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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리추얼 코치 김필수의 ‘참나’로 살기

김필수 | 기사입력 2018/08/31 [19:47]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스피리추얼 코치 김필수의 ‘참나’로 살기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김필수 | 입력 : 2018/08/31 [19:47]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갈등과 고민을 하는 것도 나고, 어려움을 겪는 것도 나다. 그런데 정작 그 ‘나’가 누군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그 ‘나’를 알아야 삶의 모든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참나’를 발견하게 하여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는 스피리추얼 코칭의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 독자들 모두가 ‘참나’를 발견하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바란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우리는 흔히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마음의 평화를 얻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자기 마음에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없애려고 해서는 오히려 마음을 비울 수 없다. ‘생각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하나 추가될 뿐 아니라, 더 많은 생각들이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는 실제적인 방법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함으로써 내 마음이 더 넓어지고, 내 생각의 틀에 매이지 않는 원활한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간혹 잘못 이해되듯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만 옳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온 세상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뜻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무한한 존재인 나 자신밖에 없으니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이고, 모든 것이 다 존귀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을 개체적인 존재로 여기던 생각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니 상대방도 개체적 존재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습관적인 생각이 굳어져 경직된 고정관념이 되면, 그 생각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준에 어긋나는 모든 생각에 불편을 느껴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비난하게 된다.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문선후배들이 함께 어울린 자리에서 3개월간의 유럽여행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다가 한 선배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너는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먼 곳에 가서 몇 개월이나 여행을 하고 올 수 있냐? 그 사이에 부모님께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너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기본 자세가 안 되어 있구나!”

나는 예상치 못했던 선배의 격한 반응에 당황했고, 모임의 분위기는 경직되어 한 사람 두 사람 일찍 자리를 떴다. ‘효도는 부모님을 오래 떠나지 않고 늘 곁에서 모시는 것이야.’라는 경직된 생각 하나 때문에 반갑고 즐거운 자리가 불편한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 역시도 ‘선배님은 자신의 원칙에 따라 효를 실천하는 훌륭한 분이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여유가 있었더라면 그 상황을 화기애애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부모님을 곁에서 모셔야만 한다는 건 구시대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이야.’라는 내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만의 생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있고 아내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해.’, ‘아내는 집안일을 잘 돌보고 아이들을 잘 교육해야 돼.’, ‘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순종해야 돼.’, ‘직장 상사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후배를 배려하는 리더십이 있어야 돼.’ 이런 생각들이 일견 옳은 듯이 보여도,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 입장만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생각들은 결국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성경에서 인간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었다고 하는 상징적인 사건의 의미는 우리가 대상을 분별하고 비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며 행복을 누리던 천국에서 쫓겨나 고통스럽게 살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천국의 행복을 빼앗기고 지옥을 경험하게 된 것은 자신을 한정 짓고, 자신을 제한하는 그 생각으로 상대방과 비교하고, 대상을 차별하고, 비판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편한 생각에서 일어난 고통은 정서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신체적인 증상으로도 나타난다.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짜증내고, 분노하는 병적인 생각이 병적인 증상, 질병현상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것을 ‘혹병동체(惑病同體)’라고도 하는데, ‘미혹된 마음 즉 병적인 생각은 질병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다음은 영성세미나에서 어느 회원이 발표한 사례다.

어느 날 이 회원이 노모를 모시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아주 힘찬 걸음으로 들어오시고, 몇 걸음 뒤에 딸로 보이는 보호자가 들어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매우 밝고 활기차서 전혀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 얼굴을 가만히 보니 정상적인 사람과는 눈빛이 달랐다. 주변을 의식하는 눈매가 아니라, 또렷한 의식 이나 초첨이 없어 보이는 시선이었다. 동행한 딸의 이야기를 들으니 7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해 보이는 그 할머니는 83세로, 치매를 앓은 지 3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 할머니가 치매를 앓기 전에는, 걷기가 힘들고, 온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소화도 잘 안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치매를 앓은 후부터 언제 아팠냐는 듯 잘 걷고 잘 먹으며 몸의 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사라졌다고 했다. “어휴, 이제는 얼마나 빨리 걸으시는지 제가 따라가기도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딸도 어찌된 영문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사례는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혹병동체’의 원리를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치매에 걸리기 전, 할머니의 마음에는 몸에 대한 걱정, 죽음에 대한 걱정, 자녀들에 대한 걱정 등의 온갖 병적인 생각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치매에 걸린 이후로 할머니는 그런 걱정과 모든 불안을 잊어버렸다. 늘 걱정하며 살던 할머니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병적인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서 몸도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강해지기 위해서 치매에 걸리라는 뜻은 아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생각, 병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리면 누구라도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신체는 마음이 비추어진 그림자이기 때문에, 마음이 맑아지면 신체의 건강도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는 ‘내가 원하지 않는 생각을 얼마나 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나의 생각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가가 영적 발전의 척도’라고 말한다. 이렇게 영적으로 발전하는 수행자는 자기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만큼 건강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원하지 않는 내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 스승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100%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나에 대해 억울한 소리를 하더라도, 그 사람이 말하는 100%의 내용 중에는 내가 분명하게 인정해야 할 1%의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99%의 내용을 거부해버리고 1%만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상대방이 하는 말의 내용을 100% 다 받아들여야 그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금을 채취하는 방법과 같다. 사금을 얻기 위해서는 사금이 섞여 있는 큰 흙덩어리를 가져와서 흐르는 물에 채를 쳐야 한다. 그래서 얻게 되는 사금의 양은 아주 적지만, 그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많은 양의 황금을 얻게 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지적하는 하는 내용은 일단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꾸준히 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이 사라지는, ‘황금’처럼 귀한 깨우침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분명히 내가 원인을 제공한 부분이 있다.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잘못까지 완벽하게 개선되지 않으면,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당장은 불편한 일이 없다고 해도 그것은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무의식에서 어리석은 생각들이 말끔히 정리되어야 완전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누군가가 밉고, 어떤 말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아직 내 생각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위에 집착하는 감각적 판단과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내 생각이 사라져야 모든 존재를 완전하게 느낄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하고 싱싱한 생명, 한없는 사랑, 감사함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고, 좋고 싫은 것을 차별하는 마음을 떠나야 한다.

그러려면 위대한 성자들과 영적인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본질에만 집중해야 한다. 진리를 터득한 완전한 존재, 영적인 스승과 나를 분리시켜 생각하지 말고, 깨달은 자의 신성과 불성이 이미 내게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똑같이 다른 사람도 그렇다고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을 완전한 존재로 보고,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내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길이다.
김필수 스피릿 컨설팅(주) 대표 hifeels@spirit.co.kr

‘스피리추얼 코치 김필수의 ‘참나’로 살기’의 필자는?
독자들에게 ‘참나’를 발견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게해줄 칼럼 ‘스피리추얼 코치 김필수의 ‘참나’로 살기’를 연재할 김필수(48·사진) 스피릿 컨설팅(주) 대표이사는 1994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한 이래 ’참나코칭센터 참코치, 트레이너(Spiritual Coach, Trainer)‘ 란 직함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기업과 기관에서의 강의, 언론사 코칭 칼럼니스트 등의 활동으로 나를 찾는 동시에 세상과의 소통을 이루는 차원높은 처세인 행복학을 전파하고 있다. 저서로는 『리셋! 눈부신 탄생』(살림Biz, 2009), 『명상이 경쟁력이다』(살림지식총서, 2012), 『행복을 부르는 마술피리』(행복에너지,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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