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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7. 독립기념일

주형식 | 기사입력 2019/06/05 [09:41]
“독립기념일” 축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곧 해방시킬 것이라는 믿음의 행위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7. 독립기념일

“독립기념일” 축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곧 해방시킬 것이라는 믿음의 행위

주형식 | 입력 : 2019/06/05 [09:41]

독립기념일축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곧 해방시킬 것이라는 믿음의 행위

  

많은 국가들이 외국의 통치로부터 독립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경축한다. 날짜는 다르지만 주제는 비슷하다. , 민족 자결권의 기회와 착취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 준 승리의 기쁨 말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공휴일을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퍼레이드를 구경하거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음악과 연설을 듣는 행복한 날로서 고대한다.

 

필자는 미국에 유학중, 독립기념일에 벌어졌던 불꽃놀이를 본 기억이 있다. 대중을 위해 펼쳐지는 불꽃놀이들은 흥분을 자아냈지만, 그보다 훨씬 스릴 넘치는 것은 본인이 직접 폭죽이나 병로켓에 불을 붙이는 일이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애굽인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과 이스라엘 나라의 탄생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이었다.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신들이 해방을 위한 자신들의 투쟁을 도와주셨다고 믿어 왔지만, 노예상태에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는 유일무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은 하나님과 함께 경축하는 종교적 축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광야를 떠나기 직전, 두 번째 유월절을 지켰다. 그것은 그들이 애굽 밖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유월절 경축이었다. 일 년 전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들의 최종적 구출을 완수하시기 직전에 그들은 유월절을 준수했었다(12). 독립기념일축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제 곧 해방시킬 것이라는 믿음의 행위였다.

 

그 이후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곧 실행하려고 하신 것을 고대하는 믿음의 경축이란 이 패턴을 다시 본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주변을 일곱 번 돌고나서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고 백성들은 큰 함성으로 외쳤다. 그러자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6:20). 어린 시절, 나는 강력한 소음이 성벽들을 갈라지게 했으며 그래서 그것들이 부서졌다고 생각했다. 높은 데시벨의 소리가 물건을 덜거덕 거리게 만들고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이 유적지들에서 고대 근동의 성벽들을 발굴하여 연구한 책들을 접한 후에 더 이상 여리고가 소리에 의해 무너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셨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이라곤 그분께서 이제 막 이루실 것을 경축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침”(20)이란 표현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가 민수기 2321절에도 등장한다. 이 말씀에서 발람은 이스라엘 진영을 내려다보면서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왕으로서의 주님께 대하여 지른 환호성이었다. 여리고에서 그들은 바로 그것을 경축하기 위하여 외쳤다.

 

수세기 후 원수의 군대가 유다 왕 여호사밧을 치러 진격해 올 때, 그는 금식하는 일과 주님께로부터 도우심을 구하는 일을 하도록 백성들을 인도했다(대하 20:1-13). 그러자 여호와의 신이 야하시엘에게 임하셨고, 그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 사항을 포함하여 주님께로부터 온 기별을 전달하였다.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15).

 

여호사밧은 그 약속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경배드렸고, 레위인은 일어서서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18,19). 경축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튿날 여호사밧은 다음과 같이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20). 그분의 말씀에 토대를 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마치 이미 성취된 것처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분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다. 그의 믿음의 말을 확증하기 위하여 여호사밧은 놀랄만한 일을 하였다.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21). 이런 종류의 믿음에 대항하여 적들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서로를 치게 만드셨으며, 결국 자멸하고 말았다. 유다군대는 전혀 싸울 필요가 없었다(22-24).

 

믿음으로 말미암는 고대감이라고 하는 이 동일한 패턴은 신약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으며, 그것을 과거의 애굽의 바로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위험한 존재인 사단의 압제적인 통치로부터의 구출을 경축하는 날로 바꾸셨다(26:17-30). 악한 이 세상의 임금”(12:31참조) 사단으로부터의 이와 같은 독립 경축은 이제 잠시 후에 벌어질(27) 그리스도의 희생에 기초하였다(26:26-28).

 

첫 번째 유월절과 첫 주의 만찬은 그들이 경축했던 그 구출 이전에 이르러왔다. 그러나 그런 다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이 완수된 후 그 구원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정규적으로 그 날들을 준수해야 할 것이었다. 이 예식들이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과거의 경험들을 기억하는 일을 수반하는 한편으로, 또한 미래에 있을 구원의 절정을 믿음으로 고대할 것을 요구하였다. 여호와께서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분께서 그들을 약속된 땅으로 안전하게 데려가심으로써 그분의 약속들을 완수하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 이와 유사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서 행성 지구에 대한 사단의 권리를 깨뜨리셨다는 사실(12:31)은 그분께 속한 것을 주장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만드시기 위해서 미래에 그분께서 돌아오실 것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19-22).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일을 볼 때에 우리는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곧 파괴하는 것처럼 보이는 강력한 문제들, 세력들, 혹은 유혹들로 인해 압도당하는 것처럼 느끼는 바로 그 때는 과거에 그분의 백성을 위해 주님께서 쉽게 정복하신,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역경들을 기억할 때이다. 여호사밧과 백성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분의 약속들을 주장하고, 그 약속들의 성취가 임박했음을 경축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침례요한을 구출하기로 선택하지 않으신 것처럼(14:3-12), 그분께서 이생에서 개입하지 않으시더라도 영원한 구출이 내세에서 곧 다가올 것이다(19:25-27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곁에서의 안전하고 비교적 편안했던 숙영 생활을 떠나 울퉁불퉁한 여행길과 강력한 원수들과의 조우로 이어지는 여행길을 막 출발하려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바로로부터 그들을 구출하신 방식으로 인해 그분을 찬양하며 유월절을 준수한 일은 그들이 그분께 용기있게 협력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제 곧 그들을 위하여 행하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찬양은 믿음을 강화시키고, 믿음은 용기를 제공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정된 날인 봄 정월 십사일에 그들의 두 번째 유월절을 경축하였다(9:1-5; 12장 참조). 이 때는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이었다(9:1). 이 때가 주님께서 모세에게 군사들의 수효를 계수하도록 명령하신,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제 이년 이월 일일”(1:1) 바로 두 주 전이었다는 것을 주목하라. 여기서 민수기의 이야기의 배열은 그 사건들이 발생한 순서대로 엄격하게 연대기적 사건 보고라기보다는 주제 중심적이다. 시내산을 떠나는 것에 대한 공지 직전(10:11-13), 민수기 9장에서 유월절에 이루어진 믿음의 행사를 이야기함으로써, 그 책은 일 년 전 애굽을 떠난 것과 동일한 사건 순서를 이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여정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가나안으로의 힘든 행진이 시작되기 전, 유월절에 다소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평은 믿음이 없어서 생긴 일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유월절을 경축하기를 원했는데 사체 오염으로 인한 부정 때문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실망한 것이다(9:6,7).

 

유월절은 집에서 거룩한 희생제물 고기를 먹는 것을 포함하였다(12). 하지만 사체에 근접한 어떤 사람이건 일주일 동안 부정하였다(19:11). 따라서 그들은 거룩한 음식을 먹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7:20,21 참조), 그들이 부정한 기간 동안 집을 떠나 진 밖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5:1-4). 이러한 규정들은 첫 번째 유월절이 있었던 일 년 전에는 시행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금 그들 가운데 계신 성소가 그 때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어떤 이들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떠한 환경들로 인해 유월절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의 친척들이 죽어서 그들을 안장시켜 주어야 했다. 죽음은 결코 시간표를 정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에 더하여 그들은 그들의 신앙공동체와 단절됨을 느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염려가 타당하다고 보시고 공감을 표하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시체의 오염에 관련된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달 후인 이월 십사일에 두 번째 유월절을 제정하셨다. 그분께서는 정월 십사일까지 도착하기가 불가능한 원거리 여행객들을 위하여 같은 대비책을 마련해 주셨다(9:9-12).

 

민수기 9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이 어떻게 발휘되는 지를 본다. 그분의 해법은 실제적이었고, 공동체가 즐거워하는 이 특별한 때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도록 융통성을 보여주었다. 그분은 또한 이스라엘의 국가적 독립기념축제인 유월절을 준비하기를 원한 재류 외국인들도 포함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인 양 동일하게 대우하셨다(14; 12:48,49 참조). 이런 방식으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통해 만국을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분의 택하신 백성들과 자신들을 동일시 한 믿음의 외국인들을 포함시키셨다(12:3; 22:18).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를 그분으로부터 배우려 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이들의 감정과 합당한 한계들을 존중하고, 규칙들과 그것들의 취지를 균형감있는 관점에서 유지시키고, 우리의 예배와 구원의 경축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들을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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