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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㊲신라계 약화되자 세력우위 백제와 군사동맹
그곳엔 지금도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기사입력: 2016/07/04 [06:1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김주호 기획특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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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덕왕 제거, 황극여왕 다시 37대 제명여왕에 즉위 
조선·항해술 발달한 신라, 왜에 문화 부식 공헌  

효덕(孝德: 고오도꾸)왕의 이름은 천만풍일(天滿豐日). 『일본서기』에서 지존의 ‘天’자를 붙인 것은 그만큼 일본열도 내에 신라세력이 백제계와 백중하고, 그 왕위 또한 상호 바뀌며 계승해 왔으므로 그러한 신라왕실의 출신자들에게도 백제왕실의 출신 왕들과 동일한 예우를 해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효덕왕의 시호(諡號)에도 ‘天’자를 넣어 준 것이라 본다.
 
효덕왕은 또 황극여왕 4년을 ‘대화 원년(大化 元年)’이라 했다. 신라와 당나라의 문물제도를 받아들여 단행한 일대 개혁인 것이다. 이에 비해 삼국은 일찍부터 연호를 썼으며 왜국은 이제 그 가장 늦게 한 신라 보다 무려 105년 뒤에야 비로소 연호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金富軾)은 고구려와 백제가 연호를 세워 쓴 것을 전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비문은 ‘영락(永樂)’의 연호를 기록으로 전하고 있고, 백제의 연호는 일본 석상신궁(石上神宮)에 보관되어 있는 칠지도(七枝刀)에 새겨진 글에 ‘태화(泰和)’가 보인다.
 
효덕왕 4년 7월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 했는데 무려 200여명의 학자와 관리들을 함께 배에 태워 보냈다. 그런데 살마곡(薩麻曲)과 죽도(竹島) 사이에서 배가 파선, 몰사하고 겨우 다섯 사람만 나무판자에 의지해 표류하다 간신히 신도(神島)에 도착했다. 이는 당시 왜국의 조선과 항해술이 매우 부족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신라는 이때 조선과 항해 기술이 크게 발달하여 동으로는 동해를 건너 일본의 산음(山陰)~산양(山陽)지방을 제압하고, 남으로는 유구(琉球: 오끼나와)에 까지 진출했다. 이를 계기로 신라문화가 이곳에 많이 부식됐다. 즉,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신라식 기와집, 치마, 저고리, 머리 위에 이는 임, 신라관(新羅館) 들이 이를 말해준다.(최재석<崔在錫>. ‘琉球는 한국의 문화권이다’. 『新東亞』, 1969. 5월호)
 
해상에서 위세를 떨치던 신라도 육상에서는 백제 고구려의 연합세력에 밀리게 된다. 그러자 왜 왕실 내에서도 다시 변동이 생긴다.
 
의자왕 8년(서기 648) 장군 의직(義直)이 신라 서부의 10여성을 공취하고 그 다음해 은상(殷相)이 신라의 석토성(石吐城)을 비롯한 일곱성(七城)을 공취하였다.(『삼국사기』) 백제의 승리는 왜 왕조 내에서 백제계 왜인들의 세력이 다시 대두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정세는 백제와 왜 간의 연합을 가능케 했다. 왜는 이때 백제와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그리하여 신라 계 효덕왕을 제거하게 된다. 이 같은 일은 백치(白雉: 시라기)라 칭하는 새로운 왕에 의해 벌어졌다. 그는 백제와의 동맹을 맺자 효덕왕을 제거한다.
 
이 같은 사건의 원인은 도읍을 왜경(倭京)으로 옮기는 문제로 발단이 된 것이다. 당나라로 보내는 유학생이나 사신들이 일본에서 만드는 배를 타고 가다가 자주 침몰되므로 아까운 인재들을 많이 잃게 됐다. 때문에 도읍을 옮기자는 태자의 주장과 이를 허락하지 않는 효덕왕과의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태자는 드디어 황조모(皇祖母)인 황극여왕, 간인왕후(間人王后), 왕제(王弟)들과 함께 왜국의 비조하변행궁(飛鳥河邊行宮)으로 옮겼다. 이때 공경(公卿), 대부(大夫), 백관인(百官人) 등이 모두 따라 옮겼다.
 
이에 효덕왕이 노하여 원한을 품고 산기(山崎)에 궁을 짓게 한다. 이에 노래를 지어 간인왕후에게 보냈다. 노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뿌리와 가지를 잘리운 나무는
내가 먹이던 망아지들이여.
끌려가는 재주조차 하지 않으니
그것조차도 하지 아니하니.
사람들이여 잘 볼지어다.‘

 
효덕 5년 1월 1일 쥐들이 왜도(倭都: 왜경으로 옮긴 도읍)로 향하여 이동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쥐는 효덕왕조를 버리고 백치조(白雉朝)의 왜경(倭京)으로 향하는 벼슬아치들을 지칭한 것이라 본다.
 
효덕왕은 그해 10월8일 죽고 만다. 그는 난파(難波)의 왕실에서 병이 들어 죽은 것이다. 이 효덕왕에 이어 다시 황극여왕이 제37대 제명여왕(齊明女王)에 즉위한다.
 
제명여왕은 이미 말했지만 용명왕(用明王)의 손자 고향(高向)에게 시집가 한(漢)의 왕자를 낳았으며, 그 후 다시 서명왕(舒明王)에게 시집가 2남1녀를 낳았다.

기서 말하는 ‘한(漢)’은 중국의 고대 한나라가 아니다. 왜에 거주하는 여러 갈래의 백제인 들을 말하는 것이다. 주거지에 따라 4읍의 한, 왜한, 동한, 신한, 하내한(河內漢), 서한 등이라 했다. 이를 통칭 한부(漢部) 또는 한인의 부라 했다.
 
한때 백제의 유약한 틈을 탄 대신살해 정변으로 잠시 효덕에게 왕위를 양위했던 황극여왕이 10년 만에 다시 제명여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는 백제와의 혈육의 정이 남달리 강했다. 쇠약해 가는 백제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돕지만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김주호 기획특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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