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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무당, 그들에게 물어본다’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8/02/18 [21:11]
민속연구가 이원섭·장정태의 진행·사회로 긴급좌담회

무속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무당, 그들에게 물어본다’

민속연구가 이원섭·장정태의 진행·사회로 긴급좌담회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18/02/18 [21:11]
▲ ‘무당, 그들에게 물어본다’ 좌담회를 가진 장정태 박사, 윤혜정(선덕사) 만신, 이원섭 민속연구가, 윤서희(천수암), 방은미(선화당), 조영애(천일사) 만신(사진 왼쪽부터)         

민속연구가 이원섭·장정태의 진행·사회로 긴급좌담회


지난 2월 10일 신념 긴급대담 ‘무당, 그들에게 물어본다’는 최근 종편 등에서 방송되어 무속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데 대해 무속인들의 입장을 정리해보는 자리였다.     

민속연구가이자 우리문화미스터리탐험가인 이원섭 작가의 진행으로 불교학자이자 민속연구가인 장정태 박사가 사회를 맡아 윤혜정(선덕사), 윤서희(천수암), 방은미(선화당), 조영애(천일사) 등의 만신들과 허심탄회하게 좌담을 진행했다.     

무당과 그들의 내림의식, ᆞ작두나 사슬 세우기 같은 제의식, 진짜무당과 가짜무당, 굿의 기격과 효용성 등 무속에 대한 논란을 자정 차원에서 정리하고 무속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좌담회를 진행한 이원섭 작가는 “설을 앞두고 타종교를 비방하는 듯한 방송프로에 우리는 차분하고 공정한 시각으로 진행하였다.”며 “종교와 사상에는 자유가 있고 기독교 가톨릭 불교 유교와 마찬가지로 어느종교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평등조항이고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를 맡은 본사 논설위원인 장정태 박사가 좌담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헸다.     

사슬세우기는 왜 하는가?
“기능과 종교적인 부분과는 구분되어야”
    

모 방송에서 일반인이 사슬을 세울 때 사용하던 삼지창으로 오토바이, 어린아이를 달고 세운 것이 있다. 균형감만 있다면 누구나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 세운 것과 무속에서 세우는 것 행위는 같지만 거기에 담긴 내용은 다르다.    

무속인이 세운 것은 종교학적으로 신내림에 의한 행위라면 일반인은 기능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능과 종교적인 부분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교성을 무시한채 눈 앞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단순 비교하고 있다.    

무당이 가짜와 진짜가 있는가?
“무속인들의 가짜, 진짜 구분은 불가능”
    

무당은 굿을 통해서 인간과 신령의 만남을 중재하는 사람이다. 무(巫)는 글자에서 위의 가로획은 하늘 또는 신을 표시하는 것이다. 아래의 가로획은 땅 또는 인간을 표시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내리그은 세로획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연결하는 상징이다. 그런데 그 세로획 양편에는 ‘사람(人)’자가 춤추는 모습으로 서있다. 곧 무속은 사람이 춤을 추어 신과 인간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종교이다. 무당은 무속의 종교의례인 굿에서 사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지닌 전문가다. 무당의 자격과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문적인 학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당의 유형은 그 입문과정에 따라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눈다. 그 기준은 무속인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에서 무병 혹은 신병체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주가 있는냐 없느냐 굿을 행할 때 접신한 상태에서 춤과 공수를 하느냐 안하느냐가 구분 짓는 기준이다.    

대다수 종교가 자신들의 교육기관을 통해 성직자를 배출하고 있다. 그 교육과정을 통과해야만 인정하는 구조다. 무속도 신부모를 통해 인가라는 절차를 받는다. 그 이후 협회, 단체에 가입하면서 사회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일부 이와 같은 구조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종교단체 대다수에서 발견되는 모습이다.     

자신이 스스로 머리를 깎고 절을 창건 후 승려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교단을 만들고 신학교를 설립하는 경우도 극히 미미하지만 존재하는 것이 종교계 현실이다.     

민족종교를 표방하면서 종교단체를 창교한 사람들 가운데 일세교주이기 때문에 스스로 성직자임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럼 이들을 사이비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무속인들을 가짜, 진짜하는 구분은 불가능하다. 각자 인격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비양심적인 주변사람들에 의해 오도되는 것이다.     

언론에 등장시켜 주는 것, 주요무형문화재 등록의 유혹을 하면 접근하는 사람들에 의해 본의 아니게 사기꾼 무당이 탄생되는 것이라고 본다. 굳이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한다면 무속계 주변에서 기생하는 연구자 집단과 걸립집단에 의해 이용되는 일부 무속인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굿의 기격과 효용성은?
“굿 값의 결정은 굿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사람들은 ‘무당=굿’으로 생각한다. 굿은 무속인이 행하는 종교의례 가운데 일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논란이 되기도 하다. 무속인들의 굿은 그날 하루만에 끝나는 의식이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오래간다. 실례로 매매를 원하는 재가집 굿을 했다면 재가집은 약속한 날이 가까울수록 수시로 조바심에 전화 혹은 방문을 하게된다. 무속인의 입장에서는 부담을 안고 살아야한다. 매일 아침마다 그를 위한 기도가 지속될 수도 있다. 스트레스비도 일부 포함되어야 한다. 단순히 액수만으로 말 할 수 없다. 재가집 자녀 가운데 특정 대학 입시를 위한 기도를 했다. 고액의 굿을 했고 신령님이 감응이 있었는지 합격을 했다. 그럼 그것은 고액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말해 저렴한 굿값을 지불하고 굿을 했는데 결과는 탈락이라면 굿값은 비싸지만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굿의 종류에는 개인을 위해 행해지는 재수굿,병굿,진오귀 굿으로 나눈다. 마을굿은 한 지역공동체의 구성원 전체의 통합을 위해하는 경우다. 건설현장에서 무사를 기원하기도 하고 영업장에서는 사업번창을 기원하는 굿을 한다. 굿의 성격에 따라 그 가격은 차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굿 값의 결정은 굿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작두거리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누구나 신령이 내려야 한다는 전제”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작두를 타는 예가 있다. 마을 사람 가운데 특정하지 않고 대부분 주민이 계단작두는 물론 그 외 다양한 모양의 작두를 타기도 한다. 작두가 가장 신내림을 재가집 앞에서 보일 수 있는 현장감 있는 의식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불신을 받게 된 이유는 방송에서 누구나 작두에 오를 수 있다는 리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작두굿을 자신들이 학습한 굿의 거리에는 없는데 굿을 하면서 수시로 작두에 오르는 일부 무속인들의 기능성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불신으로 변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들조차 신령이 내려야 한다는 전제는 유효하다.    

굿이란 무엇인가?
“생업상 이유로 하거나, 게을리하면 신벌받는 종교행위”


굿은 무속이 가지고 있는 종교행위다. 종교의례다. 음식을 차리고 그 앞에서 하는 모습만으로 다른 종교와 구분지으려고 하는데 유교에서 행하는 제사, 차례에서 음식 앞에서 절하고 음복하는 모습을 연상한다면 굿의 종교의례와 차이가 없다. 다만 제사는 자신과 인연이 되는 사람이 행하는 종교의례라면 굿은 상관없는 사람들이 인연없는 사람을 위해 행하는 의례라는 차이뿐이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예배를 인도하는 행위와 무속에서 행해지는 굿은 같은 사제자가 하는 종교행위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서 행위와 다른 것은 당연하고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굿은 그것을 주재하는 무속인,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 그리고 신을 믿고 의지하는 신도(단골)이 있어야 한다. 종교의 구성요소인 종교의례, 공동체, 믿음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굿이란 의례에는 이 모두가 포함되어 있음으로 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굿은 신을 모시고 즐겁게 해주는 봉사이다. 생업상 이유로 굿을 하거나 무업에 종사해서는 안된다. 게을리하면 신벌을 받기도 한다.    

무속의 인식변화
“절인지 무속인 집인지 철학관인지...”


무속은 사회에서 제대로 인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변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례로 무속인들의 전안 가운데 ‘철학관’,‘사찰,사암’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세대 전만해도 깃대만으로 무속인 집임을 알렸고 사람들은 쉽게 찾아왔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헷갈린다고 한다. 절인지 무속인의 집인지 풀어먹고 사는 철학관인지 도대체 구분할 수 없다. ‘만신집에 왔어’ 했는데 지금은 ‘절에 왔다’고 표현한다. 또 ‘그냥 어디 왔어, 내 다음에 만나 이야기 해 줄께’하면서 자신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을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만큼 무속인은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몸주신 문제
“신명은 무속인들의 신적 체험에서 나오는 것”


사명대사, 원효대사 등 불교계 신명은 물론 실존자체가 미확인되는 선녀, 옥황상제를 모시기도 한다. 최근에는 명성황후, 맥아더 장군,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는 물론 유관순 열사, 김재규 장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등장하는데 기존의 연구자들은 무속인이 모시는 신령들은 한이 많고 원이 많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다 생을 마감한 인물로 정의하고 있다. 그것은 일부일뿐 전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많은 신명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만신이라고 한다. 풀잎에도 신령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데 그 신명은 무속인들의 신적체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각자의 입장에서 예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내림굿이란 의식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게 되는가?
“신병의 증상은 치료 불가능, 무속인이 신의 뜻”
    

강신무에 해당된다. 무속인의 길에 접어드는 첫 관문인 성무에서 신병을 체험하게 된다. 이때 정신 이상 증세가 오고 신체상에도 질환 증세가 나타나 오랫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이 신병의 증상은 다양한데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하며 내림굿을 받고 무업에 종사해야만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증세가 재발하기 때문에 무속인이 되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믿는다. 오래전 유명한 무속인이 쓴 저서 가운데 ‘신이 선택한 여자’란 제목만큼 짧고 명확한 제목은 없다. 내림굿을 하여 신을 정식으로 받은 초보무당은 내림굿을 해준 무속인을 신부모로 맞아 굿을 비롯 신령을 모시고 손님을 맞이하고 사제로 품위를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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