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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수 교무 “큰 사명감으로 무아봉공(無我奉公) 한평생”
50여년 간 전세계 55개국에 도움의 손길 전해…은퇴 후 지금도 캄보디아에 매월 640만원 지원
기사입력: 2021/03/04 [21:21]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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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 간 전세계 55개국에 도움의 손길 전해…은퇴 후 지금도 캄보디아에 매월 640만원 지원

 

2010년 노벨평화상 최종 10인 후보, 2016년 제20회 만해평화대상 수상,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여성신문 ‘2013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박청수(朴淸秀) 원불교 원로교무(84)는 지난 50여 년을 원불교 교무로서 한결같이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그의 삶은 양극화의 심화,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갖가지 첨예한 사회적 갈등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 희망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박 교무는 2007년 정년퇴임 후에도 국내외를 망라해 변함없는 애정과 열정으로 나눔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비록 그가 성직자라 해도 한 개인이 전세계 53개국을 찾아 소외계층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55개국을 대상으로 무지·빈곤·질병 퇴치에 힘쓴 것은 경이로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 서타원 박청수 교무 /사진제공=박청수 교무  

                              

2013년 5월25일에는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히말라야 3600고지의 북인도 라다크에서 열린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행사에 라다크불교협회로부터 수석귀빈으로 초청받아 참석했다. 행사는 인도 전역에서 거의 유일한 대규모 불교 행사로, 3만여 명이 모였다. 관례적으로 세계적인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나 림보체 등 불교계의 큰 어른을 귀빈으로 모셔 치러지곤 했는데, 박 교무의 경우 유일한 외국인이자 여성 성직자로는 이례적으로 귀빈으로 초청됐다. 지구촌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지도자로 인증한 것이다.

 

박 교무는 이 자리에서 원불교의 '세계주의에 바탕한 교리 실천과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 설립 배경'에 대해 설파했다. 그러한 그이기에 퇴임한 후에도 여전히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원광탁아원, 바탐방에 있는 무료구제병원과 오인환교육센터를 후원하고 있다. 그는 원불교 교정원 공익부에서 나오는 연금(23만 2500원)으로만 생활하면서 주거지 용인에서 서울을 왕복할 때 지난 8년 동안 늘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매월 600만원을 캄보디아 청수나눔실천회에 송금하고 있는 박 교무는 청빈한 삶을 실천하며 ‘지구촌 돕기’를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캄보디아 수렁에 빠져 발을 아직도 뽑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책 서문 중에)


종교 간의 높은 벽 허물고 삼동윤리 실천한 박청수 교무


한평생 남의 눈물을 닦아주고, 끝없는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온 박청수 교무. 이를 위해 종교 간의 높은 벽을 허물고 31년 동안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성(聖)라자로마을 한센병 환자들을 돕는 일을 헌신적으로 했다. 박 교무는 성라자로마을돕기회 자문위원으로서 1975년 첫 방문 이후 성라자로마을을 종교협력 통한 삼동윤리(三同倫理: 소태산 대종사의 일원주의 사상을 계승하여 정산종사가 선포한 윤리강령으로, 동원도리同源道理·동기연계同氣連契·동척사업同拓事業을 말함)의 실천 현장으로 삼고, 1978년부터는 성라자로마을돕기회 운영위원으로, 1989년부터 10년간은 성라자로마을돕기회 부회장으로서 성라자로마을 살림살이를 함께 의논하며 31년간 소외당한 채 살아가고 있던 한센병 환자들을 도왔다.


박청수 교무는 미감아(未感兒: 한센병 환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병에 감염되지 않은 아이) 장학금을 후원하기도 하고, 라자로마을 치유의 집, 라자로의 집, 아론의 집, 아록의 집 등 여러 건물이 지어질 때마다 건축금을 모금해 정성을 합하기도 했다. 이러한 박 교무에 대해 성라자로마을 한센병 환자들은 “우리 천주교에는 ‘박애’가 있는데 원불교에는 ‘박박애’가 있나 봐요. 그러기에 원불교 신자가 아닌 우리까지 항상 기억하고 이렇게 사랑을 베푸시죠”라고 했다.

 

박 교무는 성라자로마을 한센병 환자 돕기를 시작으로 경남 산청 성심인애병원 한센병 환자, 전북 이리(익산) 성모병원 한센병 환자, 경기 곤지암 성분도 장애자직업재활원, 강원 원주 중증장애자를 위한 천사들의 집, 성바오로수도회 은퇴 수녀들의 공동체 베타니아의집 등 천주교 여러 기관들을 도우며 종교협력을 통해 인류공동선(人類共同善)을 실천했다.

 

박청수 교무는 “종교인들끼리 교리 논쟁 없이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은 소외계층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넘나드는 일이 쉽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그 일에 힘써야만 종교간 평화가 유지되고 또 협력의 길도 열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일들을 시작할 때 그의 생각은 서로 다른 종교가 협력하여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나이 50대 초반부터 국내를 넘어 발길을 세계로 향했다, 세계 55개국에서 무지·빈곤·질병을 퇴치했다.


북인도 히말라야의 설산 라다크에 기숙학교와 종합병원을 세우고, 캄보디아에서 지뢰를 제거하고 고아원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샘물을 파주었고, 아프리카 15개국에는 의약품을 보냈다. 또한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지원했으며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 화산폭발, 허리케인 등 긴급재난이 생길 때마다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훈춘교당, 러시아 우수리스크교당, 히말라야 라다크 국제선(禪)센터, 인도 델리교당 등 해외 7개 지역에도 원불교 교당들을 설립했다.

▲ 박청수 교무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영화 ‘세상 받든 이야기-마더 박청수’ 포스터    

                     
세계 55개국을 돕고 9개의 학교와 병원을 세웠어도 그 일들은 오직 박 교무의 직관력(直觀力)에 의지하고, 직감(直感)이 판단의 척도가 되어 이뤄진 일들이라고 한다. 만약 회의를 거쳐 무슨 일을 하려고 했다면 단 두 나라도 돕지 못했을 것이라고 2020년 출간된 책 『세계 55개국에서 한 집 살림한 박청수 교무의 삶의 이야기가 있는집』(전 2권)에 밝혀놓았다. 그렇게 그는 마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이 일들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박청수 교무는 “삶이 불완전 연소되지 않도록 단속하며 살아온 역동적이고 치열한 삶이었다”면서 “나의 온정의 저수지가 마르지 않도록 물줄기를 대주었던 수많은 인연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나는 온정을 나르는 심부름꾼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박 교무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영화 ‘세상 받든 이야기-마더 박청수’가 2018년 6월1일  개봉해 서울, 부산, 익산, 전주, 광주, 남원 등지에서 5만여 명이 관람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원불교 교무로 출가한 이후 50년간 세계 55개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박 교무의 삶을 조명했다. 그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한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봉사의 참된 의미를 일깨웠다. 아울러 박 교무와 함께 활동한 강영훈 전 국무총리,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 원불교 좌산 종법사, 이종덕 라자로돕기회 회장, 김문환 서울대 명예교수. 이기웅 열화당 사장 등 많은 이들의 생생한 인터뷰 영상으로 그 의미를 더했다. 박 교무는 세계 55개국에서 무지·빈곤·질병 퇴치에 힘썼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캄보디아 왕실(사하메트레이) 훈장, 인도 암베드카르 국제상 등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국민훈장 목련장, 호암상 사회봉사상, 만해평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 많은 일, 그 큰일들을 하고 은퇴해서 경기도 용인  ‘삶의 이야기 있는 집’에서 지난 2월23일  기자가 만난 박 교무는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특유의 소녀 같은 미소와 청아한 목소리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구촌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와 나눔의 삶을 살아온 무아봉공(無我奉公)한 삶의 역정이 그의 박물관이자 안식처이기도 한 ‘삶의 이야기 있는 집’에 오롯이 담겨있다. 『삶의 이야기 있는 집』(도서출판 시월十月)은 2020년 두꺼운 2권의 책으로 출판돼 움직이는 ‘책 박물관’(book library)으로 언제 어디서든 관람할 수 있다.  


무아봉공(無我奉公)·완전연소(完全燃燒)의 삶…50년간 세계 55개국서 무지·빈곤·질병 퇴치 활동 펼쳐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호를 따서 설립한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2009년 호암상(湖巖賞) 사회봉사상을 받은 박청수 교무는 상금으로 받은 2억원을 사단법인 청수나눔실천회에 전액 기부했다.


박 교무는 1956년 19세 때 출가해 원불교 교무가 된 뒤 50여년 간 지구촌 55개국에서 종교와 국경을 초월한 나눔과 봉사활동을 펼쳤다. 캄보디아, 인도, 스리랑카 등에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모금한 돈만 105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을 위해선 한 달에 10만 원도 쓰지 않으면서 강연료와 책 인세 수입 등을 모두 내놓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이끌어냈다. 그는 해외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마더 테레사’에 비견되는 ‘마더 박’으로 통한다.
박 교무가 2007년 1월 원불교 서울 강남교당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그동안 맡아온 해외 지원사업은 캄보디아만 제외하고 각국에서 자체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캄보디아는 바탐방 무료구제병원과 오인환교육센터, 프놈펜 원광탁아원에 매월 640만원을 지원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나라 안팎의 일들을 해오는 데 소요된 액수가 350억원이라고 그는 밝혔다. 무엇보다 팔순을 훨씬 넘긴 고령에도 2020년 11월 빈민지역에 위치한 프놈펜 원광탁아원을 무료로 운영하기 위해 운영기금 8억5000만원을 프놈펜 청수나눔실천회로 보냈다. 원광탁아원은 13명의 보모가 0세부터 3세 어린이 60명을 하루 11시간 돌보고 부모들은 일터로 나간다. 이번에 박 교무가 보낸 지원금은 호암상 상금 2억원과 각종 상금, 6권 책의 인세, 수많은 강연료, 그리고 20년간 누적된 청수나눔실천회원 회비 등을 모아 8억5000만원을 보냈다.

▲ 경기 용인시 원삼면에 있는 박청수 교무의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박물관 내부 /사진=용인시

           
박청수 교무는 자선재단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과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박물관 관장, 국내 최초 대안중학교인 전남 영광 성지송학중학교, 수도권 최초의 대안중학교인 경기 용인 헌산중학교, 탈북청소년 특성화학교인 안성 한겨레중·고등학교 설립자이기도하다. 그의 거처가 있는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헌산중학교 바로 옆에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이 박물관은 살림 공간과 법당, 평생 활동을 정리한 자료전시관을 겸하고 있다.


박 교무가 2007년 원불교 강남교당 교무직을 끝으로 퇴임한 이후 거처로 삼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경기도 용인시 원산면 사암리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2003년 그가 설립한 특성화학교 헌산중학교 뒤편에 아담하게 자리한 이곳에는 국내외에 9개 학교를 설립한 내용과 함께 31개 컨테이너 분량의 각종 구호물자를 북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캄보디아, 스리랑카, 몽골, 러시아 고려인들, 중국 조선족, 북한 동포 등에 보내고 2개의 구호병원을 세우고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에 우물 270여 개를 파는 등 평생 전세계 55개국에 무조건적으로 퍼부은 그의 사랑의 흔적들이 오롯이 모여있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세계를 무대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오로지 한길을 걸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이웃의 어려운 소식을 들으면 체증이 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한마디로 애가 탄다. 새벽 2시까지 잠을 못 이룬 적도 많다. 한 번은 갑자기 임신부처럼 배가 불러와서 병원에 가보니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나. 약은 없고 걱정이 없어져야 병이 낫는다고 했다.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하면 몸으로 병이 나타나는 특이 체질인 것이다. 한편으로 남을 돕는 것은 제 이기심 때문이다. 그래야 자유로워지니까”라고 고백했다.

 

믿어주고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박 교무에겐 나눔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그는 “지난 50년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불완전 연소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의미 있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기자는 박 교무에게 그의 생애를 한마디로 ‘무아봉공(無我奉公)’ ‘완전연소(完全燃燒)’의 삶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교무의 대안중학교 설립 계기는 영산성지고등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수많은 해외 활동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펼쳐온 박청수 교무는 무엇보다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해서 중도 탈락한 학생들을 위한 ‘대안중학교'로 알려진 특성화학교를 잇따라 설립했다.


‘국내 최초’ 또는 ‘수도권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만큼 대안학교에 대한 깊은 관심과 선각적인 깨달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2년 3월4일 전남 영광군 군서면 송학리에 국내 최초의 대안중학교인 성지송학중학교를 개교한 데 이어 2003년 3월5일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사암리에 수도권 첫 대안중학교인 헌산중학교를 개교했다. 박 교무가 대안학교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이러했다.   

     
1999년 7월9일, 전남 영광의 영산성지고등학교 황명신 교장이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대안학교 학생들인 그곳 학생들은 강연을 듣다가도 흥미를 못 느끼면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그러면 안된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모시기 어려운 강사를 초청해서 귀한 강연을 듣다가도 학생들이 슬슬 빠져나가면 학교측에선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고, 강사도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박 교무가 멀리 서울에서 영광까지 왔다가 학생들이 또 그런 행동을 하면 죄송해서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꼭 한 번만 오셔서 학생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달라고 간청했다.


오히려 박 교무는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안학교에 다니는 그 학생들을 만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 자신에 관해 방송한 다큐멘터리 비디오가 있으니, 그것을 학생들에게 보게 하고, 학생들이 그를 강사로 초청하면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해 7월9일 성지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됐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60명 학생들은 머리에 물들인 남녀 학생들이 많았고 여학생들은 귀걸이, 목걸이까지 하고 입술에 루주까지 바르는 등 남달랐다.


박 교무는 학생들에게 착 가라앉은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순식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나는 좀 불우한 소녀였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를 이끌어줄 언니나 오빠도 없고,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그해 6·25한국전쟁이 터졌어요.”

 

그렇게 해서 불우하고 가난해서 배고팠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전주여고를 갓 졸업하고 원불교 성직자(교무)가 되기 위해 원불교에 출가해서 교무로서 살아온 헌신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강연하는 동안 단 2명의 학생만 나가고 모두 열심히 귀담아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곽종문 교감은 대안학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언제쯤 대안중학교가 생기느냐”고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했다. 자기 자녀들이 컴퓨터게임에 빠져 학교에 가지 않는다며 아예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안학교에 보내면 걱정이 없겠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박 교무는 강렬한 빛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안중학교를 설립해야겠다는 결심이 그 자리에서 섰다. 이러한 인연으로 박 교무는 2001년 학교법인 영산성지학원 이사장을 맡아 운영하면서 당시 성지고등학교가 안고 있던 부채 2억원도 해결했다.


박 교무는 학생 신분에서 일탈하려는 학생들, 모든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빗나가려는 철없는 학생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첫걸음이 여기 대안학교에 있다고 생학했다. 선생님들의 보살핌 아래 24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는 것을 고려한 특성화 교육을 받고,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려 학교생활을 하게 하는 대안학교야말로 그들의 밝은 앞길을 열어줄 수 있는 지름길처렴 여겼기 때문이다.

         
●학력 인증받는 전국 최초의 대안중학교 ‘성지송학중학교’


박청수 교무는 강연을 마치고 곽종문 교감에게 어떻게 하면 대안중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문의했다. 곽 교감은 준비한 정답을 이미 갖고 있었다. 그는 “요즘 시골에는 가르칠 학생이 없어 문 닫는 초등학교가 많습니다. 그런 학교를 매입해서 조금 손질하면 학교로 쓸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박 교무의 결심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1999년 7월9일 영산성지고등학교에서 강연한 후 불과 한달여 만에 8월15일부터 대안학교 설립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때마침 영산성지고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전남 영광군 군서면 송학리에 소나무로 가득한 뒷동산이 있고 마을과 조금 떨어진 5000평 부지에 폐교된 송학초등학교가 있었다. 교육환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절차를 밟아 그 학교를 매입했고, 곽 교감은 그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낡은 학교 건물을 페인트칠하며 단장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뜻과 같이 쉽지 않았다. 원불교 총부 당국은 1년간 학교 설립을 망설였고, 정부의 인허가 문제도 쉽지 않았다. 결코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2년이 흐른 뒤 2002년 3월4일 드디어 성지송학중학교가 개교했다. 입학 희망 학생은 205명이었으나 그중에서 1,2,3학년 총 55명을 뽑아 완성 학급으로 대안중학교 문을 열었다. 그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의 전신)에 대안중학교 설립 허가를 신청한 104개 학교 가운데 유일하게 성지송학중학교가 인가를 받아 정식으로 학력을 인정받는 첫 특성화학교가 설립됐다. 언론에선 국내 최초 대안중학교가 문을 열었다고 대서특필했다.


박 교무가 성지송학중학교 설립의 뜻을 낸 것은 인생을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밝은 앞길을 열어주어야겠다는 그의 결심과 노력이 좌초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온 재기의 힘찬 몸부림이었다. 누구를 도와 자신의 뜻을 펴기보다, 이제라도 그가 자신의 뜻을 펼치려 했던 것이 성지송학중학교를 탄생케 했다. 현재 성지송학중학교에는 인성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형들이 자녀를 위해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다.

▲ 성지송학중학교 전경 /사진=성지송학중학교 홈페이지    

                          

성지송학중학교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76조의 규정에 의한 특성화중학교로서 인성교육, 특기 적성교육, 공동체 생활교육 등을 실시하여, 초중등교육법 제61조 및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05조에 따른 '자율학교'를 운영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본래 마음을 회복하여 자력과 창의력을 기르고, 나아가 세상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여 공익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1)본래 마음을 회복하여 훌륭한 인격을 세우는 사람을 기른다. (2)믿음, 분발, 의문, 정성을 실천하는 사람을 기른다. (3)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기른다. (4)제힘으로 사는 사람을 기른다. (5)배울 줄 아는 사람을 기른다. (6)잘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을 기른다. (7)세상에 유익한 사람을 기른다.


도자기, 목공예, 음악·미술 실기와 감상, 레저스포츠, 택견, 연극연출, 영상 및 애니메이션 등 20개 과목을 마련, 각계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빙해 강의를 듣고 외부시설도 수시로 활용한다.
성지송학중학교는 5000여평의 부지에 교실 건물과 기숙사, 관리실 등을 잘 갖췄다.


●수도권 최초의 대안중학교 ‘헌산중학교’


헌산중학교의 설립자는 학교법인 전인학원 이사장 박청수 원불교 교무이다, 마음공부로 감사·칭찬·웃음이 가득한 행복공동체, 인성 중심의 특성화중학교인 헌산중학교는 원불교 정신을 건학이념으로 삼고, 마음공부를 통한 인성교육과 자연 친화적 전인교육을 지향하며, 평화교육, 봉사·나눔 교육, 행복교육을 통해 바른 인성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글로벌 인재육성 교육을 시행하는 특성화중학교다.


우리 사회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 문명의 발달로 물질에 의한 인권 타락과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간소외 현상이 나타나면서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심각한 타락이 이어졌다. 이에 원불교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정신개벽을 통해 파란고해(波瀾苦海)의 인류가 낙원세계, 평화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헌산중학교에서의 평화교육은 우리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인류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결집하는 중요한 교육철학이다.

▲ 헌산중학교 전경 /사진=헌산중학교 제공  

                                

헌산중학교의 교명(校名) ‘헌산’은 출소자들의 쉼터 ‘은혜의 집’에서 출소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해 힘썪던 고 길광호(吉光昊) 교무의 법호 헌산(獻山)에서 비롯됐다.


헌산중학교의 교육이념은 대안교육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마음공부를 통해 우리 각자의 보다 행복한 삶과, 보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생활, 함께하는 행복한 학교생활을 실천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칭찬하는 풍토 조성으로 사랑이 가득한 행복공동체를 추구해 오고 있다. 감사·칭찬·웃음이 가득한 행복공동체로서의 헌산중학교는 인류와 세계를 이끌어갈 평화교육과, 지구촌을 하나의 세계로 엮어가는 봉사·나눔의 교육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해하는 행복교육을 헌산교육의 기본철학으로 제시하고 있다.

 

헌산중학교는 총 1200평의 대지에 교실이 있는 본관동, 기숙사, 다목적관(체육관과 식당 및 교실)을 갖췄다. 학년별로 한 학급에 15명씩 전교생 90명 정원(6학급)이다.

 

모집대상은 일반교육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 및 특성화에 중점을 두고 교사들이 선발한다. 교사들은 총 20명으로, 대부분 30대 젊은층이며 인성교육과 열린교육을 실천하겠다는 소신에서 이 학교 교사를 자청했다고 한다. 교과과정은 명상, 요가 등 이른바 '마음일기' 프로그램을 비롯해 특기·적성교육과 다양한 동아리활동 등 특성화 교과가 전체 교과의 30%를 차지한다.

 

헌산중학교가 위치한 터는 현재 고인이 된 원불교 길광호 교무가 생전에 소년원과 구치소를 다니며 만난 출소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해 '은혜의집, 출소자들의 쉼터'를 운영했던 곳이다. 이에 박 교무는 고인이 폐암으로 요절하자 그의 뜻을 잇기 위해 헌산중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설립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반대도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무는 “헌산중학교의 설립 과정에 주민들은 한사코 반대했다.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학교라고 하니 혐오시설로 간주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 주민들은 이 학교를 사랑한다. 학교를 일터로 삼아, 학생들과 함께 일도 하고 밥도 먹고 지낸다”고 말했다.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배움터 ‘한겨레중고등학교’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합니다.”

 

2004년 어느 날,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의 전신)로터 전인학원 이사장 박청수 교무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북한 이탈 청소년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도록 제안하는 내용의 전화였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북한 이탈 주민들의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 기관인 하나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학교를 설립하려고 검토하다 보니, 특성화학교인 헌산중학교가 마침 경기도 관내에 있어서 우선 전인학원에 학교 설립을 제안하기로 의견이 모아 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첨부 공문을 보낼 테니 긍정적으로 검토해달라고 했다. 공문 내용 중에 박 교무의 눈에 얼른 띤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신축예정 부지: 설립자 부담
·1안: 안성시 삼죽면 덕산리 2만평 – 16억원
·2안: 이천시 율면 오성리 1만2000평 – 19억 7000만원
·3안: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2만평 – 56억5000만원
총 소요금액(부지매입비 설립자 부담) + 시설비 및 운영비(정부특별교부금 보조)=
1안: 200억원, 2안: 204억원, 3안: 241억원
개교예정일: 2006년 3월(개교시기 조정)
설립 주체: 종교 단체


참 좋은 제안이기는 하지만, 당시 박 교무의 개인 능력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원불교 중앙총부의 관계 부처에 교육인적자원부의 제안 내용과 보내온 공문 내용을 함께 보냈다.


교육인적자원부 실무자로부터 사무적인 전화를 받은 지 3일 만에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안 부총리는 “남북통일 이전까지는 북한 이탈 청소년을 위한 사립학교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간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해오셨지만, 박 교무님이 이 학교를 운영하면 매우 상징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박 교무님이 이 일을 하면 한국 사회 모두가 동의할 것 같아 학교 설립 운영을 권유합니다”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안병영 부총리가 260억원을 지원해서 이 학교가 최고 수준의 학교 면적과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또 이번에도 부지매입 과정 등 주민들의 심한 반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학교를 세워 2006년 3월1일 개교하게 됐다. ‘한겨레중고등학교’라는 교명(校名)은 원불교 좌산 종법사가 지어 주셨다. 


⓵학교 교육과정
 
학교설립 목표에 따라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이 설계되어 있다. 크게 한겨레중고등학교를 통해 먼저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나온 청소년들에게 다시금 정착교육 지원을 시행하여 정착지 학교(일반학교·특성화 학교)로 전출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정착지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단기적으로 위탁받아 적응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한겨레 중고등학교의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구체적인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교과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중심의 교과교육과정을 기초로 일반학교의 학업능력에 뒤처지지 않도록 설계하여 운영하고 있다.

▲ 한겨레중고등학교 전경 /사진=한겨레중고등학교 홈페이지    

 

둘째, 정서안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입국 초기의 북한 이탈 청소년들의 심리적 불안정이 다른 연령층보다 큰 만큼 그들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이에 따라 예체능 교과목을 치료 개념으로 운영하며 다양한 특성화 교과목(도자기, 종이접기, 무용, 국궁, 공예 등)을 운영하여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과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다.

 

셋째, 직업진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실험실습 중심의 과학교과목 운영, 정보소양교육을 위한 정보교과 운영, 다양한 진로 직업교육을 위한 교과목(제과제빵, 피부 관리 및 메이크업, 헤어 디자인, 바리스타, 중장비, 요리, 컴퓨터기능사 등)도 병행해서 운영하고 있다.

 

넷째, 사회문화 적응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 교육을 시행하며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기본소양 교육(경제이해 교육, 성교육, 금연교육, 법교육, 소비자교육, 민주주의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창의적인 체험활동의 목적으로 봉사활동과 동아리 활동 그리고 자치활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다섯째, 방과 후 교육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또래문화 적응과 원만한 학교생활 적응교육을 위해 방과 후 교육활동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특기·적성 중심의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서예, 농구, 뮤지컬, 야구, 통기타, 응용미술, 피트니스, 국궁, 첼로, 정보올림피아드, 댄스, 활선요가, 축구, 종이접기, 생활도자기, 배드민턴을 운영하고 있다. 교과 중심의 방과 후 학교운영은 무학년 무학급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해부교실, 기초영어, 영화로 배우는 도덕, 영어로 만나는 세상, 중국어작문 연습, 기초수학, 수능기초 맛보기, 교과서와 함께하는 영어, 수학아 놀자, 역사스페셜, 고등 과학실험탐구가 있다. 그리고 9교시의 특별 기초학습반을 운영하여 기초학습이 부진한 학생을 중심으로 맨투맨 특별보충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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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중고등학교는 북한 이탈 주민의 사회적응을 돕는 통일부 산하기관인 하나원과 같이 경기도 안성시에 있다. 더불어 2008년 1월21일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청소년반을 전면위탁 받았다. 교훈은 '맑고, 밝고, 훈훈하게'이고 교목(校木)은 소나무, 교화(校花)는 연꽃이다.

 

학생 선발은 중학교 4학급, 고등학교 6학급이고 학급당 정원 20명의 남녀공학이다. 전국에서 지원이 가능하고 선발 시기는 수시모집이다. 모집대상은 새터민 자녀이다.

 

현재 중고교 교직원 56명으로 중학교 학생은 한 학급당 20명으로 총 4학급 80명이고 고등학교 학생은 한 학급당 20명으로 6학급 총120명의 학생이 정원에 맞춰 재학하고 있다. 그 중 북한 이탈 청소년이 61%, 제3국 학생(중국에서 태어난 북한 이탈 주민의 자녀)이 39%의 비율로 구성돼 있다. 2021학년부터 남한 출생 학생도 입학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제3국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반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 학교는 학교 특성상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본인의 수준에 맞는 학년에 들어가 수업을 받는다. 교과전용교실 8개, 특별교실 9개, 특수활동실 11개, 화장실 10개, 행정실 3개, 식당과 체육관과 보건실이 각각 1개씩 총 44개의 공간이 운영되고 있으며 기숙사는 여학생 100명과 남학생 100명을 각각 수용하고 있으며 본교에 재학 중인 모든 학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 한겨레중고등학교의 도자기실습실 /사진=한겨레중고등학교 홈페이지    

  
학생들의 하루 일과는 7시에 기상하여 아침운동을 30분간 진행하고 8시20분까지 아침 식사를 하며 8시50분까지 아침독서를 한다. 9시부터 12시30분까지 오전 교과수업을 진행하고 점심 식사 후 3시30분까지 오후 교과수업을 진행한다. 3시30분 이후에는 특기적성수업 및 수준별 보충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저녁 식사 후 6시15분부터 7시15분까지 기초학습 특별수업을, 11시에 취침하기 전까지 개인적인 시간으로 휴식을 취한다. 주말에는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휴식 및 부족한 과목 보충 그리고 외부기관과 연계해서 연극, 영화, 뮤지컬 관람, 지역행사 참여 등의 문화생활과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본교는 대한민국의 1%에 드는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어 학생들에 대한 복지와 여러 지원이 잘 되어있으며 교복을 포함해 교육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어 개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일체 없다. 그밖에 학교의 교육과정 편제표나 연간 수업일수 및 수업시간 수 등과 같은 학교의 세부사항은 본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학교 교육계획을 참고하면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⓶대학 진학률 및 취직 현황


이익수 교감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진학이 37%, 2년제 대학 진학이 30%, 취업이 30% 이루어지고 있고, 의사와 한의사는 물론 최근에는 여성 ROTC, 중고등학교 교원 임용도 다수 배출됐다. 현재 모든 대학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북한 이탈 주민을 위한 재외국민 특별전형을 두고 있다. 그런 만큼 본교는 특별전형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분석해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으로 대학 진학과 취업 등 학생들의 진로지도에 힘을 쏟고 있다.

 

전인학원이 운영하고 있는 한겨레중고등학교는 2018년 4월4일 교내에 ‘남북청소년교육문화 연구소’를 개소해 더욱 적극적인 평화통일의 가교 역할을 다짐했다. 통일부의 임병철 하나원장과 남북하나재단 고경빈 이사장, 박청수 설립자가 참석한 가운데 개소식을 가졌다.

 

행사에서 연구소 운영 안내를 맡은 고선아 연구원은 연구소에 대해서 통일 전후 남북 통합 교육과정, 교재개발, 남북청소년 문화차이 극복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졸업생을 대상으로 심리·진로·문화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 3국 출생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찾는 연구 활동을 계획 중이다.


박청수 교무의 해외 교화활동은 지뢰 제거로 인연된 캄보디아로부터
●캄보디아의 바탐방 무료구제병원과 오인환교육센터 그리고 프놈펜 원광탁아원

 

박청수 교무는 촌음을 아끼며 앞만 바라보고 살다가 2007년 퇴임을 앞두고 관계하고 도운 나라를 헤아려보니 55개국이라고 했다. 그것은 원불교 강남교당 봉직 26년간 거둔 막대한 성과였다. 그 많은 나라들을 돕는 일은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오직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위력을 빌려 이룩한 일이라고 그는 굳게 믿는다. 특히 그 많은 일들이 이뤄지는 동안 처지와 형편껏 동참은 하되, 크게 불평불만을 터트린 교도가 따로 없었으니 그것은 교도들의 너그러운 심법(心法)과 깊은 교양에서 우러난 인격이라고 박 교무는 생각한다.


박 교무가 캄보디아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해 온 지도 벌써 30년 이상 된다. 1988년 한국에서 88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 MRA(도덕재무장) 세계대회도 열렸다. 이 대회에 참가한 캄보디아의 우국청년 윙모리 씨는 크메르루주가 지식인과 무고한 양민 200만명을 학살한 캄보디아의 이른바 ‘킬링필드’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기도 하고 눈물이 고인 눈을 껌벅거렸다. 허기진 자기 나라 난민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도와본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청년의 말을 듣고도 냉담한 반응이었다. 올림픽을 개최한 한국에 기대를 걸고 왔을 텐데 너무 실망하고 돌아갈 것 같아 박 교무는 걱정이 됐다. 그래서 강남교당에 연락해서 급히 100만원을 보내달라고 해서 그 돈을 웽모리 씨에게 전했다.


그때 박 교무는 나라 밖의 불행한 소식을 처음 알게 됐다. 그후 어떻게 하면 캄보디아를 도울 수 있는지 알지 못해 박 교무는 스위스코 MRA센터에 매년 1만달러(800만원)을 보내면서 캄보디아 난민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1994년 2월4일 영국의 MRA 지도자 데이비드 영씨로부터 박 교무에게 캄보디아 지뢰를 제거해 보라는 권유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 편지를 받은 박 교무는 이 문제가 화두가 돼 캄보디아와 인연을 맺게 돼 지금도 도움의 손길을 잇고 있다.


그는 캄보디아의 지뢰 문제 때문에 꼭 가보려고 했고, 1995년 3월15일 신현대, 황의수 두 교도와 함께 갔다. 정작 캄보디아에는 지뢰를 제거하는 기관도 없어 오직 외국 기관에서만 지뢰를 제거하고 있었다. 그 외국기관은 할로(HALO)재단이었다. 시엠립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할로재단 사무소를 방문해 할로재단을 통해 지뢰 제거를 했다. 할로재단에 따르면 지뢰 1개를 묻는데 5달러이지만 1개의 지뢰를 제거하는 데에는 1000달러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교무는 지뢰제거 비용 마련에 앞장섰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돌아오자마자 화요법회와 수요법회에서 자신이 경험한 지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보고하듯 말하면서 지뢰를 제거하자고 호소했다.


종교인은 수도하여 자기 인격을 개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갖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원인, 지뢰를 제거하는 일도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생명을 존중할 줄 모르고 무책임하게 지뢰를 묻은 사람들의 그 어리석은 잘못을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종교인의 소명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박 교무는 지뢰제거 성금이 모여지고 쌓여 목표액 10만 달러(8000만원)를 빨리 할로재단에 송금했다. 그리고 그는 아무리 큰 일을 해도 회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매번 무거운 책임 속에서 일해왔다. 그의 몫만큼 숙제를 했으니 더 이상 지뢰 문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송금하고 1년 뒤 1996년 5월 할로재단에서 상세한 보고서가 왔다. 1995년 8월10일부터 1996년 2월29일까지 박 교무 측이 보낸 성금으로 지뢰를 제거한 상세 보고서였다.


지뢰가 제거된 땅의 면적은 3만3012평방미터로 약 1만평의 땅에서 지뢰를 제거했다고 했다.그 만큼의 땅이 공포의 땅, 재앙의 땅에서 평화의 땅, 건강한 땅으로 회복된 것이다. 


박 교무는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된 한국의 새 불교 원불교가 캄보디아에 들어와 종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료보험이 안되어 질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캄보디아 국민에게 의료혜택을 주기 위해 무료구제병원 설립을 구상했다. 하지만 아무리 후진국이어도 어느 나라나 수도는 땅값이 비싸다. 그래서 수도 프놈펜이 아닌 제2 도시 바탐방을 생각했다. 바탐방은 지뢰를 제거한 인연이 있고 고아들도 식구처럼 거두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박 교무는 바탐방에다 터전을 마련할 생각을 했다. 그는 법회 때 자신의 뜻을 밝히고 캄보디아 바탐방에 무료구제병원을 세울 1000여 평의 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바탐방 오인환교육센터 원생들의 태권도시범 모습. 원생들 중에는 국가대표 선수도 배출됐다. /사진=빅청수교무    

 

박 교무의 뜻에 가장 먼저 참여한 교도는 당시 30대인 박길현, 이정인 부부가 그 터전을 마련해보겠다고 했다. 오늘날 캄보디아 바탐방교당 무료구제병원 1200평의 터전은 그들 젊은 부부가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캄보디아로 어떤 교무가 개척자로 갈 것인가?  박 교무는 평소 그의 별명을 ‘산소’라고 부르던 강남교당의 부교무 정승원 교무에게 사명감을 고취시키며 캄보디아 개척 교화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해서 정승원, 최지운 30대의 두 젊은 교무가 2002년 2월 캄보디아 개척지로 떠났다. 이들 두 교무는 먼저 프놈펜에서 언어학습 기간을 거치고 바탐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원기 88년, 2003년 3월25일 9시30분 소승불교 국가에서 최초로 법신불 일원상을 모시고 봉불식을 올렸다. 30대의 두 교무가 캄보디아에 들어온지 불과 1년 만에 1200평의 터전을 마련하고 훌륭한 건물 2개 동을 세웠다.


소승불교 국가에서 참으로 은밀하게 이뤄진 이 봉불식은 한국의 새불교 원불교가 캄보디아에서 종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그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 일이 장차 동남아 소승불교 국가로 원불교가 전해질 역사적인 출발점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봉불식을 마친 박 교무는 무료구제병원 원장을 면접하고 간호사와 주야간 경비원 2명도 선발했다. 무료구제병원 개원식은 그날 오후 2시에 새 법당에서 열렸다.

▲ 프놈펜 원광탁아원 원생들과 함께 /사진=박청수 교무  

               
최지운 교무가 바탐방에 도착한 후 1년 만에 강남교당과 박청수 교무의 후원으로 교당과 무료병원을 개원했다. 무료병원은 오전 진료만 하는데도 300명이 넘는 현지인들이 찾아와 치료를 받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최 교무는 재임 중에 원불교 『정전(正典)』을 크메르어로 번역하는 등 개척 교화에 기틀을 마련했다.

 

현재 김경선 교무가 오인환교육센터의 교육과 구제병원 운영, 원불교 교화 등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태권도, 한글, 예체능교실 등을 운영하며 현지인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태권도에서는 국가대표 선수도 배출했다. 김 교무는 "연인원 23만명이 다녀간 무료병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료를 하고, 오인환교육센터에서는 주말반 태권도, 한국어반을 운영하고 있다"며 "일요일에는 태권도 교실 후에 어린이법회, 학생·청년법회를 진행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무료구제병원을 통해 의료혜택을 받은 사람이 23만명에 이른다. 특히 원광대학교 의과대학 자원봉사팀이 지난 10년간 종합병원 시스템으로 각종 분야 의료혜택을 제공했다.


한글학교인 오인환교육센터에서 한글을 배운 학생들은 자신의 한국어 실력으로 원광대 의료봉사팀에게 환자들의 질환을 설명해줌으로써 진료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 등 장차 원불교 교도의 근간이 될 젊은이들이다.


프놈펜에는 탁아원을 운영 중인데 이곳에는 정승원 교무가 10년간 0세부터 3세까지의 유아들을 맡아 운영해오고 있다. 바탐방에는 박청수 교무의 모친 ‘광타원 김창원 추모법당’이 있고, 프놈펜에는 원불교 프놈펜교당 ‘신현대법당’이 세워져 있다. 신현대법당은 남편 장근진 교도의 정성으로 이뤄졌다. 정승원 교무는 프놈펜교당의 교무이고 원광탁아원의 원장이다. 프놈펜과 바탐방의 모든 운영은 청수나눔실천회의 후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청수나눔실천회는 2000년에 설립됐다. 

 

●북인도 설산 라다크에 마련된 배움터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
 

박청수 교무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많은 일들을 해오고 있지만, 후원회 같은 것도 없고 모금을 위한 용지(用紙)를 발급한 적도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을 보는 사무실도, 사무원도 따로 없다. 오직 신현대 교도의 자원봉사에 기대면서 기회에 따라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을 뿐이었다. 이제는 분신과 같은 신 교도마저 별세함으로써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게된 지 오래다. 박 교무는 또 어떤 큰 일을 실행하는 데 회의를 하거나 어떤 개개인에게 권선(勸善)하지 않았다. 그는 회의를 거쳐 무슨 일을 했더라면 아무 일도 못 했을 것으로 확신하고 권선도 희사할 형편이 못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럴 뜻이 없는 사람에게 잘못 권선했다가는 괜히 관계만 벌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그런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어느 누구와도 의논할 대상이 없고 결국 모든 일을 혼자서 결심하고 해결하는 막중한 부담을 안게 됐다.


원불교 사직교당 시절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많은 열정을 쏟았고, 종교 간의 벽을 넘어 천주교 성라자로마을 환자 돕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강남교당에 봉직하면서부터 특히, 나라 밖 여러 나라와 많은 일에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았다.


​박 교무가 북인도 히말라야 3600고지 설산(雪山)으로 둘러싸인 라다크에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가 세워지도록 후원한 일은 최초로 나라 밖의 큰일을 한 사례이다. 이 일을 성취하기까지에는 역시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학교 설립을 위한 모금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몇만 원, 몇십만 원의 성금이 들어와도 1억원의 목표액을 채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히말라야에 학교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그는 설교 시간에도 곧잘 히말라야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에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딱하게 여겼던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도울 곳이 많은데 하필 멀고 먼 히말라야 설산 사람들을 돕겠다며 그 많은 돈을 모금해 지으려고 저렇게 애쓰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뒷얘기가 그의 귀에 들여오기도 했다.


그래서 박 교무는 어느 날 법회 시간에 “동냥은 못 주어도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듯이 희사는 안해도 좋으니 히말라야에 학교 세우는 일에 시비하지 말라”고 했다. 별 생각없이 시비를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훼방하는 일이 되고 말테니 참으로 삼갈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렇지 않아도 박 교무는 설산 라다크에 학교 세우는 일에 힘을 쏟으며 기진맥진했다. 그는 상념 속에 위로받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둔 밤이 되면 희미한 불빛이 깜박이는 산촌 사람의 집을 찾아가곤 했다. 마음길로 그렇게 쉽게 찾아간 곳은 히말라야 설산 사람들이 사는 라다크였다. 그들 곁에 잠시 있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고, 삶을 영위하기가 힘들어 거칠어진 호흡이 잔잔해지는 것 같았다. 또 피난처를 찾듯 그를 이해해줄 만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인도의 절대 빈곤, 그들의 고달픈 삶을 목격한 사람만이 박 교무가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도기행』을 써서 한국인들에게 인도를 알린 법정(法頂) 스님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이해할 것 같아 히말라야 라다크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교욱기관이 필요한 그곳에 학교를 세우도록 후원하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다고 말씀드렸다. 이에 고(故) 법정 스님은 그에게 『닥터 노먼 베순-세계를 감동시킨 휴머니스트 의사의 일대기』라는 책을 소개해 줬고 이 책은 박 교무가 라다크에 학교를 세우도록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뿐만아니라 법정 스님은 1991년 어느 날 강남교당을 방문해 성금 100만원을 내놓으며 그를 격려했다.


박 교무가 라다크를 위해 애쓴 것은 꼭 히말라야 설산 사람들만을 돕는 일은 아니었다. 넒은 의미에서 지구촌의 절대 빈곤층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는 인도를 돕는 것이었다. 강남교당 교도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세워진 기숙학교에는 히말라야 산속 깊은 곳에 묻혀 살던 총명한 어린이들이 합숙하며 공부한다. 그동안 남인도 벵갈루루 유학의 기회가 오직 남자 어린이들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히말라야에 학교가 세워지면서 먼저 여자 어린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했다. 여성들은 동정심이 강하기 때문에 교육을 받으면 자신의 앞길을 개척할 뿐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도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으리라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 교무의 뜻을 알고 현지에서 수많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상가세나 스님이다. 스리랑카 소승불교인 테라바다 불교의 승려인 그는 라다크 출신으로 마하보디소사이어티 라다크 의장직을 맡아 국제선센타를 운영하고 있다.

 

박청수 교무를 중심한 한국인들의 따뜻한 인류애로 라다크가 개벽됐다. 15만명의 주민들이 감명받고 있다. 이에 상가세나 스님은 한국으로부터 온정의 손길로 라다크에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가 설립되어 배움의 길이 열리고, 컨테이너 6개 분량의 겨울옷과 이불 등의 지원으로 추위를 모면하게 된 점 등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1993년 8월, 박 교무가 어린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라다크를 다시 찾았을 때, 보고 싶었던 어린 소녀들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불과 2년전 만해도 사람이 전혀 살지 않았고 살 수도 없을 것 같은 황량한 사막의 땅에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 기공식을 가졌는데, 그곳에 건물이 세워지고 1992년 7월 마침내 개교를 해서 25명의 학생들이 모여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박 교무는 라다크에 기적을 만든 것이다.


1994년 9월18일, 라다크에서 ‘나눔의 축제’가 열렸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등 뒤로 길게 늘어뜨리고 짐승 털을 우장처럼 어깨에 두른 아낙네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로 향했다. 라다크에서는 큰 행사가 열리면 알록달록하게 조각보처럼 천을 이어 만든 휘장으로 행사장을 병풍처럼 두른다. 이는 행사장을 화려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고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한 것 같다. 나눔의 축제 같은 큰 행사를 할 때에는 반드시 라마승들이 단상의 윗자리를 채운다. 이날 행사에는 인도 정부의 장관급으로 정부 대표 람탄 회장, 라마불교 대표 린포체 큰스님, 인도 정부의 소수민족위원회 위원 라마 롭장 스님, 라다크불교협회 회장 툽스탄 체왕, 여러 수도원의 원장들, 라다크를 대표하는 인사들과 박 교무 일행이 넓은 단상에 자리했다. 나눔의 축제가 시작되자 상가세나 스님은 한국에서 보내온 옷에 대해 설명하고 어려운 설산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따뜻한 옷을 많이 모아서 보내준 데 대해 감사의 인사말을 전했다.


다음 날인 9월19일 그동안 기숙사의 일부를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가 6개의 교실과 1개의 사

무실로 된 학교 건물을 신축하여 증축 낙성식을 거행했다. 낙성식은 학교 건물 입구에서 이 지방 대표와 박 교무가 테이프 커팅을 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간단한 행사였다. 아주 소박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학교 교실에는 어린 학생들이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작은 책걸상이 놓여 있었다.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야말로 한국의 뿌리에서 돋아나 꽃피운 설산의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 전교생이 모인 모습 /사진=박청수 교무

                         

‘마더 박청수도서관(Mother Park Chung Soo Children’s Library)’이란 표지판이 붙은 도서관에는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각종 도서와 한국에서 보낸 장남감들이 놓여 있었다. 어린이들 모두 갖고 싶어하는 것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공동으로 소유하는 아름다운 습관을 길들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도서관 안에는 사진이 아닌 박 교무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아이들이 그의 곁에 모여있는 광경을 그린 그림도 걸려있었다. 그곳 산촌 어린이들이 비디오를 시청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히말라야 설산 사람들에게 겨울옷 보내기 발송식을 했을 때 MBC 9시 뉴스에서 방송된 내용과 KBS ‘아침마당’에 소개된 내용이어서 박 교무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기숙사에는 2층으로 된 여학생들의 철제 침대에는 한국에서 보낸 담요들이 깔려 있었다.


1995년 7월8일, 박 교무는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로 보낼 겨울옷과 인형, 완구 등을 준비해 라다크를 네 번째 방문했다. 비행기가 라다크의 레에 도착해 박 교무 일행이 공항 밖으로 나오자, 테 없는 고깔모자를 쓰고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조화를 들고 반겼다. 그리고 라다크의 번화가 레를 통과하고 한참을 달려 천국이란 의미를 가진 데바찬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히말라야 소녀들이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의 둥근 원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나와 일행을 환영하며 뜻밖에도 ‘아리랑’을 불렀다. 그들을 박 교무가 남인도 벵갈루루에서 불렀던 ‘아리랑’을 익힌 것이다. 박 교무는 그로부터 2년 전에 삼성복지재단의 후원을 받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 전원에게 식비와 학비에 해당하는 장학금을 보냈다. 이번에도 장학금 2만 달러, 1600만원을 상가세니 스님에게 전달했다. 아울러 이날 박 교무측이 설립 성금을 보탰던 라다크의 가난한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 개원식도 있었다. 많은 선물과 돈을 전해주는 기쁨도 크고 여러 교도들과 함께 와서 보람의 현장을 확인하고 해서 그런지 박 교무는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2013년 5월24일, 1991년 첫 방문 이후 박 교무는 라다크에 8번째 가고 있었다. 2006년 8월 원불교 국제선센터 개원 후 7년 만에 다시 찾는 라다크는 그의 엣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곳이다. 그래서 라다크에선 어디에 머물러도 고향 집 같다고 박 교무는 말한다. 박 교무는 라다크에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만 세운 것이 아니라 국제선센터, 50병상의 박청수카루나종합병원 설립에 김형진 교도의 2억원 쾌척이 큰 힘이 됐다.

▲ 박청수카루나종합병원 개원식을 끝내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 /사진=박청수 교무

                      

2013년 5월25일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박 교무에게 이날은 특별한 날이다. 그는 라다크불교협회장 툰덥 박사로부터 부처님오신날 수석 귀빈으로 초청받고 이곳에 왔다. 라다크불교협회가 주최한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는 그동안 달라이 라마를 모시거나 라다크 림포체 큰스님을 모시고 70년 이상 거행해온 행사다. 70여 년의 역사 속에 이번에 처음으로 외국인을, 그것도 여성인 박청수 교무를 초청하는 파격을 보였다. 원불교 델리교당 원현장 교무는 "라다크불교협회는 인도 정부보다 정치 행정력이 강력하다"고 소개했다. 라다크가 파키스탄과 중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만큼 불교를 신앙하며 일치단결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 교무는 카루나종합병원을 개원한 이후 10여년 동안 라다크를 위해 어느 한 가지 일을 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과분한 자리에 참석을 사양했다. 하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박 교무가 그곳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겨울옷을 보내준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며, 세계 어느 누구도 그가 하듯 라다크 설산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도와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그들을 돕지 못한 것은 또 다른 나라를 돕느라 그리된 것임을 모두 잘 알고 있고, 세계 55개국을 도운 박애 정신을 기려 수석 귀빈으로 초청했다며 꼭 참석해달라고 했다. 


박 교무 일행의 이번 라다크 방문에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성지송학중학교 송원웅 교장 외 교육관계자 다수가 함께했다. 교육관계자들은 라다크의 오지 교육환경을 시찰하며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돕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라다크 지역 내 학생 7000여 명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볼펜과 학용품 등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 학용품은 라다크불교협회에 전달돼 라다크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방문단 일행은 불교협회 행사에 앞서 마하보디불교기숙학교 외 리람스쿨과 기숙사 신축 현장, 링셨스쿨을 방문했다. 방문 시 학용품도 전달했다. 링셨스쿨에서는 김지윤 씨가 오지마을 학생들이 어렵게 공부하는 현장을 보고 장학금 1000달러를 전달했다. 박 교무 외 23명은 5월25일 라다크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위해 5월21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5월29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중국 길림성 훈춘 특수교육학교 개교


박청수 교무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간 중국 지린(吉林)성 혼춘(琿春)에 지극 정성을 바쳤다. 1998년 8월 훈춘시 당국은 드디어 장애인을 위한 훈춘 특수교육학교가 준공, 개교식을 갖게 됐다며 박 교무와 강남교당 교도들을 초청했다. 그간의 관심과 수고로움이 보람으로 열매 맺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1998년 8월22일 26명의 교도가 3박4일 일정으로 중국 훈춘으로 떠났다. 일행 중에는 치과원장인 오성산 교도는 경신진 중심소학교 500명의 학생들에게 나눠줄 칫솔과 치약을 마련했고 원정교(북한과 중국 국경에 놓여 있는 다리)를 통해 북한으로 보내기 위한 의약품도 전문가와 의논하여 야전병원 1개 차릴 분량을 준비해 갔다.


8월24일 박 교무는 김석인 훈춘 시장과 박영숙 부시장이 초청한 조찬모임에 참석했다. 김석인 시장은 길림성 인민정부에서 발행한 ‘훈춘은혜임목유한공사’라는 명칭의 ‘중화인민공화국 외항투자기업 비준증서’와 국가공상행정관리국에서 발행한 ‘중화인민공화국 기업법인 증서’를 박 교무에게 건네줬다. 이 증서에 근거해서 경신진(敬信鎭)에 마련된 원불교 땅 5000평이 법인으로 이전 등기되고 양세정, 이시은 두 교무는 상주(常住) 임원으로 10월 중에 거류민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장차 북한을 돕기 위한 간장, 된장 공장도 세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 훈춘시 경신진 특수교육학교 새 교사(校舍) 낙성 및 개교식 모습 /사진=박청수 교무    

                 
8월25일 박 교무 일행은 장차 원불교 동북아 교화의 터전이 될 경신진 5000평 땅, 앞으로 50년간 사용할 그 땅을 보기 위해 두만강 하류 경신진에 갔다. 50년간 임대 사용하게 될 땅에서 강남교당 교도 26명이 법계에 봉고 기도를 올리고 기념 식수를 했다. 일련의 행사를 끝낸 일행은 경신진 중심소학교를 방문했다, 500명의 전교생과 교사들이 깃발을 들고 양옆으로 도열해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이 도착하자 깃발을 흔들며 환영했다. 경신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14개 학교를 통합해 기숙사를 만들고 1997년 개교한 이 학교는 성금 3600만원이 합해져 세워졌고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계속해서 지원했다.


박 교무는 남의 나라 중국을 내 나라로 삼고, 소수민족으로 살아갈 우리 어린이들이 다 함께 건강하고 실력 있는 인물로 커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학생들과 악수하려고 노력했다. 박 교무 일행은 전교생에게 준비해 간 선물을 나누어줬다. 그리고 현관 앞에 두 그루의 방문기념 식수(植樹)를 했다.


길림성자치주의 유일한 특수학교인 훈춘특수교육학교는 훈춘시 정부에서 제공한 4000제곱미터의 대지 위에 강남교당의 성금 8000만원으로 마련된 1000평방미터의 2층 건물로, 백색 타일과 자줏빛 골기와로 신축됐다, 건물이 깨끗하고 산뜻해 보였다. 이 학교는 훈춘시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했다.


1998년 8월25일 오후 2시에 개교식이 거행됐다. 길림성 정부, 조선족자치주 정부 그리고 훈춘시 정부 등에서 온 각계 내빈과 강남교당 26명의 한국 손님들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또 70명 어린이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주악대가 자리를 함께한 가운데 박경희 교장이 주관하여 성대한 훈춘특수학교 건물 준공 및  개교식을 거행했다.

▲ 경신진 특수교육학교 새 교사 낙성 및 개교식때 도열해 있는 학생들 중 꽃다달 전한 학생과 함께/사진=박청수 교무  

                

박 교무는 길림성자치주 유일의 훈춘특수교육학교에서 장애를 가진 70명의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교육받고 어떻게든 자립할 수 있는 생활인으로 커나가길 바란다고 설파했다. 이같은 학교가 세워지도록 한국의 원불교 강남교당에서 지원하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앞으로 이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좋은 학교가 되도록 박경희 교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큰 수고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교무 일행은 준비한 컴퓨터 1대와 어린이 도서 400권, 어린이 의류 230점, 그리고 학용품과 사탕, 과자, 라면 등 푸짐한 선물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건물과 시설이 생겼는데도 납부해야 하는 돈을 내지 못해 수돗물이 안나오고 전기도 안 들어온다고 했다. 박 교무는 성금 800만원을 박경희 교장에게 전달하며 학교 운영에 차질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훈춘에서 행한 일들을 영상물로 담기 위해 김권재 프로듀서와 송영신 감독이 동행했다. 영상물은 ‘훈춘 새벽 3시 개척의 현장, 그 일터’로 제작됐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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