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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24. 음식과 성

주형식 목사 | 기사입력 2019/11/14 [09:53]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쉐키나의 그림자 아래에 24. 음식과 성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주형식 목사 | 입력 : 2019/11/14 [09:53]

여러분이 D-Day를 정하고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을 때에는 이제 목표를 향해 공격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동편에 멈춰 서서, 이제 막 그 강을 건너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갈 참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대신에 그들은 초점을 잃어버렸고, 겉으로 보기에는 해롭지 않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가공할 원수였던 민간인들과 아주 친해졌기 때문에 그들의 사명을 거의 포기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몇 모압 소녀들이 축제에 그들을 초대하기 위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싯딤(“아카시아 나무들”)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여행객들과 좋은 것을 나누려 하다니 얼마나 친절한가! 음식은 평소의 만나가 아니라 반갑게도 고기가 곁들여진 식사로 바뀌었다. 저 매력적인 방문객들과 함께 벌이는 축제는 아주 재미있었다.

 

거기에 두 가지 사항을 덧붙이자면, 음식은 모압 신들을 위한 제물로 사용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먹기를 즐겼을 뿐 아니라 여러 신들의 우상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다가 우상숭배적 예배를 참으로 더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그 예배 예식이 저 매혹적인 여인들과의 성관계를 포함했다는 사실이었다. 음식과 성, 이것은 예로부터 남자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둘 모두를 갈망하는 정당한 욕구를 창조하셨지만, 죄가 그것들을 가로채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데 사용한다.

▲ 모압의 우상신으로 생식과 출산을 관장하던 바알브올의 축제. 바알브올 숭배에서는 신전 여사제와의 음란한 제의 의식이 수반되었다.    

 

민수기 251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난잡한 성행위를 하기 시작했다고 보고한다. 분명히 이 말씀은 그들이 성적 정욕에 탐닉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은 또한 영적인 간음도 저질렀다. 그들은 자신들을 그 지역의 신인 바알브올과 결합시켰으며, 따라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20;3)는 십계명 중 첫째 계명을 깨뜨림으로 여호와와 맺은 그들의 배타적이며 친밀한 언약 관계를 범하였다(3).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광야를 벗어나서 쉽게 그들을 부패시킬 수 있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지역 거주민들과의 상호 왕래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실함에 끊임없이 도전이 될 것이었다. 첫번째 시험이 닥쳐왔고 그들은 이미 그 시험에 떨어졌다. 금송아지 배교 직후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위험에 대해 즉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다.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34:15). 후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래에 그들이 우상숭배 때문에 더 많은 골치를 앓게 될 것이라고 확언하셨다.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라고 말씀하셨다(31:16).

 

신실치 못한 정탐꾼들에 의해 주도된 반역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옷단에 청색 끈을 포함한 술을 달 것을 지시하도록 만들었다(15:37-40). 그분은 이것이 그들이 눈과 마음의 유혹을 좇는 대신에 그분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행함으로써 그분과의 거룩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셨다(39). 그들은 하나님 대신에 정신과 감정과 감각을 대표하는 그들의 마음과 안목을 따르려는 강력한 경향이 있었다. 어떤 나무의 열매가 하와에게 그러하였듯이,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 것들은 치명적으로 위험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도를 좇기만 한다면 안전할 수 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감각적 유혹의 급증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와 그분의 계시된 뜻 대신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따를 위험이 있다.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 이미 마음이 쏠린 후에는 이를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보아도 적당히 합리화시켜 버리고 만다. ‘결국 우리는 저 옛적 선지자들이 말하고 있었던 때보다 훨씬 모든 것이 발달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 누구도 제대로 오늘날 21세기의 상황을 이해하고 말할 수 없다. 수천년전 성경에서 강조하였던 옛 청사진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다.’ 이 말이 맞는가?

 

그렇지 않다! 지혜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1:9). 이것은 순환론적 역사관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지식과 기술의 진보는 기본적 인간 본성을 변경시킬 수 없다. 세부사항은 바뀔지 모르지만, 유혹들과 그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는 동일한 범주들을 갖고 있다. 예수께서 담배, 자동차, 그리고 인터넷이 나오기 전인 2천 년 전 로마제국 시대에 사셨지만,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4:15). 우리가 여전히 동일한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성경이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처럼 똑같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거룩한 원칙들의 계시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것들을 무시하거나 피하거나 충분히 강조하지 않는 것은 근시안적이고, 오만하며, 그저 우둔한 짓일 뿐이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이스라엘이 바알브올과 동침하였을 때, 그것은 거룩하신 남편의 의로운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25:3). 왜 하나님께서 속상해하셨을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집에 와서 보니 아내가 외간 남자와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6:34,35). 이러한 투기는 째째한 시샘이 아니다. 이것은 쌍방이 엄숙하고 영원한 사랑의 언약으로 그렇게 하기로 동의한 배타적인 친밀성에 대한 적법하고 열성적인 보호이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8:6,7).

 

 

주형식 목사는 다수의 교회와 교단행정직에서 봉사를 하다가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Andrews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octor of Ministry)를 취득한 후 귀국하여 현재 묵동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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