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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一切唯心造’

운영자 | 기사입력 2013/07/05 [12:57]
하늘소풍길 斷想 3

오락가락 ‘一切唯心造’

하늘소풍길 斷想 3

운영자 | 입력 : 2013/07/05 [12:57]

오락가락 ‘一切唯心造’
 
▶ 5시간여 대모산 산책후 하산길 기슭에서 상치와 깻잎을 샀다. 상치쌈 저녁 생각에 입맛이 돌았다. 식후 담배맛도 기막힐 것 같았다. 대모산 하늘소풍길 금연이 4주째다. 5주전 으슥한 곳서 담배를 즐기다가 어디선가 나타난 아줌마의 항의를 받고난 이후다. 얼마나 담배냄새가 역겹고 불쾌했으면 멀리 떨어진 외진 곳까지 올라와 불평을 했겠는가? 둘째 주까지는 담배생각이 나면 ‘조금만 참다가 더욱 맛있게 핀다’는 생각으로 견뎠다. 고진감래란 거창한 사자성어까지 동원해가면서 말이다. 그런데 셋째 주부터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산속에선 흡연욕구가 사라졌고 혹 담배냄새를 맡게 되면 그 아줌마처럼 거부감이 생긴 것이다. 간사한 내 마음과 습관에 나도 헷갈린다. 뭐가 진짜 내 마음과 습관일까. 오락가락하는 게 마음과 습관의 본질이지 싶었다. 저녁밥상을 앞에 두고 다섯시간 소풍동안 역겨움의 대상이었던 담배가 오랜 고통 끝에 맞이하는 감미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데 그 마음이 오락가락하니 오락가락하며 형성되는 게 일체의 세상만사인 듯도 하다. 몸에 밴 습관 역시 오락가락하니 습관이 좌우하는 운명 또한 정해진 것 없이 오락가락하는 것인가 싶다. 세상과 개인의 운명이 정해진 방향과 틀이 없다는 것이다. 애연가들의 흡연권(吸煙權)과 금연자들의 혐연권(嫌煙權)이 내 마음과 습관 안에서도 오락가락 갈등을 일으키니 세상 속에서는 이들의 권리가 상충되며 해소할 수 없는 갈등과 다툼을 불러일으키는 것 아닌가. 신앙처럼 금연론을 펴는 금연전도사들에게 애연가들은 마치 광신도같은 느낌을 받는다. 반면 담배예찬론을 펴는 애연가들에게 금연전도사들은 마귀와 사탄을 대하듯 한다.
 
▶ 가정환경과 문화에서 생성된 가풍(家風)의 현상도 흥미롭다. 가풍을 따르는 가족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못마땅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혼을 통해 다른 가풍과 마주치면 자신의 가풍을 고수하며 맞부닥친다. 몸에 밴 습관과 마음가짐이 다른 습관과 마음가짐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자신의 가풍과 다르면 옳지 못하고, 비상식적이고, 천박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다툼과 갈등을 일으키고 급기야 갈라서는 경우도 많다.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그런 세월을 겪으며 새로운 가풍을 형성하데 되고 그 틀 안에서 사고하고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전되고 바람직한 가풍이 될까? 오락가락하면서 진화되는 것일까, 오락가락 반복하는 것일까.
 
▶ 사회풍속과 제도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어느 사회나 이단자는 있기 마련이지만 다른 사회와 풍속을 만나면 하나같이 그들을 오랑캐, 야만인, 이방인 취급을 하게 된다. 식사, 복장, 두발 등 모든 생활방식이 이해되질 않는다. 지질과 기후 등의 환경과 역사, 그에 따라 형성된 자연스런 생활양식과 전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할 ‘족속’ 쯤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가 부족과 민족, 국가 차원으로 영역을 넓혀 간다. 그리고 오랑캐, 야만인, 이방인을 무찌르기 위한 분쟁과 전쟁을 불사한다. 영토와 자원, 양식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기도 하지만 공생․공유 아닌 쟁탈로 번지는데는 이해할 수 없는 이질감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 절대적 신념인 종교를 개인의 마음과 습관, 가풍, 사회와 민족․국가의 풍속과 제도와 빗대 보는 것은 부정한 일일까. 지역과 환경, 그에 따른 심성과 습성에 맞춘 신심(信心)이 종교라는 생각을 해 본다. 종교심은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경건하고 숭고함이 있기에 그만큼 한치의 양보와 변질을 용납못하는 마음자세이자 습관이 됐을지 모른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마음과 습관이 오락가락해 다양한 분파와 교파가 생겨나게 마련일 게다. 그러나 가지를 쳐서 나온 분파와 교파는 진리에로의 진화라기보다는 진리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반복을 거듭한다. 차라리 인류역사 초기 순수하고 경건한 신심이야말로 모든 종교의 기본적인 신앙이란 생각까지 해 본다.
 
▶ 숲속 소풍길에서 부는 바람이 유난히 시원하고 상쾌했다. 역시 무더위를 식혀주는 데는 산바람만한 게 없다며 흡족해 했다. 그러나 이날은 기온이 26도에 그쳤다고 했다. 일체유심조, 참으로 바람직한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가 ‘즐거운 꿈’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사는 인생을 한 판 꿈에 불과하다 했듯이 꿈과 현실, 죽음과 삶, 옳고 그름, 싫음과 좋음을 구별없이 오락가락 하며 사는 게 옳고 바람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과 습관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각자의 가풍과 사회풍속, 종교에 순응하며 거역하지 않고 사는 것이 절대 진리의 삶이 아닐까. 다만 모든 것은 이단, 배척시될 게 아니라 순리대로 형성되어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안의 오락가락함이 오히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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