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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법원, '여성 낙태권 인정' 로 대 웨이드 판례 번복

김희성 기자 | 기사입력 2022/06/25 [09:52]
“임신중지권은 헌법적 권리 아냐”...“49년 전으로 후퇴”

美대법원, '여성 낙태권 인정' 로 대 웨이드 판례 번복

“임신중지권은 헌법적 권리 아냐”...“49년 전으로 후퇴”

김희성 기자 | 입력 : 2022/06/25 [09:52]

 

▲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공식 폐기 결정한 가운데 대법원 청사 앞에서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슬퍼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임신중지권은 헌법적 권리 아냐”...“49년 전으로 후퇴

절반 이상 주 낙태금지·엄격 제한전망바이든 보수 대법원의 비극적 오류

 

미국 연방 대법원이 24(현지시간) 낙태를 합법화한 이른바 로 대() 웨이드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이에 따라 낙태권을 인정할지에 대한 결정은 각 주 정부 및 의회의 몫으로 넘어가게 돼, 주별로 낙태를 금지할 수도 있게 됐다. 지난 1973로 대 웨이드판결 이후 50년간 연방 정부 차원에서 보장됐던 낙태 권리가 후퇴하면서 갈등과 혼란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대법원은 이날 로 및 플랜드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판결과 관련, “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며 헌법의 어떤 조항도 그런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면서 이에 따라 이 판결은 기각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낙태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은 국민과 그들이 선출한 대표에게 반환된다고 결정했다.

 

앞서 미 대법원은 1973년 낙태권을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판결을 내렸으며 이 판결은 1992플랜드페어런드후드 대 케이시사건 때 재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에서 보수 대법관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 판결은 뒤집히게 됐다. 전체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연방 대법원에서 6명의 대법관이 보수 성향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판례를 뒤집는 것이 다수안으로 채택됐다는 판결문 초안을 보도했는데, 이날 판결은 이를 공식 확인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 반대한 대법관은 소수 의견을 통해 근본적인 헌법적 보호를 상실한 수백만의 미국 여성을 위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미 대법원이 낙태권이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권리가 아니라고 결정함에 따라, 향후 주별로 낙태 관련 입법과 정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낙태를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법관 9명 중 5명이 다수의견을 형성해 이번 판단을 내렸다. 다수의견을 집필한 새뮤얼 앨리토 대법관은 “‘로 앤 웨이드판결은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그 추론은 특별히 빈약하고, 그 결정은 악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임신중지 문제를 국가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논란을 악화하고 분열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1992년 이 판례를 뒷받침한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판례도 폐기했다.

▲ 낙태권을 옹호하는 활동가들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대법원 청사 앞에 연방 차원의 낙태권 폐지를 결정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을 비난하는 시설물을 설치해 뒀다. EPA 연합뉴스    

 

기존 판례를 폐기하는 다수의견의 핵심 논리는 임신중지는 헌법과 관련이 없으므로 애초부터 대법원이 심사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수의견 대법관들은 헌법은 임신중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임신중지권은 헌법 조항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임신중지권이 헌법 조문에 들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헌법상 권리인 사생활의 자유 차원으로 해석한 것은 지나치다는 판단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미국 전체 차원에서 임신중지권은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됐다. 대법원은 임신중지에 대한 입법은 각 주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미 미국 남부와 중부를 중심으로 공화당이 주정부를 장악한 주들은 로 앤 웨이드판례가 유효한 상황에서도 짧게는 임신 6주 이후의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등 임신중지권을 노골적으로 부정해왔다. 일부 주들은 임신부 목숨이 위태롭지 않다면 어떤 경우라도 임신중지를 못 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까지 파기한 터라, 전체 50개 주 가운데 절반가량이 임신중지권을 부정하는 법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진보 성향인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공동 집필한 소수의견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이 법원과, 나아가 오늘 기본적인 헌법의 보호를 상실한 수백만 미국 여성들을 향한 슬픔을 느끼며 우리는 다수의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른 보수 성향 대법관 5명의 기존 판례 폐기 의견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다만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률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6 3으로 갈린 판단에서 다수의견 편에 섰다.

▲ 24일 ‘로 앤 웨이드’ 판례 파기 소식을 접한 여성들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CNN은 이번 판결은 수십년 만에 가장 파장이 큰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지난달 초 <폴리티코>가 이번 판결 초안을 입수해 공개하자 격렬한 반발이 일었다. 워싱턴 대법원 청사 앞에서는 규탄 시위가 이어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이 헌법적 권리라는 점을 부인하면 입법으로 임신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 사안을 11월 중간선거의 쟁점으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공화당 쪽의 대법원 장악시나리오의 성공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공화당 쪽은 보수적 의제에 전적으로 충성하는 대법관들을 기용하면서 대법원의 확실한 보수화를 추구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 임명된 브렛 캐버노 등 대법관 3명은 이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들을 지명할 때 임신중지권 판례에 관한 입장을 평가 잣대로 삼았다.

 

대법원은 전날에는 공공장소에서 권총을 휴대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한 뉴욕주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것도 총기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적 가치관의 편을 확실히 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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