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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과 고령화 시대의 최저임금

양형모 | 기사입력 2018/07/17 [06:41]
중소기업, 구인·채용 모두 줄어…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인가

인구절벽과 고령화 시대의 최저임금

중소기업, 구인·채용 모두 줄어…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인가

양형모 | 입력 : 2018/07/17 [06:41]
경기도 파주에서 24년째 가구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K(55) 대표는 2017년부터 아예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힘들어도 해마다 2~3명씩 직원을 늘려왔지만, 최근엔 결원이 생길 때 보강만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신규 채용 부담이 커진 데다 정책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몰라 망설여진다고 한다.

K대표는 “최저임금을 내년에도 올해 수준(16.4%)으로 올리면 고용 확대는커녕 진짜 감축에 들어가야 할 판”이라며 “어차피 젊은 직원들은 올 생각이 없고, 부족한 노동력은 외국인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상반기 구인·채용 각각 1.9%, 1.7% 감소…최저임금 영향 큰 직종서 더 줄어2018년 1분기 기업의 구인(求人)과 채용이 함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同期)와 비교해 구인과 채용이 동반 감소한 것은 지난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통계청 고용동향에서 관측된 1분기 취업자 증가율 둔화와 유사한 흐름이다. 고용노동부가 6월25일 2018년 상반기(4월 기준) 직종별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의 인력 충원, 부족 현황 및 채용 계획 등이 포함된 조사다. 이에 따르면 1분기 구인 인원은 전년 동기 대비 1만7000명(1.9%) 줄어든 83만4000명에 그쳤다. 실제 채용 인원도 74만4000명으로 1.7% 감소했다. 구인 인원은 조사 기간에 기업이 대외적으로 모집한 인원이다. 채용 인원은 구인 인원 중 채용이 확정됐거나 채용된 사람을 말한다. 뽑겠다는 사람과 실제 뽑은 사람 모두 감소한 것으로 기업의 채용 여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직종별로는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음식 서비스 관련직의 구인 인원과 채용 인원이 각각 7.9%, 9.8% 줄어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컸다. 조리사와 주방보조원, 배달원 등이 포함된 직종이다. 계약직 근로자가 많은 문화·예술·디자인·방송관련직과 일용직 근로자가 많은 건설 관련직도 각각 16.7%, 9.0%씩 채용 인원이 감소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기존 근로자에겐 좋을지 몰라도 고용을 줄여 신규 근로자의 진입을 차단한다”며 “작은 경영 변수에도 흔들리는 중소기업이나 뿌리 산업은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채용 여력은 더 떨어졌다. 상용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체(중소기업)의 구인 인원은 66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했지만, 300인 이상 대기업은 17만4000명으로 3.4% 늘었다. 실제 채용한 인원도 차이가 있었다. 300인 미만 사업체는 57만9000명(전체의 77.8%)으로 2017년 같은 기간보다 2.9% 줄었으나 300인 이상은 2.9% 증가했다. 직종별로는 운전 및 운송 관련직(31.6%), 식품가공 관련직(24.2%), 재료 관련직(21.1%), 화학 관련직(19.7%)의 순으로 미(未)충원율이 높았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구인난의 이유도 달랐다. 4200개 업체에 미충원 사유를 물었더니 중소기업에선 ‘임금수준 등 근로조건이 구직자의 기대와 맞지 않기 때문’(23.8%), ‘구직자가 기피하는 직종이기 때문’(16.5%) 등의 답변이 많았다. 반면 대기업은 ‘다른 사업체와의 격심한 인력유치경쟁 때문’(23.5%), ‘사업체에서 요구하는 경력을 갖춘 지원자가 없기 때문’(22.9%)의 순이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인력 미스매치는 그 원인이 매우 복잡하고, 구조적”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학(産學)연계를 고등학교 단위에서 활성화하는 교육체계 개편이 올바른 해법”이라고 말했다. 올해 2~3분기 기업의 채용 계획 인원은 31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00명(2.1%) 증가했다. 경영·회계·사무 관련직(4만2000명), 운전 및 운송 관련직(4만명), 환경·인쇄·목재·가구·공예 및 생산단순직(2만6000명) 순으로 채용계획 인원이 많았다.                      

‘인구절벽’ 시대에 진입한 한국    

서울 명동의 한 음식점. 주문을 했는데 종업원이 못 알아들었다. 다시 천천히 주문을 했더니 알아들었는지가 확실하지 않은 채 종업원은 돌아갔다. 잠시 후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왔다. 그리고는 주문내역을 확인하고 갔다. 한국 식당에서 한국말이 안 먹히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조금 어리둥절했다.

요즘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서울 한 복판에서 한국어로 물건을 사고 주문을 하는데 한국어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낯선 상황이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인들이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한국말이 잘되는 조선족 동포들은 임금이 좀 더 높은 곳에서 일한다. 그러니 조건이 열악한 식당에서는 의사소통이 어려워도 일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다른 장면 하나. 기말고사를 끝낸 대학가의 종강 모임들. 골목 전체에 한국 학생보다 외국인 학생들이 더 많다. 외국인 학생들 없이 대학운영이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의 내면은 심각하다. 이는 근본적으로 인구감소에 기인한다. 한국은 인구 절벽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출생아 수는 2만 7,700명이다. 통계청이 월별출생아 수를 정리하기 시작한 1981년 이후 최저치다. 2017년 5월부터 매달 최저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4개월간 출생아 수가 11만 7,300명이다. 2015년 15만 6,024명, 2016년 14만 7,513명, 2017년 12만 9,000명과 비교해 보아도 인구 감소는 뚜렷하다. 통계청은 평균연령 33세가 출산율이 가장 높은데 이 나이가 현재 한국의 인구 구조에서 적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 20대 후반 연령대의 인구가 좀 더 많기 때문에 몇 년 뒤에는 역전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도 한국 출산율은 1.05명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국가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발간하는 WORLD FACT BOOK의 2017년판에는 한국이 224개의 국가와 정치단위 중에서 219위에 올라있다. 그런데 219위는 출산율이 1.26명으로 기록된 상황일 때이다. 올해 통계청의 지표대로 출산율이 1.05명이면 한국 보다 아이를 덜 낳는 곳은 중국에 속한 마카오(0.95명)와 싱가포르(0.83명)뿐이다. 대만도 1.13명으로 한국보다 출산율이 높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국가로는 한국이 세계 최저이다.

출산율이 낮으니 출생하는 전체 출생아수도 급감하고 있다. 한국의 인구 그래프에서 가장 출생자가 많았던 때와 인구수는 1960년의 108만 명이었다. 그리고 1971년 102만 명까지가 정점이었다. 이후 90만, 80만, 70만으로 점진적으로 출생아 수가 줄어들다가 55만 명을 기록한 2001년을 기점으로 5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40만대에 머물던 출생아수가 2017년 357,700명으로 하락한 것이다. 한국의 4년제 대학입학정원이 352,350명이다. 그러니 2017년 태어난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출산아동의 수가 줄고 기대수명이 늘면 고령화사회 또는 초고령화사회가 된다. 한국은 초고령화가 가장 빠른 국가다. 2015년 기준으로 경제활동 인구 중 65세 이상이 20%였다. 그러나 32년 뒤인 2050년에는 그 비중이 70%를 초과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체적인 인구는 점차 감소하면서 노인 인구만 늘어나는 사회가 된다.

주변 정황들은 더욱 나쁘다. 물가는 오르고 집값은 폭등했다.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하지만 대기업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자영업자의 소득 격차는 늘어나고 있다. 안정된 직장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들여 교육을 받지만 투자한 교육비를 자식의 소득으로 보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20대들은 연애와 결혼이 점점 짐이 된다. 결혼 적령기가 뒤로 밀리면서 아이를 낳는 시기도 늦어진다. 늦은 나이에 출산할 걱정에 더해 육아와 교육 생각을 하면 앞이 깜깜하다. 결혼이 늦춰지고 출산이 늦춰지니 사람에 따라서는 자식교육을 위해 직장을 70세까지 다녀야 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를 더 못 낳게 된다.              

높아진 최저임금은 ‘양날의 칼’ 지난 5월에도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줄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인구구조 탓이라는 견해도 있고 대폭 오른 최저임금이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한국 노동시장에 밀어닥친 큰 변화, 인구구조와 최저임금, 이 둘의 영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또 당장 내년 최저임금은 어떻게 해야 하나.먼저 인구통계를 보면 지난 1년간 15∼64세 인구는 8만명 감소했고, 65세 이상 인구는 32만 명 늘었다. 과거와 다른 흐름이다. 한국이 65세에 은퇴하는 나라라면 취업자 수가 5만명은 줄었을 것이다. 노년층 취업이 많아서 취업자 수가 줄진 않았지만, 앞으로 생산연령 인구가 계속 줄어들 것이므로 취업자 수 하락 압력은 더 커질 것이다.

청년실업도 인구구조와 무관치 않다. 노년층이 대거 노동시장에 나오거나 은퇴를 미룬다면 저숙련 청년층의 고용 사정은 당장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인구구조가 변곡점을 지나면서 35년 전부터 지속된 저출산과 고령화의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는 현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근간인 25∼54세 연령층 고용률(취업자/인구 비율)이 76.6%로, 지난해보다 낮진 않더라도 미국의 79.3%보다는 많이 낮은 점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 미국 수준으로 이 비율을 높인다면 취업자 수가 62만 명 더해진다. 경직적 산업 생태계, 기득권 보호에 치우친 제도, 여성 경력단절 방치 등 곳곳에 자리 잡은 고용 저해 요인들을 과거의 정책 틀로 다루진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어땠을까.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일용직 임시직 일자리는 줄었다. 상용직은 늘었고 고용률에 큰 변화는 없다. 중장기 효과, 즉 소득을 높여 내수를 키우는 효과가 있는지, 또 자영업 구조조정과 생산성 개선효과가 있는지 등은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다. 일자리안정기금의 역할을 알려줄 데이터도 미비하다.확실한 것은 고령화된 베이비붐 세대가 재취업을 원하고 그들의 자녀들도 구직을 시작하면서 최저임금 영향권에 놓인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때 높아진 최저임금은 양날의 칼이다. 즉, 저임금에 기반한 영세 자영업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면서 동시에 저숙련 노동자의 구직은 어렵게 한다. 만약 최저임금 수준이 매우 낮았다면 베이비붐 세대가 ‘알바’ 한두 명 쓰는 자영업에 대거 진입했을 수 있다. 그랬다면 당장 저임금 일자리는 늘었겠지만 이미 출혈경쟁 상태에 있는 영세 자영업은 초토화됐을지 모른다. 노후 대비 자금이 부동산에 몰릴 때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됐나. 편의점이나 카페 경영자 입장에선 주변에 유사업소가 난립하는 것보다는 임금을 올려주는 편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보다는 임금노동을 선택하라는 신호가 되므로 자영업 과당경쟁을 줄이는 그 힘이 그만큼 구직자 수를 늘려 실업률을 높이는 힘이 된다.

관건은 최저임금을 버틴 자영업자들이 고용도 늘릴 만큼 경쟁력을 확보하느냐다. 최근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가 줄고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가 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높은 임대료 등으로 이들의 경쟁력이 제한된다면 취약계층 구직난은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인구 고령화로 최저임금 영향권이 확대된 상황에선 최저임금 결정이 고차함수 문제가 된다. 노동시장 참가자의 범위, 복지가 감당할 부분, 자영업 구조조정 등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다. 이때 최저임금 인상 폭은 다른 개혁조치들과 연계해 정하는 것이 옳다.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및 직업훈련 대책뿐 아니라 상가임대차보호법, 공정거래 법령 등 자영업·중소기업 경쟁력을 위한 제도개혁도 인상 폭과 연계해야 한다. 속도를 높이려면 길을 잘 닦아야 하지 않겠나.  
양형모(경영학 박사·애원복지재단이사 ·본지 고문·hm18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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