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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선생과 한국군 아버지 밴 플리트

원영진 | 기사입력 2019/06/17 [20:36]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생각한다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선생과 한국군 아버지 밴 플리트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생각한다

원영진 | 입력 : 2019/06/17 [20:36]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달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을 올린다. 수많은 영령들을 위로하며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선생과 한국군 전쟁영웅 제임스 밴 플리트(1892~1992)장군 한국군의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나철선생은 1863122일 전남 벌교에서 탄생하셨다. 1891년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시었다. 고종황제를 모시는 일로 관직을 시작하여 33세 되던 1895년 징세 서장으로 하명(下命)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으셨다.

 

10년 입산수도하시다 국내의 혼란 속에 입산수도를 마치시고 42세 되던 해 구국의 길로 나서신다. 풍전등화의 조국을 위해 수차례 일본에 건너가 정치 외교적 동양평화론을 외치지만 이미 국운은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1904년 나철선생은 백두산 백봉신사(白峰神師)의 부름을 받고 국망도존(國亡道存), 나라는 망해도 민족의 도를 일으키라는 깨달음으로 단군 대황조 신위를 모시고 서울 종로 재동에서 대종교 중광(大倧敎 重光)을 선포하신다.

 

잃었던 민족의 도를 다시 빛내는 민족 광복의 횃불을 드셨다. 나철 선생은 나라사랑의 광복을 위해 최초로 무장투쟁에도 나서셨다.

 

19051230일 이완용 매국 5적을 처단하기 위해 폭탄이 장치된 선물 상자를 보냈으나 폭발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애국 동지를 모아 권총 50여정으로 6개 결사대가 오적 말살을 위해 저격했으나 실패함으로 10년의 언도를 받았다. 그 후 고종황제의 특명으로 자유의 몸을 얻었다.

 

우리 국교 중광을 위해 수년을 헌신하시다 문화구월산에서 순명삼조(대종교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위대한 인류대속을 위하여)를 남기고 54세의 일기로 문화구월산에서 조천하셨다.

 

195244일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 밴 플리트 주니어(James A van

fleet jr)대위가 B26 폭격기를 조종하여 북쪽으로 출격하였다가 실종됐다. 그의 부친인 밴 플리트 장군이 며칠 후 부활절에 한국의 6.25 전쟁에 참전해서 아들이 실종된 모든 부모들에게 보낸 위로 문이다.

 

저는 모든 부모님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내 놓은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참으로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명언이다. 벗을 위한 심정 즉 동양의 작은 나라 코리아를 벗으로 그 벗을 위해 아들을 기꺼이 바쳐 희생한 미 8군 사령관, 그 위대한 정신 이것이 한미동맹의 피의 언약이다.

 

당시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을 잃고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군부대 지휘에 만전을 기했고 참모들이 100대를 투입하여 수색 활동 할 것을 건의 했으나 군법에 어긋남으로 기간만을 허락하고 그 이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6.25전쟁 31개월 2일 동안에 미군은 전사 및 실종 부상 총 137,250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중 참전 미국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포함되었는데 이 중 35(25%)명이 전사 또는 부상을 입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국방일보 모바일 참조)

 

아이젠하워 (Dwight D. Eisenhower) 미국 34대 대통령 아들 존(John Eisenhower)과 워커 8군 사령관아들 샘(sam waiker), 유엔 사령관 아들 빈 대위도 최전선에서 한국의 평화와 세계의 자유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다.

 

진정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날 미국의 저력과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케네디 대통령도 2차 대전 남태평양 전투에서 큰 부상으로 평생 진통제와 각성제를 복용해야했고 트루먼은 안경이 없으면 장님과 마찬가지인 지독한 근시였지만 1차 대전에서 포병 대위로 프랑스에서 싸웠다.

 

하버드대학 교내 벽에는 한국전에 목숨 바친 하버드 출신 병사들 17명의 이름이 동판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전 17명의 하버드 전쟁 영웅을 미국은 역사 속에 추모하고 있다.

 

1951년 밴 플리트 장군은 미 제8군을 지휘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아들까지 희생시키며 한국전선 2/3를 담당했다. 그래서 한국인은 밴플리트 장군을 한국군(韓國軍)의 아버지라 불렀다.

 

겨레와 조국 세계평화를 위해 순국하신 영령들 앞에 오늘도 고향 영산(靈山)에서 선구자를 부르며 작은 마음을 영령님께 바친다. (단군정신선양회장·전 대종교 총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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