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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⑯ 인도에 간 그리스 철학자들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4/12 [06:53]
《금강경》 영역한 독일계 영국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 그리스 피론주의와 불교 중관학파 사상은 유사해 주장

서양문화와 불교-⑯ 인도에 간 그리스 철학자들

《금강경》 영역한 독일계 영국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 그리스 피론주의와 불교 중관학파 사상은 유사해 주장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4/12 [06:53]

 

▲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때, 인도의 나체 고행자들을 만나는 장면으로 그리스 철학자들인 피론, 아낙사르쿠스와 오네시크리투수도 동행 했다.


금강경영역한 독일계 영국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

그리스 피론주의와 불교 중관학파 사상은 유사해 주장

 

서양문화와 불교란 주제로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그리스 사상과 불교가 만난 데에서 동기 부여가 됐다. 알렉산더 동방원정의 결과, 페르시아와 이집트가 그리스에 점령당하고 중앙아시아 인도까지 진출, 박트리아 지역은 그리스 식민지로 전락했다. 동방원정 이후, 알렉산더 대왕은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헬레니즘 시대를 열었다. 무려 3백년간 헬레니즘 시대는 전개된다. 이 기간 동안 그리스 사상과 문화는 알렉산더 후계 국가들에 집중적으로 전파되었고, 그리스풍의 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알렉산더 동방원정에는 전쟁전문가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전쟁에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는 몇몇 철학도가 원정에 동참했는데, 그들은 피론, 아낙사르쿠스, 오네시크리투스였다. 알렉산더는 인도에서 나체 수행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알렉산더보다 더 감명을 받은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 그리스 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이른바 알몸철학자들로 알려진 나체 수행자들과 교류했는데, 무려 18개월 동안 함께 있으면서 영향을 받았다.

 

당시 인도의 고행자들은 거의가 나체나 다름없었다. ‘쉬라마나라고 해서 이들은 일종의 유행승(遊行僧)들이었다. 일정한 주처(住處) 없이 숲속이나 강가, 동굴, 도시의 공원 등지에서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몸에는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고 밥은 얻어먹었다. 이들은 주로 불교, 자이나교, 아지비카교의 고행 수도자들이었다. 이들 쉬라마나는 사마나라고도 불렀다. 이 고행자들을 중국에서는 사문(沙門)이라고 한역했다.

 

그래서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불교 승려들을 사문이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누더기 차림에 산중에서 은둔하여 조용히 고행에 몰두하는 고행자들이 있는 것은 이런 전통 때문이다. 알렉산더가 지금의 파키스탄 간다라에서 만난 이 나체 고행자들은 바로 이 사문들이었다. 당시의 사문들은 종교별로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불교 자이나교 아지비카교를 넘나들었다. 후대에 오면서 이들 종교별로 수행자들의 소속이 분명해졌지만, 초기에는 함께 고행 수도했었으며, 이념적으로 확실한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알렉산더는 나체 고행자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들에 대한 궁금증은 참을 수 없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들에게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금욕주의였다. 먹는 것에서 입는 것과 즐기는 것 까지도 이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 지금도 인도에 가면 나체 고행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이나교의 공의파(空衣派) 승려들이다.

 

이들 그리스 철학자들은 나체고행주의자들에게 관심을 집중했고, 특히 이들 철학자 가운데 오네시크리투스는 동방원정에서 이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오네시크리투스는 견유학파 소속이었다. 키니코스학파는 견유학파(犬儒學派)라고도 한다. 이 학파는 자연과 일치된,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 철학운동으로서 이를 따르는 철학자들을 말한다. ‘견유라고 번역된 이름은 그리스어로 개를 의미하는 Κύνος에서 왔다. 견유 운동의 역사는 안티스테네스(기원전 444~365)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가장 중요한 제자 중의 하나였다. 안티스테네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가 배고프지 않을 만큼, 목마르지 않을 만큼 가졌다. 벗지 않을 만큼 입었다. 밖에 있을 때는 저 부자 칼리아스보다도 더 떨지 않고 안락하다. 안에 있을 때는 따듯한데 왜 옷이 필요한가?“

▲ 엘리스의 피론, 그리스 코르푸 섬 고고학 박물관.  

 

견유 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시노페의 디오게네스(기원전 412~323)였다. 전승에 의하면 디오게네스는 안티스테네스의 제자로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자족(아우타케이아), 절약(아스키시스), 부끄럼 없음(아나이데이아)’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수행에는 기이한 일화가 많으며, 길에서 자거나 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그는 윤리적인 진지함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cyon)’로 알려지게 되며, 견유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기원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전기 작가로서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써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삶에 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스 철학과 불교와 관련해서 보면, 피론학파, 견유학파, 키레네학파가 불교와 유사한 대표적인 학파들이다.

 

피론주의 또는 피론 회의주의는 기원후 2세기 후기 또는 3세기 초,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기록한 게 남았고, 기원전 1세기 아이네시데모스가 설립한 회의주의 학파다. 이는 기원전 360년에서 270년 사이 살았던 철학자 피론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엘리스의 피론은 회의주의 학파를 창설했다고 전해진다. 피론은 인도로 여행하여 나체 수행자들과 교류하고, 모든 것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개념을 가지고 돌아왔다. 감각과 이성은 쉽게 욕망에 따른다. 피론주의는 그의 추종자인 아이네시데모스에 의해 기원전 1세기에 창설되었으며, 수학자에 대해서를 쓴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에 의해 2세반 후기 또는 3세기 전반에 기록되었다.

▲ 알렉산더와 함께 동방원정에 참가했던 그리스 철학자 오네시크리투스가 기록한 알렉산더와 전설의 아마존 여왕 텔레스트리스 방문 이야기를 묘사한 장면.

 

페레그리누스 프로테우스(기원후 95~165)는 그리스 냉소주의 철학자다. 그는 처음엔 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인들과 함께 살다가 결국 그 공동체에서 추방되고 냉소적인 철학자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리스에 정착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 연설을 하고 165년 올림픽에서 장작더미에 누워 자신을 스스로 화장하여 분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도의 나체고행자들의 스토리에 매우 탐닉한 철학자였는데, 그는 인도 탁실라의 요가 철학자들인 칼라누수, 단다미스, 자르마루스를 숭모하였다고 한다.

 

칼라누수(398~323)는 요가에 능한 인도 탁실라의 나체철학자로 알렉산더와 그의 병사들도 관심을 보였으며, 그는 스스로 장작더미에서 화장했다고 한다. 그는 장작더미 위에서 요가삼매에 들어서 몸이 타는 동안 움찔하지 않았다고 한다. 요기인 단다미스는 알렉산더와 숲속에서 마주쳤는데, 그는 나중에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서 화장했다고 하는데, 그는 병사들에게는 작별 인사를 했지만 알렉산더에게는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알렉산더에게 바빌론에서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정확히 1년 후, 바빌론에서 죽었다. 그는 알렉산더의 죽음의 그림자를 미리 예견한 것이다.

 

아마도 알렉산더는 이들 나체고행자들을 이해할 수 없는 자들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이들 요가 수행자들이 결국엔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터전과 전통이 무너진다는 것을 예견했던 것 같다.

 

결과론적으로 인도사상과 불교사상이 그리스 사상과 만났다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인도 요기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터전에 낯선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결국엔 죽음을 택함으로써, 무언의 항변을 보여준 것이다. 반면에 피론, 아낙사르쿠스, 오네시크리투스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런 나체 요가 고행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리스로 돌아와서 자신들의 철학학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피론주의, 견유학파, 키레네학파는 인도의 고행주의 내지는 불교사상과 유사한 사상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서양불교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양불교학자로서 금강경을 영역한 에드워드 콘즈는 피론주의와 불교의 유사성을 말하고 있다.    

▲ 서양불교철학자인 에드워드 콘즈.  

 

에드워드 콘즈(1904~1979)반야바라밀다경(般若波羅蜜多經)을 영역하면서 피론의 회의주의는 불교철학과 비교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인도불교의 중관학파의 논리와 유사하다고 했다. 중관학파(中觀學派, madhyamika 마댜미카)는 용수(龍樹:150~250)의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인도 대승불교의 종파이다. 피론의 아타락시아(ataraxia: 평정한 마음의 상태)는 헬레니즘시대의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근거하여 쾌락의 획득과 고통의 회피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고 주장한 에피쿠로스 학파가 감정적, 정신적 동요나 혼란이 없는 평정심의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apatheia:모든 정념(情念)으로부터 해방된 상태)와 자주 비교되는 용어이다. 아타락시아는 불교의 열반과 유사하다는 것이 에드워드 콘즈의 견해이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사상적으로 특기할만한 학파가 다섯 개가 있었는데, 원시적 형태의 기독교를 포함해서이다. 퀴레네-에피쿠로스 학파, 퀴니코스-스토아학파, 회의주의 학파, 신 플라톤 학파가 그것이다. 헬레니즘 시대 300년간 그리스 사상과 불교는 상호 접촉 교류하면서 적어도 대승불교 태동에 동기가 부여되었으며, 사상적으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서양불교학자들의 견해이다.

보검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옛 박트리아 땅이었던 부하라 전통시장 모자 가게에서 현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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