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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총수 배출의 산실-진주 지수초등학교와 풍수 지형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0/07/27 [10:12]

재벌총수 배출의 산실-진주 지수초등학교와 풍수 지형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0/07/27 [10:12]

재벌총수 배출의 산실

진주 지수초등학교와 풍수 지형


산 정상 큰 바위 성체마냥 자리해

큰 부자가 나리라


구철회(LG 부회장), 허정구(전 삼양통상 사장), 구정회(전 금성사 사장), 허준구(LG 명예회장), 구자경(LG그룹 명예회장), 구평회(전 호남정유 사장), 구두회(전 LG 사장), 허신구(LG 명예회장) 등 기라성 같은 성공신화의 인물을 배출한 진주 지수초등학교. 어인 연고로 이 학교는 대 잇는 거부를 줄지어 배출해 냈으며 지금껏 부자가 되려면 이곳으로 전학 와야 하는 신화를 보듬고 있는가.


지수초등학교(사진 위)와 구인회,이병철,조홍제

 

 

‘진주라 천리 길’을 다녀왔다. 경남 서부 지역 교육·상업 중심지 진주는 서울 등 7대 광역도시를 제외한 전국 162개 시, 군 가운데 230여 명의 각계 엘리트를 배출해 인물순위 1위에 오른 도시로 유명하다. 그중 61명이 한국 경제 개발에 추진 동력을 보탠 굴지의 기업인들이어서 다른 지역보다 재벌 총수들이 많다. 그 인재 배출의 산실로 80여 년 전통을 이어온 곳이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195-2번지에 있는 지수智水초등학교다.

1999년 가을 도하 각 일간지에는 ‘동문이 살린 모교’, ‘전학 오면 매달 30만 원씩 드려요’라는 제하의 이색적인 기사가 보도되면서 전국 학부모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전국 어디서든 지수초등학교로 전학만 오면 살림집 알선과 함께 매달 30만 원씩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학생 수 1백 명 미만의 학교는 통폐합하게 되어 있어 재학생 43명으로 폐교 위기에 처하자 재력이 막강한 동창회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파격 제안이었다. 당시 총동창회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었고, 그는 이 학교 14회 졸업생이었다.

전교생 모두에게 1인당 30만 원씩 지급하며 1백 명이 넘을 때까지 학교 살리기 운동을 계속한다는 방침에 따라 대구, 진주, 창원 등지로 유학 갔던 17명의 학생들이 돌아왔고, 졸업생 기별로 모은 기금만 5천만 원이 넘었다. 그렇다면 타관객지에서 뿌리내렸던 농촌사람들이나 외지인들이 30만 원의 학자금 지원 조건에 마음이 움직여 다시 돌아왔을까. 그건 이 학교에서 배출된 재계 인물들의 면모를 파악하고 나면 금방 의문이 풀리고 만다.

1921년 개교 이래 현재까지 제83회 총 4,313명을 졸업시킨 지수초교는 LG, 삼성, 효성의 3대 재벌그룹 창업주를 연상케 하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취재 과정에서 소문과는 다른 몇 가지 사실들이 밝혀졌다.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2학년에 편입했다가 1924년 상경하여 중앙고보를 다녔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1922년 3학년에 편입, 6개월을 다니다가 같은 해 9월 서울 수송보통학교로 전학했다. 그러므로 구 회장과 이 회장은 실제 한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가 된다. 그러나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회장은 1922년 상경한 뒤 중동학교를 졸업하여 실제로 지수초교와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학교 출신의 재계인사(동창회보 ‘방어산’ 2006년 통권 제6호 참조)로는 구철회(3회, LG 부회장), 허정구(5회, 전 삼양통상 사장), 구정회(11회, 전 금성사 사장), 허준구(13회, LG 명예회장), 구자경(14회, LG그룹 명예회장), 구평회(15회, 전 호남정유 사장), 구두회(17회, 전 LG 사장), 허신구(18회, LG 명예회장) 등 기라성 같은 성공신화의 인물들이다. 서로가 힘겨울 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 선후배 간이라 했다. 이것이 지수초교의 저력이다.

이번 간산 길에는 한국풍수지리중앙회 거봉 김혁규 회장과 그의 문하생들이 함께했다. 지난 늦봄 이후 여섯 달 만의 동행이다. 풍수에 ‘바람 풍’자가 들어서인지 동가식서가숙하며 전국 산하를 누비고 있다 하자 “다른 고수들과의 산행으로 학문이 더욱 깊어졌겠다”며 숨겨진 내공을 함께 풀어 보자고 권면한다. 거봉은 정확하고도 풍부한 역사 지식과 수없는 사전 답사로 후학들의 섣부른 현장 판정을 경계한다. 그는 이미 진주를 중심한 함안, 의령, 창원 등지를 여러 차례 다녀가 이 지역 산세와 지형을 꿰뚫고 있었다. 거봉이 풀어 놓는 이 고장의 지세다.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남강물이 경계를 이루는 의령군과 함안군 사이에는 항상 물속에 잠겨 있는 솥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솥바위’ 또는 ‘정암鼎巖’이라고 부른다. 어느 도인이 바위에 앉아 나라를 움직이는 국부國富가 태어날 것이라 예언한 뒤 이 지역에서 세 부자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삼성 이병철(의령군 정곡면 증교리 722), 금성(현재 LG) 구인회(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360), 효성 조홍제(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3구) 회장이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창업자 생가는 솥바위 반경 20리 이내며 방향이 남과 북, 동남방 쪽이어서 세 곳을 연결하면 솥단지의 세 다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빈 솥은 곡물로 채우는 것이며 물에 항상 잠겨 있으니 재물 또한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풍수 지형 풀이지요.”

멀찌감치 방어산을 주산으로 나지막한 분지 안에 자리한 지수초교는 지방 면소재지의 여느 시골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어인 연고로 이 학교는 대代 잇는 거부를 줄지어 배출해 냈으며 현재까지도 부자가 되려면 이곳으로 전학 와야 한다는 신화를 보듬고 있는가.

“이 기자는 방어산에 오른 적 있습니까?”

“진주엔 여러 번 왔으나 먼발치서 바라보며 좋은 산이라고만 들었습니다.”

“명산으로 소문나 몇 차례 올랐는데 정상엘 가보면 국부 탄생의 지형은 이런 곳이구나를 감지할 수 있는 현장이지요.”

그러면서 이어지는 거봉의 방어산 얘기다.

“외적을 막아 승리를 얻었다는 데서 이름 지어진 방어산은 진주시 지수면과 함안군 군북면에 걸친 530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 전체를 감싸안은 소나무 숲이 일품이지만 능선 굴곡이 심해 만만한 산은 아닙니다. 정상에는 장군대로 불리는 큰 바위가 성체마냥 자리하고 있어 땅 기운이 뭉쳐 있는 곳입니다. 그 2백 미터 아래 흔들바위(일명 끄덕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방향을 놓고 지수면과 군북면 사람들 간에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바위가 향하는 좌향에 따라 그 지역에서 큰 부자가 난다는 속설 때문이지요.”

학교 교무실에 들어가니 노명환 교감이 반긴다. 운동장 옆에는 구자경 당시 LG그룹 명예회장이 11억 원을 들여 지어 준 교내 체육관과 급식소가 재학생 51명을 안타까워하듯 웅장하게 서 있다. 본관 앞 소나무는 LG와 삼성그룹 회장이 함께 심은 나무여서 ‘교목’으로 지정해 애지중지 보살피고 있다.

지수초교를 지나 지수면사무소와 경계를 이루는 신작로 건너편에는 한국경제사에 큰 획을 그은 국부들의 생가가 있다. 허씨와 구씨의 집성촌으로 현재까지도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40여 채 남아 있다. 허만정과 구인회는 합자 투자해 LG와 GS그룹의 전신인 락희樂喜(Lucky)와 금성金星(Goldstar)을 공동창업했고 사돈관계까지 맺어 탄탄한 부를 지켜내고 있다.

거봉은 “집터를 고르려면 이곳을 치밀하게 살펴 닮은 곳만 찾아도 소부小富는 나올 것”이라며 웃는다. 부자가 나온 집이라서가 아니고 법수에 딱 맞아떨어지는 물길은 말할 것 없고, 주변의 귀사貴砂(집터를 받쳐 주는 자연 물형)까지 고루 갖췄다는 지형 풀이다. 문하생 서경석 씨가 구인회 창업주 생가 좌향이 신좌(서에서 북으로 15도)을향(동에서 남으로 15도)으로 병방향(남에서 동으로 15도) 득수에 간방향(동에서 북으로 45도) 파수니 만궁형이라고 계측 결과를 말하자 거봉이 정확하게 쟀다면서 격려한다.

“다함께 주변사砂를 분석해 봅시다. 우선 수구가 사대국(목, 화, 금, 수) 포태법으로 왕旺 방향에 떨어져 금국으로 금생수金生水가 됩니다. 뜻밖의 귀인이 나타나 도와주는 길격이지요. 토형체의 뒷산은 뚜렷한 어병御屛(임금 뒤에 쳐진 병풍)으로 하전下殿(대궐 지붕)처럼 둘렀잖습니까. 거기에다 집 마당에서 바로 보이는 눈썹 같은 아미산은 금반金盤(금소반)형 옥매안산玉妹案山(옥쟁반을 든 자매)으로 빈틈없는 국세예요. 이래서 풍수는 자연과학입니다.”

그러고는 이 근처 두 문중 생가 모두가 근소한 차등은 있지만 같은 좌향의 동일한 산세여서 집단적인 부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거봉에게 지수초교가 그 많은 인물을 배출한 풍수학적 근거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곳의 지형은 우수지좌출右水之左出(물의 흐름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기운 것)로 자연생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형의 등뼈를 이루는 백두대간이 동쪽에 치우쳐 있어 대부분 물길이 동에서 서로 내려오는 동출서류東出西流잖습니까. 서울의 청계천 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한강에서 합류되어 서쪽으로 빠지잖아요. 물길은 어디서든 동쪽으로 역류했다가 합류해야 생기를 얻는 법인데 학교 옆과 창업주 생가 수구가 남향판에 서출동류西出東流(서에서 동으로 흐른 다음 다시 합류되는 것)입니다.”

강이나 냇가에서 흘러가는 물과 함께 내려가면 무슨 고기를 잡겠느냐며 물길을 역류하는 장어가 힘차다고 강조한다. 역으로 한번 뒤집어야 생기를 타고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전국 방방곡곡의 내로라하는 사대부 집안이나 부자치고 풍수를 소홀히 한 곳은 없습니다.”

거봉의 말에 힘이 실린다.

‘진주라 천리 길’도 내륙을 관통하는 대진고속도로 덕분에 밤늦은 귀경길을 재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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