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15. 여호와의 원자로

주형식 | 기사입력 2019/09/06 [20:51]
여호와께서 거주하시는 성소를 보호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15. 여호와의 원자로

여호와께서 거주하시는 성소를 보호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형식 | 입력 : 2019/09/06 [20:51]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여호와의 무섭고 신속한 칼을 보았다. 지난번에는 많은 백성들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며, 불행하게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수도 14,700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그런 경험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17:12,13).  

 

이스라엘의 성인 세대는 광야에서 죽도록 선고받았다(14). 하지만 최소한 그것은 자연사였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여호와를 심히 불쾌하게 해드렸기 때문에, 그분의 성소에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그분께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안전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했다. 물론 그들은 희생제물을 드리려고 성소 뜰로 나아가는 적법한 특권을 행사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반역으로 인해 곤경을 자초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의 심정을 이해하셨고, 그들의 두려움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업무 규칙을 마련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족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가 그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18:1). ,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성소에서 실수를 범하면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와 중보자로서 그 책임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하나님의 보응이 더 이상 공동체 전체에게 쏟아지는 일을 초래하지 아니할 것이었다(16:19-21, 41-49 참조).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레위인은 제사장을 조력하기로 되어 있었다(8장 참조). 하지만 고라와 동료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16), 레위인이 제사장으로서 역할을 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들을 포함하여 최소한 몇몇 제사장들은 죽을 것이었다(18:2-7).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단히 의욕적인 제사장들로 구성된 이 거룩한 영역을 지키는 경비요원들(무기로 무장했음. 25:7 참조)은 제사장직을 찬탈하려 시도하는 그 어떤 사람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위임 받았다. 그렇기에 앞으로 향로의 결투(16)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어떠한 반() 제사장직 반역도 미연에 재빠르게 방지될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분이신지를 기억할 때까지 무단침입자를 즉시 죽이는 일은 극단적이고 비기독교적처사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분은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고, 새 은하계들과 성운들을 그것이 마치 원반인 양 매우 빠르게 허공 속으로 날아가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그저 말씀하심으로써 수조 톤의 물질들을 자기 뜻대로 하실 수 있으시다(1). 그분의 영광은 소멸하는 불이다(24:17; 4:24; 9:3; 12:29).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성소에 거주하셨을 때 거기에 농축된 힘은 그것을 마치 원자로처럼 만들었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경비요원들이 있어야 했다.

 

필자가 미국에 유학시절 거주하였던 미시간 주의 집 근처에는 거대한 원자력 발전소가 있었다. 그 원자력 발전소는 미시간 호숫가에 있었는데, 바로 옆에는 주립공원이 있어서 필자는 가족들과 함께 종종 그 주립공원에 가서 물놀이를 하곤 하였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 쪽으로 가면 철조망과 함께 접근금지팻말이 군데군데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이 접근금지팻말을 무시하고 무단으로 그곳을 넘어갔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몇몇 고등학생들이 주립공원의 해변에서 보트를 타고 물놀이를 하다가 그만 접근금지팻말을 보지 못하고 금지구역을 넘어가고 말았다. 금지구역을 한참 넘어온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이 아이들은 보트를 돌려 돌아가고자 했지만 핵발전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살에 휩쓸려 그 자리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해안경비대가 그 아이들을 발견하였고, 결국 아이들을 구조할 수 있었다.

 

해안경비요원은 아이들에게 제한구약에 들어왔다는 사실과, 인근의 핵발전소가 냉각과정에서 엄청난 물을 빨아들이는데 자칫 그 물살에 빨려 들어갈 뻔 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위험이 있었음을 나중에 그들의 부모들이 알았는데, 그것은 핵발전소의 저격수가 그들을 쏘기 위하여 조준하고 있었는데, 너무 어린 학생들이라 저격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었다.

 

핵발전소를 지키기 위하여 침범하는 사람들을 저격하기 위한 저격수가 있다는 사실을 필자는 그 때 알았다.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출입 권한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핵발전소를 지키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무한히 더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여호와께서 거주하시는 성소를 보호하는 것은 그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가! 물론 그분은 그분의 능력을 통제할 수 있으시다. 그러나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돕고 구출하실 그분의 능력을 의뢰하도록 그분의 위대하심을 존중하기를 원하셨다.

 

오늘날 지구상의 성막이나 성전에는 하나님의 쉐키나의 임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무기를 들고 우리 교회를 지킬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분의 교회 내에서 주님의 거룩함의 도덕적 경계들을 경건하게 보호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고린도 교회의 한 교인이 그의 계모와 함께 버젓이 명백한 죄 가운데 삶으로써 그 도시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훼손시키고 있을 때 (고전 5:1), 바울은 그 교회 공동체가 그들을 출교시켜야 한다고 명하였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 5:4,5).

 

구약의 신정체제 하에서 공동체로부터 이런 사람을 축출하는 것은 더욱 극단적이며 영구적이었다. 예를 들어,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20:11). 지금 우리는 구약시대가 아닌 21세기를 살아간다. 그러므로 교회법을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하지는 않지만, 출교는 구약의 율법에서 사형을 요구했을 사례들에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경계들을 보호하는 일을 극도로 꺼린다. 공의로 인해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줏대 없는 감정,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어떤 일이든 허용된다. 공의를 희생시켜가면서 베푸는 무분별한 자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에 손상을 입힌다. 그것은 또한 사람들도 해친다. 책임감이 없이 행동하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평화가 있다고 한다(6:14; 8:11). 그러한 접근 방식은 그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한다. 바울은 위기를 알아보고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게 하기 위해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고전 5:5) 줌으로써 범죄한 사람을 희망을 가지고 일깨우는 것이 휠씬 더 낫다고 못 박았다.

 

우리는 민수기에 기록된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이야기가 공동책임, 혹은 단체책임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풍부하게 예시해 주고 있음을 발견한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는 세상에서 그분의 거룩하심을 수호하는 데 있어서나 지도자들을 지원하는 일에 있어서 책임이 있다. 불행하게도 많은 현대 교회 공동체들이 비참하게 실패하고 있는 바, 교인 가족들의 생활양식 통계는 주변의 불경건한 문명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했듯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로 불리는 자들이 그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시작해야 할 때가 있다면 그 때는 바로 지금이다.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주형식 목사의 성서 이해 많이 본 기사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