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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13. 하늘의 “약속된 땅”으로의 입성이 지연됨

주형식 | 기사입력 2019/07/26 [14:34]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반응할 충분한 기회를 주신다”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13. 하늘의 “약속된 땅”으로의 입성이 지연됨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반응할 충분한 기회를 주신다”

주형식 | 입력 : 2019/07/26 [14:34]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반응할 충분한 기회를 주신다” 

 

우리가 정신없이 바쁜 스케쥴과 꽉 찬 일정을 잠시 멈추고 이 성경 이야기를 묵고할 시간을 갖는다면, 그 이야기에 함축된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이다(3:29). 무슨 유업을 이을 자인가?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큰 나라가 될 것이며, 그들 소유의 땅을 갖게 될 것이며,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12:1-3; 22:17,18).

 

지금 구원을 받아들이라는 초청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고 있으며, 그렇기에 아브라함에 대한 그들의 관계는 한 민족 국가가 아닌, 영적 국가에 가담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15). 아브라함의 큰 나라는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대하여, 지구상의 모든 지역 출신의 백성들을 통합한다. 그들의 사명은 축복의 원천-아브라함의 한 자손 예수 그리스도-을 그들에게 전함으로써 이 행성의 모든 거민들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3:16).

 

그렇다면 주님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땅을 유업으로 받는가? 그분의 믿음의 백성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6). 성경의 마지막 두 장들은 이 하나님의 도성을 기술하는데, 그 성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하시는 영광스러운 새 땅으로 내려온다(21,22). 그 곳이 우리가 마침내 안착할 본향이며, 약속된 땅이며,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고대의 나라보다 몇 배나 더 크고 더 나은 곳이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흘렀다. 그러나 새 땅은 생명수가 흐르며, 거기에는 눈물도 없다. 가나안은 거대한 포도송이들이 있었지만, 새 땅에는 생명나무가 있다. 가나안은 성읍들이 있었지만, 새 땅에는 새 예루살렘이 있다. 가나안은 햇빛이 있지만, 새 땅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주님께서는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과 같이, 이미 우리에게 우리의 본향을 약속하셨다(14:1-3). 그러므로 가나안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속해 있었던 것과 같이, 새 땅은 이미 우리에게 속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올라가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신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분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새 언약, 지시들, 승리의 약속, 조직, 그리고 예언적 안내-을 마련해 주셨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 우리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가? 아마도 이스라엘의 역사와의 유사성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장애물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는 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대한 불충분한 믿음, 물질적 안락과 감각적 쾌락에 대한 주장 등과 같은 문제들을 갖고 있는가? 이런 결점들을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에 관해서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기다리고 계시는가? 우리가 본향에 갈 수 있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완수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쟁은 군사적인 개념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영적개념이다. 사랑을 발휘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진격 명령을 내리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9,20).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예수께서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의 의미는 말씀하신 그대로이다. 그 때에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3). 다시 말해서 모든 국가가 복음을 들을 기회를 얻게 될 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본향에 데려 가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개심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시며, 기꺼이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만 들어가신다(3:20). 그러나 그분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9). 그래서 그분은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사랑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거를 통하여 잘 아는 가운데 현명한 결정을 내릴 공평한 기회를 주신다(3:16; 요일 4:8). 지구상의 거민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이것은 그들의 일이지만(2:5,7 참조), 기별은 모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반응할 충분한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께서 홍수 이전 세상에 120년을 주신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6:3). 사실상 그분은 그분의 선택된 백성들이 애굽에서 기다리는 동안, 가나안 거주민들에게 400년을 허락하셨다(15:13-16).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실 것이 없고(5:4),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결정에 고착되었을 때(22:11), 그분께서는 그분의 상급을 가지고 속히 오신다(12).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공평과 자비의 성품에 기초된 그분의 계획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34:6,7).

 

그것이 그처럼 분명하다면, 지체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저 실행 계획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가? 여러분은 세계 인구가 얼마나 빨리 증가하고 있는지 아는가? 여러분은 많은 국가들이 개종을 금지하는 엄격한 법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어렵기도 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것을 알고 있는가? 언어나 문화적 장벽, 넉넉한 예산과 자원의 부족,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흥미를 파괴해온 만연한 황금만능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인터넷 같은 통로를 통한 엄청난 유혹들의 증가에 관해서는 어떠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체로 인해 그들의 적들이 더 강해졌기 때문에 가나안 정복이 더욱 어렵게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면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책무는 점점 더 어려워져 가는 듯이 보인다.

 

해결책이 무엇인가?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많은 기적들을 필요로 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기적들을 필요로 한다. 참으로 기적들은 이미 발생하고 있으며, 그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분이 약속하신 위대한 일들을 하실 수 있다고 믿도록 용기를 북돋워 준다. 우리의 성공 공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그것과 동일하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일에 연합하고, 그분의 능력을 받고, 갈렙처럼(14:24) 전심전력으로 주님을 따르면서, 그분의 인도하심 아래서 전진하라.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로 뭉쳤으며, 성령의 능력을 얻고(1,2), 나가서 천하 만민에게”(1:23) 복음을 전파하였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영은 백성들에게 전쟁을 위한 용기와 능력을 부여하였다(3:10; 6:34; 11:29; 14:19; 15;14). 신약 시대의 신자들에게 이기심의 세력에 맞서서 사랑을 휘두르는 영적 전쟁을 위하여 사랑의 능력을 주신 분 또한 성령이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5).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이며(요일 4:8), 그렇기에 그분의 율법의 기초이다(22:37-40). 믿음을 통하여 받는 은혜의 선물로서의 그분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조화되게 만드신다.

 

하나님의 무아적인 사랑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고 항구적인 동기부여 능력이다(고전 13:7,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이것은 지금까지 일어난 가장 놀라운 일이며, 그분의 사랑에 의하여 유발되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사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사역을 하도록(5:6), 그리고 서로 연합하도록 능력을 부여해 준다. 진실되고 깊은 지속적인 연합은 기적적이며, 거룩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는지 세상 앞에 전시한다(133; 4:5,6; 17:20-23; 1,2).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안락한 작은 상자에서 걸어 나오고, 장애물들, 짜증거리들, 조롱, 그리고 박해를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동참하도록 강권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만끽하기를 열정적으로 열망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고전 13:4,5). 하나님은 약속된 땅을 우리의 손이 미치는 곳에 두셨다.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우리는 갈렙의 불후의 선언을 우리의 좌우명으로 삼을 수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올라가자. 그러면 우리가 그 땅을 점유하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그것을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13:30, Tanakh).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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