이 없음인데 이는 만물이 모두 하나라는 만물제동의 도에 이름을 말한다.
 
이렇게 도에 이르는 단계는 가깝고 얕은 데서 멀고 깊은 경지로 이어짐을 말했고 여우가 남백자규에게 지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사람이 누구나 지인이 될 수 없음을 장자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어찌 누구에게나 있겠는가. 이것 역시 사람의 자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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