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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㉙인도 박트리아 쿠샨 파르티아, 그리스-로마제국에 불교전파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7/12 [08:04]
기독교 대두로 불교 서쪽 전파 막히고, 동쪽으로만 전해져 끝내 지구 한 바퀴 돌아

서양문화와 불교-㉙인도 박트리아 쿠샨 파르티아, 그리스-로마제국에 불교전파

기독교 대두로 불교 서쪽 전파 막히고, 동쪽으로만 전해져 끝내 지구 한 바퀴 돌아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7/12 [08:04]

기독교 대두로 불교 서쪽 전파 막히고, 동쪽으로만 전해져 끝내 지구 한 바퀴 돌아 

 

불교라는 종교가 인도에서 출현하여 인도에서 3백년정도 성장하다가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을 만나서 인도 아대륙 전역에 전파하게 됐다. 그리스계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박트리아에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건국되면서 그레코 불교가 탄생하게 됐다. 이어서 인도-그리스왕국도 불교를 수용했으며, 중국 서북 변방에서 살았으나 흉노족에게 쫓겨 박트리아 지역에 까지 이르러서 결국 쿠샨제국을 세워서 불교를 국교로 삼고 제4차 경전결집을 주도했다. 페르시아의 정통성을 계승한 파르티아는 불교국가였으며, 파르티아 승려들이 중국에 불전을 가져와 한역하여 한전불교(漢傳佛敎)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 인도 보드가야에 있는 마하보디사원,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이곳에서 대각을 성취하여 붇다가 되었으며 아소카 대왕의 후원으로 사원이(대각사)이 건립됐다.    

 

인도불교는 1700여 년 간 전성을 누리다가 12세기 말에 이슬람 군대의 침입과 박해를 받아 인도 아대륙에서 소멸하고 말았다. 그러나 네팔이나 벵골 일부, 티베트와 가까운 지역 등에 불교 신자가 소수 남아있었고 이웃 섬나라인 스리랑카에는 불교가 남아있어 수 백 년 후 불교가 인도에서 다시 부활하는 계기가 됐다. 이슬람의 침입도 있었지만, 인도 불교 스스로도 거의 힌두교나 다를 것이 없는 상태로 변질되었다.

 

1891년 스리랑카 출신의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가 마하보디 협회를 만들고 불교를 포교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벵골 지역에서 불교 협회가 조직되었다. 1959년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하면서 티베트 망명 정부를 세우고 불교 기록물을 가져옴과 함께 불교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19세기 말, 달리트(불가촉천민)들에게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를 믿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1956년에 인도의 정치인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가 수십 만 명의 달리트들과 함께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했다. 오늘날 마하라슈트라 주에는 달리트 출신의 불교 신도가 많이 있다.

 

한편 중국 사서에 나타난 인도는 어떤 나라였나를 잠간 살펴보자. 한서》 「서역전계반국에 의하면, “계빈국이 왕도는 순선성이고 장안에서 12,200리 떨어져 있다. 서역도호부에 복속하지 않았다. 민호와 인구, 군사가 많은 대국이다. 동북쪽으로 서역도호부까지는 6,840리이며, 동쪽 오차국까지는 2,350이며, 동북 난두국까지는 9일이 거리며 서북쪽으로는 대월지, 서남쪽으로는 오익산리국이 연접했다라고 했다. 계빈국에 대해서는 상당한 양의 정보를 할애했는데, 불교 이야기는 없지만, 이 무렵 카슈미르에도 불교가 전파되고 있었다.

 

카슈미르의 역사서(Nilamata Purana, Kalhana's Rajatarangini)에 의하면 아소카 대왕 때 불교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 카슈미르는 인도-파키스탄과의 분쟁지역이며 중국과도 첨예한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근본설일체유부파의 율장 주석서에 따르면 매우 이른 시기에 카슈미르 지역에는 사원이 있었으며, 아소카대왕의 후원으로 파탈리푸트라(파트나)에서 제 3차 경전결집이 있었을 때, 몇 명의 비구가 초청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2세기 카슈미르 역사가인 칼하나에 의하면 아소카 대왕 이전의 수렌드라 왕 때부터 카슈미르에는 사원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불교사에서 아주 중요한 획을 긋는 것은 제4차 경전결집이 카슈미르에서 쿠샨제국의 카니슈카 왕의 후원으로 개최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카슈미르는 인도 아 대륙 최북단에 위치하면서 인도불교를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고, 이웃인 라다크와 티벳 등지에도 불교를 전파하는 링크 역할을 하였다.

 

스리랑카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아난존자의 제자였던 마지한티카라는 비구가 바라나시에서 카슈미르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이후 아소카 대왕은 제3차 경전결집 때, 카슈미르에서 비구들을 초청하여 경전결집회의에 동참 시킨 것이다.

 

중국의 인도 구법승 현장법사도 카슈미르를 방문했으며, 당나라에서 사절과 승려들이 몇 차례 방문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카슈미르는 인도 아대륙과 중앙아시아 서역 티벳 중국과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한서》 「서역전계빈국 기록에서 무제 때 계빈국과 처음 통교한 이후로 계빈국은 그들이 외진 곳 멀리에 있어 한의 군사가 올 수 없다 하여 그 왕인 오두로는 한의 사신을 자주 겁략하였다. 오두로가 죽고 아들이 뒤를 이어 즉위하자 사신을 보내주게 하였다. ...중략고 하였다.

 

후한서》 「서역전우전국의 기록에 보면, “우전국의 도읍은 서성인데 서역장사 소재지에서 5,300리이고 낙양에서는 11,700리이다. 호구는 32,000호이고 인구는 83,000명이고 군사는 3만여 명이다. ...중략, 정절국 서북에서 소륵에 이르기 까지 13개국이 모두 우전국에 복속하였다. 그 무렵 선선왕도 마찬가지로 번성하였다. 그래서 천산남로의 총령(파미르) 동쪽에서는 이 두 나라가 큰 나라였다.”고 했다.

 

우전국은 지금의 신강성 화전인데, 불교사적으로 보면 매우 의미 있는 지역이다. 한나라 때부터는 우전이라고 하는데 호탄, 지금은 화전으로 부르고 있다.

▲ 타클라마칸 사막 천산남로 서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예로부터 인도 계빈국과 가까웠으며, 지금도 인도 카슈미르에서 온 인도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한동안 불교가 국교였으며 중국과 인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불교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거의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 호탄에 있는 이슬람 사원 모스크.     © 매일종교신문

 

호탄은 한때 불교 중심지였고, 화엄경이 이곳 호탄에서 성립했으며, 중국에 가져와서 한역했다. 호탄은 인도 불교가 북진하면서 카슈미르에 이르러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타클라마칸 천산남로의 관문인 호탄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호탄에는 인도 불교가 전성을 이루기도 했지만, 중국식 대승 불교가 역으로 전파된 곳이기도 하다. 호탄은 여러 종족들이 지배했으며, 이란계의 부족들이 한동안 지배하였고, 지금은 각 부족들이 섞여서 그야말로 인종시장을 방불케 하는 도시로 변모하였다. 중세까지만 해도 불교가 전성을 이루었지만 현재는 이슬람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월지국인 쿠샨제국에 대해서는 한서후한서》 「서역전에 기록되고 있는데, 후한서》 「서역전기록에 따르면 대월지국 도읍은 남씨성이고, 서쪽은 안식국과 접했는데 가는데 49일이 걸리며, 서역장사 소재지에서 6,537리 거리이며 낙양에서는 16,370리이다. 10만 호에 인구는 40만이고 군사는 10만 명이었다. 그 전에 월지가 흉노에게 멸망한 뒤 결국 대하(박트리아)로 옮겨 왔는데 그 나라를 휴밀, 쌍미, 귀상, 힐돈, 도밀로 나누어 모두 5부 흡후를 두었다. ...중략, 월지는 이후로 강장부유하고 강성하였고 다른 모든 나라에서 부러워하며 모두 귀상왕이라 불렀다. 그러나 한나라는 옛 호칭으로 대월지라 하였다.”로 기록되었는데, 대월지는 쿠샨제국으로 성장하여 불교를 국교로 삼을 정도였다.

  

안식국에 대해서도 한서》 「서역전후한서》 「서역전에 기록되어 있다. 후한서》 「서역전의 기록에 보면, “안식국의 도성은 화독성인데, 낙양에서 25,000리 떨어졌다. 북쪽으로는 강거(소그디아나)와 접했고, 남으로는 오익산리국에 접경했다. 땅이 사방 수천 리이며, 작은 도성이 수백 개이며 호구와 군사가 가장 번성하고 강한 나라이다. ...중략, 안식국에서 서쪽으로 3,400리를 가면 아만국이 있다. 아만국에서 서쪽으로 3,600리를 가면 사빈국에 이르고, 사빈국에서 남쪽으로 강을 건너 다시 서남쪽으로 나가면 960리 되는 곳에 우라국이 있는데 그곳이 안식국의 서쪽 끝이다. 거기서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대진국(로마)에 갈 수 있다. 대진국은 바다 서족으로 진기하고 기이한 물건이 많다.”고 기록 하였다.

▲ 유라시아 4대 제국인 로마제국. 파르티아제국, 쿠샨제국과 한(중국) 제국이 전성을 이루던 기원후 2세기경 판도.   


불교는 서진을 향해서도 확장하려 했지만 로마제국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중앙아시아의 그리스-박트리아, 인도-그리스 왕국에서는 불교가 어느 정도 전파되고 국교의 지위에 까지 이르렀지만, 페르시아의 파르티아를 넘어서 로마 제국에 까지 이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데칸 이남의 인도 남부 왕국에서 아라비아 해를 가로 질러서 로마제국과의 무역에 편승하여 교류가 있었다. 육로 상으로는 서진보다는 동진을 하게 되었고, 쿠샨제국이나 파르티아 제국의 승려들이 불교지식을 중국에 전파하는 역경사의 역할을 하였다. 나중에는 서역의 쿠차나 호탄 같은 사막의 오아시스 나라들에서 빅슈(승려)들이 중국으로 가서 불경을 한역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고, 이후에는 인도에서 불전이 중국에 전해졌다.

 

오늘날의 동아시아 불교는 단순히 인도불교만이 아닌 그리스,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의 사상까지 더해져서 형성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불교를 인도적 불교만을 전제한다면 동아시아 불교의 원류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사상, 그리고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사상이 빠진 동아시아 불교란 존재할 수가 없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이런 문명사적 전후관계를 도외시한 중국 일변도의 교학이나 선종불교 전통만을 고수하는 풍조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한 법회에 참석한 필자 보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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