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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주님의 기도' 문구 변경에 가톨릭계 철학적 논쟁

이중목 기자 | 기사입력 2019/06/12 [12:36]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자신의 탓, 아니면 신(神)의 뜻이 작용한 탓인가”

교황청 '주님의 기도' 문구 변경에 가톨릭계 철학적 논쟁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자신의 탓, 아니면 신(神)의 뜻이 작용한 탓인가”

이중목 기자 | 입력 : 2019/06/12 [12:36]

새 표현은 '신은 인간이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는 의미를 분명히 해 

 

바티칸 교황청이 최근 '주님의 기도(Lord's Prayer)'(주기도문)의 일부 문구를 변경하면서, 다소 철학적인 논쟁이 유럽 가톨릭 교계 전체로 번지고 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가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신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친 것으로, '신약성서'에 나와 있다.

 

논란이 된 부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이 기도문에서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란 표현이다. 인간이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자신의 탓일까, 아니면 신()의 뜻이 작용한 탓일까 하는 논란이 제기된다

 

미국 가톨릭 전문매체 CNA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청은 공식 언어인 이탈리아어판() 기도문에서 '우리를 유혹으로 이끌지 마시고(Lead us not into temptation/이탈리아어: Non ci indurre in tentazione)'에 해당하는 부분을,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Do not let us fall into temptation/이탈리아어: Non abbandonarci alla tentazione)'로 바꿨다. 두 문장 모두 주어는 신()이다. 그러나 기존 구절에선 'lead/ indurre(이끌다, 유인하다)'라는 단어가 있어서 '신은 인간을 유혹으로 이끌 수 있다'는 해석도 낳게 한다.

 

교황청의 새 표현은 '신은 인간이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는 의미를 좀 더 분명히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여러 인터뷰에서도 "인간이 사탄의 꾐으로 유혹에 빠지는 것이지, 신이 인간을 유혹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독일 가톨릭 주교회의는 기도문의 독일어 문구를 바꾸지 않겠다고 밝혔고, 영국 가톨릭계도 아직 변경 계획이 없다. 프랑스 주교회의는 해당 기도문의 프랑스어본을 수정했다. 현재 가톨릭과 개신교 등 크리스트교가 따르는 '신약성서'는 애초 그리스어로 쓰인 것을 4세기 말 라틴어로 옮긴 '불가타' 성경이 원전(原典)이며, 1517년 종교개혁을 전후해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됐다.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가톨릭 영어 표현 변경은 최종적으로 영어권국제전례위원회(ICEL)에서 결정한다. 미국·호주·필리핀·파키스탄 등 전 세계 11개 영어권 교구 주교들의 협의체인 ICEL은 영어권 국가의 미사 전례 및 기도문을 공동 번역한다. ICEL에서 변경을 의결하면, 바티칸 교황청에서 최종 승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국내 가톨릭 교계에선 이 부분을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개신교에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로 번역하고 있다. 기존의 한글 기도문에서도 '신이 유혹으로 이끈다'는 의미는 별로 없는 것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측은 "현행 한국어 기도문 번역은 오해의 여지가 없기에 개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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