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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한 월주스님 “불교 깨달음, 사회에 得되길…모든 순간 임종게”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7월26일 조계종단장으로 영결식과 다비식…
기사입력: 2021/07/26 [21:35]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문윤홍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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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726일 조계종단장으로 영결식과 다비식

198010·27법난 때 연행돼 고초총무원장 복귀뒤 깨달음의 사회화

 

대한불교조계종 제17·28대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낸 전북 김제 금산사 조실(祖室) 태공당(太空堂) 월주(月珠) 스님이 722일 오전 945분 노환으로 원적(圓寂)에 들었다세수 87세, 법랍 67세.태공당 월주 대종사(大宗師)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엄수됐다.

 

불교계 안팎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최소화 방침에도 생전 스님과 각별한 인연을 기억하는 각계 인사들이 금산사를 찾아 스님의 가르침을 기렸다. 특히 각계의 추모사와 추도사, 조사(弔辭)와 조전(弔電) 등이 수없이 이어졌을 뿐 아니라, 대만 불광산사와 미국 대사관 등에서도 조전을 보내와 국내외, 분야에 한정되지 않았던 대종사의 넓은 활동상을 짐작케 한다. 

 

진제 종정 증명법어서 상찬

 

태공당 월주 대종사 종단장 장의위원회(장의위원장 원행)726일 김제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에서 월주 대종사의 영결식을 거행했다. 만월당에 안치됐던 스님의 법구가 처영기념관으로 운구된 데 이어, 오전 10시 명종 5타와 삼귀의례를 시작으로 영결식이 시작됐다. 코로나 방역지침 준수를 위해 처영기념관 내에는 50명만 자리했으며, 그밖에 대중들은 외부에 마련된 스크린을 통해 스님의 떠나는 길을 마음으로 배웅했다.

 

영결식은 조계종 어산종장 인묵 스님의 집전으로 이어졌다. 인묵 스님과 덕산 스님의 영결법요에 이어 상좌 대표 도영 스님과 도법 스님이 헌다와 헌향으로 스승을 추모했다. 이어 지명 스님의 행장 소개 후, 월주 대종사의 생전육성법문을 통해 드높았던 가르침을 재차 되새겼다.

▲ 7월26일 금산사에 치러진 월주 스님 종단장 영결식에 장의위원장 원행 스님은 “저의 은사이자 한국불교의 큰 스승이신 태공당 월주 대종사를 적요의 세계로 보내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조계종 제공    

 

장의위원장 원행 스님(조계종 총무원장)은 영결사를 통해 오늘 저는 저의 은사이자 한국불교의 큰 스승이신 태공당 월주 대종사를 적요의 세계로 보내드려야 한다“1961년 금산사 도량에 주지로 부임한 후 60여년 간 손수 어루만지시던 돌덩이와 초목은 지금도 제자리인데 대종사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라며 스승을 떠나보내는 비통한 마음을 전했다.원행 스님은 월주 대종사는 일평생 우리 종단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정진했던 종문(宗門)의 사표(師表)’였기에 남기신 자취가 너무도 크고 무겁게 다가온다매사 공삼을 앞세우며 종단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그 삶은 종단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는 법어를 통해 월주 대종사는 생사무상의 고통을 느끼고 출가를 단행하신 이래 수행과 포교와 중생구제가 다르지 않음을 일생일관(一生一貫)으로 실천하신 선지식이었다또 산중불교만이 아닌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중생교화를 위해 몸소 사바세계에 뛰어들어 중생과 함께하며 동체대비의 보현행원을 시현했다고 상찬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수봉세민 대종사는 추도사에서 월주 대종사는 현대불교사를 이끌어 온 산증인이자 살아있는 역사, 정신적 기둥이었으며 또한 불교의 미래를 여는 혜등이요, 인로왕보살이었다지금 종도들은 정신적 기둥을 잃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무너진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생몰이 없고 오고감이 없는 기용(機用)으로 은현자재(隱現自在)함을 한번 보여달라고 전했했다.

▲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수행과 포교와 중생구제가 다르지 않음을 일생일관(一生一貫)으로 실천하신 선지식이었다”고 상찬했다. /사진-조계종 제공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정문 스님은 조사에서 모든 날을 마지막 날처험 살았다고 하시는 스님의 일생은 보살의 삶 그 자체였다삶의 모든 순간은 찰라 생하고 찰라 멸하니, 지금 여기 이 자리가 바로 깨달음의 자리이며 행복한 세상이다. 오늘 이 자리는 슬픔으로 가득하지만 또한 원각도량인 것이라고 추모했다.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경우 스님(선운사 주지)무시무종(無始無終)하며 시종(始終)이라 할 것도 없으니 이 또한 진공묘유의 가르침으로 여기며 속환사바하여 환희증명해 주시길 간청드린다고 했으며,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은 모악 영산에 달빛 무성하고 금산 동천에 물소리 흥겨운 성하지절(盛夏之節)에 평생 문수의 머리와 보현의 손발로 입전수수(入廛垂手)하시던 자애로운 큰스님 영전에 일주청향(一炷淸香)으로 삼가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대통령 직접 조문불교종단대표 스님들과 김희중 대주교, 정치인들 영결식 참석

 

문재인 대통령도 조전에서 한국불교와 나라의 큰 어른이신 월주 대종사께서는 구도의 삶과 이웃의 고통을 품어주는 이타행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셨다대종사께서 말씀하신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아프고 힘든 이웃을 보듬고 함께한다면 우리 국민은 코로나의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그 정신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영결식에 앞서 금산사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은 월주 대종사께서 조계종 28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직후 고단한 한국불교계를 으뜸으로 이끄셨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스님의 한걸음 한걸음은 대한민국을 선진사회로 이끄는 초석이 됐다, 스님의 큰 뜻을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조계종을 비롯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대표스님들, 불교계 주요 스님들 뿐 아니라 김희중 천주교광주대교구장 등 이웃종교인,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렬 전 검찰총장 등 주요 대권주자들도 자리했다. 또 이원욱 국회정각회장, 송하진 전라북도지사, 박준배 김제시장, 안숙선 명창 등 월주 대종사와 인연이 깊었던 인사들이 찾아와 조사를 통해 스님의 입적을 애도했다.

 

영결식은 '명종5(다섯 번 타종)'를 시작으로 삼귀의, 행장 소개, 육성법문, 종정 법어, 영결사 순으로 진행됐다. 전국 사찰에서도 일제히 5차례 조종(弔鐘)을 울려 애도의 뜻을 표했다.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영결식이 끝난 뒤 월주 스님의 법구는 만장행렬과 함께 영결식장에서 다비장으로 옮겨졌다. 금산사 연화대에서 열린 다비식은 이날 낮 12시 스님과 신자들이 다비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엄수됐다.

 

사회문제 해결에 평생 헌신자신의 인생을 ‘40년 주기전후반으로 나눠  

 

월주 스님은 IMF 외환위기 때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쳤고, 북한 주민의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해 나섰으며, 아시아·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학교를 짓고 우물을 파줬다. 국내외 사회문제 해결에 불교계를 대표해서 활동해온 월주 스님은 속가(俗家) 성을 붙여 ()월주 스님으로 더 유명했다.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세에 한국 근대 불교의 거목 금오(1896~1968)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자신의 인생을 ’40년 주기' 전후반으로 나누곤 했다. 전반 40년은 공부와 종무 행정, 후반 40년은 깨달음의 사회화의 시절로 봤다. ‘깨달음의 사회화는 불교의 깨달음이 산중(山中)의 스님들에게만 머물지 않고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 ‘깨달음의 사회화’를 주창하며 국내외 어려운 이웃을 도와온 월주 스님은 “살아온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라는 말씀을 남겼다.  

 

30대 초반부터 조계종 종무 행정에 참여해 총무원 교무부장, 총무부장, 중앙종회의장을 지냈고 1980(17)1994(28) 총무원장을 지냈다. 교육원, 포교원을 별도로 독립시켰고, 조계종사회복지재단도 설립해 불교에 사회복지 개념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 불교와 사회복지에 큰 획을 그었다.

 

출가 후 젊은 시절엔 이 뭣고화두(話頭)를 들고 참선 수행에 매진했던 그는 20대 후반부터 종무 행정에 참여했다. 1960년대 결혼하지 않은 비구승이 귀했기 때문이다. 20대에 교구 본사(本寺)인 금산사 주지를 지냈고 이어 종단의 주요 보직을 맡아 종단의 안착에 기여했다. 1980(17)1994(28) 두 차례 총무원장을 지내면서 승려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원, 포교를 맡는 포교원을 총무원에서 독립시켰고, 조계종사회복지재단도 설립해 불교에 사회복지 개념을 도입했다. 

 

사회 구석진 곳이 내 수행현장세상과 함께하는 불교 꿈꿔

2004세계로 눈 돌려야2출가NGO 세워 네팔-라오스 등 도와

 

나의 수행 현장과 염화실(拈華室·조실이나 방장 스님이 거처하는 방)은 사회와 지구촌의 구석진 곳이다. 나는 늘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

 

월주 스님은 2012년 동아일보에 53회에 걸쳐 연재한 회고록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를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언급했다.

 

세상과 함께하는 불교를 꿈꿔 온 월주 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사의 산증인이었다. 1954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196126세 때 금산사 주지가 됐다. 조계종 본사 주지로는 최연소였고, 지금도 바뀌지 않은 기록이다.

 

1950, 60년대 비구와 대처승의 대립으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월주 스님은 한국 불교사(佛敎史) 격랑의 한복판에 줄곧 서 있었다. 정치권력에 의한 불교계 최대 수난인 198010·27 법난(法難) 때는 종단 행정의 책임자인 제17대 총무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날 오전 당시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됐고, 가사와 장삼 대신 푸른 수인복을 입고 23일간 조사를 받은 뒤 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신군부의 이른바 불교정화 작전명은 ‘45계획이었다. 조계사 주소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를 딴 것이다. 이후 월주 스님은 미국 등지에 머무르며 한국 불교의 나아갈 길을 고민한 끝에 깨달음의 사회화를 불교의 시대적 책무로 설정했다. 

 

28대 총무원장 복귀 후 깨달음의 사회화운동 전개종교간 화합도 주도해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이 3선 연임 강행 끝에 종단 안팎의 반발로 사퇴한 뒤 그해 치러진 선거를 통해 월주 스님은 제28대 총무원장으로 복귀했다. 총무원장으로 있던 1995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을 선언했다. 이후 종단 차원에서 노동과 인권, 복지, 환경, 통일 사업에 나섰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설립했다.

 

▲ 월주 스님은 종교 간 화합과 불교계의 사회적 기여 확대에 헌신했다. 1998년 실업극복국민운동 출범식에 참석한 강원용 목사, 김수환 추기경, 월주 스님(왼쪽부터). /사진=금산사 제공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 개신교의 강원용 목사와 함께 금 모으기와 실업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종교계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이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 자체가 종교 간 화합이자 자신이 속한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사회적 실천의 상징이 됐다. 160cm가 조금 넘는 키에 둥그런 테 안경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월주 스님은 한때 80개가 넘는 직함을 가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참여했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만들었다. 

 

이제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 돌려야 할 때내게는 2의 출가  

 

이제는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내게는 2의 출가였다. ‘의 좁은 우물을 벗어나 모든 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큰 우물을 만들어야 한다.”

 

2004년 국제개발협력 비정부기구(NGO)인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하던 시기에 대한 회고이다. NGO는 캄보디아를 비롯한 5개국에 2500개가 넘는 우물을 팠고, 네팔과 라오스 등 8개국에 60개가 넘는 학교를 준공했다.

 

지구촌공생회는 아시아·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어려운 이웃을 지원해왔다. 깨끗한 식수가 부족한 캄보디아 등에 판 우물만 2550개에 달한다. 스님은 생전에 굶는 이에겐 법(·진리)보다 밥이 먼저라고 말했다.

 

허례허식을 질색한 스님은 일상생활도 깔끔하게 관리했다. 일 처리는 뜬구름 잡는 법 없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었다. 캄보디아나 케냐에 봉사 활동을 위해 출장 갈 때면 젊은 활동가들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의 강행군 일정을 소화했다. 고령이라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할 때에도 공금이 아니라 사비를 썼다. 

▲ 2013년 지구촌공생회 대표였던 월주 스님이 캄보디아에서 우물 개설 사업을 진행하며 현지 어린이에게 물을 건네는 모습. /사진- 금산사 제공   

  

월주 스님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또다른 그릇은 사람  

 

월주 스님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또 다른 그릇은 사람이다. 은사인 금오 스님을 비롯해 불교계의 큰 봉우리였던 탄허, 청담, 성철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서옹 서암 월하 혜암 스님 등 역대 종정 스님과 고산, 법장, 정대, 지관 스님 등 역대 총무원장들과는 불교 개혁 과정에서 같은 배를 타기도 했고, 때로 불가피하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유명해 메모 없이도 시점까지 언급하며 특정 사건과 인물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할 정도였다.

 

종교계 원로로서 월주 스님은 김구 선생은 김일성에게 속았고,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속았다. 나도 속았다는 등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평생을 관류한 정신은 균형이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다. 종교계뿐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최고 권력자를 비롯해 소설가 조정래, 국악인 안숙선 씨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스님의 상좌들은 현재 조계종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도영(전 조계종 포교원장), 도법(실상사 회주), 원행(조계종 총무원장), 성우(동국대 이사장), 일원(금산사 주지) 스님이 월주 스님의 상좌(제자)들이다.국민훈장 무궁화장(2011), 조계종 포교대상(2005), 민세상(2010), 만해대상(2012), 대원상(2013) 등을 받았다.

 

모든 순간이 임종게살아온 생애가 훌륭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 토각귀모(兎角龜毛). 불교에서 이른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남들은 깨달음을 찾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자신은 세상에서 토끼의 뿔을 찾아다녔다는 월주 스님은 이런 임종게(臨終偈: 입적하기 전 남기는 깨달음의 말씀)를 남겼다.“천지본태공(天地本太空) 일체역여래(一切亦如來) 유아전생애(唯我全生涯) 즉시임종게(卽是臨終偈) (!)!” 

▲ 7월26일 조계종단장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이 치러진 월주 스님의 금산사에서의 생전 모습     


스님의 임종게는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이다. 지난 2016년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과 법문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를 펴내면서 나는 임종게 없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월주 스님은 살아온 생애가 훌륭하면 그것으로 족하지 임종게 없이 돌아가신 분의 상좌(제자)들이 임종게를 (만들어) 발표하거나 어설프게 수행한 사람이 오도송(悟道頌: 깨 달은 후 읊는 게송)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었다.
 

 

월주 스님 주요 이력 

 

1935년 전북 정읍 출생

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6171년 금산사 주지

1980년 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

199498년 조계종 제28대 총무원장

19982003년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공동위원장

19982020년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 이사장

2004년 지구촌공생회 대표

2010년 실상사, 2012년 금산사 조실 추대  

 

佛法은 세간에 있다생전 법문으로 본 월주 대종사의 가르침

세간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거북이에게서 털을 구하는 것과 같다 

 

722일 열반한 태공당 월주 대종사는 생전 두 차례의 조계종 총무원장, 금산사와 영화사 조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나눔의집 이사장 등 종단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래서 월주 대종사는 불자들 뿐만 아니라 전국민에게 많은 법문과 메시지를 남겼다. 대종사의 법문에는 평소 대종사의 수행, 포교 원력과 사회 갈등 화합에 대한 메시지들이 담겼고, 이는 현재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歸一心願 饒益衆生

 

월주 대종사가 생전 법문에서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願 饒益衆生,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라)’이다. 대종사는 이를 부처님의 본원임을 강조하고 나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하고 부처님처럼 행하는 것이야말로 조계종의 핵심 가르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종사는 깨달아 자기 본성자리로 돌아가는 귀일심원과 세상의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요익중생은 둘이 아님을 강조했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진언이든 수행을 통해 연기법을 깨닫고 동체대비심이 우러나와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비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자기와 세상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하나로 융합할 때, 아니 이미 하나로 연결돼 있는 한 몸임을 알아차릴 때 불교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귀일심원 요익중생법문을 통해 월주 대종사는 대중들에게 연기법과 자비심을 강조하며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당부했다. 나와 너, 자연과 세상은 홀로 존재할 수 없이 연결돼 있으며,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서로에게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체대비, 우리 모두가 같은 몸임을 깨달을 때 큰 자비심이 흘러 나오게 됩니다. 누가 시켜서 자비심을 내고 자비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자비행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비행으로써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자 불교의 사회적 존재 이유입니다.” 

▲ 생전에 “​​​​​​​수행과 보살도 실천은 둘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월주 스님   


구도의 본질은 자비행에 있습니다. 보현행을 통해 보리를 얻고 해탈할 수 있다는 신심을 확고히 갖고 실천 수행을 하길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헐벗고 병든 이웃이 빈곤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못 배운 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우물을 파서 기갈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물을 주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삶의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막고, 전쟁을 반대하며, 지구촌의 생명이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누리도록 생명평화를 실현하는 일에 동참하는 자비가 이 시대의 보살행입니다.”보살행은 월주 대종사가 평소 법문과 대외 메시지를 통해 불자들과 국민에게 던진 화두이다. 대종사가 강조한 이 시대의 보살행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는 눈높이 자비행이다. 이는 2004년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하며 남긴 소감에서 잘 나타난다. “지금 당장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인 사람, 질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에게 본래 생사가 없으니 마음을 갈고 닦아서 진리를 깨달으라는 심오하고 고차원적인 설법은 그저 귓전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되기 쉽습니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야말로 진정한 전법도생입니다. 불교는 사회 전반에 걸쳐 복지에 기여해야 하고, 그 영역의 확대를 통해 자비와 이타의 종교임을 확실히 각인시켜 줘야 합니다.”

 

이타·상생의 삶을 살아가라

 

월주 대종사는 미래의 동량(棟梁)인 대학생들에게 법어를 내리기도 했다. 대종사는 공부함에 있어서 출세가 아닌 사회 환원과 회향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여러분들이 하는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와 사회에 회향하고 환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 욕망 충족과 출세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공부하는 이의 기본자세입니다. 나의 이웃이 질병과 빈곤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하고 못 배운 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줘야 하며, 자연과 환경을 살리고 전쟁을 방지해 지구촌의 평화를 실현하는 일이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월주 대종사는 다양한 자리에서 이 시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법을 설했다. 정치지도자들에게는 절제된 언어와 신중한 행동을 주문했으며, 노사에게는 상생의 지혜를 요구했다. 또한 극좌·극우의 극단적 이념 대립을 벗어날 것도 당부했다. 결국 소통과 상생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는 20071화해와 상생모임에서의 격려사에서도 확인된다. “국론 분열의 큰 골인 극좌·극우의 극단적 대립을 지양하고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접점이 우리 사회 이념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돼야 합니다. 화합과 중도를 지향하는 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정치지도력과 사회통합력으로 확대될 때 우리 사회가 다소 혼란과 진통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에게 국민통합과 국가의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 <육조단경>佛法在世間

 

월주 대종사는 육조 혜능 대사의 <육조단경>에 나오는 불법재세간 불리세간각 이세멱보리 흡여구토각(佛法在世間 不離世間覺 離世覓菩提 恰如求兎角, 불법은 세간에 있으며 세간을 떠나서 깨닫지 못하네.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찾는다면 그것은 마치 토끼의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을 평소 법문에 자주 인용·강조했다. 2009년 금산사 1410주년 개산대재 법회에서 법석에 오른 월주 대종사는 자비는 보살도의 근본이며 수행과 보살도의 실천은 둘이 아니다라며 누누이 강조하지만, 세간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거북이에게서 털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설했다. 또한 세상을 향한 자비심을 갖기를 대중에게 당부했다

 

원행스님 이재명, ‘나눔의집문제 죄송하고 빨리 매듭짓겠다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724일 월주스님의 입적 추모차 금산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불교계에 나눔의 집문제와 관련해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25일 전북 김제의 금산사에서 기자들에게 제가 (어제) 직접 같이 (이 지사를) 만났다“(이 지사) 당신은 (나눔의 집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했는데, 일이 좀 꼬였다. 죄송하게 생각하고 최대한 빨리 매듭을 지어서 큰 스님의 유지(遺志)를 잘 받들겠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원행스님은 24일 분향소에서 참배를 마친 이 지사와 경내 적묵당에서 30여 분간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가 사과의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 더불어민주당 대권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7월24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에 마련된 월주스님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722일 입적한 월주스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지원시설인 나눔의 집설립자이자, 20년 넘게 이곳의 이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2020나눔의 집에서 내부 고발 형태로 후원금 유용 논란 등이 불거지며 이사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당시 경기도는 민관합동 조사에 착수했고, 후원금 용도 외 사용, 보조금 목적 외 사용, 기부금품법 위반 등을 이유로 월주스님 등 승적을 가진 나눔의 집 이사 5명을 해임 처분했다. 경기도의 해임 명령이 내려지자 조계종 내부에서는 경기도 행정 조치와 이 지사에 대한 비판, 불만이 감지됐다.

 

원행 스님은 이날 근래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특히 나눔의 집 문제로 인해서 (월주 큰스님이) 충격을 받으셨다고도 했다. 이날 경내 보제루에서 열린 월주스님 상좌(제자) 간담회에서도 나눔의 집 논란으로 월주스님이 많이 힘들어했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간담회에 참석한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은 “(큰스님이) 이사장 직무 정지까지 됐는데, 굉장히 상심하셨다그래서 마음에 병을 얻으셨고, 지병을 얻으셨다고 회고했다. 다만 그는 나눔의 집과 관련해 행정적으로 미비한 사항이 있으면 전부 바로잡으라고 말씀을 하셨다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전부 수용해서 세상 사람들이 나눔의 집에 대해서 잘못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 조처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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