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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국민노후자금 635조…수익률 4분1토막 난 국민연금

양형모 | 기사입력 2018/07/13 [21:35]
지난해 7.28%→올해 1.66% 수준…정기예금보다도 못한 상황…기금운용본부장 없이 1년

길 잃은 국민노후자금 635조…수익률 4분1토막 난 국민연금

지난해 7.28%→올해 1.66% 수준…정기예금보다도 못한 상황…기금운용본부장 없이 1년

양형모 | 입력 : 2018/07/13 [21:35]
국민 노후자금 635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수익률이 2018년 들어 1%대로 추락했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금융불안, 국내 증시 횡보세 등 대내외 악재의 영향도 있지만, 코드 인사 논란과 사령탑 부재(不在), 적폐 시비에 따른 우수 인력 이탈 등 자중지란(自中之亂)의 상황이 수익률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7월9일 국민연금 공시(公示)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올해 1~4월 수익률은 0.89%로 추락했다. 연 수익률로 환산하면 1.66% 수준이다. 지난해에 거둔 수익률(7.28%)의 4분의 1도 안 된다.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연 2.0~2.25%)보다도 낮다. 국민연금의 저조한 성과는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운용 전략을 새로 짤 컨트롤타워가 없는 영향이 크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임원은 "일반 자산운용사도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없으면 안 굴러가는데, 거대 공룡인 국민연금에 기금운용본부장이 없으면 정상적으로 운영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며 "자금 운용 방향을 정해주고 책임을 질 사령탑이 없다 보니 수익률도 저조한 것"이라고 했다.    

2016년초 기금운용본부장을 맡은 강면욱 전 본부장은 국내 주식투자 전략을 '대형주 위주' '패시브(시장 지수 추종 전략)'로 전환시켜 2015년 1%대였던 국내 주식투자 수익률을 2016년 5.64%, 2017년 상반기 21.13%로 끌어올린 바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황이 나빠진 올해는 전략 수정이 필요한데 지금 국민연금에선 그런 결정을 내릴 책임자가 없다"고 했다. 1년간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빈 원인은 청와대의 '코드 인사'다.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권유로 공모에 응했다가 석연치 않게 탈락해 '코드 인사' 논란을 촉발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조직 전체가 적폐 시비에 휘말리면서, 기금운용본부장뿐 아니라 주식운용실장, 채권운용실장, 대체투자실장, 해외증권실장, 해외대체실장 등 주요 투자 실장 5자리 중 3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다.  

길 잃은 635兆 국민노후자금… 연금투자 이끌 핵심인사 절반이 공석

국민연금은 2018년(1~4월 기준) 들어 특히 국내 주식 투자에서 저조한 성과를 거뒀다. 국민연금 기금이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금액은 약 135조(兆)원으로 전체 기금의 21%에 달한다. 그러나 2018년 들어 1~4월 중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2.41%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벤치마크(BM)로 삼는 코스피지수 상승률보다 1.13%포인트 낮은 수치다. 올해 초 증시가 하락세를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시장보다 더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는 뜻이다.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시장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2016~2017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 상승을 견인한 '패시브(시장 지수 추종 전략)' 전략을 짠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국민연금을 떠난 이후 시장의 상황 변화에 맞게 투자 전략 수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시가 전례 없는 호황이었던 2017년 하반기에는 기금운용본부장 공석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며 "하지만 올해 들어 미국의 금리 인상, 미·중 무역 분쟁, 국제 유가 상승 등에 따라 시장이 약세로 돌아선 만큼 투자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데, 결정을 내릴 책임자가 없다"고 했다.
         
◆대체투자 집행액은 목표치의 5분의 1

국민연금이 기금의 5분의 1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해외 주식과 해외 채권의 운용 성과도 저조하다. 1~4월 해외 주식 투자는 0.8%, 해외 채권 -0.33% 등 낮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1988년 국민연금이 설정된 이후 해외 주식과 해외 채권이 연평균 각각 8.37%, 4.84%의 수익률을 올렸던 것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치. 국민연금이 투자 비중 확대를 추진 중인 대체투자 분야의 경우 투자 결정이 자꾸 미뤄지면서 투자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계획에서 지난해 말 10.8% 수준이던 대체 투자 비중을 올해 말 12.5%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올해 4월 6개월간 대체 투자 순집행 금액은 당초 목표(2조2225억원)의 5분의 1 수준인 5008억원에 그쳤다.국민연금 퇴직자 출신의 한 투자 전문가는 "지난 몇 년간 부동산·인프라 등 해외 대체투자로 수익을 많이 거뒀는데 최근 신규 해외 대체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며 "저금리 상황에서는 비정형적인 대체 투자에서 적극적으로 수익을 찾아야 하는데, 전문가들이 줄사표를 낸 데다 정치권 외압에 따른 수사 등으로 운용 태도가 소극적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낮은 수익률…기금고갈 앞당겨

국민연금 기금의 낮은 운용 수익률은 국민 노후(老後)자금의 빠른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 2013년 국민연금 3차 재정 추계 당시 보건복지부가 예상한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2060년이다. 2013년 당시 기금 운용 수익률 추정치를 '2015년 6.8%, 2016년 7.2%'로 가정해 얻은 결과이다. 그러나 실제 수익률은 2017년(7.28%)을 제외하고 2015년 4.57%, 2016년 4.75% 등 정부 예측을 밑돌았다.한 자산 운용사 부사장은 "국민연금 수익률이 연간 1%포인트 떨어지면 연금 적립금 고갈 시기가 7년 앞당겨지는데, 기금운용본부장을 수익을 낼 사람이 아닌 정부 눈치를 맞출 사람으로 뽑는 건 국민 개개인의 노후를 볼모로 잡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민연금을 공공임대주택 사업 같은 경제성 없는 데 투자해 손해가 발생하면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고 반문했다.시장에서는 올해 하반기 시장 불확실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시라도 빨리 전문성을 갖춘 기금운용본부장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기금운용본부장 인선의 첫째 조건은 중장기 관점에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조화롭게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개입하는 것은 투자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왜 본부장 공석사태 길어지나… 재벌개혁 앞장설 '코드 본부장' 찾다 1년?    

국민연금 운용을 책임지는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1년째 공백 상태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코드' 논리와 정치 논리를 무리하게 개입시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한 자산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곽태선 전 대표를 떨어뜨리는 데 병역 문제를 들먹이는 건 핑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의중을 잘 읽고 말 잘 들을 코드 인사를 앉히려다 국민 개개인의 노후를 망가뜨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문재인 정부가 기금운용본부장의 코드 인사에 집착해온 이유는 국민연금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지렛대로 보기 때문이다. 먼저 확장적 재정정책을 선호하는 정부·여당 입장에선 국민연금이 보유한 막대한 자금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그래서 여당은 국민연금 기금을 '공익적' 목적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번 총선에서 국민연금 기금 100조원을 공공주택 건설에 투자하는 방안을 '경제민주화 1호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국민연금은 또한 삼성전자·현대자동차·네이버 등 한국의 주요 대기업의 최대 또는 주요 주주여서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경제공약인 '재벌 개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가세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검찰 등과 함께 재벌을 4면에서 압박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재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게 하는 행동지침) 도입을 밀어붙이는 것도 국민연금을 재벌 개혁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돼 기업에 대한 입김이 커진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이처럼 국민연금에 막중한 역할을 기대하다 보니 정권의 의도를 순순히 따라줄 인물을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금운용본부장 후보군 사이에서는 이 자리가 '독이 든 성배(聖杯)'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인선이 더욱 어려워졌다. 지난해 후보로 거론됐던 한 인사는 "보수도 그다지 많지 않고 퇴임 후 취업 제한까지 걸려 있는 데다 자칫하면 '험한 꼴'까지 볼 수 있는데 뭐 하러 가겠나"라고 말했다.

사표·사표… 운용인력 278명 필요한데 32명 부족    

지난 7월4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제4차 회의는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성과를 평가하고 성과급 지급률을 심의·의결하는 자리였다. 2017년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은 7.28%로 최근 5년간 가장 높았다. 하지만 정작 이같은 성과에 대해 축하를 받을 사람은 현장에 없었다. 이날 조인식 기금운용본부장 직무대리가 갑작스럽게 불참한 뒤 사퇴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의 성과 평가를 논하는 자리에 기금운용본부 책임자가 불참했는데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언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이날 회의 모습은 현재 기금운용본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란 지적이다. 기금운용본부의 최고 책임자인 기금운용본부장이 1년가량 공석인 가운데 직무대리였던 조인식 해외증권실장마저 물러난 것이다.여기에 투자 부문의 핵심인 국내 주식 운용을 책임지는 주식운용실장은 지난 3일 발표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 경위에 대한 내부 감사 결과에 따라 해임됐다. 역시 1년째 공석인 해외대체실장까지 실장급 이상 인사 9명 가운데 네 자리가 공석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특히 이같은 대규모 공석 사태가 이달 중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둔 상황에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두고 '코드 인사'를 찾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온다.중간 간부와 실무진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선봉장 역할을 해 온 고성원 기금운용본부 뉴욕사무소장도 최근 사표를 냈다. 지난 6월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직 정원 278명 중 32명이 비어 있는 상황이다. 전주로 이전한 이후 2016년에 30명, 2017년이 27명이 사표를 냈고 올해 들어서도 20명 정도가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우수한 인력들이 업계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으며 전주에 내려와 일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연금 위탁자산 의결권, 민간 운용사에 맡기나
7월말 '스튜어드십 코드' 심의… 예정대로 시행하기로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당초 예정대로 7월부터 시행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국민연금과 같은 연금·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충직한 집사(steward)처럼 자신이 주식을 가진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행동 지침을 일컫는 말이다. '자본시장 대통령'이라 불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를 두고 '코드 인사' 논란이 촉발되고, 국민연금 내 주요 투자실장 5자리 중 3자리가 비어 있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늦춰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7월10일 보건복지부는 "오는 26~27일 중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안을 심의·의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17일에는 스튜어드십 코드 방안 공청회를 개최해 이해관계자 의견을 청취한다.

◆의결권 행사, 민간 운용사에 넘길 듯

국민연금이 이번에 도입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당초 시장의 우려보다 강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복지부가 공개한 연구 용역 최종보고서에는 포커스 리스트(Focus List·스튜어드십 코드에 어긋난 회사를 중점 감시 회사로 지정한 뒤 명단 공개), 주주 제안을 통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 국민연금 의사 관철을 위한 의결권 위임장 대결 등 강력한 지침이 들어가 재계에서 '경영권 침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다듬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에는 이러한 세부지침이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대신 의결권 행사를 외부 위탁운용사에 맡기는 '일본식 모델'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9일 복지부 회의에서는 국내 주식 투자 중 위탁 자산에 대한 의결권을 민간 자산운용사에 넘기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1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은 약 131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 중 54%를 직접 운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민간 자산운용사에 위탁해서 운용 중이다. 단, 현행 자본시장법상으로는 위탁 자산 의결권은 명의자인 국민연금이 갖게 되어 있는 만큼, 해당 안을 추진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악용 막으려면 국민연금 독립성 필수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격 도입되면 국민연금의 주주로서의 목소리도 지금보다 커질 전망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국내 기업 약 300곳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전망이다.이미 국민연금은 올해 1분기에도 투자 기업의 주주총회에 625회 참석, 2500여개 상정 안건 5개 중 1개꼴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지난 5년간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이 10% 내외였던 점을 고려하면 반대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지난달에는 '갑질 파동'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에 경영진 일가의 일탈 행위에 대한 사실 관계 및 해결 방안을 묻는 공개서한을 처음으로 발송하기도 했다.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전제되어야 스튜어드십 코드 악용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 기업 투명성 강화와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측면이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최근 정부가 '기업 길들이기'에 나선 모습을 볼 때 악용의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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