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뉴스종합범종교가톨릭개신교불교민족종교해외종교이슬람생활 종교인의 성경 분석탐방 기획
전체기사 Trend & View 마음을 비춰보는 포토에세이 종교지도자 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편집  2020.09.30 [15:06]
守岩 칼럼
매일종교신문 공지 사항
안내데스크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저작권문의
구독신청
불편신고
독자투고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 보호정책
기사제보
守岩 칼럼
“마음자리가 ‘0’일 때 최상의 행복감”…이규항 ‘0의 행복론’은?
왕년 최고의 씨름·야구 중계캐스터 이규항, 인생길 돌고 돌아 ‘0의 행복’ 깨달아
기사입력: 2020/08/07 [15:08]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왕년 최고의 씨름·야구 중계캐스터 이규항, 인생길 돌고 돌아 ‘0의 행복깨달아 

 

올해 나이 20, 약관의 신예 이만기 장사가 초대 천하장사에 올랐습니다!”

 

1983417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천하장사 대회 중계는 KBS 1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됐다. 전국민이 열광했던 천하장사 결승전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가 바로 이규항 전 KBS 아나운서실장(82)이다. 197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부터 1982년 출범한 KBO프로야구, 이만기 강호동이 모래판을 뒤집던 천하장사 민속씨름 전성기 시절까지. 그는 1961KBS에 입사해 1997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정확한 국어 구사와 유려한 말솜씨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야구와 씨름중계 전문캐스터로 활약해 온 그는 유려한 말솜씨와 정확한 우리말 구사로 팬들에게 목소리가 익숙한 전설의 아나운서.

 

198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민속씨름대회는 이규항 아나운서의 아이디어로 탄생됐다. 그는 “1970년부터 KBS배 씨름대회를 중계하면서 씨름이 실내 스포츠로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하고 씨름인 김태성씨와 함께 씨름협회에 민속씨름을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초대 천하장사를 지낸 이만기 선수는 지금 생각해도 전무후무한 선수라고 회고했다.

 

씨름만이 아니었다. 이 전 실장은 야구전문 캐스터로도 명성을 날렸다. 197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는 물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군더더기 없는 정확하고 깔끔한 중계로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야구이론에도 해박해서 1977년 국내 최초로 출간한 야구 번역서인 미국야구는 야구인 이광환씨가 제주도에 세운 야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작고한 최동원 선수가 1981년 대륙간컵 대회에 출전했을 때 투수 마운드가 아닌 2루에서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연습투구를 할 정도로 연습벌레임을 확인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가 될 것임을 확신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네잎 크로바라는 노래로 당시 문화공보부가 주관했던 무궁화대상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가수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적도 있다. 아나운서를 포기하고 가수의 길을 갈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는 아나운서의 길을 선택했다. 두 번이나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것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1958년 고려대 국문과 2학년 시절 4학년으로 학력을 속여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지만 학력을 위조한 것이 들통 났고, 1961년 다시 아나운서 시험을 치러서 아나운서의 길을 걸었다. 지금도 그의 아나운서 2회 합격은 KBS 아나운서실에서 전설로 남아있다. 

 

퇴직 후 30년간 불교 중도, 유교 중용 등 동서양의 종교와 과학, 수학 연구

 

그런 그가 35년간 재직해왔던 KBS를 퇴직한 후 뜻밖에도 불교의 선()과 중도(中道)수학의 0’음식맛으로 풀어낸 부처님의 밥맛(동아시아)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일본에서 0의 행복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가 불교에 빠져들고, 활발한 저술과 강연활동에 나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 이규항 전 KBS아나운서실장이 ‘윤집궐중(允執厥中·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아라)’이란 말로 중용의 도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양위를 하면서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게 정치를 하라고 당부한 말이다.  

 

병상에서 만난 부처로 ‘0의 행복깨달아 

 

남부러울 것 없이 그야말로 잘나가는 아나운서였던 그가 인생에 고비를 맞은 것은 1990년이다. 인생에서 고비를 맞은 것이 50대 초반이었다 19908월 방송사로부터 아나운서 대상을 받은 그는 연일 축하파티를 열었다. 학창시절 유도 등 운동으로 몸을 다져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던 이 전 실장이었지만 황소가 호박넝쿨에 쓰러지듯 술에 무릎을 꿇었다.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도중, 심장에 극심한 고통을 느낀 그는 결국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에 실려와 수술을 받았다. 9월 베이징(北京) 아시안게임 KBS 아나운서 단장으로 내정돼 있었지만 수술로 출국은 무산됐다.

 

일반병실에 입원해 회복 중이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스친 생각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 이것이 바로 ‘0의 행복이구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법열(法悅·깨달음의 황홀한 기쁨)이 온 것이었다. 그는 살았구나!, 다시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 하는 기쁨이 아니었다“‘0의 평상심을 느끼게 해준 병상은 깨달음의 보리수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진시간이 돼 병실로 들어오던 담당의사가 이 전 실장의 소리를 듣고 수술 후유증인 것 같다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걱정했을 정도로 그의 행동은 기이(奇異)했다. 이 전 실장은 그러나 아시안게임은 놓쳤지만 부처를 만나 인생 2을 열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왜 ‘0의 행복이란 사자후(師子吼)를 토했을까. 자신의 마음자리를 플러스(+)와 마이너스(-) 그리고 ‘0’으로 해석했다. 병원에 실려와 수술을 받았을 때의 마음자리는 마이너스이다. 반대로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실 때의 마음자리는 플러스였다. 0의 마음자리는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이었다. 그는 좋아하던 술을 마시지 않아도 기쁠 수 있구나, 이런 행복감을 맛본 후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고 발견한 중도(中道)’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때부터 그의 인생 2, 불교공부가 시작됐다.

 

병상에서 부처의 매력에 빠진 그는 인생 2막을 부처의 삶과 깨달음을 공부하고 전파할 것임을 다짐했다. 1997KBS에서 정년퇴직 후 국내는 물론 인도, 네팔, 캄보디아. 중국, 일본 등의 사찰을 돌며 불교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1998~2000년까지 위성TV에서 일본에서 선동렬, 이종범, 이상훈 선수가 활약한 주니치 드래건스 경기를 매년 100경기 중계했다그 와중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사찰을 돌아다닐 만큼 나에게 있어 부처는 각별했다고 말했다.

 

이 전 실장은 자신이 병상에서 체험한 경험이 부처가 출가 전과 후, 그리고 중도를 깨달았을 때와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속세에서 태자로 지내면서 부귀영화를 누렸을 때 부처의 마음자리는 플러스이고, 왕궁의 담을 뛰어 넘어 출가한 후 극단적인 고행수도를 했을 때의 마음자리는 마이너스라는 식이다. 그는 부처가 양극단의 생활을 모두 경험한 후 중도의 깨달음을 통해 고행무익’(苦行無益)을 선언할 수 있었다부처는 다른 인간들이 경험하지 못한 0(중도)이라는 제3의 마음자리를 깨달으셨기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부처의 매력에 빠진 이유는 스승인 조지훈 시인의 영향이 컸다. 이 전 실장은 고려대 국문학과 재학시절 조지훈 교수의 수업은 빠지지 않고 들었는데 말이 국문학이지 불교학을 배웠다은사인 조지훈 시인의 영향을 받아 불교공부를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30년 불교공부 후 부처님의 밥맛출간 

 

이렇게 불교공부에 매진하다 세상에 선보인 책이 2008년 출간된 0의 행복이다. 병상에서 0의 행복을 깨닫고 인생 2막을 부처와 함께 하겠다고 다짐한 지 약 30년 만인 일흔 살에 약속을 실천한 셈이다. 이 책은 2011128일 일본어판이 출간됐고, 201858일 내용이 보강돼 부처님의 밥맛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는 책에서 부처의 중도사상을 음식에 비유해 설명했다. 입맛을 자극하는 육류는 플러스 음식으로, 두부와 채소류 등은 마이너스 음식으로 분류했다. 물과 밥 그리고 차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아닌 0의 자리 음식으로 설정했다. 물과 밥, 차를 0의 자리에 놓은 것은 이들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승이 없었던 부처는 달지도(+) 쓰지도(-) 않은 구수한 밥맛(0의 맛)을 통해 중도라는 장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인들이 잘 걸리는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과 암 등은 잘못된 식생활 때문이라며 부처가 깨달은 중도는 어렵고 거창한 철학이 아닌 우리네 삶과 밀접한 생활철학이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부처의 깨닫는 과정도 숫자 ‘0’으로 설명음식의 맛도 0으로 풀이해

 

이 전 실장은 KBS 퇴직 후 30년 간 불교의 중도(中道), 유교의 중용(中庸) 등 동서양의 종교와 과학, 수학을 연구해 중도중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이 책을 펴냈다. 그가 내놓은 염불(念佛)’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다. ‘()’자를 풀어보면 지금() 마음()’이란 뜻으로, 염불은 바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자리의 위치를 처음 본래의 마음으로 이동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 사상의 본질이 바로 숫자 ‘0’과 같다. 수학시간에 배운 x, y 좌표 평면이 있다면, 우리 마음자리는 시시각각 양수(+)와 음수(-)를 오가고 있다. 나의 경우 음주와 쾌락의 생활에서는 플러스(+)에 있었고,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는 마이너스(-)에 있었다. 병상에서 내 마음자리가 ‘0’이 되었을 때 비로소 최상의 평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 카필라국의 태자였던 석가모니 부처가 깨닫는 과정도 숫자 ‘0’으로 설명한다. 이 전 실장은 붓다는 29세에 출가 후 56개월간 몸을 극도로 괴롭히는 고행(苦行) 수행을 한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이후 고행수행을 포기하고, 쌀로 지은 우유죽을 먹으며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선정(禪定)에 들어간다. 이른바 재수(再修)’를 해서 40일 만에 깨달음을 얻게 된다. 태자 시절 세속 최고의 단맛’(+)을 보고, 출가 후 고행하며 최고의 쓴맛’(-)을 본 다음, 3의 세계인 중용(中庸)에서 최고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중도란 단순히 평균적인 중간값이 아니다. 양극단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생활을 체험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깊은 깨달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에서 일상생활에 밀접한 음식의 맛으로도 중도를 설명한다. 밥맛, 물맛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최고의 ‘0의 맛으로 설정하고, 플러스(+) 쪽에 붉은살 생선, 과일, 해산물을 넣고, 마이너스(-) 쪽에는 김치, 고추, 씀바귀, 고수까지 도표로 꼼꼼하게 정리한 도표는 매우 흥미롭다.

 

이 전 실장은 호박 맛을 알게 되면 인생의 철이 든다고 한다. 호박보다 더 맛없는 인생의 맛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씀바귀나 고추, 보리밥이 마이너스(-) 성질을 갖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맛과 취향에는 우열이 없다. 우리 인생에도 플러스의 1세계, 마이너스의 2세계, 0의 제3세계를 무차별심(無差別心)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0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불교는 바로 일상의 철학인 셈이다라고 했다.

 

이 전 실장은 “0을 발견한 붓다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수학자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기호를 말할 때는 공일공(010)’으로 읽고, 숫자를 말할 때는 영점일’(0.1)로 읽듯이 부처의 ()’사상과 숫자 (0)’은 같은 말이라는 뜻이다.

 

그는 석가모니 부처가 득도한 시기는 B.C 6세기이다. 그로부터 1000년 뒤인 A.D 6세기경에 인도에서 숫자 ‘0’이 발견됐다. 부처의 /중도 사상이 인도인들의 사유를 지배한 결과, 0이란 개념이 잉태된 것이다. 0이 발견된 후 현대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인도에서는 건물의 가장 아랫층을 0층으로 부른다. 0층이란 개념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0은 다른 숫자가 감히 뺄 수도 나눌 수도 없고, 아무리 큰 숫자도 0에 곱하기만 하면 없어진다. 이런 연유로 0은 수학의 세계에서 가장 뒤늦게 편입됐으면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적인 숫자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인 0은 불교적 세계관으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늦깎이 불자’ ‘돈키호테 불자로 자칭불교지식 후학들에게 전하고자 계속 공부 

 

집필 도중 너무 힘이 들어 아내에게 밥맛이나 0의 키워드는 달라이라마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달라이라마가 이 책을 읽으면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가 아내로부터 제발 그런 말을 집밖에서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를 받았다는 그는 자신을 늦깎이 불자’ ‘돈키호테 불자로 칭한다. 책을 내기 위해 수많은 사찰과 국가를 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하고 스님들과 석학들에게 배운 불교지식을 정리해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다며 불교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불상들과 달리 국보 83호와 일본국보 1호인 반가사유상의 엄지발가락이 벌어지면서 뒤로 젖혀진 이유가 부처가 중도를 깨달은 순간을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등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을 했다이를 모든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책 출간 이후 조계사, 봉은사 등 사찰에서 특강을 진행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전 실장은 지금도 서울 강남에 있는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1주일에 3시간 정도 강의를 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없다부처가 깨달은 중도는 어렵고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생활철학이다. 부처의 중도사상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라며 남은 인생 동안 부처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해 인생 2막이 끝날 때 커튼콜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부처가 태어나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본 뒤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은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외친 것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귀하고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생명들이 모두 절대적 존재라는 생명존엄을 강조한 것이라며 우리 젊은이들도 천상천하 YOUR ()(ZONE)’을 만들어 남이 아닌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전 실장은 재직시절 KBS한국어연구회 회장으로서 퇴직 후에도 올바른 우리말 발음법 관련 책과 강의도 계속해오고 있다. 표준한국어발음사전(공저) 편찬에 참여한 그는 지금도 걸어 다니는 발음사전으로 불린다. 그는 특히 표의문자로서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가 많은 한글의 경우 장단음(長短音) 구분을 잘 해줘야 명확하게 뜻을 전달하고, 리드미컬한 우리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TV뉴스에서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럴 때는 자를 장음으로 발음해야 한다. 그런데 를 단음으로 짧게 발음하면 일본에게 먹는 사과’(apple)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 돼 우스꽝스럽게 돼버리고 만다. 전세계 공영방송에서는 국민들에게 교육용으로 표준어 발음을 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요즘 우리 TV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들이 너무 공격적인 말투, 거친 비속어를 많이 써 TV소리가 듣기 괴로울 때가 많다고 일갈했다.

 

이 전 실장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이란 새로운 문자를 가르치고(훈민·訓民), 올바른 발음(정음·正音)을 가르친다는 뜻이라며 한글이란 말에서 문자만 가르치고, 정확한 우리말 발음과 음악성 교육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한국어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 매일종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카카오톡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광고
광고
  안내데스크신문사소개광고안내저작권문의구독신청불편신고독자투고제휴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 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범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
회장 이옥용 /발행-편집인 신민형 / 양형모 상임고문 / 편집국장 이부평 /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은나
우) 140-846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70번지 (83길 21)
대표 전화: 02-703-8267 | 팩스: 02-3211-4419 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등록번호:서울 (아)01319(범종교신문 등록 2009년 9월 1일,2013년 6월 15일 제호변경)
기사제보 : minhyung-s@hanmail.net
Copyright ⓒ 2009-2013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