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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개천절, 바로 세워야…제정 과정과 의미 등 재인식 필요
개천절의 의미 점차 퇴색…국난의 시기 독립군처럼 상고사와 단군에서 찾으면 어떨까
기사입력: 2020/09/30 [11:5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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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의 의미 점차 퇴색국난의 시기 독립군처럼 상고사와 단군에서 찾으면 어떨까  

 

하늘이 열린 날인 103일 개천절(開天節)2020년 올해는 4353주년을 맞는다. 특히 올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펜데믹)으로 정부가 이날 보수단체 행사의 자제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음에도 일부 단체들의 광화문 집회 강행 여부를 놓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개천절의 역사는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3일을 개천절이라 이름 짓기 시작한 것은 대종교(大倧敎)에서 비롯됐다. 1909115, 서울에서 나철(羅喆) 대종사를 중심으로 대종교에서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 이후,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개천절 행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상하이(上海) 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였고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했다.

 

개천절에 대한 관심 갈수록 희박해져가장 오래된 단군 초상화 발굴

 

우리 국민 남녀노소를 떠나 개천절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개천절은 나눠진 남북이 동시에 인정하고 기념하는 유일한 민족 명절이기도 하다. 또한 단군(檀君) 초상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발굴돼 새로운 환기의 기회를 맞고 있다. 색동치마를 입은 모습의 단군 초상화가 공개된 것이다. 조선 후기인 1883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단군 초상화를 2019926일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대전시실에서 열린 단군문화포럼 주최 독립운동의 상징, 단군 영정 전시회에서 임채우 단군학자료원장이 공개했다. 임 원장이 발굴한 단군 초상화의 크기는 대략 가로 51, 세로 80이다. 고목나무 의자에 앉아있는 단군은 색동치마를 입고 있다. 임 원장은 색동치마는 고구려 수산리 벽화에 나오는 왕족의 의상과 형태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엄숙한 노인이 아니라 씩씩하고 우람한 인상을 가진 장년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도 이 초상화의 특징이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 새겨진 그림에 관한 정보 화기(畵紀)광서 9(1883) 계미 10월 봉안(奉安)’이라고 적힌 것에서 그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다. 임 원장은 충남 문화재자료 제369호이자 1920년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부여 단군 영정보다 더 오래된 현존 최고(最古)의 단군 초상화라고 밝혔다. 이 초상화는 현재 북한 지역인 평안도 은산의 단군묘에 보관됐다가 이후 우리나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임 원장은 말했다.

▲ 1883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군 초상화. /임채우 단군학자료원장 제공    

 

개천절, 대종교 기념일로 봐야하나매년 태극기 게양 논란

 

개천절(開天節)을 맞아 전국 곳곳에 태극기가 계양된다. 하지만 매년 개천절만 되면 태극기 게양과 관련한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이날은 이름처럼 '하늘이 열린 날'을 뜻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로 알려진 단군 강림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날을 고조선 건국기념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개천절이 대종교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국경일 지정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개천절이 종교기념일이라는 것이 논란의 요지이다. 성탄절이나 석가탄신일은 국경일이 아니기에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다수 우리 국민은 개천절을 종교적인 날로 인식하지 않으며 민족 명절의 뜻으로 생각하기에 해당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다.

 

개천절은 단군을 기념하는 날로 대종교 정전(正典)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따르면 단군이 태백산에 강림한 날이 바로 103일이다. 이날은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로 태극기를 게양한다.이같은 기원(起源) 탓에 일각에서는 국가에서 종교기념일을 국경일로 지정한 부분을 문제 삼는다. 이에 따라 태극기 게양에 대한 설전도 벌어진다. 이러한 논란에 실상 개천절은 종교기념일이 아닌 민족명절에 가깝다는 해석이 주로 제기된다. 우리나라 민족 역사가 바로 이날 시작된 것으로 보는 까닭에서다.

  

왜곡된 개천절진정한 의의 되돌아봐야

 

개천절은 하늘의 아들인 환웅이 내려와(下降) 땅의 어머니인 웅녀()와 만나 단군왕검을 낳고, 그 후손들이 신시(神市)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함) 사상을 펼치면서 뜻 깊은 역사의 대장정을 시작한 날이다. 개천절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모든 나라가 다른 이름과 형식으로 기념하고, 전승시켰다. 근대에 들어 민족종교이며 독립전쟁의 산실인 대종교(大倧敎)에서 음력 103일을 개천절로 정했다. 당시 대종교인이 대부분인 임시정부의 의정원에서 건국기념일로 제정한 후 해마다 행사를 열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1949년에 양력 103일을 개천절로 제정했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와 단일민족임을 습관적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왜 정체성의 핵심인 개천절이 제정된 과정과 의미, 역할은 물론 일제(日帝)가 어떻게 왜곡했는지 잘 모르는 것일까. 또한 왜곡된 개천절의 뜻을 당연한 듯 여기는 것일까.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한민족은 고구려가 멸망한 지 천수백년 만에 가장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다. 30년 가까이 위정척사, 개화운동, 동학농민혁명을 비롯한 자강운동과 독립협회 결성, 대한제국 선포, 애국계몽운동, 의병투쟁과 독립청원 등 다양한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일부 선각자와 애국자들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무장력(武裝力) 등 실력 양성과 강한 결사체 결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다. 특히 자의식에 충실한 사상과 신앙이 필요했다.

 

이에 한반도에는 동학을 시작으로 증산교, 원불교, 보천교 같은 민족 종교가 속속 일어섰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백성들의 삶이 유린되던 때였다. 대체로 종교란 교주의 힘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와는 다른 종교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홍암 나철(羅喆) 대종사가 고려 중엽 이후 700여 년간 끊긴 우리 고유 신앙을 일으켜 세운 대종교(大倧敎)가 그것이다. 1907년 을사오적(乙巳五賊: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명의 매국노를 일컬음)을 사살하려는 거사에 실패한 나철 대종사는 독립운동의 방략과 새 세상의 모델로 단군의 존재와 고조선의 중요성을 자각했다. 이에 1909115일 단군교(檀君敎)를 창시했다. 단군교는 창시가 아니라 중광(重光·다시 밝힘)’이라 했다. 나철 대종사는 1910730일 던군교를 대종교(大倧敎)’로 이름을 바꿔 공표한 후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개편했다

▲ 홍암 나철 대종사  

 

그러자 일제는 대종교가 창시될 때부터 위험세력으로 판단했다. 1915년 일본이 총독부령으로 종교 통제안을 공표할 당시에는 대종교를 종교를 빙자한 독립운동 단체라고 허가를 취소하고 탄압했다. 이에 나철 대종사는 1916년 음력 8월 한가위 구월산 삼성사에서 자진 순국했다.

 

우리나라는 단군왕검 시대부터 하늘을 숭배해왔다. 주신은 상제(上帝·하느님)이고, 단군은 교조(敎祖). 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백제 교천’, 신라·고려 팔관회같은 제천의식이 다 같은 것이다. 그동안 중국·인도, 서양의 외래 종교에 밀려 묻혀 있었다. 하지만 식민사학자들과 맞서 우리 역사를 연구한 장도빈·안재홍·정인보 등의 역사학자들과 언론인들, 아리랑 작곡가인 나운규, 조소앙·이시영·신규식·김규식·이동녕 등의 임시정부 요인들도 대종교인이었다. 뿐만아니라 기독교인인 이승만과 안창호 등도 단군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민족운동 세력은 대거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다. 만주는 독립전쟁을 벌이기에 전략적으로 가치가 높았고, 고조선·고구려·발해의 땅이었다는 역사적 연고는 새 나라를 건설하는 명분과 자신감, 에너지를 줄 수 있었다.

 

독립운동에서 중요했던 단군과 고조선·고구려 역사

 

독립운동은 공산주의가 확산하기 전까지는 민족의 정체성을 중시해 단군을 구심점으로 뭉쳤다. 이에 단군과 고조선·고구려 역사를 중요시했다. 나철과 신채호의 대화를 보면 역사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우리의 혼()을 단군이라고까지 했다. 조소앙(김교헌 설도 있음)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대한독립선언서에는 우리 단군대황조께서 상제(上帝)에 좌우하시어 우리의 기운(機運)을 명하시며, 세계와 시대가 우리의 복리를 돕는다라는 표현도 있다. 또한 민족세력은 일본에 대항하고, 중국(·)의 속방의식(屬邦意識)에서 탈피하려면 성리학이나 서구사상, 일본의 논리가 아닌 전통사상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단군신화’,‘홍익인간등을 중요시했고, ‘천인합응의 논리, ‘대동사상’ ‘삼균주의’, 심지어는 무정부주의조차 수용했다.

 

허지만 일본인들, 일부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은 단군은 허구의 존재이고, 추상적이라고 왜곡했다. 이에 세뇌당한 우리 국민은 현재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다. 더욱이 근래에는 문명의 본질과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 민족주의의 오해, 일부 종교의 영향 등으로 단군의 존재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졌다. 고조선의 실체와 함께 개천절의 의미도 점차 더욱 퇴색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그렇지 않다. 한민족이 처한 최대의 위기상황 속에서 독립전쟁에 생명을 바치며 시대정신에 충실한 삶을 산 이들은 단군을 우러르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추구한 목표는 홍익인간, 한민족의 정체성이 구현된 진보된 세상이었다. 독립군의 독립선언서와 다물단의 조직은 긍정적인 역사를 재생·반복해 새 세상을 창조하려는 의지의 구현이었다(윤명철, 단군신화, 또다른 해석). 올해 개천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할 것인가. 계속되는 코로나19 펜데믹과 기나긴 장마, 유례없는 태풍 등 자연재해, 경제 침체 등으로 인해 국난에 처한 상황이다. 역사에서 한 집단의 흥망성쇠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따라서 질적으로 쇄신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치명적이지 않은 상처와 붕괴 직전의 위기를 체험하는 기회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책 없이 시대의 희생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가능한 혼신을 다 바쳐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해결의 방책과 모델,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독립군들처럼 우리 역사와 단군에서 찾는 것이 어떨까. 향후 남북 평화통일과 민족 화합의 계기가 우리 겨레 고유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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