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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작은집 일본왕실㊵천무왕 병중 틈타 왕후 주축 백제계 다시 대두
그곳엔 지금도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기사입력: 2016/07/25 [06:36]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김주호 기획특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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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조정 삼국유민 박대 황무지로 보내나
되려 飛鳥 이은 관동문화 형성, 새시대 열어
 
한편, 문물제도를 보더라도 우리민족의 것을 따른 것이 많았다. 천무왕 11년 6월6일 남녀가 처음으로 머리를 맺어 올려 칠사관(漆紗冠)을 쓰게 했다. 칠사관은 옻을 칠해서 만든 관이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전통 갓의 제조법과 같은 것이다.
 
신라 계 천무왕은 이처럼 신라의 의복제도를 이식했으니 이로부터 지금까지 일본국의 전통의복과 조정대신들의 복장이 우리민족의 그것과 흡사하게 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보다 앞서 천무 4년 1월5일 처음으로 점성대(占星臺)를 설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첨성대(瞻星臺)는 동양 최초의 것이다. 일본의 점성대 보다 약 반세기 전에 신라 선덕여왕에 의해 설치된 것이다. 신라 계 천무왕은 이제 신라의 문물을 본받아 처음으로 점성대를 설치한 것이다. 일본에 설치된 이 점성대는 천문을 관찰하고 길흉을 점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천무 13년 5월14일 일본에 귀화해온 백제의 스님 및 속인(俗人: 불교를 믿는 세상사람 즉, 재가신도를 말함) 남녀 23명을 무장국(武藏國: 무사시)에 보내 그곳에서 살게 했다. 이곳은 일찍 아이누족의 지역으로 오늘날의 상근(箱根: 하꼬네) 동쪽의 관동지방이다. 이곳을 차지한 것은 이미 말한 임신란 이후의 일이었다.
 
천무왕이 지금까지 주로 기내지방에 살게 했던 백제인들을 살벌한 신개척지 무장국으로 이들을 보내 살게 한 것은 백제인들에 대한 박대라고 볼 수 있다. 이후에도 천무조정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망명객 유민 등을 수없이 많이 이 지역에다 보낸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가 일종의 박대였으나 나중에는 일본의 국가 발전상 신기원의 획을 긋는 역사적인 일로 바뀌게 된다. 광막한 무장평야에 백제군(郡), 고구려군, 신라군이 생겨난다. 이 삼한 삼국인들의 개척과 그 무용(武勇)은 날로 발전되어 간다. 마침내 비조문화에 이은 찬란한 관동문화권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은 일본 국가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4백 여 년이 지난 후에 관동지방 출신인 웡(源), 평(平) 양씨의 겸창(鎌倉)막부가 생겨나 일본국을 통치하게 되는 것이다.
 
천무조정이 일본에 건너온 고구려, 백제, 신라 계 사람들을 피지배자로서 박대했지만 도리어 그들의 후손들로부터 통치를 받는 처지로 뒤바뀌는 역사를 보여 주게 된다.
 
북방 기마민족의 후예로서 씩씩한 기상을 지녔던 우리민족은 이처럼 일본을 개척, 새로운 역사시대를 열어 놓게 된 것이다.
 
겸창 막부시대를 이어 북조(北條|, 족리(足利), 직전(織田), 풍신(豐臣)씨 등의 대를 거쳐 다시 관동 무사 출신인 원가강(源家康)에 이르러 강호(江戶)시대 즉, 오늘의 동경(東京)지방에 덕천(德川: 도꾸까와) 막부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덕천 막부시대는 막부가 설치 된지 260여 년간 집권하게 된다.
 
다시 얘기를 돌려, 천무15년 7월2일 남녀의 복장에 대한 조서를 내린다.
‘이제부터는 옛날과 같이 다시 남자는 경상(脛裳)을 입고, 부녀는 머리를 뒤로하여 등에 길게 늘여도 좋다.’
 
이는 천무왕이 신라제도를 받아들여 풍속과 제도의 개혁을 단행한지 4년 만에 천무왕의 비(천지왕의 둘째 딸)가 이와 같이 철회 하는 것이다. 이때는 천무왕이 병이든지 3개월째 접어들어 제대로 정사를 돌볼 수 없었을 때였다. 천무왕의 병세는 날로 악화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로서는 후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그는 7월15일 조서를 내린다. ‘천하의 일은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왕후와 왕태자에게 신고하도록 하라.’ 그리고는 이날 대사면을 단행했다.
 
이러한 기회를 틈타 백제계 왕녀인 천무왕비가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는 천무왕조 내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백제계 인물들에 의해 왕위에 즉위하게 된다. 이 잠복해 있던 백제계 세력은 대륙의 정세변동과 신라 계 세력의 약화, 그리고 천무왕의 병중을 틈타 천무왕후를 주축으로 다시 대두하게 되는 것이다. (김주호 기획특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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