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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巫 김금화, 하늘의 뜻 땅에 전하고 하늘나라 가다

이준혁 기자 | 기사입력 2019/02/23 [19:00]
향년 88세, “굿은 신명 나는 잔치이자 눈물겨운 한풀이다”

國巫 김금화, 하늘의 뜻 땅에 전하고 하늘나라 가다

향년 88세, “굿은 신명 나는 잔치이자 눈물겨운 한풀이다”

이준혁 기자 | 입력 : 2019/02/23 [19:00]

 


한국 땅에서 사람 취급 못
받았던 무당, 우리나라 대표하는 무녀로 인식 바꿔놓아

 

국가무형문화재 제82-2'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인 큰무당 김금화 씨가 23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

 

개인의 한과 민족의 아픔을 보듬어 준 '국무(國巫)'로 통하는 그는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열 두살 때부터 무병을 앓았다. 옹진군의 큰만신이었던 외할머니 김천일에게 17세 때 내림굿을 받고 강신무(降神巫)가 됐다. 만신은 여자 무당을 높이 부르는 말이다. 무업을 시작했으나, 외할머니는 이미 노인이고 천식이 심하여 손녀를 가르치지 못했다.

 

두 번째 선생은 해남면 버르대에 있던 안 만신이었는데, 2년 여 따라다니며 굿을 배웠다. 또한 관()에서 굿을 했다고 관 만신으로 불리던 권씨에게도 3년여 동안 배웠다. 19세에는 독립하여 대동굿을 주재할 만큼 기능이 뛰어나, 옹진해주연백 등지에서 큰굿을 많이 했다.

 

열아홉 살에 겪은 6·25 한국전쟁 당시에 남북 군인 모두에게 너는 무당이니 알지 않느냐라며 피란간 사람과 빨갱이 명단을 대라는 고초를 겪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월남 후에 고행에서부터 배워 왔던 방수덕 씨와 함께 다니며 기량을 닦았고,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65년에 서울로 옮겼다.

 

한국 땅에서 무당은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그러다 1967전국민속경연대회에 나가 처음으로 예인(藝人)’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당당히 무대에 올랐다. 그때를 계기로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이 알려졌다.

 

월남 후에 고행에서부터 배워 왔던 방수덕 씨와 함께 다니며 기량을 닦았고,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65년에 서울로 옮겼다.

 

김금화는 1974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연기상을 수상한 이래, 공연이나 매스컴을 통해 무속예술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특히 1982년에는 한미수교 100주년기념 문화사절단으로 미국에 가서 2개월 동안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고, 레비 스트로스가 한국에 왔을 때 특별히 참관했던 굿 역시 김금화의 <만수대택굿>이었다.

 

1985년에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강신무이면서도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지노귀굿 등 모든 종류의 굿에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녀로 사도세자, 백남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한 진혼제와 세월호 희생자 추모위령제를 지냈다.한편으로는 2000년 서해안풍어제보존회 이사장에 취임하고, 2005년 인천 강화도에 무속시설 '금화당'을 열어 후진 양성과 무속문화 전수에 힘썼다.

▲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비단꽃길'에서의 고인.    

 

2014년에는 고인의 일생을 담은 영화 '만신'이 개봉돼 무속문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찬경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토론토 릴 아시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비단꽃길'도 고인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서슴없이 작두에 올랐던 고인은 국립무형유산원이 2017년 펴낸 구술록에서 "무당은 됨됨이가 제일 중요하다. 남의 덕을 잘 빌어주려면 내가 먼저 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내가 무형문화재로 인정된 다음부터 우리 무당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그래도 다들 옛것을 찾으면서 즐거워하니까 나도 기뻤다. 내가 가진 재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는 굿은 신명 나는 잔치이자 눈물겨운 한풀이다라며 무당은 하늘의 뜻을 땅에 전하고 사람의 말을 하늘에 전하는 이다라고 했다.유족으로는 아들 조황훈(자영업) 씨가 있다. 조카 김혜경 씨는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이수자다. 빈소는 인천시 동구 청기와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640, 장지는 인천 부평승화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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