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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천국 화원 아파트. 사후 천국 수목장

신민형 | 기사입력 2021/03/05 [22:12]
부모님 수목장 소풍과 우리 부부 수목장 예약

지상 천국 화원 아파트. 사후 천국 수목장

부모님 수목장 소풍과 우리 부부 수목장 예약

신민형 | 입력 : 2021/03/05 [22:12]

부모님 수목장 소풍과 우리 부부 수목장 예약  

 

아버지 22주기 기일에 영락공원묘지 수목장으로 부모님 뵈러 갔다. ‘ 뵙고 왔다는 표현은 의례적인 것이고 남양주 전원마을로 드라이브 겸 소풍갔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우리의 외롭고 괴로운 삶 하소연하러 오던 시절도 지났고 피차 가슴 아파할 죄송함과 미안함, 회한도 없다. 때맞춰 인사드리러 와야 한다는 의무감과아들 딸, 손주 이끌고 찾아 뵈야 한다는 책임감 역시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그저 즐겁게 봄나들이 떠난다는 즐겁고 가벼운 마음만 있을 뿐이다.

 

코로나에다 손주들 학교와 유치원 다닌다는 핑계로 호젓하게 우리 부부만 소풍 나서니 더욱 좋다. 고달팠던 육신 벗어던지고 평화로운 수목장에서 편히 계실 거란 느낌도 한결 소풍 분위기를 더해 준다.

 

그래서 이번 부모님 수목장 소풍 후엔 바로 우리 부부의 수목장을 예약하기로 했다. 마침 우리 부부 죽을 때까지 살 광교 보금자리로 이사 온지 1년이 되어 용인 평온의 숲 수목장에 신정할 자격이 되었다.

 

우리 부부 이승의 보금자리 떠나서 영원히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공간이다. 살아서 주택문제로 평생 신경쓰며 지내더니 지레 죽어 잠들 음택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지만 전혀 차원이 다른 내집 마련이다.

 

아내가 이제 죽을 때까지 머물 양택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는데 이후 만족할 만한 음택을 소박하게 마련하는 것은 욕심 떠난 즐거움 아니겠는가.

 

긴기아난 천리향 라벤더 미니수선화 자스민 아네모네 후리지아 베고니아 바이올렛... 이름만 나열해도 향기 그득하고 화사한 꽃화분으로 우리 부부만 생활하는 조그만 아파트 거실과 방, 베란다는 온통 화원이 되었다.

 

아내는 간혹 찾아오는 손주들 보느라 생긴 어깨, 허리 통증을 한약방 침보다는 꽃화분 가꾸기로 치유하는 듯하다. 아내는 화분마다 이름표를 달아 놓았지만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집안에 들여놓은 화초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할 것이다. 술안주에 얹어 먹을 수 있는 무순, 상추, 쑥갓 이름만 알고 가끔 물 주는 것으로만도 즐거워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온갖 꽃들이 만개한 지상 천국 아파트에 살고 있다. 부모님은 그보다 더 다양한 꽃과 나무가 평화롭게 자라는 수목장 천국에 계시다. 그리고 이제 우리 부부도 사후 천국 수목장을 예약할 때가 된 것이다.

 

지상 천국 화원 아파트에 살다가 영원히 잠들 수목장 천국을 예약할 일이 설렌다. 예전 조상들이 수의 만들어 놓고 편안해 했다는 마음을 수목장 예약으로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 지상 천국 화원 아파트(왼쪽)와 사후 천국 수목장     © 매일종교신문

 

한잔 하고 싶다는 아들과 동네 주점에서 영업마감 시간까지 이야기 나눴다. 천상에서도 누릴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상 천국인 것이다.

 

수목장 예약을 이야기하자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 어쩔 줄 몰라했다. 마치 유언을 남기는 듯한 선언에 당황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영면할 정해 놓으면 더 오래 산다러라. 너무 오래 살아도 안되는데...”라고 하자 그제서야 슬며시 웃는다.

 

너희들이 훗날 소풍오는 기분으로 들릴 수 있는 가까운 수목장을 정해 놓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현재 엄마와 더할 나위없이 즐겁게 생활하는 보금자리를 수목장까지 연장하고 싶다.”

 

아빠, 내가 대신 가서 수목장 예약할께요. 그리고 오늘 삼겹살에 소주했으니 다음엔 막걸리에 전으로 하도록 하지요

 

중년이 다된 아들이 아빠라고 부르니 또한 좋았다.

 

아내와 아들, 주변 사람과 함께 하는 지상 천국에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만 수목장 천국 역시 기쁘게 받아들일 자신이 생긴다. 지상천국을 맛보고 느껴야 천상 천국도 갈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기일은 어머니 8주기 보름 앞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돈된 수목장에 꽃송이 바쳐 드리고, 어머니 기일엔 집에서 두 분 밥상 차려놓고 함께 식사하며 기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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