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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서양문화와 불교-㊸ 서양 철학자들 불교에 주목, 쇼펜하우어, 니체 불교찬양
불교사상과 서양철학의 유사성 발견,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과 인도 용수의 중론
기사입력: 2021/10/18 [07:09]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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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상과 서양철학의 유사성 발견,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과 인도 용수의 중론

 

서양철학과 불교사상의 유사성은 이미 헬레니즘 시대부터 있어왔다. 알렉산더 동방원정에 참가했던 피론(Pyrrhon, 기원전 360~기원전 270)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서 인도에 가서 나체 수행자들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다. 또한 그의 철학은 불교사상과도 일맥상통했던 것이다. 피론은 엘리스 출신으로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80,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와 같은 연배인 아낙사르코스에게 사사하였다. 30세 때 아낙사르코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정(東征)에 참가하여 인도에 갔으며, 거기서 고대 인도의 나체 수도자들을 만나서 이들이 육체적 쾌락을 피하고 자연의 관상(觀想)을 주로 하면서 무소유로 사는 것을 보고 그들로부터 비술(秘術금욕·현자의 도()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인도에서 돌아와 철학자로서의 생애를 시작하고 엘리스에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과 같이 혼의 안정(安靜)을 얻은 사람으로 유명하였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데, 저서는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애초에는 일개 화가에 지나지 않았으나 데모크리토스의 설을 공부한 것이 동기가 되어 회의론의 기초를 만든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고대 회의론이 그의 이름에서 연유하여 피론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자인 티몬이 그의 학설을 전하고 있다.

▲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플라톤 칸트 니체 붓다 공자 아베로에스(스페인의 아랍계 철학자·의학자).   

 

크리스토퍼 벡위스(Christopher I. Beckwith, 1945~ )는 피론의 철학에서 불교의 삼법인 (三法印)사상을 밝혀내고 있다. 크리스토퍼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의 중앙유라시아학과 교수로서 우랄 및 알타이학 연구의 권위자이다. 벡위스의 언어-종족 가설에 따르면 고구려-일본어 조어를 말하는 집단은 중국 요서 지방을 원거주지로 하며 한반도와 일본 규슈로 이동하여 후자는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되고, 전자는 고구려-부여--옥저 등 부여어족을 말하는 집단을 형성했다고 보고 있으며, 현대 한국어의 직계 조상이 되는 신라어(한계 언어)를 말하는 집단은 이들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여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담론의 전개가 약간 옆으로 흐르긴 했지만, 다시 메인 주제로 돌아가서 불교사상과 서양철학의 관련을 고찰해 보자.

 

헬레니즘 시대로부터 불교사상과의 접촉은 계속 있었다고 보며, 시대를 훨씬 뛰어넘어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와 같은 유럽사상가들이 불교사상에 심취하여 각별히 주목하게 되었다. 아시아의 불교 모더니스트들은 쇼펜하우어(1788~1860)와 니체(1844~ 1900)와 같은 서양 철학자들의 불교통찰력을 불교철학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박사논문에서 헤겔의 이성능력 즉 초감적인 절대자를 인식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당대의 강단철학자 헤겔이 주장하는 '초감각적인 절대자를 인식하는 이성능력'은 감각이 제공하는 재료를 개념화하고 추론하는 능력일 뿐이지, 결코 인식의 재료를 스스로 산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의 모든 가능성을 넘어서는 인식의 내용을 근원적으로 자신으로부터 제공하는 이성이라는 것은 쇼펜하우어의 표현에 따르면 헤겔 같은 철학교수들이 지어낸 망상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혹평하고 있는 것이다.

▲ 불교사상을 찬양한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로부터 세계를 산출한 인격적 신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교수들의 시도는 칸트의 이성비판에 의해 무의미해 졌다는 것을 쇼펜하우어는 강조한다. 그 누구도 칸트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으므로 학자들이 내세운 신의 현존에 대한 증거들이 완전히 힘을 잃게 되었고, 철학교수들도 사변신학의 증명들을 경시했으나, 야코비(1804~1851년 독일의 수학자)가 발명한 "신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고 신이 세계를 창조한 방법을 선천적으로 구성하는 이성능력"에 의해 칸트의 이성비판의 본래적 의미가 왜곡되고 말았다고 쇼펜하우어는 주장한다.

 

칸트의 이성비판이 유신론에 대해서 지금까지 감행된 것 중에 가장 강력한 공격인 반면에, 칸트의 이성비판이 불교국가에서 나타났더라면 그 국가의 종교적 입장과 그것이 조화로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쇼펜하우어는 주장한다. 불교는 유럽 그리스도교와는 다르게 명백히 무신론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파악한 불교에 따르면 가시적 천체의 시작은 누군가의 창조에 의해서가 아니라 빈 공간으로부터 일관성 있고 불변하는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났다. 따라서 불교의 체계에서는 어떤 원초의 신적인 창조의 이념이 발생할 수 없고, "세계와 모든 사물을 창조했고 유일하게 숭배될 만큼 존엄한 초월적 존재가 있다"는 학설이 가장 심각한 이단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창조에 대해서도 별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는 준엄하며 불변성을 지닌 자연법칙에 따라 발생했다는 것이다.

 

"불교의 체계에서는 어떤 원초의 신적인 창조의 이념도 발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저절로 생겨났으며, 자연의 이치가 그것을 퍼트리고 다시 거두어들인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쇼펜하우어는 독일 학자들의 책에서 일반적으로 종교와 유신론이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비판한다. 유대교와 유신론만이 동일할 뿐이므로, 유신론은 종교의 한 종류일 뿐이라는 것이다. 세계 창조자로서의 신에 대한 인식은 유일하게 유대교에서만 주장될 뿐, 고대의 종교나, 최근의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저서가운데 우리에게도 잘 아려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독일 관념론의 한 전제에서 출발하면서도 '이성'에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그가 자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강단철학으로부터 전적으로 무시당했는데 이 책의 부록격인 여록과 보유를 통해 '선각자(先覺者)'로서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명제로 시작되는데, 인식론적으로는 칸트의 주관주의를 계승한다. 사물은 그것이 우리에게 현상(現象)하는 한에서만 인식된다. 때문에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것 이상으로 확실한 진리는 없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칸트의 인식론을 단순화하여 여러 가지 인식 형식을 오직 한 가지 인과율의 범주로 환원하였다. 모두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현상이요, 그 현상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어 인과율에 지배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 현상 이상인 것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꿈이나 환상과 같이 알맹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 본질의 인식은 우리들의 신체를 통하여 비로소 가능하다. 결국 우리들은 한편으로 인식의 주관(主觀)이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하나의 수수께끼를 가지는 것이며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의지와 신체 관계는 인과적인 것이 아니라 동일적인 것이며, 따라서 신체는 의지의 객관태(客觀態), 즉 객관화된 의지이다. 이것은 모든 존재에 적용된다.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곳곳에서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외견상으로는 아무리 다르다고 하더라도 원리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는 원인도 없고 목적도 없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불교적 논리와 일맥상통했으며, 스스로 불교에 깊이 침잠한 철학자였다.

▲ 1875년 경 스위스 바젤에서의 니체.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는 독일의 문헌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하였고, 이성적인 것들은 실제로는 비이성과 광기로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관념론과 기독교는, 세계를 두 개로 구분 짓는다. 이를테면 기독교는 이승 이외에도 하늘나라가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플라톤은 세계를 현상계와 이데아계로 이분한다. 니체는 이러한 구분에 반대하며 '대지에서의 삶을 사랑할 것'을 주창하였다. 또한 현실에서의 삶을 비방하는 자들을 가리켜 퇴락한 인간이라 부르며 비판하였다. 이렇듯 '영원한 세계''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니체는 관념론적 형이상학에 반대한다. 니체는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달리,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멸망적 교리만을 전했다며 기독교를 비판했다.

 

니체는 전체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비판했다. 1865년에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글들을 알게 되었고, 그는 1866년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의 책,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에 대한 비판을 읽었다. 그는 두 사람의 저서 모두와 자극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저서는 니체가 그의 지평을, 철학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확장하도록 격려했으며, 그의 학업을 지속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니체에 따르면 신의 죽음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가치의 상실을 의미한다. '신의 죽음'이란, 종교 혹은 이상주의 등의 신앙이 상실된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달리말해, "신의 죽음이란 허무주의의 도래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최고가치의 상실과 허무주의의 출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삶의 최고가치가 상실된 상태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안티크리스트에서, 니체는 기독교와 불교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 책에서 니체는 일견 불교에 대해 호평을 내리지만 이내 기독교와 불교 양자를 퇴폐적인(데카당트) 종교로 규정짓는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이며, 불교는 삶에 지친 노인들을 위한 종교이다. 선악의 저편에서, 니체는 자신을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로 소개한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철학 소설이다. 영원 회귀, 신의 죽음, 초인(Übermensch, 超人)의 개념을 다룬다.

▲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철학자들인 후설, 하이데거, 교토학파, 불교와 과정철학, 범심론(汎心論)과 불교, 분석철학자인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1889~1951)이 불교와의 관련된 철학적 사고(思考)를 함으로써 불교가 서양에 정착하는데 이론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이란 변화와 발전을 갖는 형이상학적 실재를 밝히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후 철학자들은 영원한 본질(permanent substance)에 근거하여 참된 실재(true reality)를 영원한 것으로 가정하였다. 과정이란 영원한 본질에 거부되거나 종속되는 것으로 보았다. 즉 고전존재론은 어떤 실재가 변화된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를 비롯한 화이트헤드와 같은 철학자들은 존재의 물리학과 생성의 물리학을 구별하였다. 화이트헤드는 고정 불변하는 실재(reality)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철학적 개념(또는 안목)만으로 이해되는 우주는 진정한 우주가 아니다라고 한다. 실재(reality)란 과정(process)이라고 본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영어: Alfred North Whitehead,1861~1947)는 영국의 철학자·수학자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수리 논리학(기호논리학)의 대성자 중 한 사람이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고향 마을에 세운 해수관세음보살도량 당제산 여의암에서 코로나 종식을 위한 정근 정진기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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