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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와 불교-㉜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 돈황 중국 스리랑카 불교 서방에 알려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1/08/02 [08:47]
중앙아시아 이미 이슬람권세력이 장악, 불교는 중국 베트남 자바 스리랑카에서 융성

서양문화와 불교-㉜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 돈황 중국 스리랑카 불교 서방에 알려

중앙아시아 이미 이슬람권세력이 장악, 불교는 중국 베트남 자바 스리랑카에서 융성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1/08/02 [08:47]

중앙아시아 이미 이슬람권세력이 장악, 불교는 중국 베트남 자바 스리랑카에서 융성

 

서양불교를 천착하는 과정은 멀기만 하다.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는 그리스-박트리아에서 그리스 사상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상호 융화의 과정을 거쳐 혼합주의를 수용하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군사적으로 동방원정을 강행, 이집트,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석권하고 인도의 일부까지도 점령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하지만 일찍 요절함에 따라 그의 군사적 후계자들은 거대한 영토를 분할, 점령하여 로마제국에게 패배할 때까지 헬레니즘 세계를 한동안 유지했다.

 

▲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의 막료로 활약한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상인 마르코 폴로. 

 

▲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 여정 지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패권은 서로마의 멸망으로 동로마제국이 차지하게 됨과 동시에 기독교를 공인하여 제국의 주류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불교는 더 이상 서진을 하지 못하고 인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으로 동점(東漸)하게 된다. 하지만 불교와 기독교는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접촉을 하였으나 이마저 단절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로마 제국은 기독교가 주류 종교로서 오랫동안 자리를 잡게 되고 초기에는 유대교 나중에는 동서교회의 분열과 이슬람의 대두로 치열한 종교적 공방전을 벌이게 된다. 기독교 역사상 11세기에 로마교회의 서방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교회의 동방교회가 상호 파문으로 분리되는 아픔을 겪는다.

 

불교는 로마제국 시대로부터 동로마 제국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이집트)에 까지 진출하여 미약하지만 활동을 함으로서 불교라는 존재감은 있었으나, 뿌리를 내려 정착하는 데에는 한계를 느꼈지 않나 생각된다. 일부 서양 불교학자들은 불교가 일찍이 지중해 세계에 접근하였으며, 초기 기독교 시대에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가 윤리적 측면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전회에서도 약간 언급했지만, 이른바 기독교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저서에서 불교를 언급하고 있으며,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는 다르다는 정도의 개념이라고 본다.

 

이슬람교의 성립과 십자군 전쟁 등, 지중해와 유럽은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가 몰아 쳤으며 동시에 기독교는 완전하게 서방의 종교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한편, 불교는 중앙아시아에서 한동안 전성을 구가하면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 질러서 천산산맥과 곤륜산을 넘어 중국에 전파되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불교는 확고한 위치를 점하였고 주변국들도 전부 불교의 나라가 되었다.

 

인도에서 금강승(밀교) 불교는 히말라야를 넘어서 티베트 까지 진출해서 초원지대에 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몽골초원에는 칭기즈칸이라는 영웅이 출현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고 몇 개의 칸 국이 건국되어 있었다. 중국에는 이라는 몽골계의 칸 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 제4차 십자군 이후 로마제국의 분열 지도(1204년경).  

 

이때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가 이탈리아(127117세 무렵) 고향을 떠나 아시아를 탐험하고 21년만인 1292년에 베네치아인 고향에 돌아왔다.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할 수는 없다. 그는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서 그가 여행한 지역의 방위와 거리, 주민의 언어, 종교, 산물, 동물과 식물 등을 하나씩 기록한 탐사 보고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1권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2권은 쿠빌라이 칸 치하의 원나라, 3권은 일본·동남아시아·남아시아·아프리카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불교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부분이 둔황 중국 티베트 베트남 자바 스리랑카의 불교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지중해 세계에서 불교가 활동한지 1천여 년 간의 공백을 마르코 폴로는 메워주고 있다고나 해야 할 것이다. 마르코 폴로 이전에도 로마 교황이 파견한 첫 동아시아 사절의 사행이 있었다. 카르피니는 이탈리아인 선교사로서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이었다. 로마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명령에 의해서 1245416, 리용을 출발해서 도중에 볼가강 하구의 바투의 본영에 들러서 722일 카라콜름 부근의 귀의크 칸의 본영에 도착했다. 461113일 본영을 떠나서 이듬해 1118일 리옹에 귀착, 교황의 서신에 대한 귀의크의 답신을 가져왔다.

그의 견문록은 루브뤽의 견문기와 함께 소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몽골의 실정, 주민의 습관을 유럽에 처음으로 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작은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 약칭: OFM)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창설한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의 수도회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226)는 이탈리아의 로마 가톨릭교회 수사이자 저명한 설교가이다. 또한, 프란치스코회의 창설자이기도 하며, 프란치스코 사후 프란치스코회는 1회인 작은형제회와 카푸친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작은형제회, 수도회, 2회 클라라 수녀회, 3회 재속회로 나뉘었다. 프란치스코는 생전에 사제 서품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역사적으로 유명한 종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 세계 각국 출신들의 프란치스코 수도사들. 

 

▲ 프란치스코회를 창설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카르피니는 1245416일에 프랑스의 리옹을 출발, 러시아의 키예프를 지나 볼가강 하류에 있는 킵차크 칸국 수도 사라이에 도착하여 바투를 알현하고 그곳에서 1개월간 체류하였다. 그 뒤 계속 동으로 나아가 카스피 해와 아랄 해 북부 초원지대를 지나 중가리아 분지에 들어섰다. 여기서 몽골고원을 경유하여 1246722일에 몽골 수도 카라코룸 부근에 있는 귀위크 칸의 본영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다음 달에 마침 귀위크가 칸에 등극하자, 그를 곧 알현하고 교황의 타타르(몽골) 황제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하였다.

 

카르피니는 약 4개월간 체류한 후 귀위크 칸이 교황에게 보내는 답신을 휴대하고 1113일 귀국길에 올랐다. 이듬해 69일 키예프에 도착, 폴란드와 포예미아를 거쳐 1247년 가을 리옹에 귀환해 교황에게 복명(復命)하였다. 귀위크의 답신에 나타나듯이, 몽골군의 서정을 저지하려는 카르피니의 사명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기욤 드 뤼브룩의 탐험 경로 지도.    


또 한명의 프란치스코회의 선교사인 기욤 드 뤼브룩(Guillaume de Rubrouck, 1220~ 1293)은 플람스(네덜란드)인 프란치스코회 선교사이며 탐험가이다. 1253년 기독교를 포교하기 위해 5천마일의 긴 여행 끝에 1254년 몽골에 도착하였다. 1255년 트리폴리에 귀환하여, 후에 동양 각지의 지리·풍습·종교·언어 등을 저술한 여행기를 썼다.

 

이 시기는 몽골군의 서정과 그에 따른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4대 칸 국 및 강대한 원제국의 출현은 유럽인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와 더불어 십자군 원정에서 연전연패한 유럽은 이슬람에 대한 견제에 원제국의 협력이 필요했고, 아울러 기독교 전도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유럽은 원과의 관계 수립에 적극 나섰다. 

▲ 1204년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는 십자군.     


십자군 전쟁은 중세 라틴 교회의 공인을 받은 원정대와 이슬람 군대 사이에 레반트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종교전쟁(교황의 권력을 찾기 위한 전쟁)이다. 좁은 의미의 십자군이라고 하면 성지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지중해 동해안 지역에서 진행된 전쟁들을 가리키나, 넓은 의미에서 중세의 기독교회에서 주동한 다른 전쟁들을 십자군으로 보는 관점 또한 존재한다. 이교도나 이단의 토벌, 가톨릭 집단 내부의 분쟁, 정치적 이득 등 전쟁의 동기는 매우 다양했다.

 

막강했던 서로마제국은 유럽 열국으로 분열하였고, 반면 동로마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1453년 함락 되고 마는데 무려 1천년 이상을 존속하였다. 이제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종교 정보는 참으로 놀랄 정도이다. 1천 년 간 중앙아시아의 주류 종교였던 불교는 자취를 감추고 이슬람이 대체했고, 동방교회에서 분파한 네스토리우스파인 경교(景敎)도 중앙아시아는 물론 중국까지 전파되어 있었고, 몽골 초원에서도 신앙되고 있을 정도였다.

 

불교는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나라들에게까지 전파되었으나, 마르코 폴로 시대에는 중국의 서북 변방인 돈황에서부터 보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몽골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아불교평화회의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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