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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현 취재수첩●애환서린 규방문화
“性의 공간으로, 유교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여성으로 성숙”
기사입력: 2018/03/16 [08:32]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황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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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황제 오조룡보(高宗皇帝五爪龍補): 대한 고종황제(재위 1863~1907)가 궁중 평상 집무복인 곤룡포에 착장했던 용보(龍補)이다.  ©황광현
▲ 귀주머니(宮繡角囊): 궁중용 귀주머니로 십장생 문양이 격조 있게 수 놓여 있고, 매듭으로 꾸민 주머니 끈이 단아하다.
▲ 궁수 구봉베갯모(宮繡九鳳枕): 봉황 한 쌍과 새끼 봉황 아홉 마리가 놓인 궁중용 배갯모로 테두리에 금박 종이를 대고 그 위에 비단실로 그물을 엮어 톱니바퀴 모양으로 장식됐다.    
▲ 현우경(賢愚經): 조선시대 초기에 제작된 현우경의 표지이다. 현우경은 악행을 멀리하고 선행을 권장하여 불법에 귀의하는 인연을 설법한 불경이다.    
▲ 부처상(刺繡佛像): 연화좌 위에 앉은 부처님 모습을 수놓았다. 두광(頭光)에는 장식이 없고 신광(身光)에는 각색실로 불꽃 모양을 묘사했다.  
▲ 수보자기(繡褓): 청색 바탕에 네 귀퉁이에 화려한 오색 꽃무늬 문양 수를 놓아 장식한 혼례용 수보자기이다.    
▲ 안경집(眼鏡匣): 길상 어문과 문양들을 수놓았다. 16세기경에 들어와 18세기 이후 남자들의 허리띠에 안경집을 차는 것이 유행했다.  
▲ 타래버선: 솜을 두어 누빈 어린이용 버선으로 수를 놓고 버선코에 색실로 방울을 만들어 달았다.      

“性의 공간으로, 유교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여성으로 성숙”    

지난 3월 12일 관람한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한국자수박물관(소장 허동화•박영숙 부부)에는 정교하고 화려한 왕실용 궁수, 절절한 불심과 정성으로 긴 밤 지새워 꾸민 불교자수, 실생활의 물품을 화사하게 꾸민 생활자수, 소망과 염원을 담아 수놓은 복식자수 등이 자료에서 눈길을 끌었다.     

*남녀유별의 공간적 배치와 규방    

여성들의 바깥출입이 자유로웠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는 철저한 유교이념에 따라 문밖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던 시대였다. 그래서 규방문화는 남녀유별의 관념이 일상을 규제했다. 여성들의 공간은 남성들의 공간과 분리되었고, 외부와도 분리된 공간에서 이루어진 문화였다.     

주택은 유교적 원리에 따라 공간을 배치했다. 집 지을 때 사당 터를 먼저 잡고 높은 곳에 지은 뒤 다른 건물을 배치했다. 사당은 동북, 사랑채는 동남, 안채는 서북 방향으로 지었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공간은 사랑채와 안채를 중심으로 나눴다. 그 경계는 담장이나 문으로 분리했다. 『예기(禮記)』의 기록에 남녀의 구분으로 7살이 되면 한자리에 있는 것을 금하였음은 물론, 남녀유별의 공간적으로 가시화 했다. 그 여성 공간이 규방(閨房)이다.     

남녀유별에 의한 공간 배치에 따라 부부는 준별거의 상태에서 각기 생활하였으며, 남아는 서너 살 때부터 안채를 떠나 사랑채에서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다. 안채 출입은 배우자와 자녀 외에는 제한되었으며, 안채와 사랑채는 여성과 남성의 공간으로 철저히 분리됐다. 호롱불 밑에 일상적인 애환을 반추하며 규방이라는 제한 된 방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느질은 "삼종지의(三從之義)"의 고달픈 유교적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지켰다. 결국 조선시대 여성은 규방 안에 한정돼 마감되는 비극적 삶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시부모 봉양, 남편 섬기기, 자녀 교육, 제사 지내기, 음식 짓기, 바느질하기, 길쌈, 신앙심 북돋우기 등으로 쉴 틈이 없었다.     

*가부장제 질서를 위한 규방교육    

규방은 철저하게 성(性, Gender)의 공간으로, 유교 가부장제(家父長制)가 요구하는 여성으로 성숙됐다. 사대부가에서 딸을 양육할 때 여성이 해야 할 기본적인 길쌈, 바느질, 요리, 역사의 소양, 가문의 내력, 예의범절,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이렇게 형성된 여성문화가 남성문화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문자도 한문(漢文)과 언문(諺文)으로 구분되어 여성의 글쓰기는 언문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규방문화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문화였다. 일부 양반가문이 아니고서는 여성은 형식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못 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이나 황진이는 빼어난 글과 그림 및 문학작품을 남겼지만, 그 뛰어난 재능이 스스로의 처지나 마음을 달래였고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경우는 아니었다. 조선후기의 일부 여성들은 규방에서 머물지 않고 산과 계곡에서 그들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교육의 목적과 내용에서 여성과 남성은 큰 차이를 보였다. 여성들을 위한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없었으며, 과거를 통한 관리의 선발이 남성에게만 주어져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국가는 여성 교훈서를 편찬하여 여성교육에 큰 관심을 보였다. 교육의 목적이 남성의 경우 과거를 통한 출세였다면, 여성의 경우는 가족을 건사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었다. 유교 사회 속에서 펼치지 못한 꿈을 오색실로 색색의 천위에 고뇌와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자수를 놓으면서 잊고 인내하는 미덕을 키웠다.     

또한 여성교육의 목적이 가부장제 질서 유지를 넘어서는 다른 능력에 대해 경계했다. 반소(班昭)는 『여계(女誡)』에서 ‘음양은 본성을 달리하고, 남녀는 행동을 달리한다. 양은 단단함을 덕으로 삼고, 음은 부드러움을 쓰임으로 삼는다. 남자는 강함을 귀하게 여기고 여자는 약함을 아름답게 여긴다’는 말과 같이 규방 교육이 현시대에 큰 울림을 준다. (황광현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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