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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인 ‘요사팟’은 석가모니 부처님?
‘성 요사팟과 바를라암’ 부처님 생애 번안…대영도서관 연구원 강조 “보살 요사팟으로 변화”
기사입력: 2019/07/14 [20:3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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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서양에 본격적으로 전해진 것은 근대의 일이다. 하지만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가 번안돼 중세에 전해졌다는 연구가 나와 주목된다. 74일 인도의 인터넷 매체 스크롤 인디아는 영국 대영도서관 제이나 이그뉴마 연구원의 칼럼을 소개했다.

 

서양과 불교의 첫 접점의 증거로 꼽히는 것은 2세기경 쿠샨제국의 금화(金貨)이다. 불교를 믿었던 쿠샨의 황제 카니쉬카는 부처님을 금화에 새기고, 당시 국제 공용어였던 그리스어로 부처님을 위하여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다. 제이나 연구원은 위의 예시를 전하면서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중세유럽에서 부처님의 생애가 기독교적인 내용으로 번안돼 전해졌으며, 큰 인기를 끈 끝에 성인으로 추앙돼 교회에서 기념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15세기경 독일에서 제작된 '성 요사팟과 바를라암' 판본. 삽화는 부왕을 교화하기 위해 왕궁으로 돌아오는 성 요사팟과 제자들. 출처=스크롤 인디아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인으로 등장하는 () 요사팟과 바를라암(Barlaam)이야기는 중세유럽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 책 중 하나이다. 제이나 연구원은 지금까지 발견된 판본으로만 최소 14개 언어로 번역됐다고 밝혔다. 가장 오래된 판본은 10세기경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이다.

 

그리스어판 성 요사팟과 바를라암이야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성 요사팟이라는 성인으로 각색되어 등장한다. 요사팟(Josaphat)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부처를 이루기 전의 싯다르타 태자를 이르는 보살(bodhisattva)이 페르시아어로 보디사프(bodhisaf)’로 바뀌고, 다시 음가(音價)유자사프(yuzasaf)’로 변하면서 이것이 그리스어와 라틴어화 되면서 '요사팟(Josaphat)'이 됐다.

 

기독교화 된 이야기 속에서 성 요사팟은 인도의 왕자로 태어났고, 한 점성가는 왕자가 왕궁을 떠나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왕은 왕자를 즐거움이 가득한 궁전에 가두어 두었지만, 궁전 밖으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병자와 노인, 시신을 보고선 번민하다가 은둔 수행자 바를라암을 만나 혹독한 고행 끝에 성인이 됐다고 전한다. 성 요사팟은 가톨릭교회에서 매년 1127일을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제이나 연구원은 성 요사팟 이야기에서 명확하게 아시타 선인의 예언, 사문유관, 마라와 세 딸, 데바닷따의 해침, 쌍림열반 등의 사건을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성 요사팟은 어떤 인물인가

 

요한 쿤체빅(Joannes Kuncevyc)은 당시 폴란드 관구였던 현 우크라이나의 볼린(Volyn) 관구에 속한 볼로디미르(Volodymyr)라는 작은 마을에서 1584년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동방 교회 신자들이었다. 그는 젊어서 부모의 가업을 잇기 위해 상업을 배우러 빌나(Vilna,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 Vilnius)의 포포빅(Popovyc)이라는 사람의 도제로 보내졌다. 그러나 수도생활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주인의 딸과 결혼하면 사업을 물려주겠다는 제의를 거부하고,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여 1604년 빌나에 있는 바실리우스회의 삼위일체 수도원에 입회하여 요사팟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성 요사팟은 1609년에 비잔틴 전례에 따라 사제로 서품되었고, 그 즉시 설교로 유명해진 한편, 우크라이나 교회와 로마간의 일치를 위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함께 입회했던 그의 친구 룻스키는 삼위일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으나 그는 폴란드에 새 수도원을 세우라는 명을 받고 파견되었다

 

▲ 요사팟 대주교  

 

1617년 그는 러시아 비텝스크(Vitebsk)의 주교로 임명되었다가 그 이듬해에 폴로츠크(Polotsk)의 대주교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는 혼란하던 교구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로마와의 반목, 기혼 사제, 느슨한 규칙, 폐허화된 성당 등을 고치기 위하여 시노드를 소집하여 교회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이즈음에 뜻을 달리하던 일단의 주교들이 요사팟은 실제로 라틴 전례의 사제이며, 로마 가톨릭은 러시아 민중에게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대립주교를 내세웠다. 그래서 극도의 혼란상에 빠졌지만 그는 온갖 위험을 극복하며 비텝스크로 사목방문을 가던 중에 새로운 정교회를 주장하는 분리파에 의해 도끼와 총탄으로 죽임을 당해 드비나(Dvina)강에 던져졌다. 그는 첫 번째 동방교회 성인으로서 '일치의 사도'라 불리며, 1643년 교황 우르바누스 8(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교황 비오 9(Piu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동방교회의 주교였지만 최초로 서방교회의 성인이 됐다.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은 1112일이다.

 

성 바를라암과 성 요사팟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미지수인데, 인도의 석가모니 이야기에서 나온 가상적인 설화인 듯하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요사팟은 인도 왕의 아들이었는데, 이 왕은 아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감금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들이 바를라암이라는 은수자(隱修者·hermit: 외딴곳에 혼자 사는 수도자)로부터 개종하고서는 자신의 왕위를 사임하고, 바를라암과 함께 은수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Joannes, 124)이 전설적인 이 이야기의 그리스어 저술가이지만 의문의 여지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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