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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김영주 판사 -하나님의 간증이 되게 하신 하나님
기사입력: 2010/09/09 [15:07]  최종편집: ⓒ 매일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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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김영주 판사

하나님의 간증이 되게 하신 하나님

(2010. 8. 26)

 

간증하는 김영주 판사.1982년생. 인하대 법학과 졸, 49회 사법고시,39기 사법연수원, 현 창원지법 판사

 

 

 

나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다. 고2 때 우연히 받은 성경책을 뒤적이다 시편 150편 6절의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는 말씀을 보고 순간 ‘나도 호흡을 하고 있으니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학교 친구와 교회에 가서는 ‘주만 바라볼지라’는 헌금찬송을 듣고 눈물이 났다. 그 때부터 혼자 말씀 듣고 돌아오는 교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 하나님께 봉사하고 싶어 사랑부 봉사를 시작했다. 대학 4학년이 되자 특별한 꿈도 없었지만 진로가 고민되어 교회에 다니는 사촌언니와 아르바이트했던 보습학원 원장님 두 분께 나의 진로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두세 달 후 거의 동시에 ‘하나님께서 고시공부를 원하시는 것 같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당시 인하대 법학과에는 고시 공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딱 3년만 공부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의 진로 ‘기도해 달라’ 부탁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승낙해 주셨다. 친구들은 취직할 때였다. 나는 공부를 썩 잘한 편이 아니었기에 부모님께 비용을 달라기가 죄송했다. 살아갈 수 있는 최소비용만 가지고 신림동고시촌의 책상 하나 덩그러니 있는 방에 짐을 풀었다.

그러나 너무 행복했다. 그동안 한 번도 부모님께 교회 다닌다는 말을 못했다. 부모님이 워낙 교회를 싫어하셨기 때문에 집에서 성경책을 읽거나 무릎 꿇고 기도하지 못했다. 환경은 최악이었으나 마음껏 성경을 읽을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주일에도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어 정말 행복했다.

고시생들의 생활은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부하고 밥 먹고 다시 공부하다 지쳐 쓰러져 자고 다시 일어나 공부하는 생활의 연속이다. 나는 하나님으로 인해 시작한 공부였고, 하나님이 즐거운 마음을 주시니까 공부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공부가 내 인생의 우상이 되고 있었다. 주일에도 공부하고 싶어 ‘대예배만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사랑부봉사도 그만 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뒤엎는 사건이 벌어졌다. 주일 캠프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산책했지만 공부 생각만하다가 길을 잃었고,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를 업고 가다 넘어져 정강이뼈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이의 걱정보다 ‘시험에 떨어져도 좋으니 사랑부를 계속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회개의 기도가 나왔다. 아이 어머니는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고, 아이는 깁스를 하고 매주 교회에 나왔다.

사법시험 1차를 봤다. 그 때는 주일에 시험을 치렀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때인데도 시험 보러 가는 게 너무 싫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었고, 대예배도 드리고 싶은데 교회에 갈 수 없어서 속상했다. 하나님께 처음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붙여주세요. 떨어지면 내년에도 또 교회에 못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다.

1차 사법고시에 떨어진 해 집안에 악재가 겹쳤다. 가게에 불이 나서 아버지가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고, 어머니는 관절염으로 수술 받아 역시 병원에 입원했으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부모님의 간병을 위해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탄은 부모님께 완악한 마음을 줬다. 어머니는 ‘우리 가정이 힘든 것은 너 때문이다. 네가 교회 다녀서 그렇다.’며 성경책과 교회에 관한 모든 것을 버렸다. 집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학원 오전반을 끊어놓고 조금 일찍 나와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사법고시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믿는 집에 시집가서 기도하며 살고 싶다’고 기도했다.


하나님께 봉사는 절대플러스


다시 신림동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은혜로 즐겁게 1년 동안 공부하여 사법시험 1차를 합격하고 2차 공부를 하게 됐다. 그런데 2차는 1차보다 과목 수도 많고, 외워야 할 것도 많아 또다시 시험에 들었다. ‘주일에도 공부해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랑부 예배부장 직을 맡으라고 했다. 이 직을 맡으면 한 주도 교회에 빠질 수 없고, 여력이 되면 평일에도 일해야 한다. 그때 ‘아, 하나님이 주일에도 공부해야 한다는 시험에 들까봐 기회를 주시는구나’ 생각되어 고민할 틈도 없이 응낙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신림동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평성전에 달려가 대예배를 드리고, 임원회의를 하고, 사랑부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임원회의를 하고, 다음 주 예배를 준비해야 하는 등 주일을 온종일 드려야 했고, 토요일 밤에도 교회 일을 해야 했으며, 평일에도 선생님들과 연락을 해야 했다. 그때 고시생인 나에게 제일 중요한 시간을 드리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겠구나 생각하고 ‘하나님, 저의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간증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전달하실 메시지는 이거 하나라고 생각한다. 고 3이든 중요한 시험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든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플러스요, 하나님께 기쁨 돌려드리는 일이라는 것을 간증하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지만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 물을 안마시고, 이빨도 안 닦았으며, 씻지도 않고 공부에 전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토하기가 일쑤였다.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끔찍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마음은 기뻤다. 모의고사를 공부하는데 성적이 안 나왔다.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하나님 뜻이면 3년으로 끝나게 해 달라’고.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딸아, 내가 언제 네가 기도할 때 안 들어 준 적 있느냐” 다시 마음을 부여잡고 하나님의 은혜로 2차 시험에 합격했다. 어머니께 전화하자 어머니는 ‘장하다, 내 딸아. 네가 엄마 말 잘 듣고 교회 안다녀서 시험에 붙었구나’라고 말씀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교회에 다녔어요. 하나님이 붙여주셨어요.’ 어머니는 나중에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연수원과정이 경쟁보다 힘들었다. 나는 학벌이나 집안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인데 연수생 천 명 중 70~80퍼센트는 학벌이나 집안 등 좋은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어서 인간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 사람들 틈에서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이런 것을 놓고 기도하자 마음속에서 ‘네가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기 때문에 너를 택했다. 하나님이 그래서 더욱 영광 받으실 것이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연수원생활하면서 주일에는 교회에 나갔다. 사람들은 ‘이렇게 공부할 것이 많은데 교회 가느냐’며 의아해했다. 교회 갔다 오면 밤이 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다 나중에 어떻게 되는가 두고 보자’는 시선을 주었다. 내가 열심히 해야 하나님이 드러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공부하여 4학기 시험을 마치고 좋은 성적으로 법원에 지원해서 판사로 임용되었다. 그 후  연수원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신앙생활 열심히 하더니… 정말 하나님이 계신가 보다”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그렇게 교회 다니면서도 판사가 될 수 있구나. 나도 교회 다녀야겠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재판하는 것이니…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족하게 하신 이유와 나에게 이런 믿음을 주신 이유와 이런 결과를 주신 이유는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를 판사 시키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님이 이 자리에 오셨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싫어하셨다. 아버지는 거짓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는데 나는 거짓말 하며 10년 동안 몰래 교회에 다녔다. 아버지는 ‘든든한 백이 되어 주지 못해 어떻게 하냐.’ 이런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나는 내가 힘들어 하고 괴로워할 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아버지가 가장 든든한 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난이 닥쳤을 때 함께 기도하고 이겨낼 수 있는 우리 가정이 됐으면 하는 소망 하나밖에 없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주신 것만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부모님께 건강하게 잘 키워주신 것, 평생 성실함을 온몸으로 보여주심에 감사드린다.

판사로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재판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나의 판결이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뀌게 할 수도 있기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나는 능력도 없고,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다. 사람이 어찌 같은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뿐이다. 나는 판결문 쓰기 전에 하나님이 재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로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하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사건을 오판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판결하도록 기도를 부탁드린다. <정리: 박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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