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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작은집 日本王室 ㉞백제 의자왕 손위 누이 황극여왕
그곳엔 지금도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기사입력: 2016/06/07 [07:0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김주호 기획특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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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상 한 여인으로서 한 왕자(高向: 다까무꾸)에게 시집갔다가 다시 또 왕에게 시집가고, 그 후에 두 번씩이나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유명한 여왕이 바로 제35대 황극(皇極)여왕이다.
 
제31대 용명왕(用明王)의 손자 고향왕자에게 시집가서 왕자를 낳았고, 그 후 34대 서명왕(舒明王)에게 시집가서 2남 1녀를 낳았다. 서명왕이 죽자 황극여왕으로 즉위했고, 제36대 효덕(孝德)왕이 죽은 뒤에 다시 왕위에 올라 제37대 제명(齊明: 사이메이)왕이 된다. 

황극여왕, 백제 의자왕 손위 누이
두 번 결혼 두 번 왕위 올라, 삼국과 친밀
 
이 여왕의 이름을 『일본서기』에서는 천풍재중일족희(天豊財重日足姬; 아메도요다까라 이까시히 나리시히메)라고 했다. 그리고 황극여왕 조에서는 민달왕(敏達王)의 증손인 압판언인대형(押坂彦人大兄: 오사까히꼬히도노 오오히네)왕자의 손자 서정(芧渟: 지누)왕의 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황극여왕은 민달왕의 7대손이 된다.
 
민달왕 원년(572년)과 서명왕 원년(629년)과의 사이는 57년에 불과하다. 이 57년 사이에 7대손이 자라나 커서 결혼하여 왕후가 됐다는 것이다. 또 서정왕의 딸인 황극여왕의 본명은 보황여(寶皇女)이다. 왕의 딸이 황녀(皇女)가 될 수 있는가. 이는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가 안 간다. 아마도 기록상 잘못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래서 학자들 간에는 황극여왕이 누구의 손녀, 누구의 딸 운운 한 것 자체를 조작이라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황극여왕의 이름 앞에 ‘천(天)’자를 쓴 것과 후에 제명왕으로 다시 등극하는 것 등은 그가 백제왕실의 출신, 즉 백제 무왕의 딸이라는 것을 단정하는 것이다.
 
역대 일본 왕들에게 ‘신(神)’자 또는 ‘천’자를 붙이는 것은 특이한 경우인데 ‘신’자는 신무(神武), 숭신(崇神), 응신(應身)의 세 왕이 그렇고, ‘천’자를 붙인 왕은 흠명왕의 천국배개광정(天國排開廣庭), 황극·제명여왕의 천풍재중일족희(天豐財重日足姬), 천지왕의 천명개별(天命開別), 천무왕의 천정중원영진인(天渟中原瀛眞人), 지통여왕의 고천원광야희(高天原廣野姬)이다.
 
‘신’자를 붙인 것은 만물을 창조하는 것이 신이라는 관념에서 일본국을 창조하는 신격의 왕에게 그렇게 붙였다는 것이다. 또 지극히 존경 받을만한 왕에게는 ‘천’자를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신자가 붙거나 천자가 붙은 왕은 모두 백제 또는 신라와 직접 관계가 있었던 왕이라는 데에서도 특수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일본상고사에 있어 신무 이래 역대의 왕들이 백제나 신라계의 혈통과 직접 관계가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이미 살펴 본 바이다.
 
황극여왕이 서명왕의 왕후가 되기 전에 먼저 다른 곳으로 시집 간일이 있는데 아들까지 낳았다. 그 남편은 『일본서기』 제명여왕 조에 나와 있듯 용명왕의 손자 고향(다까무꾸)에게 시집가서 한(漢=韓)의 왕자를 낳았다고 했다. 여기서 한(漢)은 왜국(倭國)내 거주하는 여러 갈래의 백제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을 주거지에 따라 사읍(四邑)의 한(신공 5년기), 왜한(응신 10년기), 동한(웅략 7년기), 신한(위와 같음), 하내한(천무 11년기), 서한 등이라 했고, 이들을 통칭 한부(漢部) 또는 한인부(漢人部)라 했다.
 
그러니까 황극여왕은 서명왕의 왕후가 되기 전에 백제계끼리의 사이에 먼저 결혼하여 왕자를 낳았는데 왜 그가 두 번 결혼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확실한 기록이 없다.
 
『고사기』에는 고향왕(古向王)과 고향신(高向臣)이 소아석하숙니(蘇我石河宿禰: 소가노이시가와 스꾸네)와 같은 혈통의 조손 관계라 했다. 소아씨는 백제목씨 출신이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백제 무왕의 딸로서 일찍이 연고관계로 일본에 건너가서 백제계끼리 일단 먼저 결혼 했다가 나중에 서명왕과 재혼한 것이 분명하다. 왕후가 된 후 친정조카인 의자왕의 아들 풍장(豐璋)을 데려다가 오랫동안 왕실에서 길렀다.
 
남편 서명왕으로 하여금 일본 내 백제천변에다 백제궁과 백제사라는 절을 짓게 했고, 남편이 죽자 그의 빈소 이름마저 백제빈이라 한 것은 그가 백제계임을 더욱 확신하게 한다. 특히 『일본서기』 황극원년 임인 조에는 백제 의자왕을 가리켜 제왕(弟王)이라 한 것을 보아도 그가 의자왕의 손위 누이라는 심증을 더욱 굳게 한다.
 
한·일 양국 관계사 중 황극여왕이 즉위한 이 무렵처럼 일본과 백제, 신라, 고구려와의 내왕이 빈번하고 친선관계가 긴밀해진 때가 일찍이 없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친선사절단이 한 달이 멀다하고 자주 내왕했는데 일본 조정에서는 이들 사신들을 국빈으로 대하고 자주 향연도 베풀었다. (김주호 기획특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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