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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브릿지 숲속, 추방되지 않은 고은 시를 보며

신민형 | 기사입력 2018/10/23 [08:02]
내안의 양면성 너그럽게 인정하듯 타인에게도...

밀브릿지 숲속, 추방되지 않은 고은 시를 보며

내안의 양면성 너그럽게 인정하듯 타인에게도...

신민형 | 입력 : 2018/10/23 [08:02]

내안의 양면성 너그럽게 인정하듯 타인에게도...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길은 용인 법화산 숲길에 비할 수 없는 가을의 정취가 넘쳤다. 그러나 월정사서 20km 더 들어간 전나무 숲 쉼터 밀브릿지는 월정사 이상이었다. 숲 냄새가 깊고 짙었다. 밤에는 별이 쏟아졌다.     

숲 속 숙소 벗어나 산에 오르는 숲길은 더욱 향기롭고 그윽했다. 자연 그대로 자란 나무와 자유분방하게 흩날리는 낙엽에서 태고의 냄새가 났다.     

오솔길을 걷다가 만나는 액자 시 역시 원시 숲과 어울려 그 의미만 퍼져나가는 듯 전혀 인위적 설치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고은의 시 ‘아직 가지 않은 길’과 마주쳤다. (오른쪽 위 액자 시 사진)    

이제 다 왔다고 말하지 말자
천리 만리였건만
그동안 걸어온 길보다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


행여 날 저물어
하룻밤 잠든 짐승으로 새우고 나면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다
그동안의 친구였던 외로움일지라도
어찌 그것이 외로움 뿐이였으랴
그것이야말로 세상이었고
아직 가지 않은길 그것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모르는 세상이리라
바람이 분다.
    

뭔가 아련한 냄새를 맡은 듯, 아늑한 기분이 들게 하는 시였다.     

지난 3월 미투 폭로가 한참일 당시 고은 시인이 그 중심인물로 떠오를 때 구성도서관 화장실에서 본 시 ‘순간의 꽃’이 떠올랐다. (왼쪽 아래 액자 시 사진)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 보았다.
    

당시 산전수전, 삶의 쓴맛과 단맛 모두 겪은 노시인의 경륜이 담겨있는 번뜩이는 깨달음 같은 것을 느꼈었다. 노시인의 ‘더러운 욕망’과 ‘순수 깨달음’이란 양면성을 생각해보게끔 했었다. 그러면서 고은의 시가 교과서를 비롯한 온갖 흔적에서 사라지더라도 구성도서관 화장실에는 계속 걸려 있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구성도서관 화장실에서마저 철수되었고 이제 평창 깊은 숲속 밀브릿지 산책로에서 생존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다행이란 생각이 든 건 왜일까. 그렇지만 하룻밤 숙식을 함께 했던 친구 부인들 중 하나가 그 액자 시를 지나치며 ‘늙고 추한 괴물 시인’이라며 치를 떨었다. 아예 시 한줄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한둘 생기기 시작하면 이곳 산속 고은의 액자 시도 추방될 운명임을 직감했다.     

작가와 작품을 구분해 감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멋진 작품을 통해 못된 작가를 두둔하고 미화하는 것은 안되지만 작품을 썼을 때의 순수한 정신을 따로 떼어내어 볼 수는 없을까.     

작가의 양면성을 인정하며 별개의 판단으로 순수작품을 대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내 안에 선악(善惡), 미추(美醜) 양면이 존재하지만 악과 추만을 분리해 저주하고 미워할 수 는 없어 양면의 공존을 인정하듯이 작가의 양면성을 그리고 순수할 때의 작품을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노시인의 양면성 뿐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과 행위의 양면성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적용하고 싶다. 내 안의 양면성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너그럽게 봐주듯이 말이다.    

*‘미투’ 폭로 전후의 고은 시 감상(2018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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