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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민속신앙과 불교의 혼합현상이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下)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10/29 [08:03]
현대사회에서 불교와 민속신앙 간 협업 관계

삼국시대의 민속신앙과 불교의 혼합현상이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下)

현대사회에서 불교와 민속신앙 간 협업 관계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20/10/29 [08:03]

현대사회에서 불교와 민속신앙 간 협업 관계 

 

1) 민간신앙 스스로 불교의 신격들을 전통적인 민간신앙 속으로 영입

 

혼합은 서로 다른 철학이나 신학을 절충하거나 결합하여 새로운 이론이나 교리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서양에서는 1세기에서 5세기까지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이교 통일의 시도를 들 수 있다. 1세기경 알렉산드리아 등지에서 유대교의 신학자들은 플라톤 철학을 빌려 신의 개념을 설명하는가 하면, 신플라톤주의를 대표하는 플로티노스도 플라톤 철학이 기독교 정신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또는 윤리적·종교적 영역에서 어떤 유사성을 갖는지를 밝히려 했다. 서로 다른 학설이나 교리를 절충·조화시키는 일을 의미한다. 종교적 혼합현상은 다른 동아시아문화,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도 널리 생겨난 종교 현상이다.

 

한국 사찰의 경우도 칠성각과 산신각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이는 북두칠성과 산신이 불교가 습합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다른 문화의 사상이나 종교가 그것이 발생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 문화권으로 들어갈 때 그 문화의 옷을 입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불교를 유입하는 과정에서 중국사상 중에서도 도가사상을 빌려 불교의 개념을 설명했다.

▲ 유교, 불교, 도교 삼 교의 공통분모를 모색한 것은 어떠한 종파나 이질적인 사상체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적 심성이 면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원효의 원융회통(圓融會通), 의천의 선교합일(禪敎合一),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 율곡의 이기지묘(理氣之妙) 등은 상반된 상대를 부정하지 않고 화합과 평화를 지향한 선각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은 동화사 보조국사 지눌의 진영. 보물 제639호.    

 

우리 역사에서 혼합적 현상으로 삼국시대 국가의 왕권 강화 차원에서 유교, 불교, 도교 삼 교가 수용되었을 때를 보더라도 큰 충돌과 대립 없이 진행된 수용의 양상은 배타와 차별이 아닌 다양한 문화를 역동적으로 포용하고 조화하는 특질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즉 한민족 문화의 기층에는 종교 간의 분열과 대립을 조화하는 포함 삼교의 문화적 특성이 선험적으로 내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치원을 비롯하여 김시습이 삼교의 융화를 지향하였고, 휴정은 󰡔삼가귀감(三家龜鑑)󰡕을 저술해 상이하게 이해되었던 삼 교의 공통분모를 모색한 것은 어떠한 종파나 이질적인 사상체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적 심성이 면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아울러 원효의 원융회통(圓融會通), 의천의 선교합일(禪敎合一), 지눌의 정혜쌍수(定慧雙修), 율곡의 이기지묘(理氣之妙) 등은 상반된 상대를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면서 화합과 평화를 지향한 선각자들의 노력을 가늠하게 한다.

 

동해안·경상도 지역의 무속은 훨씬 불교적인 영향이 강하다. 우선 굿당 자체의 장식이나 신당의 구성이 불교적이다. 신단을 불화나 조화로 장식할 뿐만 아니라 팔 보살을 그린 신화를 여기저기에 걸고 맨 중앙에는 극락문을 그려 붙인다.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는 탑 등을 만들어 걸어 두었으며, 굿당에서 밖으로 줄을 매고 바깥 기둥에 보신개라는 술이 달린 장식을 하고, 용선을 걸어 놓는다. 신단에는 경이 위패를 꽂는데 이것은 불교사찰의 영단과 비슷하다. 또 많은 거리마다 불교 경문을 외우고는 한다.  

 

불교적 특색이 강한 굿(석 또는 거리에 해당함)으로 별신굿 가운데에 시준 굿이 있고, 오구굿의 문 굿이 있다. 시준이라 세존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이 <석가세존>을 의미하는 불교적 신명을 말한다. 서울 무녀의 불사 맞이와 마찬가지로 무녀가 장삼을 입고 고깔을 쓰고 염주를 목에 걸고 바라를 들고 노래와 춤을 추는 것이 특징이다.

 

무속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신격으로는 자연신 외에도 역사상 영웅을 비롯하여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단군, 신라, 고구려, 백제, 조선조에 이르는 동안 건국 조,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이 주로 대상이다. 최영, 김유신, 계백, 남이, 임경업 장군가 있다. 최근에는 맥아더 장군을 비롯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몸 주신으로 하는 무속인들이 생기고 있다. 그 외 각 종교의 창교자 내지는 지도자도 등장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붓다를 비롯하여 여러 보살, 원효, 나옹, 사명당, 서산, 약사보살로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을 모시기도 한다. 그 외 유교에 공자, 기독교의 예수도 예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존에 연구자들은 무속인들이 신령으로 하는 대상들이 원한 맺힌 삶을 살았던 사람들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현장과 괴리된 관념적 연구성과다. 원효, 나옹, 이성계, 김유신 등 실존 인물이다. 무속인에 있어 몸 주신은 원과 한을 푸는 것이 무속의 본질이란 의식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특히 민간신앙에서 부처님으로 통칭하는 석가모니와 삼불제석은 천신과 함께 최상의 신으로 신앙이 된다. 이처럼 민간신앙에서 불교의 신격을 신앙하는 것은 무속인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며 무신과 경계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민간신앙 스스로 불교의 신격들을 전통적인 민간신앙 속으로 영입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주로 시행되고 있는 한양 굿 열아홉 거리 가운데 5번째 <중상거리>의 일부다. 강원도 금강산에 사는 스님이 절에서 내려오는데 시주에 동참하면 아이를 점지하고 수명장수를 관장하는 아마타 부처님께 지극 발원하고 있다.

 

2) 외래종교인 불교가 한국에 들어와 한국적 종교로 변용된 모습

 

한국에서 불교와 민간신앙의 혼합 시기는 대체로 진평왕ㆍ선덕왕 이후로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은 이때부터 불교의 대중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불교는 한반도에 유입된 이후 쉽게 포교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외래종교인 불교가 한국에 들어와 각기 신관ㆍ제의ㆍ사제ㆍ종교적 사상체계ㆍ신도의 태도 면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수수관계가 이루어져 한국적 종교로 변용된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은 외래종교로서의 생존이 전통적인 한국의 종교적 토양을 떠나서는 살아나가기 어려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변용된 원인은 그 일차적 원인을 무속과 불교가 그 기저에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런 종교적 미분성의 기반을 지닌 체 불교가 한국적 종교 토양 위에서 성장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재래의 전통적인 민간신앙의 요소가 불교에 들어가고, 이렇게 불교와 민간신앙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민간신앙 쪽에서 다시 불교의 종교적 위력이나 조직성을 원용하여 상호 수수적 혼합현상이 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토착 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혼합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유독 한국 불교만의 현상이 아니라 불교 전반의 특징이며 한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인도에서의 원형을 간직했다기보다 중국을 통해 들어오면서 일차적으로 노장사상과 유학()이 혼합된 중국화 된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중국의 전통사상과 불교가 혼합되어 새롭고 독창적 불교로 거듭난 후 한국으로 전래하면서 일차적으로 우리의 민속신앙과 혼합된다. 산신과 도교와의 습합, 칠성 신앙과 불교의 혼합은 불교와 도교, 민속신앙이 공존하는 가람()의 구도를 형성하는 것에서 바로 그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가 이들 종교와 혼합된 것은 단순히 외형적인 전각에서만 아니라 사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탱화에서 찾을 수 있다. 칠성, 산신, 독성, 용왕, 조왕신이다. 사찰에서 주로 치루는 49재와 굿의 구조적 유사성은 불교 속에 이들 민간신앙적 요소를 불교가 수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수용의 일차적 원인으로 절을 찾는 신자들의 요구, 이후 신자들의 수준에 의한 도입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식과 민간신앙이 혼합하여 깊이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행사로는 연등회와 팔관회을 들 수 있다.

▲ 연등회와 팔관회는 불교의식과 민간신앙이 혼합하여 깊이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행사이다.    

 

불교와 고유신앙은 한국 사회에서 동일체로 발전 

 

한국 사회에서 불교는 민족종교로 분류되기도 한다. 한반도에 전래한 시기만으로 한국 불교는 민족종교가 된 것은 아니다. 불교는 전래하면서 기존의 고유신앙과 크고 작은 갈등을 보여왔다. 그 한편에서는 고유신앙이 불교를 불교는 고유신앙을 받아들이며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성리학을 통치기반으로 두는 조선 정부의 출발은 불교와 고유신앙에 대한 박해의 시작이다. 한편 두 집단은 가까워지면서 의례와 생활 속에서 밀접한 관계로 발전하였다. 굿의 의례에 망자의 거리에는 승려가 참여하는 천도의식이 포함된다. 불교의 천도재에는 살풀이춤이 한 장르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협업적 관계는 무속인과 승려 간 가족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무속에서 모시는 신명 자체가 불교의 붓다와 동일시되면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부 무속인의 경우 각자 신명을 모신다. 그 둘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부관계는 원만하게 지속하지 않는다. 부부의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은 신들의 전쟁(몸 주신)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고유신앙에서 <성불 보았다>는 용어는 재가 집에서 의뢰가 성취하였을 때 주로 사용한다. 성불은 공덕을 이루었을 때 용어다. 결국, 불교와 고유신앙은 한국 사회에서 동일체로 발전하고 있다.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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