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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형 범종교시각
경자년 설 기도문을 힘겹게 작성하며
하늘소풍길 단상
기사입력: 2020/01/25 [11:0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신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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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구차·비루한 모습을 희망·활력으로도 바라보자 

 

근래 설 기도문 작성은 즐거웠다.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들께 평소엔 지나치는 추모와 감사의 뜻을 새기는 한편 봄날의 새싹과 같은 손주들과 그들 엄마아빠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뿌듯했기 때문이다. ‘잔소리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기도형식으로 자연스럽게, 공식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고 기도와는 먼 생활을 하는 내가 설 기도만큼은 진지하게 올리는 모습을 아내가 흐믓하게 지켜본다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새해 설 기도문 작성은 무척 힘겹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이미 주제를 정하고 법화산 산책 때마다 생각을 다듬었는데 애들과 따로 마곡 살림을 차린 첫해인 경자년 설 기도문은 석달 그믐날에도 주제가 잡히지 않았고 그 내용에 있어도 회의감이 들었다. 그동안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가 그저 교과서적, 형식적이고 내 본심을 담기보다는 위선은 아니었나 하는 낭패감도 들었다. 그 낭패감의 원인을 3개월 된 이곳 마곡 생활에서 아직 심신의 안정을 찾지 못한 탓으로 돌려본다.

 

법화산 때보다 마음챙김의 시간이 되지 못한 마곡 생활

 

용인 법화산에서의 하늘소풍길 단상은 내게 마음챙김의 시간이었고 건강한 심신을 만들어주었다. 이곳 마곡에서도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소위 강서 10경을 모두 답사했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코스를 물색했다. 그게 3개월이 걸렸고 대충 산책코스를 정했다.

 

평일에는 서울식물원 가로질러 한강나들목 지나 가양이나 구암나들목으로 다시 빠져나와 궁산 거쳐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코스다. 여유있는 주말과 공휴일에는 서울식물원 가로지르고 길건너 서남환경공원 메타세콰이아 숲길로 들어선 다음 치현산 거쳐 개화산 일대를 도는 코스다. 개화산 둘레길 1,2,3코스를 다 둘러본 최근에야 1,2코스를 돌다가 개화산역쪽으로 내려와 방신시장에 들르는 산책길로 굳혀졌다. 전통시장 둘러보며 잡채, 만두, 생과자 등 주전부리 장보기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화산 하늘소풍길 산책만큼 마음챙김의 시간은 되지 못했다. 그사이 졸지에 당한 입원과 수술 과정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곳에서 깊은 사색을 가져다 주는 4계절 변화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아직 겪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곧 떠나야하는 곳이기에 더 이상 정을 주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섣달 그믐날에서야 설 기도문 주제와 내용을 마련하기 위해 내가 가장 선호하게 된 코스로 하늘소풍길 산책에 나섰다. 그러나 감기몸살을 앓고 있는 아내가 부탁한 방산시장 장보기를 할 때까지 아무런 기도문 구상도 못했다.

 

설날을 앞두고 한산한 산길과 거리였지만 방신시장은 붐볐다. 시장 앞 로또 명당도 붐볐다. 강서구 사람들이 모두 복권판매점과 전통시장에 몰린 듯했다.

 

한산한 섣달 그믐 거리에서 유난히 붐비는 복권방과 재래시장에서의 단상

 

로또명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정성스레 번호를 체크한 다음 복권표를 들고 줄지어 서있었다. 자동으로 복권을 사는 사람들에겐 급행 줄을 따로 마련했다.

 

방신시장 안에서는 제대로 길을 걷지 못할 정도로 행인들이 넘쳤고 상인들의 호객소리와 바쁜 움직임이 보였다.

 

로또 명당에 줄선 사람들을 구차한 군상으로 볼 것인가, 꿈과 희망을 가진 이로 볼 것인가.

재래시장의 치열하고 악착같은 생활을 비루한 삶으로 볼 것인가, 활력으로 볼 것인가.

 

뒤늦게 사춘기의 상념에 젖어들었다.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기도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쁜 상념이었다. 아마도 편안하고 느긋한 법화산 산책길에선 로또 명당에 줄선 사람들의 희망과 재래시장의 활력만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쉽게 설 기도문도 나왔을 것이다.

 

이렇듯 내가 구차한 삶과 희망의 삶을 저울질 해보는 것은 내안에 비루함과 꿈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평온을 잃고 어수선하다는 증거다.

 

아닌게아니라 근래에는 성선설, 성악설도 헷갈린다. 대자연과 대우주를 산책하며 사랑과 아름다움, 숭고함을 체득했다고 착각했는데 요즘 내 안에 천사와 악마가 내재하고 있음을 본다. 이미 벗어났다고 느낀 나의 간사함, 비굴함, 추잡한 욕망이 꿈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난다.

 

잡채 식혜 등을 담은 검정 봉투들을 싸들고 덜레덜레 오피스텔로 들어서는 내가 구차스러운건가, 재미있는 생활인가?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스튜어디스가 젊고 아름다운건가, 구질구질 피곤한 직장여성인가.

 

이번 설은 왜 이리 어수선해 기도문 작성을 방해하는가. 왜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자꾸 위선으로 느끼게 만드는가.

 

이런 헷갈림과 어수선함은 아직 적응 못했고 또한 곧 떠나갈 집에서의 생활 탓으로 돌리자. 또한 설날에 찾아온 아내의 감기몸살, 손녀와 며느리의 독감이 더욱 그런 상황을 만들었을 게라고 치부하자.

 

이제 경자년 새해을 맞는 자정이 가까워진다. 아내와 애들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설 기도문을 작성해야 한다. 그것은 형식적이고 위선적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나를 위한 기도문도 되어야 한다.

 

조상과 부모에 대한 감사·추모기도만을 추구하던데서 2년 전부터 기복기도를 드리게 되었는데 새해 그러한 기도가 더욱 절실해졌다. 무조건 복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구하는 자에게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경자년 설날 기도문>

경자년 설날을 맞아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추모감사기도와 우리 가족들의 행복을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내와 서윤, 그리고 서윤 엄마가 병치레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떡국과 갈비찜을 차례상처럼 차려놓고 기도할 수 있는 여유와 힘을 주심에 더욱 감사합니다. 둘째를 갖게 된 하연네 가족들은 그곳 친척들과 건강하고 화목한 차례를 지낼 수 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이번 설날 기도문 작성은 힘들었습니다. 이곳 마곡생활에 적응이 안됐고 입원 수술의 과정을 겪은 탓인지 예전의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가 선뜻 나오지 않았습니다. 새삼스레 삶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헷갈림과 어수선함도 사춘기때처럼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섣달 그믐날 산책길에서도 기도문 주제와 내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개화산 하산길에 재래시장을 들를 때까지도 방향을 못잡아 자정을 넘겨 새해를 맞이하고서도 기도문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수선함과 헥갈림을 정리정돈하는 간구기도문을 작성합니다.

 

설날을 앞두고 한산한 산길과 거리였지만 방신시장과 그 앞의 로또방은 붐볐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지난 설에는 삶의 활력과 꿈을 떠올리고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기도문을 작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설에는 삶의 치열함과 구차함, 비루함을 떠올려집니다.

 

로또 명당에 줄선 사람들을 구차한 군상으로 보지 말고 , 꿈과 희망을 가진 이로 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재래시장의 치열하고 악착같은 생활을 비루한 삶 아닌 활력고로 보게 되길 기도합니다.

 

잡채 식혜 등을 담은 검정 봉투들을 싸들고 덜레덜레 오피스텔로 들어서는 내가 구차스럽지 않고 당당하고 재미있는 생활로 확신하길 기도합니다.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스튜어디스가 구질구질 피곤한 직장여성 아닌 젊고 아름다운 상징으로 여겨지길 기원합니다. 서윤 하연 해준의 미래 삶이 그들 엄마 아빠와 함께 힘든 역경으로 생각들지 않고 아름답고 멋진 찬란한 삶으로 비춰지길 기도합니다.

 

내안에 있는 비열, 비굴, 비루, 간사, 추잡한 욕망이 대자연 대우주에서 배우는 사랑과 찬미, 숭고함을 이기지 못하도록 기도드립니다. 내 안의 천사가 내 안의 악마를 극복하길 기원합니다.

 

다만 온갖 구차함과 구질구질함들이 악이라는 고정된 사고에 젖어들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내 안의 악마를 미워하고 자책하는 생활이 안되길 기도합니다. 성선(性善), 성악(性惡)이 공존하며 그 모두를 인정하는 가운데 성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사랑과 희망을 가지려면 악착, 치열함, 비루함도 인정하고 포용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길 기도드립니다.

 

아내와 며느리, 손녀의 병치레 같은 번거로움을 삶에 대한 아픔과 회의로 여기지 않고 그를 이겨내는 힘과 용기, 그리고 회복에서도 행복을 만끽하는 지헤롭고 긍정적인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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