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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수 원불교 원로교무의 삶, 다큐영화로 나온다
2018년 3월 스크린 개봉 예정… 오정옥 감독 연출 맡아 진행
기사입력: 2017/09/04 [08:06]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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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더 테레사’ 박청수(朴淸秀) 원불교 원로교무의 삶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2018년 3월에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다큐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박 원로교무가 지난 1월 아리랑TV '내밀하게 들여다보기' 대담 방송에 출연하면서다. 방송국에서 그의 일생을 다큐로 제작해 세계 180개국으로 방송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다큐영화를 만든 오정옥 감독이 영화 제작 제안을 한 것이다. 세계 55개국 세계의 불우한 시민들을 도와온 박 원로교무는 퇴임한 지 11년째로 여전히 자신의 용돈을 모아 캄보디아 프놈펜과 바탐방, 인도 델리를 후원하고 있다. 그는 원불교 교정원 공익부에서 나오는 연금(23만2500원)으로만 생활하면서 주거지 용인에서 서울을 왕복할 때 늘 버스를 타고 다녔다. 매달 600만원을 캄보디아 청수나눔실천회에 송금하고 있는 박 원로교무는 청빈한 삶을 실천하며 지구촌 돕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다큐는 10월 남인도 뱅골로를 시작으로 11월 캄보디아 프놈펜과 바탐방에서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동안 모아온 동영상이나 사진, 기록, 인터뷰 등의 자료들도 영화 내용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일생은 지난해 김문환 서울대학교 미학과 명예교수에 의해 '칸타타 맑을 청 빼어날 수'라는 작품으로 헌정무대를 갖기도 했다. 박 원로교무는 "문화계에 식견이 있는 사람들에게 다큐영화에 대해 의논한 결과 기회가 되면 생전에 다큐를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고 했다"며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원불교 홍보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망설이다가 다큐영화 제작을 결심해 이 일이 성사됐다. 만약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 그것으로 교단에 보은하는 일이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8년 봄, 스크린으로 찾아올 특별한 다큐영화를 기대해 본다.   

지구촌 곳곳에 내딛은 사랑의 발자취… ‘마더 박’ 원불교 박청수 원로교무      

지난 1월30일 방송된 아리랑TV ‘디 이너뷰’(The INNERview)는 국적과 정치와 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한평생 나눔의 실천적 삶을 살아온 원불교 박청수 원로교무를 초대해  인생철학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2010년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 10인’에 선정되기도 한 박 교무는 2016년 불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만해평화대상’을 수상했다. 박청수 교무는 아프고 가난한 소외 계층의 삶의 현장에 늘 함께 해왔다.

1975년 타종교 방문 기회에 가톨릭(천주교) 기관인 한센인을 위한 시설 ‘성 라자로 마을’을 방문했고, 한센인들에게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필요하다고 느꼈다. 당시 종교 간의 벽을 허무는 일은 어려웠지만, 그렇게 시작한 그들과의 인연은 올해로 41년째다. 그들을 돕기 위해 15년간 엿을 팔았던 일화는 지금도 감동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경제 신부님이 미국에서 성 라자로 마을에 돌아와 집을 가꾸기 시작할 때 집을 참 많이 지었어요. 저도 벽돌을 한 장씩 쌓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집 짓듯이 했어요. (또한) 엿 장사를 시작했고 이문이 컸어요.” 그밖에도 성공회 봉천동 나눔의 집, 기독교 사랑의 쌀 모으기 등 종교의 벽을 넘어선 박 원로교무의 주변을 살피고 나눔의 삶 뒤에는 출가를 바랐던 어머니가 있었다.

▲ 아리랑TV '디이너뷰'에 출연한 원불교 박정자 교무(왼쪽) /아리랑TV 화면 캡쳐  

“제가 1959년에 출가를 했는데 그때는 한국경제가 어려울 때였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여자도 교육이 어렵고 심지어 남자도 학교에 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일찍이 깨어 있으신 분이였고 저에게 시집을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너른 세상에 가서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원불교 교무가 된다면 끝까지 너를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박 교무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평생 간직하며 국내를 넘어 세계 55개국에서 국제구호활동을 시작했다. 북인도 히말라야 3600m 고지 설산 라다크(Lasdakh)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킬링필드의 땅 캄보디아에 지뢰를 제거하며, 내전과 질병으로 얼룩진 아프리카 땅에 국제적인 협조를 통해 의료 지원을 하는 등 많은 일을 해냈다

“여러 종교에서 성직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결국은 이 세상을 좋게 하려는 ‘동척사업’이다. 이게 좋은 일이니까, 나도 함께 동조하며 열심히 했죠.”

그밖에도 낯선 땅에 살고 있는 한민족들을 잊지 않고 그들의 발자취나, 북한 동포들에 대한 깊은 사랑, 국내 첫 대안중학교를 건립할 만큼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다.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꺼지지 않는 관심과 사랑의 열정.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출가할 때 나는 내 생명이 불완전연소가 되지 않고 살아야겠다. 나는 쓸 때 없는 일에 관심을 갖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었죠.”

지난해 세계기행 『박청수, 세상 나든 이야기(2016)』를 출간하며 문화계 원로들이 뜻을 모아 박청수 교무 헌정 칸타타 공연을 올렸다. 작사가 김문환 서울대 교수가 한평생 수도자로 민족과 종교를 초월한 사랑을 실천해온 박청수 교무를 위해 작사를 했다.      

박청수 원로교무 “자력(自力)은 타력(他力)과 정비례 하지요”   

“제가 세계 55개국에 발을 디디고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그들을 위해 살 수 있었던 힘은 종교적 사명감 덕분입니다.”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박청수 원불교 원로교무가 ‘나누며 사랑하며’를 주제로 2013년 2월 ‘제6차 WIN문화포럼’에서 특강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어 “내 나이 지금 일흔 다섯인데, 전주여고를 졸업한 열아홉 되던 해 원불교 총부로 출가했습니다. ‘너는 커서 시집가지 말고 원불교 교무가 되어 너른 세상에 나아가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해라.’ 어린 시절 어머니가 던져주신 그 화두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의 많은 사람을 위해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일들을 해오면서 60년을 하루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처음에는 단순 소박한 것들이어서 한 번도 회의를 거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처음에는 작았던 것이 점점 커지고, 숨어 있던 것은 드러나곤 했습니다. 매사를 그렇게 오직 나의 직관력(直觀力)에 의지하여 직감적으로 느껴진 것을 ‘판단의 척도’와 ‘가치의 눈금’으로 여기며 처리해 왔습니다.”

작고한 유명 소설가 박완서는 박청수 원로교무의 첫인상을 이렇게 평(評)했다.

“더 놀라운 것은 박청수 교무가 성라자로 마을 나(癩)환우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박 교무는 어쩌면 그렇게 꾸민 티라고는 조금도 없이 마치 오래간만에 만난 동기간 대하듯 반갑고 따뜻하게 그들을 포옹할 수 있는지, 그에게 조금도 위선이 없다는 건 그를 맞이하는 환우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피붙이를 대하듯 활짝 마음을 열고 박 교무를 대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저런 인간애는 그의 타고난 인간성일까, 원불교라는 종교의 힘일까? 나는 속으로 궁금해 하면서 그 의심할 여지없는 진정성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유명인사도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숫기가 없기로 유명한 이 원로작가로 하여금 만나자마자 “의심할 여지없는 진정성에 감동”하게 만든 박 원로교무의 저력은 무엇일까?

박 교무는 1988년부터 나라 밖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인도 북부의 라다크에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케냐까지 세계 55개국의 빈민들을 도왔는데, 지금까지 모금한 액수만 116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한 번도 그 돈을 어디서 구할까, 어디에 썼을까 고민하거나 계산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신문 지상을 통해 평소 위대한 분이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을 사석에서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어떤 귀한 말씀을 하실까 잔뜩 기대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타인에 대한 비판만 쏟아 붓는 것이 아닌가. 저 분은 왜 저런 시시한 생각만 하고 있을까 의아스러웠다. 그렇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것도 사실이다. 바로 여기서 요구되는 것이 직관력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각, 오판, 실수는 직관력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그 많은 일들도 오래 생각하고 시작한 것들이 아니다. ‘이건 잘 되겠구나. 그러니 한 30년 해야지’라고 미리 판단한 적도 없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그러나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마다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컨대 캄보디아 식수사업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기까지도 그리 긴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박 교무가 캄보디아를 직접 방문한 적이 있는데, 빈민가 울타리에 커다란 항아리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이유를 묻자, 먹을 물이 부족해서 우기 때 물을 받아 놓았다가 건기 때 마시기 위한 조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항아리의 물마저 떨어지면 평소 목욕을 하고 야채를 씻던 웅덩이의 더러운 물을 마신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집집마다 필수적으로 약 단지가 있는데, 주민들이 수인성 질환에 노출돼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에티오피아에 방문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수도에서 10분 정도 벗어나니 빈민가가 나타났다. 집집마다 들어가 보니 모두들 어김없이 물동이를 보여줬다. 식수를 구하기가 어려워 물동이를 이고 3~5시간은 걸어가야 하고, 가족 중 한 명은 물 긷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나는 우물파기 지원사업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지뢰제거 지원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지뢰에 두 팔을 잃은 여성이 울고 있는 자신의 아이를 안아줄 수 없는 기막힌 현실을 목도하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남을 위해 좋은 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 인생의 의미는 절반으로 삭감됐을 것이기에 그렇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서 남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 등 나눔을 실천한 분들의 ‘소리 없는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력(自力)은 타력(他力)과 정비례한다. 우선 자신이 남을 돕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은 저절로 몰려든다. 먼저 자기수양을 통해 인격, 신용, 겸손, 성실, 비전 등의 향기를 발산할 일이다.”     

※자력(自力)은 ‘자기 혼자의 힘만으로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힘’을, 타력(他力)은 ‘부처나 보살의 능력. 또는 그것을 자기의 성불의 힘으로 삼는 일’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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